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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13 2024-05-19 20:26:21 1
드디어 알아낸 세븐일레븐 뜻 [새창]
2024/05/14 18:13:03
[부연설명] 세븐일레븐은 1927년 미 텍사스에 설립된 회사로, 얼음 판매회사였던 사우스랜드 제빙회사에서 얼음 위에 우유, 달걀 등 식료품을 놓아두고 판매한 것이 최초의 '편의점' 모습이었다. 사업 초창기에는 이름이 '사우스랜드'였으나 점포가 늘어나고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영업을 하는' 특성을 살려서 '세븐일레븐'이라는 이름을 상호로 정했다. 이후 1962년부터 최초로 24시간 영업을 시작했지만, 세븐일레븐이란 이름이 이미 널리 퍼져있어서 사명을 변경하지는 않았다.

세븐 일레븐의 로고는 처음 1946년 만들어졌는데 화려한 색 띠를 두르고 오렌지색과 빨간색, 녹색의 3가지 색의 조합인 지금의 로고는 1970년도에 변경되었다. 이 때 영어 스펠링의 마지막 'N'자가 유일하게 소문자 'n'으로 바뀌었는데 그 이유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디자인적으로 바꿨다는 설, 7과 11이 합쳐진 모습이라는 설, 회장 부인이 대문자 N이 너무 거칠어 보인다고 바꾸라고 했다는 설 등이 있다.

2005년 미국 기업이던 세븐일레븐이 일본으로 소유권이 넘어갔는데 어째서 소문자 n으로 끝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아 본사에서 미국 담당자에게 질문을 했다고 한다. "왜 한 자만 소문자 n으로 표기된 것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 미국에서 온 답변은 이랬다고 한다. "로고를 디자인한 담당자가 퇴사해서 알 수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세븐일레븐의 일본 본사 홈페이지에 나오는 내용이다.
14612 2024-05-17 22:28:43 3
실제사례 "바닐라아이스크림을 사면 차 시동이 안걸려요" [새창]
2024/05/17 19:50:10
https://www.dogdrip.net/537861713

이케아 MARKUS 의자를 사서 앉았더니 모니터가 가끔씩 쇼트가 나서 검은색으로 몇 초동안 깜빡임

다른 의자에서는 발생하지 않고 이케아 의자에 앉았을때만 발생함.

알고봤더니 건조한 상황에서 패브릭 소재의 의자와 의자 높낮이를 바꿔주는 가스실린더에서 정전기를 발생시켜 모니터가 꺼지는 상황이 발생함

의자에 접지를 해서 해결함
14611 2024-05-17 22:25:28 3
실제사례 "바닐라아이스크림을 사면 차 시동이 안걸려요" [새창]
2024/05/17 19:50:10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5494635

컴퓨터가 아무 이유없이 컴퓨터가 깜빡거림

내장그래픽에 연결했더니 증상이 사라져서 그래픽 카드 문제라고 판단, 드라이버를 다시 깔고, 그래픽카드 분해 후 청소도 하고, AS에도 보냈다가 문제없다는 답만 듣고, 모니터 AS기사를 불러도 문제가 없고, 심지어 그래픽카드도 바꾸고, 멀티탭도 바꾸고, 모니터 연결 케이블도 비싼걸로 바꾸고, 파워도 바꾸고, 메인보드+CPU까지 바꾸고, 모니터도 바꾸는 등 1년 넘게 씨름했는데도 증상이 그대로라 포기함.

한참 후에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원인은 냉장고 때문이었음. 냉장고가 오래되어 모터가 돌아가고 꺼질때마다 콘센트 전압이 튀면서 그래픽카드에 순간적인 전기적 문제를 일으켜 화면이 깜빡거렸던 것. 냉장고를 배선이 다른 콘센트에 연결하니 증상이 해결
14610 2024-05-14 13:50:36 2
노란불에 교차로 진입하면 신호위반 판결 내린 판사 [새창]
2024/05/14 00:41:37
쟤 대통령 친구라 대법관 됐다는 말 나오던 애 아닌가?
14609 2024-05-14 13:50:01 13
손해 나도 만든다던 매일유업 특수분유 근황 [새창]
2024/05/14 08:40:48
부연설명] 신생아 5만 명 중 1명 꼴로 태어나는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을 가진 유아들은 선천적으로 아미노산을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하거나 만들어지지 않아 모유는 물론 고기, 생선, 심지어 쌀밥에 포함된 단백질조차 제대로 섭취할 수 없다. 이런 아이들이 식이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분해하지 못하는 아미노산 및 대사산물이 축적되어 운동발달 장애, 성장장애, 뇌세포 손상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고 한다. 매일유업은 1999년부터 8가지 선천성 대사이상을 겪는 아이들을 위해 8종 12가지의 특수 분유를 생산하고 있다. 이를 위해 1년에 두 차례 일반 분유 생산 공정을 중단하고 24시간 동안 기계 내부 세정 작업을 벌인 후 10분 동안 1,000개의 특수분유를 생산한다. (일반 분유는 하루 4만 캔을 생산한다) 특수 분유는 일반 분유와 달리 공정이 까다로워 원료 혼합, 제조에 시간이 더 걸리며 제품별로 들어가는 재료도 다르다고 하며 소량 생산이라 포장도 일일이 수작업으로 해야 한다. ​

매일유업이 특수 분유 생산에 나선 것은 고(故) 김복용 선대 회장의 지시 때문인데, 김 선대 회장은 한 대학병원에서 선천성 대사 이상 환아들을 만난 뒤 "단 한명의 아이도 소외받아서는 안 된다"며 이들을 위한 분유 개발을 지시했다. 그래서 매일유업은 매년 수억의 손실을 기록하면서 특수 분유를 생산하고 있다. 이 분유가 나오기 전에는 환아들의 부모는 20년 전 가격으로 한통에 6만 원이 넘는 해외 제품을 사 먹었어야 했다고 한다. 2021년 기준 현재 국내에 선천성 대사 이상 환아 수는 320명 정도라고 하는데 최근 매일유업은 이 '착한 분유'사업을 '착한 식품'으로 확대, 2017년 4세 이상 환아를 위한 2단계 제품 2종을 추가로 개발하고 스낵바 등도 연구 개발하여 성인이 된 환아들의 식생활에서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연구 중이라고 한다.

또한 최근 매일유업은 중국 알리바바 그룹의 헬스케어 사회사인 '알리건강'과 특수분유 제품의 중국 시장 공급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특수분유 제조사는 전세계적으로 드문데 매일유업에서 생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알리바바그룹에서 매일유업에 제작 및 유통을 제안한 것. 매일유업은 중국 온라인커머스 플랫폼에 특수분유를 입점하게 되며 선천성대사이상 환아를 위한 기금지원 및 제품기부, 병원 및 보건소와의 연계 등의 제반 활동도 지원받는다. 매일유업은 이번 제품 공급을 계기로 특수분유의 공급 품목을 점차 늘려갈 예정이며, 중국 선천성대사이상 환아를 위한 기업사회공헌활동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14608 2024-05-09 17:34:29 1
34년째 진료비와 약값이 무료인 병원 [새창]
2024/05/06 13:53:00
[부연설명] 성가복지병원. 성북구 하월곡동에 위치한 가톨릭 수도단체인 성가소비녀회가 가난과 질병으로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무료병원이다. 정부 보조금 없이 후원금으로 운영되며 차상위 계층, 노숙인, 행려환자, 외국인 노동자, 호스피스 등을 대상으로 내과, 외과, 치과, 부인과 등을 진료하며 가난한 자의 최후의 안식처라고 불리우고 있다.

1962년 설립되어 처음에는 유료로 운영되다가 1990년부터 무료병원으로 전환하였다. 외래진료에서 입원, 약제비까지 모두 무료로 운영될 수 있는 것은 많은 후원과 자원봉사 덕분이다. 상주하는 5명의 의사들 외에 30여 명의 의사들이 교대로 의료봉사를 지원해주어 운영되고 있다. 의료지원 뿐만 아니라 청소부터 병동 관리, 무료 밥집 운영까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운영된다. 무료밥집도 주 3회 운영된다.
14607 2024-05-09 17:23:46 1
34년째 진료비와 약값이 무료인 병원 [새창]
2024/05/06 13:53:00
아, 저 방송 봤는데 방송보던 어머니가 옛날에 성당에서 저기 자원봉사 나갔었다고 하시네.
14606 2024-04-28 13:16:45 0
채상병 소속 부대장 "부하 아닌 위만 바라보는 지휘관…내팽개쳐진 기분" [새창]
2024/04/27 15:24:32
의견???????????????????????????
14605 2024-04-27 23:02:51 2
어린이집 설치에 반발하는 송파구 주민 [새창]
2024/04/26 11:19:58
저거 반대하는 사람들 일가친척은 영원히 국공립 어린이집 못가게 했으면 좋겠다.
14604 2024-04-26 21:10:56 0
물리학계의 한 획을 그은 고양이 [새창]
2024/04/24 11:17:44
[부연설명] F. D. C. 윌러드. 미시건주립대의 물리학자 잭 헤더링턴이 키우던 샴고양이인 체스터가 사용했던 필명.

이 윌러드가 헤더링턴의 논문에 저자로 추가된 이유는 헤더링턴이 논문에 "나(I)" 라고 써야 하는 곳을 모두 "우리(We)"라고 쓴 것이 나중에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걸 다 고치기 귀찮았던 헤더링턴이 자기 고양이를 '설치류 포식 컨설턴트'이자 물리학자라며 공저자로 올려버렸다. F.D는 집고양이의 학명인 '펠리스 도메스타쿠스'를 의미하며 C는 원래 이름인 체스터라서, 윌러드는 체스터의 아빠 고양이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 논문이 꽤 우수했기 때문에 이후 여러속에서 피인용되면서 덩달아 유명해졌는데, 한번은 미시건주립대에 헤더링턴을 찾는 전화가 와서 부재중이라고 안내했더니 그럼 윌러드 박사라도 바꿔달라고 했던 적도 있으며, 그밖에 교수로 초빙이 오기도 했다. 한 물리학회에서는 저 논문을 쓴 사람이 지금까지 한번도 학회에 참석안한걸 알고 초청하려고 했다가 나중에 고양이라는걸 알고 초청을 철회하기도 했다.

1980년 대중과학잡지 라 프셰르슈에 윌러드 명의의 두번째 글이 올라왔는데 (심지어 단독저자) 기사 내용의 특정 세부사항에 동의할 수 없었던 실제 저자들 중 한명이 가명을 이용해서 '나중에 이 글 오류나면 내 책임 아님. 윌러드 책임임' 이라고 장난친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미국 물리학회는 만우절 장난으로 '앞으로 고양이가 쓴 논문은 무제한 열람이 가능하다' 라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14603 2024-04-26 20:57:59 4
홀로코스트에 희생된 [안네의 일기]에 일본국민이 매료된 이유.txt [새창]
2024/04/25 23:32:09
[부연설명] 안네의 일기는 나치의 홀로코스트가 극심하게 자행되던 2차 대전 기간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유대인 소녀 안네 플랑크가 나치를 피해 숨어 있던 안가에서 가상의 일기장 친구 키티에 적은 일기이다. 안네의 가족이 결국 나치에 적발당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서 죽음을 맞이했는데 그녀의 가족의 은신을 도와줬던 미프 히스가 그녀의 일기장을 몰래 빼돌려서 보관해 놓고 있다가 안네의 가족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안네의 아빠가 돌아와서 그녀의 일기를 출간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전쟁의 비참함을 후대에 일깨워 준 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안네의 일기는 두 가지 원본이 있다. 원본 A는 안네가 처음 일기를 썼던 버전이고, 원본 B는 네덜란드 망명 정부가 BBC 방송을 통해 종전 후 전쟁 당시의 기록을 모아서 전시회를 할 것이라고 하자 안네가 "나의 일기를 여기에 제출해야겠다"라고 희망하여 A본에서 내용을 추가하거나 개인적인 내용들을 삭제한 버전이다. 1947년 첫 출간본은 버전 A와 B를 짜 맞춘 형태인데 출판사 직원의 조언에 따라 사춘기 소녀의 성적인 호기심과 솔직한 생각 등을 다룬 부분이 생략되었으며 초반 부분도 많이 생략되었다. 특히 안네의 아빠가 안네의 일기를 편집하면서 안네가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나 자신에 대한 욕을 하는 부분은 대부분 잘라서 출간했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기 때문에(엄마에 대한 욕은 그대로 놔뒀다) 사후에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후 1986년에 버전 A와 버전 B, 기존출판본까지 모두 수록한 비판주석본이 출간되었고, 2006년에 개전판이 새롭게 출간되었다. 1991년에는 안네 프랑크 재단의 의뢰에 따라 새로 편집한 일반독자용 완전판이 나왔다. 1998년에는 안네의 일기에서 두 페이지 분량의 봉합된 일기가 발견되었는데 안네 본인이 누가 볼까 해서 스스로 직접 봉한 것으로 보인다. 안네는 "이 망친 페이지를 이용해 야한 농담들을 적어보겠다며 매춘과 결혼 등을 소재로 한 몇몇 얘기들을 단편적으로 적어놓았는데, 당시 사춘기 소녀의 관점으로 적힌 것이라 외설적이라기보다는 웃긴 농담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 안네의 일기에 대하여 네오 나치들과 반유대주의자들은 '유대인들이 창작해낸 가짜 일기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2013년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이들의 주장을 따와서 방송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편 2014년 일본 도쿄의 여러 국립도서관에 비치된 안네의 일기와 이와 관련된 연구서적들, 또한 홀로코스트 관련 서적이 잇따라 파손된 사건이 발생했다. 도서관 직원들이 책의 피해를 확인하지 못하도록 약 5cm 두께의 책의 아랫부분을 100쪽 넘게 예리하게 찢어낸 치밀한 수법으로 이루어졌으며 지문이 남지 않도록 장갑까지 끼고 범행을 저질렀다. 파손된 도서관은 도쿄 북동부 5개 구와 그 외각 지역 3개시 등 38개 도서관에 달하며 피해를 본 책은 300권이 넘는다. 경찰은 이번 훼손사건이 계획적으로 긴 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다고 판단했다.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자 이스라엘과 유대인 단체들은 진상 조작을 촉구하고 나섰다. 국제문제로 확대될 것을 우려한 일본 정부와 일본 경찰이 수사에 들어간 끝에 범인을 잡았는데 체포된 36세 남성은 "안네의 일기는 안네 자신이 쓴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라며 범행 동기를 밝혔다. 한편 이 사건과 관련해서 일본 극우 세력이 "일본 위안부 문제를 독일 홀로코스트와 동급으로 세워, 미국과 유럽을 위안부 문제에 끌어들이려는 한국인의 소행이다"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14602 2024-03-29 23:34:37 4
일본 여고생의 한국여행 후기... [새창]
2024/03/27 19:37:21
한국인들 중에는 싸이족과 BTS족이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합니다.
14601 2024-03-29 13:55:07 4
20년 만에 밝혀진 가오나시의 정체 [새창]
2024/03/28 07:53:02
[부연설명]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가오나시는 얼굴+없음이라는 뜻이다. 초기 계획에는 없었던 캐릭터였다고 하는데 원안대로 제작했을 경우 영화가 3시간이 넘어간다는 것을 알게 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그렇다면 스토리를 함축하는 강렬한 캐릭터를 만들자”라고 해서 탄생한 캐릭터라고 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작품에서 주인공 이상으로 사랑을 받은 가오나시는 폭식으로 대비되는 욕심,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배금주의,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은 허기 등은 현대인의 욕망과 공허를 나타낸다. 그러면서도 사소한 친절 하나에 온 마음을 뺏길 만큼 외로움을 가지고 있다는 점 역시 가오나시의 외로움에 동질감을 느낀 현대인들의 많은 공감을 통해 주인공보다 인기 있는 캐릭터가 되었다.

반면 유바바의 온천이라고 하는 물질주의로 가득찬 곳에 들어와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괴물이 되었다가 센이 강의 신이 준 경단을 강제적으로 먹여 먹었던 모든 것을 토해낸 후 제니바에 집에서 물질주의와 거리가 먼 목가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에서 자아를 상실하고 자신의 의지나 신념 없이 외부의 자극에 대한 반작용으로만 살아가는 현대인을 묘사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야자키 감독은 가오나시에 대해 “가오나시가 금을 만들어 사람들을 혹하게 만드는 건, 10살짜리 아이가 선물을 사서 남의 관심을 사려는 것과 비슷하다. 아는 초등학생이 영화를 보고 가오나시에게 굉장한 공감을 느꼈다고 한다. 가오나시가 결국 자기가 있을 곳을 발견해서 좋았다는 거다.”라고 말했다.
14600 2024-03-25 21:33:12 2
사이가 안 좋았다는 개그맨들 ㄷㄷㄷ [새창]
2024/03/23 16:36:06
[부연설명] 정확히 얘기하면 정종철은 얼굴때문에 합격한 게 아니라 그 특유의 소리모사로 합격했다 한다. 당시 1차 시험은 원고로 내는 거였는데 원고에다 테트리스 사운드, 동물소리 등을 그대로 원고에 적어서 냈는데 2차 실기에서 첫 질문이 '왜 1차에 그렇게 적어 냈어요?' 였다고 한다. 물론 정종철은 그 대본 그대로 성대모사를 했고 심사위원석은 빵 터져서 바로 합격시켰다는 전설이 있다.

얼굴만 보고 뽑은 케이스 중에는 오지헌이 있는데, 오지헌의 경우에는 2차 시험장에 들어오자마자 심사위원들이 합격을 외쳤다는 설과 복도에서 대기하던 중 지나가던 심사위원들이 그를 보고 합격시켰다는 설이 있다. 진짜 얼굴만 보고 길거리에서 바로 발탁된 개그맨은 MBC 오정태인데, 어느날 친구들 따라 여의도 벛꽃놀이 구경왔다가 MBC 국장이 그를 보고 개그맨으로 뽑았다고 한다. (이 역시 MBC 국장이 MBC 앞 횡단보도에 서 있던 그를 보고 개그맨을 권유했다는 설, 차 타고 가던 국장이 명함을 주고 내일 연락하라고 했다는 설, 심지어 국장이 자기 사무실에서 우연히 창밖을 봤는데 마침 그를 보고 창문너머로 합격을 외쳤다는 설도 있는데 셋 다 센세이셔널한 상황이긴 하다.)
14599 2024-03-11 20:40:07 1
드래곤볼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의 유명한 일화 [새창]
2024/03/08 17:54:02
[부연설명] 토리시마 카즈히코는 책과 소설을 좋아하던 청년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창작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에 편집자의 길을 걷기로 한다. 원래 문예춘추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당시 오일쇼크로 신입사원을 뽑지 않았고 겨우 슈에이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카즈히코는 플레이보이 일본판 편집을 희망했지만 점프 쪽으로 배속되어 실망했다고 한다. 사실 카즈히코는 만화, 특히 점프 만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당시 점프는 지금처럼 압도적 1위도 아니었을뿐더러, 별다른 스토리 없이 자극적인 장면들의 반복으로 연명하던 시절이었다. 오히려 터치가 연재되던 소년 선데이나 당시 만화잡지 중 탑을 달리던 소년 매거진이 그의 취향에 맞았다고 한다.

그가 처음 맡은 작품은 '도베르만 형사'였다. 이 만화는 형사가 범죄자들과 사회악을 잔인하게 처단하는 이야기였는데 앙케이트 순위가 낮아서 연재종료 위기였다. 토리시마는 작가에게 독자층을 넓히기 위해 자극적인 면을 줄이고, 이야기의 깊이를 더할 것을 주문한다. 주인공의 심적 갈등을 추가해서 계속해서 악을 처단하지만 악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악의 세력들이 연합해서 더 큰 악으로 변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주인공의 고민과 고뇌를 추가한 후 순위가 크게 올라 성공적으로 연재종료할 수 있었다.

이후 토리시마의 눈에 띈 건 출퇴근을 하는게 싫어서 만화가가 되고자 점프 공모전에 투고한 토리야마 아키라였다. 공모전에 투고한 작품은 스타워즈의 패러디였는데 당시 공모전 규정에는 기존 저작권물의 패러디물은 안된다는 조항이 있었다. 토리야마 아키라가 이걸 모르고 투고한 것. (사실 토리야마 아키라는 매거진에 투고하려고 했지만 마감일을 맞출 수 없어 점프에 투고한 것이라고 한다) 토리시마는 만화를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만화 작법에는 서툴렀지만 마치 할리우드 영화와도 같은 표현력과 다각적인 인물 묘사를 보여주었던 토리야마 아키라의 작품을 보고 그에게 전화해서 사정을 설명하고 당신에게 재능이 있으니 우리 같이 만화를 만들어 봅시다라고 제안한다. 일본 만화 역사에 한 획을 긋는 토리야마-토리시마 콤비의 탄생이었다.

토리시마는 토리야마에게 만화를 그리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일단 뭐든지 그려오게 했다. 하지만 토리야마가 그려온 것이 맘에 안들면 아무 말도 않고 그 자리에서 분쇄기에 넣고 갈아버렸다. 이렇게 갈린 게 1년 동안 500매에 달했다고 한다. 이후 단편으로 데뷔한 토리야마와 토리시마는 만화작법과 캐릭터 등에 토론하고 1980년 초인기작인 '닥터슬럼프'를 연재하게 된다. 닥터슬럼프는 엄청난 인기를 끌고 TV애니화까지 되면서 승승장구했는데 처음 시작할 때 토리야마는 발명가인 박사를 주인공으로 삼고 싶어 했지만 토리시마는 박사의 발명품인 아라레를 주인공으로 하자고 했다. 의견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결국 두 가지 방식으로 단편을 그린 후 앙케트를 보고 결정하기로 했는데 결론은 토리시마의 압승. 닥터슬럼프의 주인공은 아라레가 되었다. 토리야마는 나중에 "지금 와서 보니 토리시마 씨가 옳더라"라고 인정했다.

닥터 슬럼프는 엄청난 히트를 쳤다. 권당 300만부가 팔렸으며 토리야마는 만화가 최초로 일본 납세자 10위 안에 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토리야마가 연재 6개월 만에 그만두고 싶다고 한 것이다. 토리시마의 OK를 받지 못하면 다 그린 만화를 거의 다 다시 그려야 하는 일이 워낙 많이 생기다 보니 너무너무 힘들었던 것이다. 토리시마는 토리야마에게 "더 재미있는 걸 그려오면 완결을 내게 해 주겠다"라고 했고 토리야마는 닥터슬럼프를 연재하는 중 5일은 닥터슬럼프에, 2일은 신작 연구와 파일럿 단편에 할애했다. 그래서 완성된 게 바로 그 '드래곤볼'이다.

드래곤볼은 위에서 언급한 여러 파일럿중 평가가 좋았던 '톤푸의 대모험'과 '드래곤보이 기룡소년'을 합친 작품이었다. (둘을 합치자는 건 토리야마 부인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이제 닥터 슬럼프의 연재를 종료하려고 하자 점프는 난리가 났다. 당시 일본 최고 인기작이었던 닥터 슬럼프의 인기를 생각해 보면 어찌 보면 당연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토리시마는 토리야마의 편에 서서 점프 편집부와 싸웠다. 그의 평소 지론은 "만화가가 편집부와 싸우면 편집자는 마지막엔 반드시 작가 편을 들어야 한다."였다.

결국 우여곡절끝에 드래곤볼의 연재가 시작되었는데 의외로 초반 순위는 별로 좋지 않았다. 편집부에서 연재 종료를 검토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미 당시 시청률 1위였던 닥터 슬럼프를 완결하며 후지 TV와 '차기작은 무조건 애니화한다'라는 약속이 잡혀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끝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토리시마는 작품의 방향을 배틀물로 바꾸자는 아이디어를 낸다. 여행을 떠나면서 모험을 즐기는 로드무비 형식보다 주인공의 위협을 강력한 적으로 명확화 시키면 어린 독자들이 훨씬 이해하기 쉬어지고, 토리야마가 가지고 있는 영화적 연출 소양을 최고로 활용하는 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천하제일무도회'였다. 이때부터 드래곤볼의 인기는 치솟았으며 장기연재가 결정되었다.

이렇게 한참동안을 동고동락하면서 지내자 토리야마와 토리시마는 절친이 되었다. 게임 드래곤 퀘스트의 디자인도 원래 토리야마가 한번 거절했지만 토리시마가 다시 한 번 권유해서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일본 내에선 '토리야마 씨가 한 번 거절한 일도 토리시마 씨에게 부탁하면 된다'는 얘기도 있었다고 한다. 토리야마는 드래곤볼 완결 후 쉬고 있을 때도 토리시마의 부탁은 다 들어주었다고 한다.

토리시마가 발굴해 낸 또 한명의 작가는 아이즈와 전영소녀, 제트맨을 그린 카츠라 마사카즈였다. 사실 위에서 언급했듯 토리시마는 스토리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으며 특히 러브코미디를 좋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토리야마는 연애물을 그리는데 천부적일 정도로 재능이 없었다. 그러다 발굴된 게 카츠라 마사카즈였다. 사실 카즈라 마사카즈는 괴수물, 특히 특촬물류를 그리는 걸 엄청나게 하고 싶어 했지만 토리시마는 그런 카즈라를 '너는 일본에서 여자애를 가장 예쁘게 그린다.'라고 꼬셔서 러브코미디물을 그리게 했다. 그래서 태어난 게 아이즈와 전영소녀였다. 물론 카츠라도 윙맨이나 제트맨 같이 자신이 그리고 싶은 작품을 그리기도 했다. 나중에...

또한 토리시마는 소위 말하는 1996년 '점프 암흑기'때 점프 편집장 자리에 올라서서 다시 점프를 되살리기도 했다. 원피스의 오다 에이이치로와 나루토의 키시모토 마사시가 연재를 시작한 것도 그가 편집장에 있을 때였다. 그밖에 유희왕의 카드 게임과 각종 미디어믹스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도 했다. 이후 2001년 점프 편집장에서 은퇴해 슈에이샤의 임원직에 올랐고 2015년에는 슈에이사의 자매 기업인 하쿠센샤의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2021년 은퇴 후에는 잠깐 고문으로 있다가 현재는 방송에 나가서 점프 작품 홍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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