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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3 23: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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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대첩이라고 볼 수 있죠. 사실 이전까지 독립군의 무장투쟁전과라 하면 강 넘어 국경선 근처 마을에 위치한 일본 시설 공격해서 일본인이나 순사 등을 죽이고 철수하는 것이 대부분의 활동이었고 그 타격 규모도 수 명에서 수십 명이었는데 봉오동과 청산리는 그 규모를 훨씬 뛰어넘으니까요.
물론 1,200명의 규모가 과장일 수도 있죠. 이는 순전히 우리 측 입장의 기록이니깐 부풀려졌을 수도 있구요. 그래도 못해도 수백 단위일텐데 기존의 무장독립투쟁으로 거두었던 성과와 비교해 보면 충분히 대첩이라 불릴만 하죠. 그리고 또 의미가 있는게 순전히 우리 독립군이 거둔 성과이기도 하구요.
교과서에 보면 1920~30년대 독립군의 무장독립투쟁과 관련하여 독립군 단독으로 성과 중에서 이름 실리는게 사실 요 두 가지가 가장 대표적인데 충분히 대첩이라 불릴만한 성과와 의의가 있으니깐 실리지 않겠습니까... 30년대에 실리는 영릉가, 흥경성, 쌍성보, 대전자령 전투와 같은 것들은 중국 의용군, 호로군 등의 중국군과 연합작전을 펼친 거였구요...
님이 그 대첩의 기준을 어느 선에서 비교하시면서 낮간지럽다고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당시의 무장독립투쟁의 상황을 보면 충분히 대첩이라 불릴만한 전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력을 온존하여 러시아 영내에서 다시 세력을 키워 반격을 해 나가 일본군을 몰아내고 만주에서 기반을 구축해 냈다면 그나마 가치가 있는 희생이기는 하겠죠.’라고 하셨는데... 애초에 독립군이 자유시에서 그 꼴 날줄 알고 이동한 것도 아니었고...(그 꼴이 날줄 알았으면 애초에도 안갔겠지만, 그리고 자신들을 지원해주던 한인들이 몰린 만주일대를 포기하고 자유시로 이동하기로 결정한 것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이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가치가 있는 희생이기는 하겠죠라는 것은 혹시 자유시로 이동하여 전력을 온존이 보존하지 못해 일본군을 몰아내거나 만주에서 기반을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치가 없는 희생이었다는 것인지요? 혹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정말 할 말이 없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독립운동 자체가 가치가 있는 것이지 그 성공 유무에 있어서 가치를 따질 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유무로 가치를 따진다면 독립을 위해 목숨을 던지신 수 많은 투사들을 욕하는 걸로 밖에 생각이 안드네요..
그리고 자유시 참변 이후로 무장독립투쟁은 종언을 고한다고 하셨는데 종언은 아니죠... 그 이후 다시 만주로 돌아와 참의부, 정의부, 신민부가 세워지고 통합과정을 통해 탄생한 한국독립당(한국독립군), 조선혁명당(조선혁명군) 등 물론 20년대보다야 여러 면에서 세력이 약해졌지만 그 대신 독자적, 또는 중국군과 연합군을 조식하여 지속적인 무장독립투쟁을 벌였는데 종언이라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