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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인수인계할 때 이렇게 힘들게 배워야 하나요?
게시물ID : menbung_320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큼털
추천 : 0
조회수 : 651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5/13 20:3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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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절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디테일한 부분들은 바꿔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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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한숨 나오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입사하고 처음 일주일은 제가 천사같은 선임을 만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찔끔찔끔 컴퓨터 화면만 보여주고, 인사시키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시간을 줬습니다.
덕분에 일주일에 책 세 권을 거뜬히 읽었죠.
그리고 그 다음 일주일은 옆에서 자신이 하는 일을 지켜만 보라고 하더군요.
제가 필기를 하려고 하니까, 필기할 필요 없다고. 다 알게 된다면서 그냥 보여주기만 했습니다.
생각보다 다른 부서와 연계해서 하는 작업이 많고, 전산 프로그램도 복잡하더군요.
하지만 인수인계 기간이 거의 두 달에 육박했기 때문에 서서히 가르쳐주려나보다,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게 문제였습니다.



그 다음주에 갑자기 일을 시키기 시작하더군요.
당황스러웠습니다. 머릿속에 제대로 일에 대한 체계가 안 잡혀 있는 상태에서 하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부딪치면서 배우는 거지, 하는 생각으로 하는데 옆에서 엄청 다그치기 시작하더군요.
그새 까먹었냐는둥, 이 일이 그렇게 어려운 거냐는 둥.
네. 솔직히 까먹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일들을 필기도 없이 옆에서 선임이 초고속으로 처리하는 걸 한 번씩 훑어본 게 전부였으니까요.
제가 한 번 보고 다 기억할 정도로 비상한 머리는 아닙니다.

어이가 없었지만 일이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선임 입장에서는 답답해 보이는 게 당연하겠다, 하는 마음으로 웃어 넘겼습니다.
그리고는 매뉴얼을 달라고 했습니다. 지금 선임의 전 선임이 만들어 놓은 매뉴얼이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선임은 굳이 왜 그런 게 필요하냐고 어이없어 했지만 저처럼 보통의 머리는 필요했습니다.
매뉴얼을 인쇄하고 보니 A4용지로 10장 가까이 나오더군요.
그것도 전체 일하는 분량의 반 정도 밖에 커버 못 하는 매뉴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리고 열심히 거기에다 선임이 해준 말들을 필기하며 보완했습니다.
겨우 일에 대한 체계를 배우고나니, 선임이 바로 다음주부터는 아예 제게 일을 전부 맡기고는 본인은 처음 제가 꿀 빨던 그 때처럼 자체 꿀을 빨기 시작하더군요.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라면서요.
차라리 그렇게 혼자 일을 처리하니, 속도는 느려도 마음은 편했습니다. 옆에서 쿠사리 먹이는 거 정말 스트레스였거든요.
처음에는 '느려도 꼼꼼히 해라'라고 하더니 제가 기억을 더듬고, 매뉴얼을 훑어보기 시작하면 한숨을 푹푹 쉬고,
'내가 저번에 말했잖아.' 이러면서 눈치를 엄청 줬으니까요.

하지만 그 선임, 메신저를 통해 원격 쿠사리를 먹이더라구요.
제가 뭘 물어보면 엄청 귀찮아하면서 '난 이미 다 알려줬으니까 알아서 판단해라.'라고 하다가
제가 전화응대를 하거나 하면 지나가면서 다 듣고는 메신저로 일일이 말투며 뭐며 걸고 넘어지더군요. 
그리고는 옆 동료들과 합세해서 절 비웃기 시작하는데.. 스트레스로 체할 정도였습니다.


이제 일도 거의 익숙해지고, 선임이 떠날 날도 얼마 안 남았습니다.
며칠 전 선임이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업무확인을 하고 싶은 게 생겼습니다.
사실 그 업무확인이라는 게, 선임이 저질러놓은 몇몇 실수들에 대한 뒷수습이었습니다.
제가 거기에 대해 질문하니까 또 버럭 화를 내면서 '나는 완벽하게 알려줬다. 나는 그런 인수인계도 없이 내가 알아서 다 했다'라고 하더군요.
솔직히 인정합니다. 정말 힘들게 일을 한 것 같더군요.
일이 익숙해지고 나니 이 사람이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그리고 겉핥기 식으로 일을 했는지 눈에 훤히 보이기 시작했으니까요.
왜 그동안 제가 질문하는 것에 대해 마음에 안 들어 했는지도 알겠더라구요. 본인이 제대로 아는 게 없으니까 해줄 말이 없었던 겁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선임과 함께 절 비웃던 동료 중에 한 사람이 알려준 건데, 그 선임이 제게 '한 마디도' 안 알려준 업무가 산더미처럼 절 기다리고 있단 사실을요.
이 선임은 지금 꿀보직으로 전직하게 됐다며 희희낙락하고 있는데, 제겐 가시밭길이 펼쳐져 있네요...허허...


이게 제 첫 사회생활인데, 원래 사회생활 이렇게 하는 건가요?
제가 너무 학교에 익숙해져서 냉혹한 현실을 이제야 깨닫고 있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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