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91
2018-03-13 15: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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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피셜엔 뇌피셜로 대응하죠
나무위키는 별로 안좋아하지만
정의공주의 시가(媤家)인 죽산 안씨 가문의 기록에 따르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도 오빠 문종, 두 남동생 수양대군, 안평대군과 함께 많이 도왔다고 한다.
“世宗憫方言不能以文字相通 始製訓民正音 而變音吐着 猶未畢究 使諸大君解之 皆未能 遂下于公主 公主卽解究以進 世宗大加稱賞 特賜奴婢數百口”(세종이 우리말과 한자가 서로 통하지 못함을 딱하게 여겨 훈민정음을 만들었으나, 변음과 토착을 다 끝내지 못하여서 여러 대군에게 풀게 하였으나 모두 풀지 못하였다. 드디어 (정의)공주에게 내려 보내자 공주는 곧 풀어 바쳤다. 세종이 크게 칭찬하고 상으로 특별히 노비 수백을 하사하였다. 《죽산안씨대동보(竹山安氏大同譜)》
하지만 이 기록을 그대로 믿기엔 문제가 있다. 우선 출처가 집안 족보다. 무려 1970년대에 출판된! 숱한 행장처럼 조상을 미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1]
그리고 노비 수백을 하사하였다는데, 개국공신에게도 노비는 30여 구 하사하였고, 이후 공신에게도 수명에서 십수명 정도 하사한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계유정난 후 세종대왕의 후궁이었던 혜빈 양씨(惠嬪楊氏)[2]에게 노비 100구, 정의공주와 세종의 다른 후궁 및 공주에게 20구 등을 내린 기록이 <단종실록>에 나오긴 하지만, 이는 계유정난에서 죽은 신료의 노비들을 몰수한 후 나눠준 것이라 사정이 다르다.
따라서 공주에게 수백 구의 노비를 하사하였다면 분명 막대한 재정 부담을 이유로 대간이나 유생의 반발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기록이 없다는 점, 죽산안씨대동보 외에 사료 교차검증이 되지 않는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정의공주의 훈민정음 창제 기여설은 허구거나 상당히 과장되어 기록되었을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정황을 살피면, 완전히 허구라기보다는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훈민정음 완성 직전 정의공주의 양모가 상을 당했는데, 세종대왕이 직접 "상복을 입지 말라"고 한 기록이 실록에 있다. 성종실록에 송처관이라는 사람이 양모의 상복을 100일 만에 벗어서 사헌부에게 탄핵당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볼 때, 특별한 이유 없이 이런 명령을 내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의공주는 세종대왕이 특별히 총애하던 자식이고, 능력도 있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서 정의공주에게 호의적인 결론을 내리면, 다른 왕자들처럼 훈민정음 창제 작업에 참여하여 세종대왕에게 도움을 주었다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위의 노비 관련 기록의 경우 왕조 국가에서 왕이 하사한 상을 과장할 수는 있지만[3], 아예 주지 않은 상을 줬다고 기록했다고 보긴 어렵다. 진짜 문제는, 죽산안씨대동보가 1976년 편찬된 것이고 진위 논란이 있는(주로 안씨 가문의 시조에 대해) 족보라는 것이다. 1976년에 대동보를 편찬할 때, 애초에 해당 대목이 원래 있던 기록을 인용한 것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이 기록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