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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을 따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게시물ID : panic_10274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케니왕
추천 : 9
조회수 : 184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2/04/04 15:5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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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읽을 이 이야기는, 이를 기억하는 소수의 마음 속에서 지난 70년간 시들어가고 있던 이야기이다. 그 때 있었던 우리 열두명 중 나 혼자 남았고, 나의 죽음도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떨리는 손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내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함이며, 이 글을 누군가 발견한다면 나와 내 동지들에 대한 판단은 마지막까지 유보해주었으면 한다.


베를린의 외곽, 한 텐트에서 전우들과 앉아있던 것을 또렷이 기억한다. 우리는 단파 라디오 주변에 모여앉아 우리나라의 주적을 판결하는 재판을 듣고 있었다. 그들은 정신이상을 가장하고, 유죄를 인정하며, 그들이 직접 하거나 지시했던 모든 끔찍한 범죄를 낱낱이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가장 관심있었던 것은 무죄를 주장하는 자들이었다. "그저 명령을 따르고 있었을 뿐입니다"라고 말하는 자들 말이다.


미군의 도움을 받은 소련이 전쟁을 끝낸 상황에서, 나라면 뭐라고 말했을까 궁금했다. 전쟁 중에 내가 했던 행동에 대해서 뭐라고 말해야 할까? 정확히 뭐라고 말했을지 알것 같았다. 지금 그 텐트에 모여있던 열명을 제외한 소련군 모두에게 조롱을 받고 있는 저 자들과 똑같이 말했을 것이다. 눈치 챘겠지만, 우리 중 운 좋은 두 명은 이미 죽었었다.


그곳은 동독의 한 조용한 마을이었다. 1944년 12월 24일, 우리는 본대 대열을 기습하기 위해 매복하고 있는 적이 없는지 수색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반 병장이 선두에 섰고, 우리는 그를 따라가고 있었다. 비가 많이 오고 있어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날카로운 소리에 깜짝 놀라 바로 땅바닥에 엎드렸다. 연기 냄새가 났고, 4미터 전방의 흙바닥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총소리가 귓가를 때렸고 우리도 응사했다. 어디서 총알이 날아오는지 알 수 없어, 우리는 각자 감이 이끄는대로 총을 쏘았다. 적 사수를 맞출 수는 없겠지만, 쫓아보낼 수라도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동무들이 총을 재장전하는 동안 나는 엄호를 위해 사격을 멈추었다. 총소리가 잦아들었을 때, 나는 근처의 가옥들을 주의깊게 관찰했다. 길가 울타리 쪽에서 뭔가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눈에 띄었고, 나는 얼른 그 어두운 색 물체에 몇 발 사격했다. 최소 한 발은 명중한 것이 분명했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것은 땅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동무들이 재장전을 마쳤고, 나는 탄창을 새로운 것으로 바꿔 끼웠다.


한동안 가만히 적들의 응사를 기다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이반 병장은 쭈그려 앉은 자세로 빠르게 시체를 향해 걸어갔다. 심장 박동을 확인하고 우리에게 돌아왔다.


"잡았어." 그가 말했다. 그의 그런 눈빛은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깊은 슬픔과 회한 같은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캐물어도 그는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우리는 일어나서, 아까 적 사수가 나타났던 집으로 편하게 걸어갔다. 이반이 문을 두드렸다. 잠시 기다린 후, 이반이 바닥을 단단히 딛고 문을 발로 차기 위해 몸을 뒤로 젖히는 순간, 문을 뚫고 산탄총이 발사됐다. 이반은 산탄에 벌집이 된 채로 쓰러졌다. 우리는 문에 대응사격을 가하고, 개머리판으로 신속하게 문을 부수었다.


집 안에는 깨진 유리 투성이였고 벽은 총알 구멍이 숭숭 나있었다. 바닥에는 총을 네 발 맞은 젊은 여자의 시체가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이반을 죽인 산탄총이 들려있었다.


그 마을은 지긋지긋했다. 우리는 집을 뒤졌다. 식탁을 엎고 귀중품으로 주머니를 채웠다. 약탈이 끝난 후, 우리는 가스등을 바닥에 던지고 흘러나오는 액체에 성냥을 던졌다. 불타는 집을 뒤로하고 우리는 떠났다.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 것은 우리가 밖으로 나오자마자였다. 이미 집에 불이 붙어 다시 들어가기에는 늦은 상태였다. 그 엄마는 우리와 싸우기 전 아이를 숨겨놨고, 우리는 불을 붙이기 전 그걸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울부짖는 소리가 불이 타들어가는 소리에 묻혀 사라지는데는 몇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길 아래쪽의 한 건물에서 어떤 남자가 뛰쳐나와 우리를 지나쳤다. 독일어로 뭐라 소리치고 있었다. 통역관은 그를 보고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다가, 우리가 총을 들자 손을 들어 우리를 제지했다. 그 독일인은 우리를 밀쳐내고 불타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들어가기 전 현관에서 잠깐 멈칫했을 뿐이었다. 그는 다시 나오지 못했다.


불이 꺼져갈 즈음, 우리는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었다. 임무를 마저 수행하는 동안 우리는 침묵했다. 그곳으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이 길가에 나와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몇몇은 화가 나 있었고, 몇몇은 슬퍼하고 있었는데, 대부분은 초점없는 눈으로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악몽에 그 순간이 나타난다.


그 집 앞을 지나칠때 나는 멈추었다. 특별히 누구를 향하진 않았지만, 오줌을 싸러 가야겠다고 말했다. 아무도 그걸 믿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우리가 파괴한 껍데기만 남은 집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그 곳의 침실 바닥에서, 나무 기둥에 깔려 부서진 한 남자의 유골을 보았다. 그 남자는 일그러져있는 더 작은 유골을 안고 있었다. 마당의 울타리 옆에는 몸에 너무 큰 독일군 제복을 입은 어린 소년이 장난감 총을 들고 있었다.


우리는 그날 밤 모두 악몽을 꾸었다. 꿈 속의 남자는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우리에게 말했다. 너희를 하나 하나 잡으러 돌아오겠다고. 다음날, 우리 모두는 그 꿈을 웃어넘기고 임무에 몰두했다. 비명을 지르던 남자와 울부짖던 아이를 생각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는 한 명씩 죽어나갔다. 한 명은 다같이 건설 작업을 하고 있던 도중 추락사했다. 또 한 명은 뇌에 갑자기 악성 종양이 생겨 죽었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기에 항상 의심스러웠다.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우리 중 요셉과 나 둘만 남았을 때, 그가 나를 찾아왔다. 그가 우리 집 문을 두드렸을 때 나는 여기까지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마지막 순서일 줄은 미처 몰랐다.


"그놈이 오고 있어." 요셉이 말했다. "이제 내 차례야."


우연일 뿐이라며 그를 위로하고 싶었지만, 우리 둘 다 잘 알고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울었다. "미안하다." 그가 흐느꼈다. "난 몰랐어."


다음 날, 그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총으로 자살했다.


그 일이 일주일 전이었고, 이제 나의 차례다. 그놈이 오고 있다. 매일 밤 꿈 속에서 그는 내 눈을 쳐다보면서 웃는다. 매일 밤 그놈 얼굴의 웃음기가 점점 짙어져가고 있다. 어젯밤, 그가 말하기 시작했다. 조용히, 전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그저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정도로만.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듣고 싶지 않다. 오늘 밤은 잠을 잘 수가 없다.


최대한 잠들지 않도록 버티다가, 잠을 참을 수 없을 때 지붕 위로 올라가 모서리에 서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그놈이 무슨 말을 할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은 우리를 쐈고, 그 여자는 이반을 죽였다. 집에 아이가 있었는지 알 도리도 없었다. 우리는 그저 저항 세력을 제거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게 다였다! 명령을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명령을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출처 Only Following Orders
https://creepypasta.fandom.com/wiki/Only_Following_Or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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