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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소설] 아버지는 사이비 교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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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최평화
추천 : 0
조회수 : 390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3/12/25 07:3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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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사이비 교주 (5)



한 시간 후.

-뚜르르르—! 뚜르르르—!

통화 버튼을 누르자 휴대폰 너머 은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비번 1894 맞아?

“어? 누나, 설마 벌써 도착한 거예요?”

-응. 맵에 찍힌 주소 보면 여기가 맞는 거 같은데? 빨간색 벽돌 건물 맞지?

“맞아요. 내가 지금 내려갈게요.”

-아니야, 여기 도어락만 열어줘. 그리고 집이 몇 호야?

“입구 도어락을 여기서 못 열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를 주워 세탁기 안으로 쑤셔 넣고는 1층으로 내려갔다.



건물 입구.

은경의 양손에는 묵직한 포장 음식이 들려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짐을 넘겨 받으며 말했다.

“이게 다 뭐에요?”

“소불고기랑 닭백숙을 좀 사왔어.”

“오오, 고마워요. 나 소고기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고. 하하—!”

나의 웃음에 은경 역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때 같이 수육 먹었잖아? 돼지고기는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서.”

그때 석륜도 식당에서 먹은 수육을 말하는 거다.

건물의 계단 복도가 좁아서 내가 앞장을 섰고, 뒤에서 따라 올라오는 은경을 향해 말했다.

“혹시 내가 그때 돼지고기 싫어한다고 그랬어요?”

“아니. 그냥 눈치가 싫어하는 것 같던데, 맞지? 그래서 소고기나 닭고기, 둘 중 하나는 좋아하겠다 싶었지, 뭐.”

역시 눈치가 보통이 아니다.

2층을 지나며 뒤에서 따라오는 은경에게 말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좀 힘들죠?”

“아니야, 괜찮아. 그런데 집은 몇 층이야?”

“꼭대기 층이에요. 5층.”

“어우—!”

“미안해요.”

“뭐, 미안할 것까지야….”

그렇게 우리는 계단을 따라 올랐고, 4층에 도차했을 때 은경의 숨소리는 꽤나 거칠어져 있었다.

“잠깐 쉴까요?”

나의 물음에 은경은 발걸음을 멈추고는 후우—! 하고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

“여기 원룸 건물 치고는 층간 높이가 좀 높다, 그치?”

은경의 말이 맞다. 6평 짜리 원룸인데도 천장이 높아 방이 좁게 느껴지지는 않거든.

“맞아요. 여기 계약하면서 부동산에서 들은 건데, 원래 설계는 7층짜리였대요. 그런데 무슨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건물 높이는 그대로 두고 층수만 5층으로 시공을 했다고 하더라구요.”

“아, 그렇구나….”

“덕분에 창문 열면 근처에서 내 방이 제일 높아요. 황사 없는 날이면 서해 바다까지 보이구요.”

은경은 발걸음을 옮겨 계단을 다시 오르며 말했다.

“오, 그럼 가서 바다 구경부터 해야겠는데?”

“어제까지 비가 와서, 전망이 꽤 좋을 거예요.”

하지만 원룸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바다 구경은 커녕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입술을 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차례 거사를 치른 후였다.

화장실에 간단하게 씻고 나온 은경은 침대가 아닌, 멀찌감치 놓인 식탁 의자에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아마도 둘이 나란히 앉기에는 침대가 작다고 느낀 모양이다.

잠시 나를 응시하던 은경이 입을 열었다.

“자기는 내 첫인상이 어땠어?”

자기.

나를 부르는 호칭이 바뀌었다.

“글쎄요….”

카페에서 그녀가 처음 나에게 말을 걸었던 순간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예쁘다?”

나의 대답에 은경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리고 또?”

무언가 기대하는 표정이다. 뭘 기대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전부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게 다예요. 의도적으로 상대방 첫인상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있고요.”

“의도적으로 의미를 두지 않는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첫인상에 넘어가지 마라, 우리 박 부장님 영업 철칙이에요.”

박 부장을 언급하자 은경은 풉! 하며 웃었고, 나 역시 입가에 미소를 보이며 말을 이었다.

“나도 영업 일 하면서 별의별 사람들 다 만나봤는데, 그 말이 맞는 거 같아요. 상대를 파악하는데 첫인상만큼 빗나가는 게 없어요.”

“흠…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은경을 향해 나는 물었다.

“나는 어땠어요? 첫인상이.”

“자기 첫인상? 흠…. 그때 카페에 들어갔을 때…….”

은경은 의자 뒤로 몸을 기대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영화에 보면 클로즈업 되서 한 사람만 눈에 들어오는, 그런 장면 알지?”

비스듬히 옆으로 누웠있던 나는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대 앉으며 답했다.

“네… 알죠….”

은경은 양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그런 장면처럼 보였어.”

가만…!

그러고 보니… 그날 카페에 혼자 있는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은경은 단박에 나를 찾아냈었다.

“헐… 정말이에요…?”

나의 물음에 은경은 대답 없이 나를 빤히 바라볼 뿐이다.

이게 바로 그… 첫눈에 반했다는… 뭐… 그런 뜻인가…?

이럴 때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이… 그녀의 한쪽 입꼬리가 씰룩거리기 시작한다.

“푸흡—! 당연히 농담이지.”

허…!

이렇게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장난에 또 당하고 말았다.

“아, 정말… 하아—!”

나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고, 은경은 나를 향해 두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뭐, 그렇다고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야.”

“에이, 됐어요! 이제 더는 안 속아.”

“이건 정말인데….”

은경은 식탁 의자에서 일어나 나에게 가다왔고, 침대 위로 올라와 내 옆에 나란히 붙여 앉으며 말을 이었다.

“그때 카페에 들어갔을 때, 혼자 테이블 잡고 있는 남자가 일곱인가 그랬을 거야. 그런데 그 중에 저기 창가에 앉아 있는 남자가 내가 만나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건 정말이야..”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은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으로 보아 거짓말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은경의 장난에 한번 더 속아줘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때 바로 나한테 온 거였어요?”

은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솔직히 그때는 내가 왜 너에게 끌렸는지 몰랐어. 그런데 이제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아.”

“그게 뭔데요?”

“그때 말했잖아, 석륜도에서.”

“정서적 부유함?”

오전에 친누나가 했던 말이 떠올랐고, 나도 모르게 입가에 살짝 웃음이 스며나오고 말았다.

순간 은경의 미간이 좁아졌다.

“왜 웃어?”

“아, 미안해요.”

하지만 은경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미안하다는 말이 듣고 싶은 게 아니라, 왜 웃은 건지 물었잖아.”

건조한 목소리는 아니다.

화가 났다기 보다 내가 왜 웃었는지 궁금하다는 뜻.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까 아침에 친누나가 여기에 왔어요…. 내가 살았나 죽었나 확인하러 온 거 같은데….”

은경은 피식 웃었고, 나 역시 얼굴에 진지한 표정을 지워내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내가 자랑을 좀 했어요, 듬뿍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난다는 칭찬을 들었다고요. 그랬더니 우리 누나가 그러더라구요.”

“뭐라고?”

“우리가 그렇게 사랑받을 만큼 집에 여유가 없었다구요.”

“내 말은 금전적인 여유가 아니라—.”

나는 은경의 말을 잘랐다.

“중2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낮은 탄식과 함께 은경이 말했다.

“아, 미안… 그런 줄은 몰랐어.”

“누나가 미안할 건 없죠. 아무튼 우리 누나가 했던 말이 떠올라서 웃었어요.”

은경은 고개를 들어 나를 빤히 응시했고, 내가 시선을 피하자 그녀는 두 손을 뻗어 나의 양쪽 뺨을 잡아 자신을 향해 나의 얼굴을 고정시켰다.

그렇게 우리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의 볼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이 따뜻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음…… 그래도 내가 맞는 거 같아.”

“응? 뭐가요?”

“자기는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자랐다는 거.”

“그렇게 봐주면 고맙고요.”

나의 말에 은경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봐주는 게 아니라, 정말로 그래.”

은경이 몸을 돌려 침대 위로 올렸던 다리를 바닥에 내리자 나를 향해 등을 보인 자세가 되었고, 그녀는 그렇게 나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이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무언가 결핍이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결핍된 걸 가진 사람을 보면 한눈에 알아보는 법이거든.”

말에 담긴 뜻을 알아차린 순간, 나도 모르게 낮은 탄식음을 내뱉고 말았다.

은경은 고개를 뒤로 돌려 나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왜? 못 믿겠니?”

“그런 거 아니에요….”

은경은 다시 고개를 바로 해 나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나 어릴 때 꿈이 뭔지 알아?”

“뭔대요?”

“나는 말이야…… 엄마한테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게 꿈이었어. 그래서… 맛있는 거 있으면… 예쁜 옷이 있으면… 늘 언니한테 양보부터 했어…… 그리고 나 공부도 되게 열심히 했다? 공부가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 엄마가 가끔씩 주는 그 작은 칭찬이 너무나 받고 싶어서…….”

그동안 은경의 눈치가 빠르다는 느낌을 종종 받았는데… 문득 이런 성장 배경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은경은 담담한 음성으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런데 내가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사랑 받을 수 있는 방법은 결국 하나 밖에 없더라? 언니보다 못난 모습을 보여주는 거… 그래서 언니가 돋보이게 만들어 주는 거…… 이걸 나이 서른이 넘어서야 알았어…… 웃기지? 그런데 더 웃긴 게 뭔지 아니?”

나는 두 팔을 은경의 허리에 둘러 그녀를 가만히 안아주었고, 그렇게 백허그를 한 자세로 그녀의 귓가에 말했다.

“누나… 이제 그만 해도 돼요….”

“아니, 하고 싶어. 내 밑바닥이 어떤 모습인지 너에게 보여주고 싶어. 5년 전 파혼 당했을 때… 다짐했던 거야. 만약 나에게 다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 사람에게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다 보여줄 거라고. 나중에 이런 내 모습에 실망하지 않도록 말이야. 그러니까 들어.”

“…….”

“그런데 더 웃긴 건… 나는 지금도 엄마 꿈을 꾼다는 거야. 그리고 꿈에서 엄마가 나한테 이렇게 말을 해……. 우리 은경이 최고…… 우리 은경이 최고…라고.”

은경의 어깨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고, 나는 은경을 안고 있는 팔에 힘을 주었다.

은경은 떨리는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이게…… 엄마가 언니에게 늘 했던 말이야…… 우리 수경이 최고….”

은경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렇게 잠시 고민을 하는 사이… 거칠었던 은경의 호흡은 천천히 잦아 들었고, 나는 그녀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그게 다예요?”

은경은 나에게 기댔던 몸을 앞으로 빼내며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붉게 충혈된 그녀의 두 눈에는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뭐, 뭐라고?”

“그게 누나 밑바닥 모습 전부냐고요?”

은경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런 그녀의 시선을 슬쩍 피하며 말을 이었다.

“누나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는데… 어… 음…… 아무튼 고마워요. 누나 속에 있는 이야기까지 해줘서. 그리고 누나가 밑바닥까지 보여줬으면, 나도 그래야 할 거 같아서 하는 말인데…….”

내가 입을 다물자 은경은 자신의 허리를 두르고 있는 나의 팔에서 몸을 빼냈고, 상체를 돌려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무슨 말?”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 아버지는 사이비 종교 교주에요.”

“푸흡—!”

은경은 농담으로 받아들였지만, 나는 가볍게 꺼낸 말이 아니다.

자신의 밑바닥이라며 어머니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를 솔직하게 보여준 은경이다.

그렇다면 나도 이 이야기를 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나도 생각이 완전히 정리가 된 상태가 아니라, 이야기를 어떻게 꺼낼지 잠시 고민을 했던 거다.

“나 석륜도에서 돌아와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버지에 대해 검색을 좀 했어요.”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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