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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5 01:4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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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장'은 현재 서울특별시 송파구 석촌 호수 일대에서 열리던 오일장이었다. 원래는 오일장이었으나, 매일 장을 찾는 사람들로 붐비면서 점점 상설 시장화가 되었다. 또한 송파장은 지리적 이점으로 '전국 15대 시장' 한 곳으로 불릴 만큼 한양 인근에 개설되는 향시 중 가장 큰 장이기도 했다.
‘송파(送波)’라는 마을 이름이 언제 생겼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당시 마을 언덕에 소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어서 소나무 언덕, 즉 송파(送波)라 불렀다고 한다. 송파는 원래 서울과 광주를 연결하는 나루였다. 처음에는 삼전도(三田渡)의 보조적인 역할을 하였지만, 병자호란 이후 삼전도 보다 송파나루로 출입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새로운 경제의 중심지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송파나루를 중심으로 송파장이 개설되었다. 본래 송파장은 오일장으로 시작했지만, 나루터를 중심으로 많은 상인과 각종 물화가 매일 모여들면서 점점 상설시장이 되었다.
전국 15대 장시 중 하나였던 송파장
조선 시대 한양 [현재의 서울]의 인구증가에 따라 공간의 확장도 이루어졌는데, 도성을 벗어나 서울 외곽지역 중 교통이 발달한 곳을 중심으로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었다. 특히 송파 지역은 송파나루를 중심으로 수로 교통이 발달하였고, 삼남 지방과 영동지역을 연결하는 도로가 통과하고 있어 많은 상인과 각종 물화(物貨)들이 모여드는 집산지가 되었다. 또한, 송파 지역은 당시 경기도에 속해 있어 육의전의 규제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상거래가 가능했었다. 이러한 지리적인 이점에 힘입어 송파장은 한양의 시전상인들을 위협할 만큼 성장하였다. 한양 주변의 많은 향시(鄕市) 중 최고의 장으로 불렸던 송파장은 『만기요람』에서 안성 읍내장, 은진 강경장, 덕원 원산장과 함께 '전국 15대 장시'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송파장의 이전과 쇠퇴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던 송파장은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침체기를 맞았다. 일제에 의해 철도가 개설되고, 육의전이 몰락하면서 송파장이 가졌던 이점들은 사라지게 되었다. 더욱이 1925년 을축년(乙丑年) 대홍수로 인하여 마을 전체가 떠내려가 현재의 가락동 410번지 일대로 이주하면서 송파장의 규모는 기존과 비교하면 많이 축소되었다. 또한, 1920년대 후반 인근 지역에 경안장, 구천 판매장 합자회사 등이 만들어지면서 송파장의 상권은 분산되었다. 결국, 한국전쟁 이후 개설된 천호시장 및 모란장과의 경쟁에서 뒤처진 송파장은 시장의 기능을 하지 못했고, 1960년대 소멸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