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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살이 찢기고 피가 튀고... 쌓여가는 사체
게시물ID : menbung_417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노을빛강물
추천 : 4
조회수 : 73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1/04 11: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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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펌글

닭과 오리들이 3천만마리가 도살된 지금, 동물들을 직접 살처분하는 공무원들의 대한 이야기입니다.

생생하고 끔찍한 이야기에 예전에 봤던 기사인데도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피가 튀고 살이 찢기고 동물들 입장에선 그야말로 지옥현장인데

전조증상, 신고에도 불구하고 넋놓고 있다가 한달뒤에나 회의 열고

정부의 늑장대응과 무감각한 방역의식때문에

죄없는 생명들이 스러져가는게 그저 미안하고 죄스러울 뿐입니다.

 

 

살이 찢기고 피가 튀고... 쌓여가는 사체

2011년 가축 살처분 현장,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20111월 겨울 찬바람이 볼을 할퀴는 이른 아침, 음성군 삼성면의 한 양돈농가에 갈아입을 옷이 가방과 함께 투입됐다. 팬티부터 양말까지 모두 챙겨갔다. 구제역 바이러스를 다른 지역으로 옮기지 않기 위해 살처분 작업이 끝나면 지정된 목욕탕에서 몸을 씻고 가져간 옷으로 갈아입었다. 입었던 옷은 소각됐다.

 

농가에 도착하자 축사 앞으로는 돼지의 이탈을 막으려는 울타리가 쳐져 있다. 울타리가 끝나는 지점부터 30m 정도 떨어진 매몰지까지 돼지가 지나갈 길 양쪽에는 흙으로 두둑이 높게 쌓아 탈출을 막았다. 우리는 이 길을 '저승길'이라 불렀다.

 

저승길 끝자락에는 돼지 10마리 정도가 들어갈 구덩이 파여져 있다. 돼지들이 묻힐 매몰지는 농구장 3배 넓이에 3m 깊이로 준비됐고, 사방으로 부직포와 비닐 등이 깔려 침출수 유출에 대비했다.

 

이 길을 따라 육중한 중장비 4대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대기 중이다. 모닥불 주위로 모인 중장비 기사들은 아침부터 쓴 소주를 입안으로 털어 넣고 있다. "아침부터 무슨 술이냐"고 했더니 "안 먹고는 작업을 할 수가 없다"는 답이 돌아 왔다. 하루에 평균 소주 3~5병을 먹는다고 했다. 험한 작업이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동료 공무원 30명은 살처분 담당자로부터 작업 요령과 주의사항을 전해 듣고 돼지 3600여 마리가 있는 현장으로 던져졌다. 우린 축사 안에서 돼지를 몰고 나오고, 저승길로 인도하는 등 2개 팀으로 나눠 작업을 시작했다. 손에는 1.5m 길이의 쇠파이프와 햄머 등이 쥐어졌다.

 

가축들의 눈에 비친 나는 저승사자였을 것

 

저승길로 돼지를 인도하는 팀에 속한 나는 축사에서 쏟아져 나오는 돼지를 몰아가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온 돼지들은 열심히 땅을 파며 먹을 것을 찾았고 일부는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어 버텼다. 쇠파이프로 몸을 툭툭 건드렸지만 요지부동이다.

 

돼지를 간신히 저승길 입구까지 몰고 갔다. 하지만 낯선 환경 때문인지 아니면 죽음을 예감한 건지 역주행하는 놈에, 높게 쌓아진 두둑을 뛰어 오르는 놈에, 꼼짝도 하지 않고 서서 꽥꽥 소리 지르는 놈에 야단법석이다. 초보일꾼들의 모습이 못마땅했는지 한 중장비 기사가 포클레인의 날카로운 삽날로 가만히 서있는 돼지의 허리를 내리 찍었다. '우두둑' 척추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허공을 가르고 들려왔다.

 

고막을 찢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그 돼지는 옆구리가 터져 내장이 쏟아졌다. 다음 광경은 더 끔찍했다. 붉은 피와 함께 쏟아진 내장을 동료 돼지들이 뜯어 먹었다. 사료가 남아 있어야 사료 값을 보상해 준다는 정부 정책 때문에 돼지가 3~4일 동안 굶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이 사료도 결국 폐기처분할건데 먹이지..." 잡식성이고 먹성 좋은 돼지가 긴 시간을 굶었으니 뵈는 게 없었던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돼지들을 몰고 가자 저승길의 종착역인 매몰지 입구 구덩이에 도착했다. 이곳은 참혹했다. 구덩이에 돼지가 몰아넣어지자 아침에 소주를 연신 들이키던 중장비 기사가 포클레인에 달린 육중한 쇠바가지를 높게 치켜들었다가 돼지를 빻는 동작을 반복했다. 살이 찢기고 피가 튀기 시작했다. 요란한 돼지의 피울음은 숨을 멎게 했고, 피비린내는 진동했다.

 

어디에선가 덩치가 산만한 모돈(새끼를 전문적으로 낳는 암퇘지)이 실려왔다. 살처분을 위해 불룩한 배를 중장비가 누르자 새끼돼지 6마리가 튕기듯이 빠져 나왔다. 이 광경을 목격한 나와 동료들은 기겁을 했다. 결국 이 새끼 돼지들도 살처분의 칼날을 비껴가지 못했다.

 

이렇게 죽임을 당한 돼지는 매몰지로 던져졌다. 그 안에는 돼지 사체들이 쌓여갔고 일부 숨이 붙어 있는 녀석들은 마지막 호흡을 몰아쉬고 있다. 이런 광경을 목격한 신입 공무원은 구역질을 하기도 하고 쇠파이프를 어깨에 걸치고 넋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기도 했다.

 

학살당한 가축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이렇게 오전 작업이 끝나고 점심시간, 땅바닥에 판자나 짚을 깔고 둘러앉았다. 메뉴를 확인하는 순간 동료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공교롭게도 김치찌개였다. "왜 하필 돼지고기냐"는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오후는 오전에 비해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학살) 집행 속도가 빨랐다. 돼지를 툭툭 건드리던 쇠파이프에는 힘이 실렸고 녀석들의 등이며 엉덩이에는 길다란 멍 자국이 생겨났다. 그렇게 나와 동료들은 "이 녀석들이 빨리 죽어야 일이 끝난다"는 생각에 난폭하다 못해 점점 잔인해져 갔다. 우리는 그렇게 아우슈비츠의 학살자로 변해갔다. 이날 살처분은 땅거미가 기어 다닐 때쯤이 돼서야 끝이 났다.

 

돼지에 비해 소의 살처분은 수월했다. 소에게 주사액이 투입되면 1분 정도 지나 심장이 멎었고 매몰지로 옮겨져 처리했다. 하지만 소의 커다란 눈망울을 바라보는 건 고통이었다. 수의사가 주사액을 투입할 때 소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소의 고삐를 잡고 있었는데 커다란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소의 눈엔 내가 저승사자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생명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돼지나 소라고해서 다르지 않다. 다른 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나 배려, 윤리의식은 그 현장에 없었다. 동료 공무원들은 살아 있는 생명을 죽였다는 충격 때문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뚜렷한 기억으로 남은 걸 보면 트라우마는 현재 진행형일지도 모른다.

 

구제역이 빠른 속도로 번지는 상황에서 유쾌하지 않은 기억을 풀어놨다. 마음속에 담고 있던 응어리를 꺼내 놓은 듯한 기분이다. 굳이 4년 전 기억을 꺼내 놓은 건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 자리를 빌려 학살당한 가축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64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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