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에서 적응하지 못한 내게 그 동아리실은 도피이자 안식이었으며
그 작은 곳에 스스로 갇혀 외부와 단절된 채 끼리끼리 뭉쳐있음에
소소한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 끼리끼리란 저와 마찬가지로 항상 찾아와 머물고 가는
'비슷한' 느낌의 친구들, 말하 지 않아도 느꼈던 감정입니다.) 무늬만 바둑 동아리,
그 속은 그저 시간이 가길 기다리는 곳, 먼지쌓인 바둑판은 사람 손길이 잊혀진지 오래이며
허름한 이불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기만 수십 번, 더 이상 찾아오는 이 없고 떠나가는 이 없어
냄새나는 남자끼리의 '아지트'는 완성되어 갔습니다. 달아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한 여자가 가입했습니다.
칙칙한 안경, 어색한 화장 사이로 드러나는 그 피부, 허름한 옷... 아... 다르지만 익숙한 느낌..
전 그 첫인상에서 이루 말하기 힘든 연민의 정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인사를 건넬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여자라고 낯설게 느껴져서 그랬던 걸까요...? 다른 사람이 말을 걸 때
전 만화책에 열중하는 척 했습니다. 낯선 여자 앞에서 편히 누워있기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가입해볼까?'하는 생각에 잠시 들어왔다가 그 안을 보고는 이내 가버리는 사람은 있었어도
가입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여자는 가입했습니다. 언제나 찾아오더군요.
언제나 앉는 그 자리 그대로.. 그렇게 몇 일이 흘러갔습니다. 이내 포기하고 말았지만
'말을 걸어볼까'하는 생각에 훔쳐보기만 수십 번, 하지만 전 절대로 헛된
'망상'따위를 품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 상황이 낯설었을 뿐.. 그리고 아직도 생생한
그 날의 저녁이었습니다. 다른 몇 명이 시간 때우기로 대화를 나누다 서면 번화가에
가자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이 방황의 무리를 결성한 그 여자와 남자 2명의 3인조,
이 떄까지는 각자의 시간을 가지다 집에 가는 게 하루였는데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확실히 여자가 있다는 건 분위기를 변화시킨다고 봐야 할까요?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나도 가고 싶다고 번쩍 손을 들긴 어려웠습니다. 전 그 공간안에서도
마음을 나눌 상대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고맙게도 그 2명 중 한명이
저에게 함께 가자고 하였습니다. 기뻤습니다. 근데 저 말고는 더 가는 사람이 없군요.
4명이 함께 걸어갑니다. 함께 버스에 탑니다. 야경을 바라봅니다. 야경만 바라봅니다.
지하철을 탑니다. 아아, 또 창문만 바라봅니다. 뭐라든 말을 해야 할 텐데 분위기가 어색하군요.
너무나도 어색합니다. "이번역은 서면역, 서면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도착했습니다. 경직된 걸음과 눈빛, 우리들은 걷습니다. 길을 잘 아는 친구의
인도를 받아 오락실에 도착합니다. 태고의 달인을 함께 해봅니다. 그러나,
우린 제대로 즐기지 못합니다. 노는 것 하나 제대로 못합니다.
교대하는 방식으로 2명은 막대기를 잡고 1명은 어색하게 서서 구경을 합니다.
근데 서로에겐 가식적 웃음이 잠깐, 이내 침묵이 돕니다.
싫증, 이 새로운 시도에 대한 싫증, 이것이 정녕 함께 노는 건가..?
저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닌가 봅니다. 나중에는 각자 할 게임을 합니다.
함께 고기집을 가 보자는 대화도 돌았지만 이내 흩어집니다.
근데 이 여자, 나랑 가는 방향이 같군요. 그 땐 왠지 자연스럽게 말을 걸 수 있었습니다.
그 때야 인사를 해봅니다. 하하... 해산할때야 인사라니... 제 자신도 우습습니다.
그 여자도 인사를 하며 대화가 시작됩니다. 왠지 용기가 납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느끼는 그 '감정'은 없었지만 친해지고 싶었습니다.
이대로 지하철역으로 함께 향한다면 어색한 침묵만이 돌 거 같았습니다.
그러다 마음에 있던 소리가 불쑥 튀어나왔습니다. "까페갈래?"
그 여자가 선뜻 수락합니다. "그럴까?" 이런 용기는 처음입니다. (...)
전 저의 외모에 상처받아 살아왔기에 똑같은 고통을 안겨주는 이 발언이 싫지만,
노골적으로 말하면 아마 추녀였기에 추남은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거 아닐까요?
전 고작 까페에 같이 가는 거 가지고 성욕없는 사랑에 대한 상상에 빠졌습니다.(그것은 꽤나 괜찮은 듯 했습니다.)
근데 막상 가게 되니 왜 또 불안하게 되는 걸까요..? 까페.. 외향적 사람들의 모임...그런 편견떄문에...?
처음엔 별 생각없이 같이 걸었는데 커플이 된 거 같습니다.. 골목길 밤 거리에 내 모습이
희미하게 가려져서 더 용기가 났던 걸까,부양된 마음에 말을 이것저것 했던 거 같은데,
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는 도저히 기억이 안 납니다. 그 여자가 제게 무슨 말을 했던 거 같은데...
여자 표정이 좋은거였는지, 나쁜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문득 우리의 두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우리 둘은 '비슷'합니다. 그 둘은 같이 걸어갑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집니다. '끼리끼리 사귄다.' 누구도 제게 그 말을 하지 않았지만
마음 속 소리가 제 귀를 스쳤습니다... 골목 쪽에서 번화가 쪽으로 나옵니다.
사귀는 걸로 오해받기 싫어 먼저 앞서 걸어갑니다. (이 생각은 너무나도 이기적인)
근데 그 여자가 소리를 지르며 쓰러졌어요, 길에서 실수로 크게 넘어졌어요...
어떤 하의를 입었는지는 인제 기억에서 희마하나 분명 다리를 다쳤습니다.
그 여자의 안경도 망가졌습니다. 그 여자는 처음에 땅만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절 쳐다봅니다.
도와줘야 했습니다. 도와줘야 했다구요.. 근데 사람들이 쳐다봅니다.
그 떄의 전 안 그래도 시선을 상상하며 걸었는데, 정말 시선이 몰리자 공황장애가 온 것만
같았습니다. 식은땀이 흘렀고 눈 앞은 하얘졌습니다. 저는 쓰레기였습니다.
모르는 사람인 척 가버렸습니다.. 저는 쓰레기입니다. 전 달아났습니다.
아, 그 날 이후로 그 동아리실 안에는 그 여자가 그 곳에 항상 앉아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전 그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 후론 다시 그 곳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떠났습니다. 추남과 추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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