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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학] 18번째 계단의 감촉
게시물ID : panic_8863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달의뒷면
추천 : 24
조회수 : 173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6/18 23:07:28
18번째 계단의 감촉

몇 년 전부터 계단 오르는 게 힘들다.
대체적으로 10번째 계단 쯤에서 오른쪽 다리가 걸린다.
왼쪽은 아니고 무조건 오른쪽 다리.
내려갈 땐 또 괜찮은데, 올라갈 때만.
다음 계단에서 오른 쪽 다리를 올리기 직전에 갑자기 다리가 당겨져서 굳어버려서
그 순간 삐걱하고 밸런스가 무너져서 앞으로 넘어진다.
그럴 때는 난간을 잡거나 2,3계단 위로 억지로 올라간다.
그래서 계단을 올라갈 때는 한 계단 씩 확인하며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
빨리 걸어갈 수 없어서 서두를 때는 발 아래를 확인하며 한 계단을 건너뛰어 올라간다.
아마 원인은 내 등이 굽은데다가 발목이 약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발바닥을 땅에 붙인 채로 쭈그려앉기 안 됨)
그런 신체적인 이유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이 증상은 별 것 아니지만 좀 힘들었다.
넘어진 적은 없지만, 뛸 때는 좀 귀찮으니까. ㅋ

그래서 며칠 전 저녁, 직장 근처 육교를 지나갈 때
계단 올라가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마침 지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길래 넘어져도 내가 방해될 것 같지도 않고.
발 아래는 보지 않고 계단 꼭대기를 보면서
일반 사람들이 걷는 정도의 빠르기로 발을 옮겨 계단을 올라갔다.
이렇게 하다보면 10번째 계단에서 넘어지는 건 당연한데 그땐 좀 달랐다.
대략 15번째 계단까지 아무 일 없이 올라갔다.
이 육교는 모두 33계단이 있다.
이대로가면 쭉 올라갈 수 있겠다며 두근거리며 올라가던 그 순간
대략 18 계단 정도 올라간 쯤에서 갑자기 물컹하고 이상한 감촉이 느껴졌다.
깜짝 놀라서 발 아래를 봤다.
뭔가 떨어진 걸 밟은 건 아닌가, 설마 개똥...
하지만 별다를 것 없는 콘크리트 계단만 있을 뿐이었다.
그뿐이었다. 그 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
?????
이상했지만 이미 발을 뗐기때문에 그대로 왼발이 19단 위로 올라갔다.
물컹
역시 이상한 감촉이 느껴졌다.
18번째 계단과 다른 점은, 조금 튀어 올라온 점.
그 뭐냐, 찌그러트린 알루미늄 캔을 밟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오른쪽 끝에서 왼쪽 끝까지 발로 확인해 봤더니
계단이 불균일해서 여기저기 마디가 있었다.
전에 코타츠에서 자던 오빠 손을 나도 모르게 밟은 적이 있었는데 ㅋㅋㅋㅋ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과 감촉이 비슷했던 것 같다.
손이었던 걸까? 오빠 손보다 좀 부드럽고 물컹물컹했는데... 썩은 건가?
하지만 겉보기에는 일반적인 계단이다.
발의 감촉과 시야에 보이는 모습이 너무 달라서 혼란스러웠다.
손으로 만져서 확인해보려고 일단 17번째 계단으로 다시 내려갔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돌돌 만 머리에 하이힐을 신은 화려한 차림의 아가씨가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올라왔다.

아무 것도 없는 계단 중간에서 어물쩡거리는 모습은 누가 봐도 이상하잖아.
갑자기 부끄러워서 그냥 위에 올라가자 생각하며 다시 18번째 계단에 발을 올렸다.
그랬더니 갑자기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에서 줄이 떨어져서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친구가 선물로 준 한정판 키티 휴대폰 줄이 아래에서 세번째 계단까지 떨어졌다.
황급히 가지러 내려갔다.
중간에 그 여자도 지나쳐 올라갔다.
나의 존재는 무시하고 그냥 올라갔다.
그래서 키티 님을 구출했는데 끈이 끊어져 있었다.
계속 사용했으니까 어쩔 수 없지. 고칠 수 있을까? 하고 쳐다보는데
여자 발소리가 안 들린다는 걸 꺠달았다.
조금 전까지만해도 하이힐 굽 소리가 엄청나게 울렸는데.
돌아보니 육교 위에 여자 모습이 온데간데 없었다.
그 육교는 계단이 좌우양옆 네 개 있는 게 아니라,
도로 양쪽에 각각 하나씩 밖에 없는 육교이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계단을 올라가서 건너편으로 넘어가, 계단을 내려갔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위에서 쭈그리고 있거나 넘어진 걸지도 모르겠다.
두근거리며 계단 위로 올라갔다.
서둘러 올라가다보니 평소보다 더 화려하게 넘어졌지만 난간을 잡고 오라갔다.
18번째 계단에 발을 디뎠다.
이번엔 이상한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19번째 계단도 마찬가지였다.
손으로도 만져봤지만 극히 평범한 단단한 콘크리트 감촉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그 여자는 위에 올라가도 없었다. 그 어디에도 없었다.
분명 내 옆을 지나쳐서 계단을 올라갔는데.
지나치면서 강렬한 향수 냄새가 난 것도 기억이 난다. 분명 잘못 본 게 아니다.
하지만 하이힐 소리는... 내 기억에 의하면 20번 정도 들렸다가 그쳤다.
30번이나 들리지 않았다.
그 여자는 어딜 올라간 걸까?
그리고 그 18번째 계단의 감촉은 무엇이었을까?

그대로 이상한 감촉이 드는 18번째 계단보다 더 올라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게 생각해보니 무서웠다.
계단에서 넘어지는 증상은 어쩌면 누군가가 일부러 넘어지게 한 걸 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상한 곳을 밟아서지 않도록.
올바른 곳에 발을 밟을 수 있도록.
그러고보니 나는 태어날 때 거꾸로 들어 있어서 오른쪽 다리부터 태어났다고 한다.(나중엔 제왕절개했지만)
휴대폰 줄을 선물한 친구에게는 감사한다.
다음 주 다시 친구 무덤에 인사하러 갈 예정이다. 후하게 꽃을 두고 올 겁니다.
또 이상한 감촉이 느껴지면 어쩌지 하고 생각하다가 최근에는 계단 공포증이 생겼다.
게다가 최근에는 왼쪽 다리까지 넘어지기 시작했다...

계단을 올라갈 때는 조심해서 확인하며 올라가고 있다.
정말 여긴 올라가도 괜찮을까 하고.

출처 http://occugaku.com/archives/29245126.html#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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