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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1 22: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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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이 성공하여 큰 집으로 이사오기 전까지, 나와 내 아내는 가난 그 자체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저 한끼 끼니를 때우느라 정신없이 살아오는 세월동안, 대학시절부터 만났던 내 아내는 너무나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거칠어진 손, 얼굴 곳곳에 드러난 고생주름, 가난의 무게만큼 어두운 눈밑그늘...
새 집으로 이사오던 날을 나는 기억한다. 드디어 가난의 그늘에서 벗어났노라. 내 가슴 속 승전보를 마음속으로 소리높여 외칠때
승리의 여신같이 환희로 미소짓던 내 아내의 얼굴을...
전공이 서양미술이었던 미술학도 내 아내는, 이사온지 얼마되지 않아 집안 곳곳을 서양 미술품으로 채워놓았다.
젊은날의 보상이라기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걸로나마 아내에게 위안이 되길 바랐다.
"여보 이 그림은 뭐야?"
나는 고흐의 그림 옆에 나란히 걸린 한 여인의 그림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내가 반색을 하며 말했다.
"당신, 이 그림이 맘에 들었나보네?"
"어...그렇지 미술배워서 그런가 당신 안목이 정말 괜찮다고 생각하던 중이었어"
아내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니 고맙네...내가 미술했던거...모네의 중국여인 이라는 그림이야"
"아....중국여인...."
나는 다시 한번 그림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내가 그 옆에서 내게 말하였다.
"집안도 괜찮아졌으니 다시 미술공부를 시작할까 싶어. 그림도 그리고."
나는 그런 아내의 손을 양손으로 움켜잡았다. 주름져서 거칠거칠한 손...대학시절때 잡았던 부드러웠던 아내의 손을 떠올리며 눈시울이 시큼했다.
"그래! 당신 나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했으니까 원하던 그림공부 마음대로해! 그래서 저 중국여인보다 더 멋진 그림을 그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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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학도였던 내 아내의 대학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