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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9 0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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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최소한의 균형은 맞추었다고 생각합니다.
박 처장이 어릴 때 북한 인민군에게 가족이 학살당한 과거를 의도적으로 삽입했고, 끝까지 자기 부하들을 지키려는 의리 있는 모습도 보여주었죠.
이 점을 보면 박 처장을 완전한 절대악으로 설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과거회상이 교도관을 고문하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점과 (사진까지 가지고 왔죠) 고문당하는 부하를 구할 때 나온 "내가 빨갱이 잡는 거 방해하는 놈들은 다 빨갱이로 간주하겠다"는 대사를 보면, 박 처장은 '사실 불쌍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악역'보다는 자기 과거까지 현재의 악행에 이용하며,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죄 없는 사람도 빨갱이로 둔갑시키는, 입체적인 악역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1987』이 역사적으로 규명된 명확한 악행에 관한 영화임에도,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대표적인 주역인 박 처장이 이렇게 여러 면모를 가진 인물이 된 건 아마 이런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도 결국은 '꼬리'에 불과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것 같습니다. 영화 속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가해자로 묘사된 박 처장은, 오히려 한 번도 직접 노출된 적 없으며 오직 매체나 다른 사람의 대사를 통해서만 등장했던 '각하'의 꼬리자르기에 당한 또 한 명의 피해자이기도 하다는 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