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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7 14:50:58
15
"허헛"
허탈한 웃음이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벌써 네번째다.
"망할...오늘은 날이 아니군."
욕지거리를 중얼거리며 낚싯대를 다시 던진다. 릴에 달린 롤러가 짜르륵 돌아가며 낚싯추는 저 먼 바다까지 날아간다.
"퐁당"
세찬 파도소리와 바람소리에 들릴 리가 없겠지만 마치 소리라도 날 듯이 작은 파동이 낚싯추 주변으로 일렁거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거센 파도에 파동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남자는 연신 투덜거리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든다. 거칠게 다루어 그런지 찌그러진 디스 담배갑에서 반동강난 담배 한개비가 툭 떨어진다.
"옘병......"
반동강밖에 안남은 담배를 물고, 이윽고 라이터에 담뱃불을 붙인다. 그리고 깊게 한모금.
"후우-------"
세찬 파도소리와 거센 바람소리, 갈매기 가악거리는 소리와 무인도의 숲에서 살랑거리는 잎사귀 소리가 난다.
남자는 바위위에 평화롭게 벌렁 드러눕는다. 물고기는 낚지 못하더라도 이런 소소한 즐거움에서라도 낚시를 포기할수 없다. 남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시 소리가 들려온다. 세찬 파도소리, 거센 바람소리, 갈매기 가악거리는소리, 그리고 무엇인가 날아오는 소리...?
남자는 이상한 소리에 눈을 살짝 떴다. 그리고 하늘 위로 보이는 검은 점. 점. 점.
검은 점은 이윽고 콩알만큼커지고, 콩알은 삽시간에 검은 수박만큼 커진다. 그리고 남자의 머리 위를 굉음과 함께 스쳐지나간다.
"콰-앙!"
남자는 혼비백산했다. 난데없이 날아온 포탄에 정신이 번쩍 든 남자는 벌떡일어나 주변을 둘러본다.
아뿔싸, 눈앞에 해군 함정들이 늘어서 있다. 금방이라도 포탄을 쏘아낸듯, 저 멀리 보이는 포신에서 연기가 아른아른 솟아오른다.
이윽고 다시 포신에서 검은 포탄이 발사된다.
"이런 씨벌!"
남자는 잽싸게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포탄이 날아오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이윽고 다시-
"콰아아아앙!"
15m도 안되는 바로 눈앞에 포탄이 터진다. 흙먼지와 포탄파편이 자욱하게 일어나며, 남자의 얼굴에 파편 몇개가 툭툭 떨어진다.
"으어어어..."
남자의 하반신이 뜨뜻해졌다.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오줌을 지려버린채 황망히 흙먼지가 걷혀지고 남은 포탄자국을 황망히 바라본다.
남자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머리가 새하야진채,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생각도 못한채 그저 멍하게 포탄자국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1분쯤 지났을까, 남자는 정신을 차렸다. 포탄이 더이상 안날아 오는것을 보니 포신을 식히고 있는 듯 하였다.
남자는 이대로 죽을 수 없었다. 집에서 낚시간다고 타박하던 마누라와 그런 나를 똘망히 바라보던 토끼같은 딸내미,
둘은 위해서라도 남자는 이자리에서 죽을 순 없었다.
남자는 낚시조끼를 황급히 벗어던졌다, 그리고 웃옷을 벗고, 제일 눈에 잘 뜨이는 흰색 런닝셔츠를 벗고 낚싯대에 걸려있던 낚싯줄을 잘라버린 뒤
낚싯대에 런닝셔츠를 묶어 하늘위로 번쩍 치켜들고 세차게 흔든다.
그리고 남자는 소리쳤다.
"여기요!!!!!!!!!!!!!!!!!!! 사람 있습니다!!!!!!!!!!!!!!!!!!!!!!!!!!!! 쏘지 마세요!!!!!!!!!!!!!!!!!!!!!"
허나 목소리는 금세 바람소리에 묻혀버린다. 목소리가 저 먼 함정에 닿을리 없다. 남자는 부디 누군가 자길 보아주기를 애타게 바랬다.
저 멀리 포신이 움직인다. 움직이는 방향은... 남자가 있는 섬을 향해서다.
"!!!!!!!"
남자는 더욱 조급해졌다. 더욱더 미친듯이 낚싯대를 흔들며 여기에 사람있다고 애타게 부르짖는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섬쪽을 향해 돌아가던 포신이 중간즈음에 멈춰버렸다.
갑판 위로 몇몇 점들이 가쁘게 움직이는 듯 하더니, 이내 저 먼 함정에서 작은 단정이 섬을 향해 오기 시작한다.
남자는 살았다..라는 생각과 함께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남자는 반파된 섬을 뒤로 한채, 자신을 향해 황급히 달려오는 단정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