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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월 일이일 일기
게시물ID : diet_820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허숭숭
추천 : 5
조회수 : 502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5/11/02 18:38:48
11월 1일, 할로윈 다음날은 모든 성인들의 날이다. 
이를 기념하여, 야외 미사겸 가을소풍을 가자고 하셨다. 

아침일찍 일어나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내 옆에 누군가를 깨우고서, 

'빨리 밥 올려두고와 주먹밥 만들어서 들고가자'

궁시렁 거리는 그를 뒤로하고, 짧은 스트레칭을 마치고 샤워하러 곧장 달려갔다. 
샤워를 마치고 부엌으로 가, 양송이 버섯과 양파를 다져 놓으려 꺼내 놓았다.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간장 참기름 드레싱이 남아 이를 주먹밥에 같이 넣어 먹어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내 뒤를 이어 샤워를 마치고 나온 그가 부엌으로와 내 미숙한 칼질을 대신 해준다. 

'이렇게 잡아야지 손이 안다치지, ' 

경쾌한 칼소리 뒤에는 뜨겁게 달군 팬에 기름향이 올라온다. 
기분 좋은 향기. 날부르는 목소리. 따뜻한 목덜미. 



허겁지겁 주먹밥을 예쁘게 말아, 약속한 역으로 떠난다. 

지하철을 타고, 지난밤에 본 영화의 대사를 따라 읊고 서로 히히덕 거리고 있다보니 시간이 금방 지났다. 
'아니 김구 선생이 나를?! 나를 의심해!?! '

사람이 여럿 모인자리를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학창시절에 친구들과 많이 어울리지 못한 편인지라, 사람이 많은 자리는 항상 두려웠다.
그는 이사람 저사람들과 서로 근황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있는데, 내겐 너무 다른 세상같아서 
순간 많이 두려웠었다. 

그러다 희망의 소리가 들려왔다 ! 
'젊은 사람들 이 차타고 먼저 올라가세요!' 

한 자매님의 차에 올라타 가만히 차창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을 풍경은 한국의 가을이 참 예쁜데, 눈으로도 다 못담을 만큼의 아름다운 색들이 한 가득인데
여긴 너무나 푸르다. 미쳐 나무들은 제옷을 갈아 입기도 전인지, 아니면 내 색을 버리고 다시금 돌아올 겨울을 준비하는 법을 모르는지. 
너무나 푸르기에 이질감도 느껴질 정도다. 

산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내눈에 익숙한 가을 풍경이 점차 나타난다. 

자연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작아지는가, 오만하리 만치 화려한 봄을 만난 나무들이 다시금 옷을 갈아입고 앙상한 가지 나무로 변한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만, 나무들이 흘리고 버렸던 나뭇잎에게 '또 봐'라는 인사는 하지 않는다.  같은 잎이 자라지 않는걸 알고 있는 걸까.
'잘가'라는 인사를 한다 서로에게. 

이 아름다운 풍경들에 감탄하다, 신부님이 사제복을 갖춰입고 미사를 준비한다. 
성체를 준비하고 작은 테이블위에 제대를 만들고 신에게 드릴 제사를 준비한다. 

아직은 익숙치 않은 기도문들 속에서 사람들이 옹기 종기 모여, 자기의 죄를 고한다. 
그의 영생을 믿음을 고백한다. 내 삶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미사 중간 중간, 내 옆에 서있는 그를 바라보며 한껏 웃는다. 

미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싸온 음식들을 같이 나눠 먹는다.

테이블 하나를 자리 잡고, 내가 예뻐라하는 애기옆에 꼭 붙어앉아, 내가 만든 주먹밥을 먹였다.
그 작은 입으로 오물오물 먹는걸 보자니 너무 좋았다. 

'이모, 나 시크릿쥬쥬 인형 있어요' 
'이모 아니야, 언니라고 해줘'
'이모 ~~ 나 이거 먹고싶어'
배가 부른지 옆에 앉던 아기가 자기 친구들과 뛰어 놀러갔다. 매정한 계집애.. 

오랜만에 먹는 집에서 만들어온 김밥에, 어디서 구했을까 의심마져드는 찹살밥에 
온갖 한국 음식들을 실컷 먹었다. 와인 몇 잔과, 프로세코 몇 잔. 

배가 불러 담배를 말려고 있는데 신부님이 말하신다.

'허숭숭, 담배 끊어, 안끊으면 세례 안해준다'
'이건 무슨 카노사의 굴욕도 아니고, 이렇게 권력 남욕해도 됩니까?'
'내가 짱이야'
못된 신부님이다 성경에도 담배 얘기는 없거늘. 

다들 한껏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어린 아이들이 내가 바라만 봐도 좋은 그사람에게 다 달라붙어서 떨어지질 않았다.
아이들한테서 질투를 느꼈다. 요망한것들 떨어져라.. 

무튼, 밥을 다 먹고 우리가 있던 성당은 성 프란체스코를 기념하는 커다란 수도원과 교회가 같이 있는 곳이다.
그의 업적을 말하고자 지어놓은 카펠레들을 따라 모든 교인들이 걷는다.

신부님과 나이가 깨나 있으신 자매님이 이런저런 설명을 더해준다, 
뒤에선 노오란 낙옆입이 떨어진다. 

길을 따라 산책을 하다. 

한 자매님이 묻는다. 
'둘이 뭐에요? 왜 그리 붙어있어요?'

얼굴이 붉어졌다. 오빠는 옆에서 웃기 바쁘다. 
내가 말을 꺼낸다.

'연애하는거 같아요, 저희' 

교리수업을 하자며, 신부님이 우리를 멀리서 부른다.
신에 대한 설명을 한다, 왜 우리가 그와 비슷한 길을 걸으며 살아야 하는지. 
그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신부님 차를 얻어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신부님의 사제관과 난 가까이 살아서, 사제관에 내려서 오빠 손을 잡고 항상 걷던 길을 걷는다.
새롭다, 재밌다, 즐겁다, 행복하다. 

'아니, 김구선생이 나를 의심해?' 

어제 본 영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멍청한 이가 계속해 날 웃긴다. 

'나 이제 배고픈거 같아'
'가는길에 장봐서 들어가자' 

스테이크용 소고기와 닭모래집과 맥주 두 캔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비 와인을 집어 들고
집으로 향하고 있다.

양식은 그가 주로 맡아서 하고, 한식은 내가 한다. 

스테이크 레스팅을 기다리며 내가 음식을 한다. 마늘과 양파향이 물씬 나는 닭똥집볶음과
레드와인과 다크초콜렛으로 만들어진 소스를 뿌린 스테이크는 우리의 저녁이다. 

즐겁게 저녁을 먹고선 그는 집으로 향했다.

'내일 아침에 일찍 올게,'

그날 밤은 오랜만에 홀로 침대를 쓰는지라 너무나 외로웠다.

아침에 일찍 눈을 뜨고, 언제나 그랬듯이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다. 
운동할때 입는 파란색 스포츠 브라로 옷을 갈아입고
요가 매트를 깔고, 보라색 운동화를 고쳐 신는다.

'준비- 시작-'
20초동안 몸을 혹사시킨다, 10초간의 휴식이 주어진다.
'준비- 시작-'
20초 동안 몸을 혹사시킨다, 10초간의 달콤한 휴식이 주어진다.

이렇게 전신, 복부, 하체 3세트씩을 하고서
어제 산길을 걸은지라 뻐근한 다리 스트레칭 영상을 틀어 놓는다.

'하나- 숨을 내쉬고- 
그런데 여러분 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 여자는 중간중간에 말을 많이해서 힘들다. 

15분이 끝나고, 내 파란 탄산수병 덤벨로 팔운동을 한다. 
늘 하고싶던 푸쉬업도 정자세를 위해 항상 연습한다. 
15*3 세트 무리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라 세트의 갯수를 줄여 운동한다.

얼굴이 한껏 상기되어있다. 

샤워하기 전에 커피를 올리고, 오늘은 무얼 해먹을까? 그는 언제 올까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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