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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나의꾸꾸꾸님의 개인페이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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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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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2014-08-15 08:22:59 7
베오베 '오늘 아침 알바중 겪은 빵터진 사건(초코이)' (+워터마크) [새창]
2014/08/15 00:21:47
말랑카우 맛있어용
36 2014-08-15 00:08: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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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것 참 안타깝네요...
35 2014-08-15 00:07:5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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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그래서 뒤늦게 머리에 OU 써넣고 애기 이름도 오윤이라고 했는데 페북거지들이 안 퍼갈리가 업ㅅ...?...
34 2014-08-14 23:37:2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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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2014-08-14 23:36:4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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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2014-08-14 23:36:2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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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2014-08-14 23:36:0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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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2014-08-14 23:35:4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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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014-08-14 00:01:52 6
무속인되기전이야기 [새창]
2014/08/13 21:56:37
한국에 와서도 마음을 정리하고 있는 중에도 무슨 영가분들이 그리 많이 보이고 그리 할말이 많은지. 티비에 주군의 태양 그 프로의 공효진 씨와 똑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할머니 영가부터 분냄새 풍기는 갓난쟁이 아가가 와서 머리 만지고 놀고 그만하라하면 내가 보이는 것에 애기영가가 놀라고 언니는 그 영가들한테 어지간히 오라고 난리고.

그 생활이 지속하던 어느 날부턴가 언니만 보이고 다른 영가는 안 보이더니 선녀옷에 금관을 쓰시고 큰 부채를 들고 오신 분이 보이고 도사복을 입은 할아버지 막 어른들이 보이시더라고요.

꿈을 꾸면 제가 구름 위에 있는 기와집을 찾아가면 할아버지께서 어서 오라 하시며 저에게 평생 구경 한번 해보지 않는 음식도 주시고 과자도 주셔서 먹고 할아버지 존함도 말씀해 주시고 하시더라고요.
부르면 또 오라 하시며 잠에서 깨 부모님께 전화해서 물어보니 외증조 할아버지라고 그러시더라고요.

어느 날은 굿하는 것 굿 할 때 쓰는 용품 다루는 법 지금 생각해 보면 무속인으로서 하는 일을 가르쳐 주신 것 같아요. 그런 일이 밤마다 가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그런 일상이 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우리 엄마께 했더니 이상하다면서 생전 안 가신 우리 고모할머니가 만신으로도 유명하신 분인데 저를 그 쪽으로 데리고 가더라고요. 저도 처음 가본 데라 넘 생소했어요.

할머니께서 저를 보시더니 막 우시면서 조상신이다 내려와 계신다 하시더라고요. 너무 센 줄이여서 이제 어쩔수 없다며 울더라고요. 저는 너무 이해가 안갔어요. 그래서 다른 곳 유명하다는 곳을 찾아가 보았지요.

가는 곳마다 조상신이 너무 센 줄로 내려오셨다며 무속인이 앉는 자리에 저를 앉히고 절을 넙죽 하고 무릎을 끓고 계시질 않나. 여기저기 가 보았지만 다 거기서 거기였어요. 제 앞에서 쩔쩔매는 무속인이 더 많았으니까요.

안 받으면 여태 받은 고통보다 더 힘든 고통이 온다고 하시고 생활고에 찌들리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이제 내 눈에 눈물도 다 말라 더 이상 흘러내릴 눈물도 없는데 이보다 더 힘들다면 저는 더 이상 살 자신이 없었어요.

부모님이나 친구들 언니 이제 받아들여라 여지껏 넘 힘들었는데 무속인 생활이 이보다 힘들겠냐 하더라고요.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신을 받았어요.

처음에는 무속인이라 하면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볼까봐 걱정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애둥이지만 우리 조상님들과 기도 다니며 좋은 인연도 맺으며 하루하루 사는게 넘 행복하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슬픔도 걷어 주시고 행복한 일 하루하루 만들어 주셔서 저는 행복하답니다.

남들이 봤을 때는 특별한 삶일지 몰라도 저는 우리 언니와 한평생 계속 같이 있고 우리 어른들 부족한 저에게 가르침 주시고 보듬어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모든 일이든 마음먹기 나름인 거 같아요.

힘든 일이든 슬픈 일이든 이겨내다 보면 꼭 좋은 일이 생기더라고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모두 힘내십시오.
28 2014-08-14 00:01:15 6
무속인되기전이야기 [새창]
2014/08/13 21:56:37
새벽 두 시까지 갖은 노력을 했는데 언니는 가는 목소리로 울지말라는 한마디와 내 손을 잡고 그대로 눈을감아버렸어요. 저는 눈물이 뒤범벅이 되고 정신이 없었어요.

나만 두고 떠나고 타국에 나 홀로 어찌 살라고 언니 가 왜 가 하면서 언니를 흔들고 붙들고 사정을 해도 일어나질 않더라고요.

모든 것을 다 잃은 듯한 느낌. 어떻게 감당이 안 됐어요. 어떤 누가 무슨 말을 할지언정 들리지도 않았어요. 보이는 건 우리 언니뿐ㅠㅠㅠ 정말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거든요.

병원에서는 손님 밀려서 자리 빼주라고 하더라고요. 나는 이리 슬퍼 죽겠는데, 언니 따라가고플 정도로 힘든데 넘 원망스러웠어요.

아침이 돼서야 어른들 친구 친척 지인 모두 다 오시더라고요. 저는 인사말도 못한 채 언니 옆에 울고만 있었지요. 장례식장으로 언니를 옮겨서도 저는 언니 곁을 떠날 수 없었어요. 아니 언니를 보내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시간은 무심히 흘러 장례절차는 진행되더라고요. 관을 덮어야 할 순간이 왔어요. 언니를 염하는 모습은 더 이상 못 보겠어서 엎드려 울고만 있는데 언니가 관뚜껑을 밀며 저를 찾으며 벌떡 앉더라고요.

거기 계신 모든 분들 다 놀라서 소리 지르고 난리였 지요. 여기까지 보러왔냐며 친구 하나하나 어른들 하나하나까지 감사인사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저한테 내동생 소라야 울지마 울지마 이제 그만 울어 하면서 언니 마지막 가는 길에 이 게 네가 화장 좀 시켜주라 하더라고요.
나는 알았다 하면서 쓸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너 자리 거기 아니니까 빨리 와 밥먹어 언니 야 나랑 밥먹자 심하게 장난 그만 치고 하면서 저는 언니한테 욕을 하며 언니를 안았어요.

언니는 웃으며 물 좀 달라 하더라고요. 작은 페트병 물을 주니 그 한 병을 다 마시며 니가 보고 싶고 목도 마르고 해서 왔다 하면서 또 한번 울지마 하더니 그대로 눕더니 영영 눈을 감더라고요.

저는 혹시나 또 깨어날까봐 관뚜껑 못 덮게 하고 그랫지만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삼일 밤낮을 안 가리고 얼마나 울었던지 어른들은 저도 잘못될까봐 걱정 많이 하셨더라고요.

그 우여곡절 끝에 언니 보내고 나니 너무 그립고 보고 싶어 도저히 못견디겠기에 이사를 해 봐도 언니 생각밖에 안 났어요.

그러고 며칠 지나니 언니가 처음에는 꿈에 찾아왔어요. 저는 너무 좋아 난리였죠. 그 이후로 이상하게 귀 한쪽이 왱ㅡㅡ 하는 소리가 나더라고요. 나는 이명이 생겼나 내가 충격이 커서 그런가 하고 병원을 가봐도 아무 이상 없다 하더라고요.

왱 소리가 언니 목소리가 작게 들리기 시작하더니 점점크게 들리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날이 갈수록 언니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처음엔 저도 이해가 안되고 언니 모습이 보고 싶어서 내가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했지요. 시간이 흘러서 제가 언니를 옆에 두고 엑소시스트를 보면 미친년 내가 옆에 있는디 그런 걸 보냐하구 ㅎㅎㅎ 그랬지요.

남들이 들으면 저한테 미쳤다 하지요. 그래서 부모님과 삼촌께만 말씀드렸지요. 처음에는 다믿지 못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언니가 내 몸에 들어와 말을 하며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하니 믿더라고요.

저도 언니가 옆에 있어서 예전처럼 활기를 찾아 열심히 일을 하며 지냈지요. 그러면서 날짜는 지나가고 하다가 또 불행이 시작됐지요.

오빠가 교통사고로 제 곁을 떠나고 삼촌 숙모도 출장길에 역주행하는 차에 사망하시고 저 가까이서 챙겨 주신 분들이 다 떠나셨어요. 언니처럼 돌아가셨다가 되돌아와서 미안하다 하시고 떠나시더라고요.

남들은 한 번 겪기도 힘든 상황을 저는 이 년 동안 일곱 번이나 겪었어요. 넘 힘들고 죽고 싶었어요. 나 때문인가 하는 자괴감마저 들고 정말 너무 힘이 들었어요. 그 슬픔에 헤어나오지를 정말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인지 눈앞에 보이는 영가는 더 많아지고 죽을 만큼 힘이 들었지요. 그래도 언니가 제 옆에서 항상 지켜주고 힘을 주었어요. 그나마 언니 때문에라도 견딜 수 있었어요. 이제는 타국이 너무 싫어졌어요.

정말 이 년 동안 평생 흘릴 눈물 다 흘리고 감당을 할 수 없는 사건들이 생기고 납치 감금 탈출 칼부림 아주 그런 악재는 따로없었지요. 지금도 상상도 하기 싫은 아픔이에요. 남들은 팔십 평생 살아도 안 겪을 일을 저는 다 겪었거든요.

외국의 일을 다 정리하고 나니 돌아올 비행기 삯이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삼촌 친구분이 비행기표를 끊어주어서 한국을 나왔으니까요. 그 분과는 지금도 연락하고 살아요. 제가 감당하기 힘들 때 옆에서 지켜보며 힘을 주셨으니까요.
27 2014-08-14 00:00:01 9
무속인되기전이야기 [새창]
2014/08/13 21:56:37
지금 나는 짧다면 짧은 동안에 내가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며 글을 씁니다. 참 스펙타클한 인생이지요.

지금은 무속인이 되어 산으로 바다로 돌아다니며 기도하며 좋은 인연들 만들어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지요.

지금 현재 나는 영가가 눈에 보이고 들리고 합니다.

넘 심하게 귀와 눈이 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조절을 해 놓으실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인지 법당에 손님이 오시며 같이 들어온 영가는 다 보고 듣고하며 손님께 전달을 하지요.

처음에 들리고 보일 때는 내가 정신이상자인가 할 정도로 놀라고 심각했지만 이 생활을 접하고 난 뒤로는 훨씬 더 정확한 점사를 뽑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이제 이야기를 시작할까요.

제가 이십대 초반에 외국에서 사업하신 삼촌이 그쪽으로 와서 사업을 도와 달라 하시더라고요.

부모님도 찬성을 하고 해서 언니랑 외국으로 떠났지요. 생소한 외국생활이었지만 언니랑 삼촌이 있어서 정말로 즐거운 일상을 보냈지요. 외국인 노동자들과 정도 들고 했지요.

거기서도 나의 기쁨조의 발산을 하며 즐겁게 생활을 했어요. 외국으로 출장도 다니고하며 정말 열심히 살았지요. 일도 확실히 노는 것도 확실히가 내 신조답게 ㅎㅎㅎ

어느날 오후에 삼촌 혼자 출장을 가시고 휴일인지라 저와 언니는 홍콩여행도가고 구경도 하고 수다도 떨고 그랬지요.

집에 와서 갈비찜을 둘이서 맛있게 해 먹은 오후날, 언니가 피곤하다며 먼저 잠이 들었어요. 울언니 잠을 자면 잠꼬대 대박이거든요. 항상 저는 관람객이구요. 이불을 차고 난리가 아니거든요. 소리지르고 ㅎㅎㅎ

그날은 짧게 하더라고요. 좀 있다 이불을 덮어주려는데 다른 때에는 이불 덮어주면 뒤척이는데 그날은 왠지 움직임이 없더라고요.
불현듯 이상해서 손가락으로 언니 코에 대고 숨결을 느꼈는데 잘 못 느끼겠더라고요.

부리나케 삼촌이 출장 가신지라 거래처 사장님이자 삼촌 친구께 연락을 드려 바로 병원으로 달려 갔어요.

가자마자 언니는 모든 응급장비를 다 꽂고 난리가 아니더라고요. 그 순간 너무 무서웠어요. 언니가 잘못될까봐 울면서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혔지요.
25 2014-08-12 14:11:53 0
이런 거라도 좋아하시는 분 계시려나 [새창]
2014/08/11 18:42:46
1 윽 휴면이었네욬ㅋㅋㅋㅋ 평소에 잘 안 쓰는 이메일주소 남겼더닝ㅠ_ㅠ 휴면 풀었어요!
24 2014-08-11 23:28:47 13
하상욱님은 놀랐어요 [새창]
2014/08/11 01:57:01

인천도요!
23 2014-08-11 22:22:53 0
이런 거라도 좋아하시는 분 계시려나 [새창]
2014/08/11 18:42:46
무지개똥칼라파워색색이줄무늬 니트랑
내왼팔엔청룡이내오른팔엔주작이 맨투맨 신청합니다! :> 엄마께 등짝스매싱 맞고 싶어욬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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