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창작소설] 아버지는 사이비 교주 (6)
게시물ID : panic_10325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최평화
추천 : 0
조회수 : 407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3/12/28 10:27:27
옵션
  • 창작글
  • 외부펌금지

아버지는 사이비 교주 (6)



석륜도에 다녀온 후 열감기로 사흘을 앓았다.

나는 열감기에 걸리면 종종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그런 묘한 분위기의 꿈을 꾸곤 하는데… 이번에는 꿈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는… 내가 입대하던 날 인천종합터미널까지 배웅을 나오셨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리고 나는 꿈속에서 아버지에게 세 개의 질문을 던졌다.



군복무 시절.

내가 신병위로 휴가 복귀를 했을 때, 우리 중대는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신교대 표창 휴가까지 붙여 7박 8일 휴가를 나갔던 내가 사흘만에 복귀를 한 탓이었다.

소대장에서 시작해 중대장, 대대장, 주임원사와 줄줄이 면담에 들어갔고, 살던 집과 아버지가 사라져서 부대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는 나의 말을 믿는 지휘관은 아무도 없었다.

룸메이트와 함께 살고 있는 누나의 원룸에서 지내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고, 대학 동기들의 자취방에서 신세를 지는 역시 사흘이 넘어가니까 눈치가 보여 더는 머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휴가 복귀와 동시에 부대 관심사병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꿈에서 만난 아버지에게 물었다. 왜 아무런 말도 없이 그렇게 갑자기 사라진 거냐고.



누나가 말한 적은 없지만 나는 알고 있다.

결혼 당시 누나가 아버지의 연락처를 알아내 자신의 결혼 소식을 전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물었다. 왜 누나의 결혼식에 오지 않았느냐고.



나의 세 번째 질문은… 석륜도까지 찾아간 나를 거절한 이유였다.

나의 물음에 아버지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그날 인천종합터미널 플랫폼에서 고속버스에 오르는 나를 보던 그 눈빛으로 말이다.

그렇게 나를 응시한 채 아버지는 담담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나와 누나를 위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이른 오전 잠에서 깼을 때, 아버지의 이 대답이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홀린 듯 컴퓨터를 켜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고, 그렇게 찾은 게 바로 1997년 8월 18일자 경북의 한 지역 신문에 난 특집 기사였다.

“잠깐만. 1997년 8월이면… 자기 어머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이지?”

우리 가족의 과거 이야기는 이미 은경에게 해 준 다음이었다.

나의 출생 직전 사라졌던 아버지가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고, 나의 군입대와 동시에 다시 잠적했던 이야기 말이다.

해당 기사가 났던 97년 8월이 어머니의 죽음 전인지 묻는 은경.

그녀가 물은 의도를 이해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그때는 아버지가 한참 떠돌이 생활을 하실 때였죠.”

떠돌이 생활이라고 말했지만… 솔직히 그때 아버지가 정말 떠돌이 생활을 했는지는 모른다.

아버지와 함께 사는 동안 누나와 나는 아버지의 ‘떠돌이 생활’ 대해 자주 물었고, 아버지는 우리의 질문을 피하지 않았다.

그 동안 아버지는 세상 구경을 다녔다고 그랬다.

부산에서 시작해, 여수, 군산, 속초, 양양, 제주도를 거쳐 안동까지 다녀왔던 이야기… 그리고 중국과 미얀마, 태국과 베트남을 여행했던 썰을 종종 누나와 나에게 풀어 놓던 아버지였다.

그때 나는 아버지의 말을 믿었고, 군입대와 동시에 아버지가 사라진 이후에도 그 이야기가 거짓일 거라 의심한 적은 없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래서… 그 기사에… 무슨 내용이 있었는데…?

나의 심각한 표정 때문인지 은경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나는 입가에 애써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아버지가 사이비 종교의 교주라는 내용의 기사였어요. 그런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마약을 사용해서 200여 명의 신도들을 조종한다는 거예요.”

당황할 줄 알았던 은경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 기사가 난 게 어느 신문인데?”

“안동 일요신문이요.”

“일요신문이면, 주간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은경은 콧방귀를 뀌는 소리를 냈고, 은경의 반응에 나는 반박이라도 하듯 말했다.

“지금은 일간지로 바뀌었어요. 그 당시 발행 부수도 확인했는데, 지방 신문사 치고는 규모가 꽤 큰 편이었구요.”

은경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에 사이비 기자들이 얼마나 많았다고. 쳇—! 마약으로 수백 명 신도를 조종해? 그게 사실이었으면, 그건 지역 신문이 아니라 중앙지 1면에 대서특필감이야!”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그럼 또 뭐!”

은경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미간을 좁힌 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해당 기사를 빌미로 내가 아버지를 공격하면, 이에 대해 은경이 반박하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이거 참….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때 석륜도 갔을 때, 기도원에서 누나가 집사님이라고 불렀던 분, 그분 이름이 뭔지 아세요?”

“집사님 이름? 뭐였지? 음… 박진혁… 맞나…?”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그분 이름도 기사에 같이 나와 있어요.”

지금 같았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그 기사에는 아버지와 그분의 실명이 떡하니 박혀 있었다.

은경은 자신의 가슴 앞에 팔짱을 끼며 따지듯 말했다.

“그래서?”

“기도원에서 만났을 때는 기억을 못했는데…… 사실 나 오래 전에 그분을 만나 적이 있어요. 고3일 때요.”

“…?”

“아버지 고향 동생이라고… 진학 관련해서 조언을 해준다고 그래서 만났거든요. 서울대에서요.”

“서울대에서… 만났다니…?”

“그분 서울대 교수님이었거든요, 서울대 생화학과 교수.”

서울대 교수라는 말에 은경의 얼굴에 가득했던 짜증 섞인 표정이 한순간에 사라졌고, 은경은 놀란 표정을 지워내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 기사에… 뭐라고 나와 있는데…?”

“박 씨의 도움을 받아 마약을 제조했다고요.”

잠시 생각을 하던 은경의 눈빛이 살아났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돼. 대학 교수가 사이비 교주와 짜고 마약을 만들었다고? 그것도 서울대 교수가?”

처음에는 나도 은경과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박진혁 교수에 대해 검색을 했고 해답은 금새 나왔다.

“그때는 교수가 아니었어요. 박사 학위 마치고 고향인 안동에 잠시 내려와 있었고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분 학위 논문도 좀 찾아봤는데, 제목이 ‘항중독성 약물에 의한 세로토닌 분비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였어요.”

좀 어렵게 들리는데 항중독성 약물이란 중독이 되지 않는 약물, 즉 마약이 아닌 약물을 의미한다.

“세로토닌은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호르몬이구요.”

나의 설명에 은경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그 정도는 나도 알아.”

“아, 솔직히 말해서… 나는 몰라서 찾아봤거든요.”

나의 대답에 은경은 피식 웃었지만, 그녀의 뽀얀 얼굴에서 웃음은 금새 사라졌다.

“그래도 그거 거짓 기사가 분명해. 그게 만약 사실이라면… 정말로 마약 관련 사건이었다면… 선생님이랑 집사님은 당연히 유죄판결 받았을 거고… 그렇게 범죄 기록이 남았으면, 가족인 너도 알고 있어야 하는 거잖아. 안 그래?”

나라고 이 생각을 안 했을까?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직계 가족이어도 본인 동의 없이는 전과 기록을 조회하는 건 불가능하대요.”

솔직히 말해서 그 기사를 보고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이 매형이었다.

검찰 수사관이라면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금새 생각을 고쳤다.

꿈에서 아버지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누나의 결혼식에 오지 않은 이유가 누나를 위해서였다면… 내가 매형에게 그런 부탁을 하면 안 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 이유가 나의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라면 더더욱 하면 안 되는 짓이었고.

말로는 거짓 기사가 분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박 집사 이야기가 나온 다음부터 은경은 혼란스런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미안해요. 누나.”

“뭐가?”

“그 기사의 내용이 사실인지 확실하지도 않은데, 누나에게 말한 거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경에게 이야기를 해준 건… 시간이 더 주어진다고 그 기사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은경은 늦은 저녁 서울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얼굴 한켠 어두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다음날.

나는 회사로 출근을 했다.

회사를 다니기로 결정한 마당에 굳이 휴가 열흘을 채울 필요는 없었으니까.

회사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박 부장에게 확답을 받은 것이다.

중국 푸젠성 수출 건 말이다.

이건 뚜껑을 열기 전까지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

하지만 영업맨으로서 해외 영업이라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건 분명했으니까.

일주일 동안 밀려있던 업무를 하나씩 쳐내며 하루가 빠르게 지나갔고, 퇴근 시간이 되어 최두석 대리가 자신의 외투를 챙겨 내 자리로 왔다.

“두석이 형, 퇴근하세요?”

최두석 대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내 자리 파티션에 살짝 기대며 말했다.

“영식아… 내가 많이 미안하다.”

“뭐가요?”

두석이 형은 파티션 안쪽으로 상체를 숙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과장 진급… 네가 먼저 올라가는 게 맞는데….”

“에이! 무슨 그런 걸로 미안해 합니까? 나중에 차장 진급은 내가 먼저 할 거니까, 전혀 미안해 할 필요 없습니다.”

“하하—! 그래, 그렇게 생각해 주면 고맙고.”

“나중에 진급 턱이나 거하게 쏘세요.”

“그래, 그럴게. 그럼 내일 보자.”

“네, 들어가세요.”

두석이 형과 일별한 후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6시 15분.

지금 붙들고 있는 업무는 야근을 한다고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태선실업 측과 전화로 확인할 사항도 있고.

계약 갱신 서류를 정리하고 컴퓨터 전원을 끄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은경이다.

오전에 간단하게 문자를 주고 받았는데, 퇴근 시간에 맞춰 온 연락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오, 누나도 지금 퇴근하세요?”

-아니… 나는 벌써 퇴근했어… 집이야….

휴대폰 너머 은경의 목소리는 무거웠고, 나의 머릿속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열감기였다.

“누나, 어디 아파요? 지금 열 나는 거 아니예요?”

-아니야… 나 괜찮아….

“그런데 목소리가 왜 그래요?”

-사실… 오늘 내가… 그 기사를 찾아봤어, 안동 일요신문. 그런데 거기에…… 류휘류…라고….

답답한 마음에 은경의 말을 잘랐다.

“누군지 알아요.”

아버지가 사이비 종교 교주라는 기사를 실었던 기자의 이름이다.

다소 특이한 이름이라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왜요?”

휴대폰 너머 스읍! 하고 숨을 들이마쉬는 소리와 함께 은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람… 내가 찾은 거 같아.”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