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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39 2017-02-17 15:21:35 1
[감상문] 아무도 아닌-솔직히 고백할 것이 있다. [새창]
2017/02/16 04:59:32
말씀하신 '틈'에 대해서도 저도 한 번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한가지가 떠올랐는데, 유독 "아무도 아닌"에서 무수히 사용된 말줄임표였습니다. 아마도, 제가 생각한 의미가 맞다면, 저는 이 말줄임표 속에 petrichor님께서 말씀하신 '틈'을 느꼈습니다. "아무도 아닌"의 첫 말줄임표는 다시 '하행' 할 것이냐는 노인의 물음("상행")에 대답하지 못한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상행"하는 '나'에게 "하행"은 큰 간격이 느껴집니다. 또한 그 다음의 말줄임표는 "상류의 맹금류"에서의 말줄임표 입니다. "여기는......안 되지 않을까요?" '여기는'을 말하고 틈을 겨우 건너 도달한 '안 되지 않을까요?'라는 말에는 소통의 불가능이 보입니다. 그 '틈'은 어떨 땐 너무나도 가깝지만 어떨 땐 너무나도 멀어서 혹시라도 넘지 못하고 그 사이로 떨어져 버릴까 두렵기도 하지요. 하지만 예전부터 우리는 이미 알고있지요. 사람간의 의사소통이라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요. 우리는 절대로 이어질 수 없는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의사소통이라는 것은 타인의 뜻을 나의 의지로 오독하여 받아들이는, 오해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어쩌면, 우리 앞에 보이는 틈이, 어쩌면 절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건너갈 곳이 존재하지 않는 절벽 말입니다.
그리고, '그리고'는 모두가 알다시피 접속사이죠. 접속사는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다리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 다리는 특별해서 저쪽이 이쪽과 같아야만 이어주는, 그런 동일성이 필요하죠. 하지만 "명실"에서의 첫 문장의 '그리고'는 이쪽이 있지만 저쪽이 없는 모양새입니다. 단절되어 있죠. 그것은 무슨 단절을 뜻하는 걸까요. 명실의 기억일 수도 있고, 명실과 실리의 관계일 수도 있고, 현실일 수도 있습니다. 찬장 안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문득 떠올렸다는 모습. 예전에 아꼈던 찻잔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그런 찻잔. 그것을 보며 "아무 것도 아닌"찻잔을 보고 "아무도 아닌" 자신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떠올려 노트를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을까요? 아니면 그저 상관없는 찻잔을 보며 상관없는 노트를 떠올려, 더욱더 "명실"의 단절을 부각시키려 했을까요? 그게 어떻게 되었든 그 모습에서 우리는 처연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무력한 존재들 같습니다.
사실 저는 명실과 실리가 한 존재이지 않을까도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면 이야기가 훨씬 더 풍부해 질 것 같더군요.
8737 2017-02-17 12:17:37 0
고민고민 또 고민 [새창]
2017/02/17 11:44:57
풀ㄹ에이치디라도 프로로 가야합니다.
게임 차이가 확연한게 많다고 합니다.
가장 좋은 건 프로에 현 티비에 남는 돈으로 타이틀을 쟁여놓는게 가장 좋겠네요
8736 2017-02-17 04:43:55 1
[감상문] 아무도 아닌-솔직히 고백할 것이 있다. [새창]
2017/02/16 04:59:32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명실은 유난히 힘들었죠.

웃긴이야기나 해볼까요? 디지털 장의사라는 게 있습니다.
유명하지만 다시 설명해보자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생전에 인터넷에 남긴 흔적인 ‘디지털 유산’을 청소해주는 온라인 상조회사다. 온라인 인생을 지워주기 때문에 디지털 장의사라 불린다."
"세계적으로 디지털 장의사는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2013년 2월 현재 한국은 디지털 장의사의 사각지대다. 온라인에서 잊힐 권리를 비즈니스화하는 데는 복잡한 법적·윤리적 쟁점들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정보통신망법이나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이 온라인상의 자기 정보를 통제하고 삭제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인정하고 있지만 당사자가 죽으면 누구도 권리를 행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당사자가 사망한 후 디지털 유산을 처리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더이상 해체될 수 없을 것 같은 세계에선 이런 서비스도 존재하더군요. 심지어 잊힐 권리라는 새로운 권리까지 만들면서요. 물론 이런 서비스는 맨처음 숨기고 싶었던 음란물이나 지우고 싶은 흑역사같은 것부터 시작되었겠지만요. 그런데 말이죠. 과연 이런 서비스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을까요? 전뇌가 발달하고 사람뇌가 인터넷에 직접 링크되는 특이점이 온다고 해봐요. 모든 데이터를 통제할 수 있을까요? 전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세상에 절대적인 방패는 없어요. 그렇다면 그게 무슨 소리냐.
우리는 절대로 잊힐 수 없다는 겁니다.
끔찍하죠? 무슨 디스토피아 소설 같네요. 그런데 만약 제가 저런 곳에서 산다면. 외려 전 잊히고 싶어요. 제가 반골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구요.
아니면 위에 댓글에 쓴 것처럼 고독을 잊고 싶어 차라리 사라져 버렸으면 하는 마음 때문일수도 있구요. 삶은 원래 슬픈 것이니까요. 잊히고 싶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8735 2017-02-17 04:23:47 0
[감상문] 아무도 아닌-솔직히 고백할 것이 있다. [새창]
2017/02/16 04:59:32
우기고 싶다. 우기고 싶다는 것은 부정하고 싶다는 말과 비슷합니다. 부정하고 싶다는 것은 그게 옳다는 기저를 깔고 있죠.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파고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싫은 건 싫은 겁니다. 이유가 없을 수도 있어요. 그걸 굳이 파보아서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볼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우리는 살부를 해야할 존재들이자, 살부를 하지 않으면 살해당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세상 또한 기성세대가 만든 것이므로, 굳이 따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세상 자체를 부셔버릴수도 있고, 그 세상 자체를 떠나 "아무도 가본 적 없는"곳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냥 싫은 건, 싫은 거예요.

잊힌다는 건...쓸쓸합니다. 책 표지에 혼자 서 있는 저 여자처럼 쓸쓸한 거예요. 저주같은 거죠. 하지만 때로는 잊히고 싶은 마음이 가득차올라 그게 눈물로 흐를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슬픕니다. 문제적 인간까지 갈 필요도 없어요. 우리는 외로운 존재니까요. 자연적으로 고독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차라리 사라져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들때가 있습니다. 만약 명실이 제정신이었고, 자신이 치매가 걸려 죽어갈 것이라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실리가 자신보다 먼저 사라져버릴 것이라 미리 알았더라면. 과연 저 펜을 손에 들었을까. 의문이 듭니다.
8734 2017-02-17 04:07:23 1
[감상문] 아무도 아닌, 아니어야 하는 [새창]
2017/02/15 20:16:27
잘 읽었습니다. 다시 한 번 소설들을 죽 훑어 보는 듯한 느낌의 글이라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문장력이 참 좋으세요.
솔직히 망치를 들고 터널로 향하는 벽을 깨부수는 행위 자체가, 사실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터널 끝에는 빛이 있겠지만, 사실은 그곳은 터널이 없으므로 더 어둠 속에 빠져들테니까요. 어쩌면 '나'는 어둠 속으로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일지도 몰랐다는 생각이 드네요. 진주를 찾기 위한다는 명목을 두고 스스로가 숨어버림으로써 자신이 드디어 자유로워 지는. 먼지 구덩이 속에서 밥을 먹는 그 모습이, 예전에 저의 모습과 오버랩 되면서 참 마음이 아팠어요.
누가에서는 마지막 한 문장이 참 아팠습니다. 일단 황정은에게서 그러한 분노를 본 것에 마음이 아팠고, 섬뜩하기도 했구요. 피해자가 순식간에 가해자가 되어버리고 그 상관관계는 욕설로 버무려집니다. 세상은 왜이리 복잡한 걸까요. 절대적인 악이 있다면 세상은 참 살기 편했을텐데요. 그 절대적인 악이 너무 좋아서 어느순간부터 그를 미워하기 보다, 고마워할지도 모르겠어요.

만약 상행이 이어진다면... 그들은 월식을 또다시 보지 못하고, 정확히는 놓치고, 다시 쳇바퀴같은 삶을 반복하며 살아갈 것이라 봐요. 반복하며 반복하는.
그리고 홀로 서 있는 여자를 놔두고, 전 뒤돌아 어딘가로 가버릴꺼예요. 다가서면, 방해할 것 같아요. 누가 누구를 방해할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8733 2017-02-17 03:44:13 0
[감상문]아무도 아닌 [새창]
2017/02/15 18:16:32
잘 읽었습니다. 짧지도 않고 마음 깊숙한 곳을 살짝 들여다 본 느낌의 글이라 참 좋았습니다.
"황정은이란 작가를 처음 만났다. 그러나 집요할 정도로 끌고 가는 감정이 낯설지 않아서 예전부터 종종 얘기를 나눴던 사람같이 느껴진다."라는 문장이 참 좋네요.
저도 아내가 간 곳은 아이가 있는, 아무도 가지 못한 그곳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곳이야말로 정말 아무도 가지 못해본 곳이니까요. 마지막 아내가 남편을 떠나 보낸 장면에서 아내의 조용한 시선은, 참 기묘하고도 쓸쓸함을 지니고 있어 마음 한 구석에 선명하게 남겨진 것 같습니다.
아까 다른 글에도 이거랑 비슷한 말을 한게 있는데, 한 번 긁어와 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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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누구도 가본 적 없는"에서, 부인이 여행이라는 또 다른 가능성을 선택한 것이 과연 삶에 대한 무한한 긍정을 나타내는 가에 대해서 의문이 듭니다. 아내는 누구도 가본 적 없는 화성에 대한 항해를 동경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미지의 개척지이며 또한 이상향으로도 그려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누구도 가본 적 없다는 것은 단지 개척지로써 정복되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는 잠시 모호합니다. 이미 부부는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굉장히 긴장되고, 불안한 감정들로 고조되어 있습니다. 과연 그 속에서 부부는 무한한 삶에 대한 긍정을 느낄 수 있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오히려 그 속에서 부부를 관통하고 있는 아이의 죽음을 더 크게 느꼈을 것이라 봅니다. 죽음. 이 죽음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누구도 가본 적 없는 곳이지요. 누구도 돌아오지 못하기에 그곳이 있는지도조차 의문스러운 곳. 역설적으로 부부는 이상향을 추구한 곳에서 가장 아픈 절망향을 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저는 아내가 기차 속에서 택했던 목적지는 그런 절망향일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추구하던 목적지일테니까요. 모성애를 품은 어미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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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32 2017-02-17 03:23:48 0
[감상문] 아무것도 아닌 [새창]
2017/02/14 11:25:18
잘 읽었습니다. 날카로운 연륜이 묻어나는 감상문이라 참 좋네요. 학교가 그리워지는 글입니다.
문학지를 많이 읽어 정작 작가의 소설은 사지 않는 제 친구가 생각납니다. 그래도 만약 작가를 조금만 더 이해하고 싶다면, 소설책 한권을 사는 것도 좋을 텐데요. 하, 뱁새가 황새를 걱정하는 꼴이려나요.
황정은의 특징 중 하나는 해설과 작가소개를 붙이지 않는 점이죠. 당당함. 계급장 떼고도 난 자신있다는 그런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주례사비평만큼 지금 우리 문학계를 갉아먹는 것도 없지요. 참 좋은 방식이에요. 하지만 작가의 말 정돈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작가의 말이 없으면, 뭔가 식사를 하고 나온 뒤에 입에 넣을 박하사탕 하나가 빠진 듯한 기분이거든요.
전 황정은을 처음 접한게 "일곱시 삼십 이분 코끼리 열차"였어요. 정작 표제작은 별로였고, '모자'라는 단편을 참 재밌게 읽은 느낌이 기억나네요. 그때까지만 해도 황정은의 문학은 작고,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느낌이었지요. 하지만 이번 "아무도 아닌"은 뭔가 좀 다르더군요. 섬뜩하고 울분에 찬 분노가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이 분기점이 과연 세월호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분노가 나쁘지는 않아 보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작가의 커리어에는 새로운 모습으로 신선함이 추가되겠죠. 제가 말했지만, 참 슬픈 말이네요. 어쩌면 이런 것이 "단순화"일수도 있겠습니다.
단어의 선택은 참 부러움과 경이가 듭니다. 전 솔직히 단어에 대한 고심을 잘 모르겠거든요. 어느 단어를 쓴다면 고민을 덜한 것이고 어느 단어를 쓴다면 이 사람은 고민을 참 많이 하면서 소설을 썼구나. 라고 하던데,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참 그런 것을 캐치해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울 수 밖에요. 전 아직 많이 멀었나 봅니다.ㅎ
8731 2017-02-17 02:54:51 1
[감상문] 아무도 아닌 [새창]
2017/02/12 04:18:27
잘읽었습니다. 이름에 집중하는 모습에 공감을 느꼈어요.
전 개인적으로 특이한 이름들이 너무 싫었어요. 그것들이 상징하는 바가 분명 있거나, 아니면 독자의 뇌리에 박히고 싶어서이겠지만...
항상 이름이 텍스트에게 읽힐때마다 마지 과속방지턱을 넘어가는 것처럼 턱턱 막혀요. 신경쓰인달까요.
저건 뭐지. 왜 저런 이름을 지었지? 어떻게 저런 이름을 가지고 삶을 살 수 있지? 같은 그런 생각이 들면서요.
그러면서도 저런 이름을 가지고 일상적인 우울을 말한다는 게 참 아이러니 하기도 했구요.
8730 2017-02-17 02:37:22 1
[오독오독/감상문] 아무도 아닌 [새창]
2017/02/09 15:38:30
잘 읽었습니다. 컴팩트해서 참 좋은 글이었습니다.
제가 책을 읽으며 울지 않으려 했던 문장을 한 번 옮겨 적어 볼께요. 양의 미래, 42쪽입니다.
"생활비가 부족하다거나 언제부터 일 할 수 있겠느냐 하는 말은 한다디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나 아버지나 왜소하고 말이 없어 집이 고요했다. 그렇게 고요한 집에 드러누워 있으면 이 집 어딘가에서 내 부모가 일부러 숨을 죽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게 되었다."
이 부분에서 저는 살짝 나오려는 울음을 참으려 천장을 바라봤습니다. 특히 집 어딘가에서 일부러 숨을 죽이는 부모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라, 마음이 무거웠어요. 아마도 저희집 가정사가 떠올라서 그랬나 봅니다.
8729 2017-02-17 02:24:13 0
한국 아이돌가수가 게임에 나옵니다!!! [새창]
2017/02/17 02:03:52
일단 게임 캐릭터들이 배튼본 보다 더 매력이 많고(이거 하나면 다 해결될 듯 하지만)
tps이며, 그래픽이 훨 좋으니 어느정도 유저들에게 어필 할 수 있다는 생각이겠지요.
8728 2017-02-17 01:59:46 0
(간절)정말정말정말정말 궁금합니다아아아!!!!!!!!!!!!!!!! [새창]
2017/02/16 22:10:01
헐....
수박이 아니라 무절임이라는 말인가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저렇게 만든거지?
8727 2017-02-17 01:47:57 1
[감상문]아무도 아닌 [새창]
2017/02/08 13:00:22
잘 읽었습니다. 공감가는 글이라 참 좋았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서비스직을 좀 해본 편입니다.' 라는 말들이 저와 맞닿아 있어 참 좋았습니다.
저는 상행을 이렇게 보았습니다. 약간 분석적인 글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우리는 귀성을 하행길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반대로 귀경을 상행길이라 부르지요. 그렇다면 고추따러 간 사람들은 시골로 내려가니 하행을 합니다. 하행의 목적지는 푸짐합니다. 식사를 차려주고 떠나는 이의 무릎에 시래기를 던져주고, 자루에 무엇인가를 그득그득 담아주죠. 그 속에서 오제는 이러한 사람을 동경합니다. 그러면서 상행의 목적지를 소름끼쳐 하지요. 상행은 반년마다 재계약해야 하고, 부동산을 알아야 하며, 바나나를 갖다줘도 먹다 남은 김치를 주는 곳입니다. 하행의 목적지와는 달리 상행의 목적지는 각박합니다. 하지만 고추따러 간 사람들은 결국 다시 상행하는 차에 탑니다. 자신들에게 체질적으로 시골이 맞지 않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월식(이상)을 보고 싶어합니다. 물론 '나'는 그 가운데서 방황하는 인물입니다.
이러한 대비는 자본과 빈곤, 이성과 감성, 개인과 공동체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나'는 여전히 그 가운데서 방황하며 우리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부동산 강의를 듣고 싶은가? 아니면 월식을 보고 싶은가?
좀, 재미없는 해석이죠?

저는 양의 의미를 가축인 양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두컴컴한 축사(서점)에서 갇혀서 바깥(진주)을 보지 못하고 결국 잡아먹히는(죄책감) 양(주인공)으로 보였거든요.
8726 2017-02-17 01:32:52 1
[새창]
잘 읽었습니다. 따뜻한 글이네요. 명실을 명주실 실타래로 표현하며 상실을 한가닥의 실로 겨우겨우 이어낸다는 표현이 참 아름답습니다.
상실이라는 것은 망각과도 같은 개념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는데, 과연 상실과 망각은 어떻게 다른지가 참 궁금해 집니다. 우리는 항상 누군가를 기다린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존재적으로 고독하니까요. 인간은 절대 우리가 될 수 없고 인간은 오롯이 나 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는 함께라는 실존적 개념이겠지요. 결국 우리는 외로움(고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죠. 그러한 와중에 관계가 생기고 잉여가 생기고 사회가 생기고 철학이 생깁니다. 지표는 이러한 것들입니다. 결국 컴컴한 밤바다를 이기지 못하는 잠시의 반짝거림. 그런 것들이 지표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들을 상정해봤자, 결국 우리는 다시 외로워지고 눈물흘리기 때문에 그 지표들에 크나큰 의미를 두지는 못하겠지요. 외롭기 때문에. 이러한 외로움은 언제나 우리에게 상실감을 안겨줄 뿐이고,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나 망각하는 동물이겠지요. 그래서 인간은 망각하는 동물이라는 소리가 나오나 봅니다.
8725 2017-02-17 01:19:11 0
[감상문]아무도 아닌, 그래서 모두. [새창]
2017/02/02 00:53:52
잘 읽었습니다. 정말 좋은 글이네요. 니체의 니힐리즘을 통하 니힐리즘의 극복에 맞추어 설명하신게 매우 인상 깊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약간 다릅니다. 저는 "누구도 가본 적 없는"에서, 부인이 여행이라는 또 다른 가능성을 선택한 것이 과연 삶에 대한 무한한 긍정을 나타내는 가에 대해서 의문이 듭니다. 아내는 누구도 가본 적 없는 화성에 대한 항해를 동경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미지의 개척지이며 또한 이상향으로도 그려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누구도 가본 적 없다는 것은 단지 개척지로써 정복되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는 잠시 모호합니다. 이미 부부는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굉장히 긴장되고, 불안한 감정들로 고조되어 있습니다. 과연 그 속에서 부부는 무한한 삶에 대한 긍정을 느낄 수 있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오히려 그 속에서 부부를 관통하고 있는 아이의 죽음을 더 크게 느꼈을 것이라 봅니다. 죽음. 이 죽음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누구도 가본 적 없는 곳이지요. 누구도 돌아오지 못하기에 그곳이 있는지도조차 의문스러운 곳. 역설적으로 부부는 이상향을 추구한 곳에서 가장 아픈 절망향을 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저는 아내가 기차 속에서 택했던 목적지는 그런 절망향일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추구하던 목적지일테니까요. 모성애를 품은 어미로서 말입니다.

질문. 1
삶의 가능성을 믿는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자신만의 정의, 실현의 불/가능성 등)
=삶은 슬픔입니다. 가능성은 있어도 실현의 불가에 있어서도 결국에는 슬퍼지는 것이 삶입니다. 그저 우리는 힘낼 수 밖에요.

질문. 2
타인의 상실 앞에 마주 선다면,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실 건가요.
=가만히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습니다.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어깨를 한 번 잡았을 뿐이었습니다. 지인의 부친상에서 저는 자연스럽게 그리 되더군요. 그 거대한 상실감 속에서 저는 스스로 쪼그라든 기분으로 하찮은 제 자신을 느꼈습니다. 어찌보면 굉장히 무서웠습니다. 저 친구는 모든 것 하나하나가 예민해져 칼날로 다가올텐데, 과연 내가 어떻게 손가락 하나 마음대로 까딱거릴 수 있을까. 잘못 움직인 입꼬리 하나가 저 사람에게, 후에 얼마나 큰 상처로 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저는 가만히 묵묵히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가장 최악의 선택이겠네요.

질문. 3
[웃는 남자]의 주인공처럼 우리는 스스로가 자신의 심판자가 되어 스스로를 단죄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그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왜죠?
=웃긴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제가 15살 때였죠. 10살때의 저를 생각하며 '난 참 등신이었어.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아니야.' 라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스무살이 되고서 문득 15살의 제가 떠올랐습니다. "그땐 왜이리 등신같이 굴었을까. 하지만 그대로 지금은 아니야."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제야 전 깨달을 수 있었죠. 스스로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현재라는 톱니바퀴들이 무수히 얽히고 얽혀서 돌아가는 시스템인데, 그건 너무 복잡하고 거대해서 작동되고 있는 와중에는 뭐라 형용할 길이 없는 겁니다. 그 시스템이 과거라는 이름으로 변해버리고 때가 타며 조금씩 닳고 늙어서 쪼그라들어 어느새 한 눈에 볼 수 있게 된다면, '단순화' 된 모습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를 판단하는 건 너무나 힘듭니다. 그래서 더 남에게 의존하고 관계를 형성하고 그런것들을 통해서 자신을 심판하려 드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저는 지금 뭘 말하고 싶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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