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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저마다의 재능이 있다. 당신의 특별한 재능은 무엇인가?
게시물ID : readers_294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별다른하루
추천 : 2
조회수 : 438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7/08/31 16: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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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저마다의 재능이 있다. 당신의 특별한 재능은 무엇인가?

 

솔로로 살아온 지 48.

나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

 

솔로로 평생을 살아온 나와 다르게 나는 짝을 지어주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마치 바둑을 두는 사람은 보지 못하는 수를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찾아내는 경우랄까?

 

이 재능을 처음 발견하게 된 계기는 16,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우리 집 근처에는 내가 자주 가던 산책과 사색이란 분식점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주변에 다른 식당들이 생겨나면서 손님들이 점차 줄어들었다. 그 이후로 주인 아주머니의 눈 밑에는 그늘이 드리워지고, 웃음은 줄어드셨다.

몇몇 사람들은 웃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했지만, 좋은 일이 아니라 먹고 살기만 해도 사람들은 웃으며 다닐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거기 메뉴 중에서 특히 김밥을 참 좋아했는데, 김밥에 시금치를 넣어주는 곳이 그곳 하나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일반 반찬으로 나오는 시금치의 경우에는, ‘잔반 없는 수요일급식 때가 아니라면 손도 되지 않았지만 김밥 안에 든 시금치의 경우에만 늘 예외였다.

 

특히 그 분식집은 더욱 특별했다. 시금치를 살짝 무친 다음, 어묵은 간장에 졸이고, 두툼하게 들어간 달걀과 짭조름한 단무지. 색을 맞추기 위해 넣은 듯 한 당근까지. 재료 하나하나에 정성이 묻어나오고, 김밥은 오색찬란한 아름다움을 온 몸으로 품고 있었다.

 

어느 늦은 오후, 개천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출출함을 느낀 나는 분식집에 들렀다. 아주머니는 혼자 주방에서 무언가를 끙끙되며 만들고 계셨다. 얼핏 보니 김밥을 말고 계셨고 옆에는 참치 캔이 따여져 있었다.

 

아주머니 뭐하세요?”

, 진영이 왔구나? 이 시간에 어쩐 일이니

, 영철이랑 얘들이랑 개천이랑 놀다가 영철이가 돌에 머리를 박아서 일찍 해산하기로 했어요. 웃긴 건 영철이 머리에선 코피만큼만 피가 났는데, 돌은 산산조각이 났더라구요. 그래서 이제 영철이 별명을 조각미남으로 하기로 했어요. 돌을 산산조각 냈다고. 조각미남

큭큭, 영철이는 저번에도 내리막길에서 주인 잃은 리어카에 치여 쓰려졌다고 하더니 또 다쳤나보구나

그러니까요. 영철이는 그게 재능인거 같아요.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만한 독특한 사고를 겪는 거요.”

정말로 티비 프로그램에 제보해도 되겠는 걸?”

 

, 근데 걔는 촬영 중에도 사고를 당할걸요? 그건 그렇고 아주머니 뭐 만들고 계시는 거 에요?”

, 요 앞에 식당들도 많이 생기고 나서 손님 발길이 많이 줄었잖니, 시간도 남고 해서 신 메뉴를 한번 만들어보려고 했지.”

우와, 신 메뉴라니. 아주머니 음식 솜씨는 늘 최고니까 뭘 만들어도 맛있을 거 같아요. 실례가 아니라면 저도 도와드리고 싶어요.”

호호, 최고라니...전혀 아니야. 그럼.. 진영이는 내가 만든 신 메뉴 맛을 좀 봐주고 평가해주렴

, 안 그래도 출출해서 들어왔는데 정말 잘됐네요.”

 

그렇게 아주머니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서 김밥에 참치를 넣어 둘둘 마셨다. 주변을 바라보니 참치 캔 뿐 아니라 고등어 캔, 꽁치 캔, 번데기 캔들이 뚜껑이 열린 채로 흩어져 있었다. 심지어 배보다 배꼽이 더 커 보이는 골뱅이 캔까지 놓여 져 있었다.

 

여기, 김밥에 참치를 한번 넣어봤는데 이것 맛 좀 한번 봐주겠니? 너 오기 전에 꽁치나 고등어나 다 넣어봤는데 맛이 너무 없더구나. 그나마 참치가 좀 괜찮은 거 같아서 다시 한번 만들어봤다. 영양소도 중요하잖니

 

나는 조심스레 젓가락을 들어 그 김밥을 하나 먹어보았다. 아주머니께서 참치를 꽉 짜서 넣은 모양인지 기름기가 많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참치향이나 느끼한 맛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뭔가 전체적으로 맛이 따로 노는 밍밍한 느낌이라 보완이 필요해보였다.

 

....맛있긴 한데, 참치와 다른 재료의 맛이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아요. 뭔가 따로 떨어진 두 음식이랄까...”

아주머니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지? 참치도 아닌가보다.”

라며 김밥을 다시 가져가려고 하셨다.

 

나는 황급히 아주머니의 손목을 잡고

하나만 더 먹어볼게요. 어떠한 생각이 들까 말까 해요.”

 

나는 김밥 하나를 다시 입에 넣고 눈을 감았다. 참치와 김밥이 의인화되어 남녀의 모습으로 떠올랐다. 참치는 거세고 억센 바다 사나이였고, 김밥은 바닷가로 놀러온, 단정하고 곱게 차려입은 규수였다. 서로 강렬하게 끌렸으나 아직은 서로의 감정을 어색해했다.

 

이 둘을 묶여줄 무언가가 필요해

 

나는 아주머니께 주방에 들어가 봐도 되냐고 물었고, 아주머니는 약간 의아해했지만 흔쾌히 허락하셨다.

주방에 들어간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구석진 곳, 작은 소쿠리에 깻잎이 담겨있었다.

 

? 아주머니 이 깻잎은 뭐에요?”

그건 아랫집 진교 댁이 깻잎반찬 하라고 조금 나눠준 거야

아주머니. 참치와 김밥을 묶을 끈을 하나 찾은 거 같아요!”

 

나는 깻잎을 흐르는 물에 씻고 세차게 턴 다음 밖으로 가져왔다.

 

아주머니, 이 깻잎이 참치 특유의 맛과 향을 잡아줄 거 같아요. 김밥을 말 때 깻잎을 한 두 장 깔아보는 거 어떨까요?”

 

아주머니는 그래 보지 뭐라고 말하더니 부엌으로 다시 들어가셨다. 곧이어 김밥을 새로 말아 오셔셔 같이 맛을 보았다.

 

확실히, 참치 특유의 맛과 향을 잡긴 했어요. 깻잎 특유의 상쾌한 향이 입안에 남은 참치의 비린 맛도 잡아주는 것 같구요. 근데.........”

 

나는 한 번 더 눈을 감았다.

두 사람을 같은 공간에 묶어두긴 했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버스정류장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두 남녀의 모습이 그려졌다.

 

하지만 뭔가가 부족해... 비를 피하고 있는 두 남녀에게 필요한 건 뭘까? 이 거친 바다 사내가 그녀에게 어떤 말을 건넬까? 그녀는 어떤 대답을 할까? .......? 그래, 서로에게 대화가 필요해. 대화가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좀 더 부드럽게 해 줄 거 야. 부드러운 것... 이 두 사람을 이어 줄 부드러운...’

 

순간, 어떠한 생각이 나의 전두엽을 강렬하게 내려쳤다.

엊그제 저녁, 어머니가 만들어준 과일 사라다!’

 

달걀과 오이, 게맛살과 사과, 콩까지 버무려주는, 서로의 맛과 향을 품어주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마요네즈.

 

아주머니, 혹시 마요네즈 있어요?”

아니, 마요네즈 들어가는 요리가 없어서. 그건 없는데?”

그럼 아주머니 잠시만 요. 집에 잠깐 다녀올게요. 확실하지 않지만 마요네즈가 참치와 다른 재료들을 부드럽게 품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5분 거리에 있는 집으로 쏜살같이 달려가 냉장고에 들어있는 마요네즈를 찾았다. 고등학교 2학년인 누나는 거실에 드러누워 순정만화잡지 밍크를 읽고 있었다.

누나, 엊그제 엄마가 과일 사라다 한다고 사온 마요네즈 못 봤어?”

야 그걸 왜 찾아? 엄마가 너 그만 놀고 이제 공부 좀 하래

누나나 공부해. 맨날 그 만화책 질리지도 않아?”

이 쪼그만한 녀석이, 이제 누나한테 말대꾸도 다하고... 쯧쯧.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은 키우는 게 아니라더니...!”

키는 이제 누나보다 크거든? 그리고 누나가 날 키운 게 아니잖아. 내가 누나를 업어 키웠지

 

나는 마요네즈를 들고 뛰어나왔다. 귀 뒤로 만화책이 문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헐레벌떡 뛰어 분식집으로 돌아오니 아주머니는 주방을 정리하고 계셨다.

아주머니, 참치에 마요네즈를 버무리고 깻잎까지 넣어서 김밥을 한번 말아주실 수 있나요?”

참치만으로도 느끼할 텐데 마요네즈까지? 괜찮을까? 일단 한번 말아볼게

 

아주머니는 의구심 가득한 얼굴로 김밥을 다시 말아주셨다. 참치에 마요네즈, 깻잎까지 들어간 그 김밥은 일반 김밥 크기의 1.5배는 되어보였다. 나는 떨리면서도 설레는 마음으로 김밥 하나를 입에 넣었다.

입안 가득 참치의 풍미와 마요네즈의 달콤함이 펴져 나갔다. 참치 특유의 끝 맛은 깻잎이 깔끔하게 잡아주었다. 무엇보다 다른 재료들과도 환상적인 하모니를 이루었다.

 

이 맛이에요 ! 아주머니도 한 입 드셔보세요. 엄청나게 맛있어요.”

 

아주머니는 손으로 김밥 하나를 잡아 얼른 입에 집어 넣으셨다. 곧 이어.

아니, 어쩜 이런 맛이 나는 거지? 참치 특유의 맛이 느껴지면서도 너무 부드럽고, 향긋함까지 있어. 떡볶이와 먹어도 너무 좋겠는 걸? 참치에 마요네즈를 넣을 생각을 어떻게 한 거니? 깻잎까지 너무 완벽해.”

 

나는 아까의 두 남녀가 떠올랐다. 남자는 그녀에게 무심한 듯 손수건을 건넸고 그녀는 한 번의 손사래 후 그 손수건을 받았다. 남자는 비가 그칠 생각이 없네요. 한동안 이렇게 있어야겠어요. 무슨 소나기가 이렇게 많이 내리는지 참.’ 이라고 말했고 그녀는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 우산이라도 챙겨 나왔어야 했는데.’ 라고 말했다.

남자는 주변을 다시 둘러보더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 동네 전설이나 하나 알려드릴까요? 비오는 날에 딱 어울리는 전설이 하나 있거든요...’ 이라고 말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아주머니와 나는 하이파이브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물론 입안 가득 김밥을 머금고 말이다.

 

그 이후, 가게는 그 김밥으로 인해 다시 생기를 되찾았고, 아주머니의 웃음은 예전보다 더 크게 메아리쳐 돌아오셨다. 참치가 들어갔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참치김밥은 점차 주변으로 소문나더니 얼마 후엔 전국적으로 참치김밥 돌풍이 이끌었다.

 

그 아주머니는 넘쳐나는 손님들을 맞이하다 2호점, 3호점으로 가게를 늘려나갔고, 마치 이 김밥을 먹으면 천국에 있는 것만 같다고 해서 김밥천국이라고 가게 이름까지 바꾸셨다고 한다.

 

나는 지금 참치 김밥을 하나 포장해 와 먹고 있고, 눈을 감으면 아직도 그 남자와 여자가 떠오른다.

 

그게 나의 첫 번째 재능 발휘였다.

 

 

-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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