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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8 14:5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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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퍼스트 정신이 처음 유래된 것은 타이타닉 사건이 아니다. 그보다도 50여년 전인 1852년 침몰한 영국 수송선 ‘버큰헤이드호’ 사건부터다.
당시 군인 500명과 그 가족인 여성과 어린이 130명을 태웠던 영국 해군 소속 버큰헤이드호는 아프리카 남단 항해 중 암초에 부딪혀 좌초됐다. 사고 시기가 새벽인 데다 정전까지 겹쳐 주위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풍랑은 거셌다. 공교롭게도 인근 바다는 굶주린 상어들이 득실거리는 해역이었다.
무엇보다도 최악인 것은 구명정이 3척(척당 정원 60명) 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630명 중 180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힘 센 군인들이 폭동이라도 일으키면 힘이 약한 자와 여성, 어린이들이 먼저 바다에 던져질 상황이었다. 당시만 해도 배 위는 난파라도 당하면 힘 센 자들부터 구명정을 차지하는 약육강식 원칙이 우선하는 세계였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군인들의 사령관이었던 시드니 세튼 대령이 이전에는 아무도 하지 못한 위대한 역사를 탄생시킨다. 침몰 직전 500명의 군인을 갑판에 집합시킨 세튼 대령은 침착하게 횃불을 밝히고 우선 부녀자들부터 구명정에 나눠 하선시킬 것을 명령했다. 숙연하면서도 위압감이 실린 명령에 병사들도 침착을 되찾았다.
하선작업이 끝나자 이들은 갑판 위에 군인답게 나란히 정열했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 신병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불평하는 자는 없었다. 당시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부녀자들을 실은 구명정이 떠날 때까지 조금이라도 움직인 군인도 단 한명도 없었다고 한다. 처음 정렬자세 그대로 500명이 바다에 수장된 것이다.
이 사고가 세간에 알려지자 전 세계는 감동했고, 레이디 퍼스트라는 전통도 생겨났다. 배에서 사고를 만나도 약자들을 먼저 바다에 던져버리는 일도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50년 후 타이타닉 침몰 때에도 사람들은 ‘버큰헤이드호를 기억하라’고 귓속말을 나눴다고 한다. 지금도 영국인들은 어떤 일을 하든 위급한 상황에 닥치면 이 교훈을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