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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5 18:4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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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보여 주기’는 대체 뭘 보여 준다는 건가요?
분야
현대 소설
목차
보여 주기 : 인물을 입체적으로 재현하는 방법
놀부의 심성 보여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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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Ⅰ
문학 갈래의 이해
선생님! 소설을 공부하다 보면 참고서에 ‘보여 주기’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요, 무엇을 보여 주겠다는 것인지 아무리 들여다봐도 글자밖에 없어요. 소설은 글을 읽으며 내용을 이해하는 것인데, 대체 무엇을 볼 수 있다는 말인가요? 왜 이런 말을 사용해서 머리를 아프게 하나요?
‘보여 주기’는 대체 뭘 보여 준다는 건가요?
보여 주기 : 인물을 입체적으로 재현하는 방법
우리가 소설을 공부하다 보면 일상 속에서 쓰는 단어와 뜻이 다른 말을 간혹 접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흔히 접하는 ‘시점’이라는 말도 일상적으로는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라는 뜻을 지니지만, 소설에서는 작품의 서술자가 1인칭인지, 3인칭인지를 가르는 말로 사용됩니다. 이 밖에도 인물, 사건, 배경, 서술자도 일상적으로 쓰일 때와, 소설 감상에서 쓰일 때, 그 의미가 조금씩 다르지요. ‘보여 주기’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여 주기란 일상적으로 무엇을 보여 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소설에서 인물의 성격을 제시하는 방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소설 속에서 인물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인물이 등장해야 흥미진진한 갈등과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소설 속의 인물은 현실에서 실제 존재하고 있는 사람처럼 사실적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야기가 허술해지고 흥미도 떨어지며 결국에는 소설을 읽다가 도중에 책을 덮게 되지요.
요즘 3D 영상이 대세인 것처럼 소설 속의 인물이 현실감을 가질수록 독자는 그 소설을 더 흥미 있게 읽을 수가 있지요. 소설에서 보여 주기란 3D 영상과 같이 인물을 현실감 있게 제시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면 좋습니다. 단순히 인물이 ‘착하다, 악하다’라고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에서 드러나는 행동과 대사를 통해 인물의 캐릭터를 제시하는 것이 보여 주기의 방법입니다.
놀부의 심성 보여 주기
좀 더 알기 쉽게 사례를 들어 설명하도록 하지요. 여러분이 아주 잘 알고 있는 우리 고전 소설 중에 「흥부전」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소설은 일단 인물의 성격이 아주 뚜렷하게 구분되는 소설입니다. 선과 악의 구분이 확실해서 인물 사이의 갈등이 분명하게 드러나지요.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흥부는 우애할 줄 아는 착한 심성을 지녔고, 놀부는 심술궂고 탐욕스러운 인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대체 놀부가 얼마나 심성이 탐욕스러운데?’ 하고 말이지요. 사람이면 누구나 욕심이 있으니 놀부의 욕심은 어쩌면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이런 의심이 들 때, 만약 인물의 성격이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된다면, 읽는 사람들이 훨씬 설득력 있게 인물의 성격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자, 실제로 놀부의 성품이 어떤지 잠시 살펴볼까요?
놀부 심사를 볼작시면 초상난 데 춤추기, 불붙는 데 부채질하기, 해산한 데 개닭 잡기, 장에 가면 억매(抑賣)1) 흥정하기, 집에서 몹쓸 노릇하기, 우는 아이 볼기치기, 갓난 아이 똥 먹이기, 무죄한 놈 뺨치기, 빚값에 계집 뺏기, 늙은 영감 덜미 잡기, 아이 밴 계집 배 차기, 우물 밑에 똥 누기, 오려논2)에 물 터놓기, 잦힌 밥에 돌 퍼붓기, 패는 곡식 이삭 자르기, 논두렁에 구멍 뚫기, 호박에 말뚝 박기, 곱장이3) 엎어놓고 발꿈치로 탕탕 치기, 남의 제사에 닭 울리기.
「흥부전」 중에서
자, 여러분 어떤가요. 놀부의 성격이 한눈에 파악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장면에는 단 한마디도 놀부의 성격이 포악하다거나 심술궂다거나 인정머리 없다는 등의 표현이 없습니다. 그저 누가 보더라도 심술궂고 못된 행동이라고 여길 만한 행동들이 나열되고 있을 뿐이지요. 자, 또다시 놀부의 탐욕스러운 성품이 나타난 곳을 살펴볼까요.
“쌀이 많이 있다 한들 너 주자고 노적4) 헐며, 벼가 많이 있다 한들 너 주자고 섬을 헐며, (중략) 의복이나 주자 한들 집안이 고루 벗었거든 너를 어찌 주며, 찬밥이나 주자 한들 새끼 낳은 거먹암캐 부엌에 누웠거든 너 주자고 개를 굶기며, 지거미5)나 주자 한들 구중방(九重房) 우리 안에 새끼 낳은 돝6)이 누웠으니 너 주자고 돝을 굶기며, 겻섬이나 주자 한들 큰 농우(農牛)가 네 필이니 너 주자고 소를 굶기랴. 염치 없다, 흥부놈아!” 하고, 주먹을 불끈 쥐어 뒤꼭지를 꽉 잡으며, 몽둥이를 지끈 꺾어 쾅쾅 두드리니,
이번에는 서술자가 등장인물의 행동이 아니라, 인물의 대사를 고스란히 옮겨 놓고 있습니다. 아무리 쌀이 많고, 벼가 많아도 동생에게 베풀지 않겠다는 놀부의 독설. 심지어 술을 담그고 난 찌꺼기나, 추수한 후에 곡식의 껍질이 남게 되어도, 차라리 검은 암캐와 돼지와 소를 먹일지언정 동생 흥부에게는 조금도 줄 수 없다는 놀부의 말은 ‘그 사람, 참 몰인정하다’는 직설적인 말보다 훨씬 더 인물의 탐욕을 강렬하게 느끼게 합니다.
이처럼 소설 속에서 서술자가 아무런 판단이나 개입 없이 인물의 대사, 행동, 혹은 외양을 묘사하여 인물의 성격을 독자에게 제시하는 방법을 보여 주기라고 합니다.
뜬금있는 질문
인물의 성격을 만드는 또 다른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인물의 성격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이름입니다. 물론 특별하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이름을 지을 수도 있지만 이름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잘 보여 줍니다. 「흥부전」에서 흥부와 놀부라는 이름은 인물의 성격을 형성하는 데 기여합니다. 흥부는 한자로 ‘흥할 흥’ 자를 썼으니 언젠가는 좋은 상황을 맞이할 것을 짐작할 수 있고, 놀부는 ‘놀다’라는 말과 연결 지으면 장난스럽고 심술 많은 인물이라는 것을 떠올려 볼 수 있지요. 이처럼 인물의 이름은 성격을 만드는 데에 기여한답니다. 이 밖에도 인물의 성격을 창조하는 데에는 몸의 크기라든가, 신체적 특징, 나이, 직업 등 다양한 방법들이 동원된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보여 주기’는 대체 뭘 보여 준다는 건가요?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2013. 9. 15., 북멘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