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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9 22:2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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넹 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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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내기
“그거 알고 있어?”
같은 반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속닥거리는 그 목소리에 묘하게 귀가 기울여지고, 잠에 반쯤 빠진 나는 여학생들의 대화 속에 빠져들었다.
“오늘 우리반에 전학생이 온다는 거 알아?”
“어? 진짜로?”
별일 없어보이는 대화였지만 여학생의 목소리는 묘하게 기대감에 부풀어있었다.
며칠만의 전학생이더라, 거의 두달만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학교는 좋은 학군에 있는 곳은 아니지만 최근 법이 개정되면서 좋은 학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정확하게 설명하기 그렇지만. 그래서인지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리스크임에도 불구하고 전학생이 꽤 많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느 반이든 학생이 적어서 전학생들은 여러반으로 나뉘어져갔다. 동시에 두명이 온 적이 있을 정도로 우리 학교의 전학생은 타 학교에 비하면 아주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우리 학교에는 더 이상 전학생은 없었다. 그래서 애들이 기대에 부풀어있는 거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전혀 그렇지 않지만.
HR이 시작되는 종이 울리고, 나는 반쯤 감은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렸다.
교실문은 곧장 열리고, 담임선생님이 들어왔다. 40대 중반 아저씨가 교탁에 양손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안온 애 없지?”
선생님이 시선을 돌리며 빈 좌석을 확인했다. 반장이 인사를 하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나자, 담임선생님은 손으로 자리에 앉으라 표하며 입을 열었다.
“인사하기 전에 전학생이 있으니까 소개하마.”
앞문이 드르륵 거리며 소란스럽게 열렸다. 아담한 체구의 여학생이 쭈뼛거리며 교탁 옆에 섰다.
“전학생, 자기소개.”
어느샌가 자리에 앉으신 담임선생님은 손으로 턱을 괴며 무심히 입을 열었다.
“아…, 전학 온 하 지선이라고 합니다.”
상당히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학생은 자신이 전학온 학교, 예전에 살았던 지역 등 평범하게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오늘부터 이 반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 잘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입을 때고 아이들은 축하의 박수를 쳤다. 지선은 아이들의 박수에 이제야 긴장이 풀렸는 지, 얼굴에 작게 미소를 띄었다.
“자리는 문 뒷자리로 가면 된다.”
담임선생님이 교편으로 자리를 가리켰다. 저 멀리 자리에 지선은 다가가서 앉았다. 바로 옆자리에 있는 여학생이 지선에게 이것저것 묻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직 잠이 덜 깬 나는 담임선생님의 ‘자습’이라는 글씨를 보자마자 다시 잠에 빠졌다.
§ § §
“아, 지선이는 내 따라오고.”
담임선생님의 목소리에 잠에서 퍼뜩 깬 나는 고개를 돌렸다. 이미 HR시간은 끝났고, 담임은 그 말과 함께 문을 열고 나갔다. 뒷자리에 있던 지선은 뒷문으로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전학생이라 이것저것 알려줄게 있었나 보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꿀잠을 잘 생각으로 눈을 감으려는 순간이었다.
“이번에도 제 죽을까?”
가슴을 후벼파는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렸다. 그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눈동자를 돌리자 반의 중심이었던 정 철남이 서있었다.
낄낄거리는 무리로 자신감이 붙었는지 정 철남은 더 큰소리로 다시 똑같은 말을 내뱉었다.
“야야야! 이새끼들아! 이번에도 제 죽을까?”
술렁이는 대다수의 애들이 있었고 정 철남의 무리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죽는다에 한표!”
광기어린 목소리가 그렇게 흘러지나갔다.
“나도나도!”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반 전체를 휘감았다. 묘한 감정이 감도는 교실에서 애들은 하나같이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죽는다’라고 입을 모았다. 기분이 나쁜 대화였다.
그렇지만 반 안에서 이런 기분 나쁜 대화가 오가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것이, 벌써 다섯명의 전학생이 전학왔고, 그리고 그 다섯 중의 넷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였다. 한명은 사고로, 한명은 자살을, 한명은 병치레, 한명은 실종……. 전학생은 하나하나 죽어갔다. 선생님들은 이 이야기를 꺼림직하게 여겼다. 그렇다고 전학생을 받지 않을수는 없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입을 철저히 단속했다.
그리고 오늘 하 지선이 전학을 온 것이었다. 아침 여학생들의 기대에 푸푼 목소리가 문뜩 떠올랐다. 오늘 우리 반에 전학생이 온다. 그럼 그 아이도 죽을까? 그런 식의 기대감이 한결같이 목에서 새어나왔다.
아이들의 대화는 더 이상 들어줄 수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 찰남에게 쓴소리를 던졌다.
“야, 사람이 죽는 게 장난으로 보이냐?”
내 목소리에 정 철남은 웃음을 돌연 멈췄다. 반쯤 짜증이 섞인 얼굴로 나를 째려본다.
“야야, 저 새끼 또 쳐자다 말고 나댄다.”
“사람 죽는 걸로 이지랄 저지랄 떨꺼면 밖에 쳐나가서 담배냐 펴, 병신아.”
정 철남은 다시 나를 째려보며 거칠게 대꾸했다.
“지금 네명 와서 네명 다 죽은거 모르냐? 그러니까 쟤도 죽겠지. 이번에는 화려하게 교통사고? 아니면 3반 때처럼 자살할지도 모르지~ 혹시 모르잖아, 우리학교에 전학생 기피하는 유령이 사는 걸지도.”
정 철남은 유치한 말로 혀를 돌렸다. 정 철남의 무리들은 그게 뭐 그리 웃긴지 깔깔거리며 웃는다.
몸 속 깊은 곳에서 들끓어 오르는 감정을 계속해서 쑤셔넣었다. 내 주위의 친구들도 ‘너가 참아’라며 입을 모았다. 그러나 정철남은 장난을 그만둘 생각이 없는 모양인지, 다시금 소리쳤다.
“야, 김 민진! 그럼 나랑 내기할래?”
정 철남의 부름에 고개가 돌아갔다. 내기?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그 순간이었다.
“야! 돈 걸자. 씨발! 저 전학생년이 뒈진다. 안뒈진다로 돈걸고 내기하자고.”
흥분한 정 철남이 반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나는 죽는다에 백만원건다. 씨발, 니들도 걸어.”
정 철남을 시작으로, 그 무리가 하나 둘 씩 입을 열었다. 입을 연 대다수가 ‘전학생이 죽는다’에 돈을 걸었다. 그리고 나를 조롱하 듯 정 철남은 나에게 다가와서 입을 열었다.
“야, 김 민진. 너도 걸어. 꼴리면 네가 뒈지든가.”
그 말에 결국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안죽는다에 표건다. 개새꺄.”
정 철남은 ‘이겼다’라는 표정으로 나를 뒤로한 채 교탁으로 올라섰다.
“병신들아, 집중해라! 나는 죽는다, 저 병신은 안죽는다에 걸었거든? 이왕 이렇게 된거 우리 반 전체다 내기해보는 게 어때? 저 년이 죽으면 내가 일주일 내내 밥 쏜다!”
반은 어느샌가 정 철남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몇몇 아이들이 투표하기 꺼려하자, 정 철남은 ‘익명 투표도 받는다’라며 종이쪼가리를 흔들었다.
그날, 내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반 학생 총 32명, 총 투표 31장, 죽는다에 건 사람 26명, 안 죽는다에 건 사람 5명.
그리고 그걸 모르는 전학생이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