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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8 20:4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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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의 화제인 깨우친 임금 세종대왕이군요. 이제껏 다른 나라에서 만든 게임이며 영화 등등을 통틀어서 저정도로 고증을 잘 살린 적이 있었나 싶네요. 괜시리 기분 좋습니다. 저 세종대왕 장면의 배경에 대해 좀 이야기하면, 일단은 대단히 잘 구현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전체적으로는 아래 사진에 있는 창덕궁 인정전을 본땄지만 몇몇 부분은 경복궁 근정전을 참고했고, 어좌의 경우 근정전이나 인정전이 아닌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어좌를 그대로 그린 점입니다. 이 어좌는 조선 초기 형태로 태조 영정을 보면 저 어좌와 똑같이 생겼음을 알 수 있지요. 왜 여기저기서 따왔을까요. 디자이너가 보기에 그게 더 멋있어 보여서 그랬을까요.
그리고 문제(?)의 저 전등. 아래 사진에도 나와 있지만 실제로 창덕궁 인정전에 가면 전등 샹들리에를 볼 수 있습니다. 저 샹들리에는 순종이 즉위하고 1908년에 인정전을 재단장하면서 설치한 것입니다. 순종이 직접 전등 카다로그에서 골랐다고 하고요. 인정전 천장이 꽤 높아서 설치하기 까다로웠다고 전해집니다. 그 외에도 유리창, 커튼, 서양식 마루를 깔아서 신문물도 만끽할겸 서양 손님들에게도 친숙하게 보이도록 꾸몄습니다. 이후 인정전에서는 외국의 외교사절을 초청하는 파티가 자주 열렸다고 합니다.
댓글에 나온 우리나라 최초의 전등은 1887년 3월, 경복궁 건청궁에 설치된 전등입니다. 향원정의 물을 끌어들여 증기로 돌리는 발전기를 함께 설치했는데 이게 당시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선진적이고 훌륭한 발전 설비였다고 전해집니다. 외국의 학생들까지 와서 견학할 정도였다고 하지요. 이 건청궁 전등은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지 10년도 안 돼 설치된 것으로, 당시 조선왕실의 편지를 받은 에디슨이 동양에 자사 제품을 수출하기 위한 교두보로 삼고자 의욕적으로 추진해 이루어진 성과입니다. 당시 에디슨의 일기장을 보면 신비한 동양의 왕궁에 자신의 전등이 설치된 것에 기뻐하고 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 역사 최초의 이 전등은 물을 빨아들여 불을 켠다고 해서 물불, 발전기에서 나온 뜨거운 물이 연못 속 물고기를 삶아 죽인다고 해서 증어, 기묘한 불이라고 해서 묘화 등등의 이름으로도 불리웠습니다. 건달불이라는 이름은 이 발전 설비가 시끄럽긴 우레처럼 시끄러우면서 고장은 또 잦아서 불이 자주 꺼지기에, 감히 임금을 깔보는 괘씸한 등불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건청궁 전등 이후 고종은 의욕적으로 전기 시설을 도입하여 1899년에는 전차가, 1900년대에는 민간 전등이 보급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경복궁, 덕수궁에는 도합 1000여개가 넘는 전등이 설치되어 밤에도 궁궐 구석구석을 대낮처럼 환하게 비추었습니다. 그런데 고종이 궁궐의 밤을 그렇게 환하게 밝히려고 했던 건, 어쩌면 너무나 두렵고 끔찍한 일이 벌어졌던 밤이 무서웠기 때문에는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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