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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선착순
게시물ID : readers_342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콜이
추천 : 6
조회수 : 538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9/10/29 15:2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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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마지막 피난 캡슐에 들어갈 자리가 하나 생겼다.
정원은 성인 1. 올라 타 있는 것은 아이 셋. 정원 초과로 붉은 램프 불빛이 들어와있다.

 

아이들은 불안한 얼굴로 저마다의 부모들을 올려다보고 있다.
부모들은 아이를 캡슐에 밀어넣은 채 동조와 적대가 어지러이 뒤섞인 표정으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여기까지 함께 왔다. 사지를 넘어, 아이를 위해서. 같은 목적으로 같은 고난을 해쳐온 서로를 배척하고 싶지 않고
배척 당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먼저 선수를 쳐서 한 사람을 탈락시키게끔 여론을 몰아야 한다는 깨달음이 신경을 죄어 왔다.

 

캡슐은 성인용. 아이는 셋. 하나를 탈락시키고 둘이 된다면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몰라.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국 첫번째 아이, 유진의 부모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아이는 반드시 살아야 해요."

 

다른 두 아이의 부모들이 동조보다 적대심이 강해진 시선으로 유진의 부모를 바라본다. 아내 쪽이 계속해서 말했다.

 

"브릿지에서 저희 남편이 희생했던 것, 잊지 않으셨겠죠? 그리고 피난 오던 와중에도 다른 아이들 보단 우리 유진이가 가장 적극성있게 행동했다는 사실도 부정하실 수 없을 거에요. 이제 캡슐이 떠나고나면 이 아이들은 부모없이 살게 될 지도 몰라요. 자리가 한 자리 뿐이라면 이렇게까지 말하지 않았겠지만, 두 자리라면 반드시 우리 아이가 살아야해요. 당신들의 아이가 어떤 아이와 함께 피난했을 때 더 생존률이 높을지 생각해 보세요."

 

아내 쪽이 한 말은 굉장히 논리적이고 타당했다. 첫번째 아이, 유진은 머리도 좋고 순발력도 있는 아이였다. 다른 두 아이의 부모는 동시에 생각했다. 이제부터 내 아이가 보호자 없이 살아남아야 한다면, 유진이라는 저 영특한 아이보다 좋은 동료는 없을 터였다.

 

다른 두 아이의 부모들이 납득했음을 시선을 살펴 확인 한 유진의 부모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동시에 자리가 한 자리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 두 번째 아이의 부모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유진이라고? 그래. 당신네들의 아이가 살아야한다는 주장에는 납득했어. 여기서 꼭 살아야 하는 아이가 있다면, 우리 아이가 아닌게 정말 아니꼽지만, 그게 당신네들의 유진이라는 점은 인정하겠어. 하지만 다른 남은 한 칸에 저 애가 타는 것만은 절대로 용납 못해."

 

두 번째 아이의 부모는 세 번째 아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유진이가 유능하기 때문에 살아남아야 한다면, 저 무력하고 부모에게 의존 할 줄 밖에 모르는 아이는 절대로 캡슐에 타서는 안 돼. 어딜 가도 자력으로는 생존하지 못할 게 뻔할 뿐더러, 같은 처지의 주변사람들 마저 방해하고 말 거야."

 

두 번째 아이네 부모의 말에 세 번째 아이의 부모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적대감을 띄었고, 유진의 부모는 생각에 빠진 기색이었다. 다른 둘을 모두 설득해야 했던 첫번째 유진의 부모와는 달리 두 번째 아이의 부모는 대놓고 유진의 부모만을 포섭하여 자기 아이를 살리겠단 속셈이었다. 그것도 따지고 보면 자신들의 아이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세 번째 아이의 좀 더 부모에게 살갑고 애정있게 군다는 점을 '의존'이라는 말로 교묘히 비틀어 놓았을 뿐으로, 마치 세 번째 아이에게 대단히 커다란 결점이 있다는 듯이 굴었다.

 

그리고 그 태도는 유진의 부모에게 꽤나 유의미한 영향을 끼쳤다. 그들은 자신의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덜 방해되는 아이를 이 자리에서 골라내야했고, 두 번째 부모의 말대로 당장에 비슷한 두 아이라면 곧 부모가 없게 되었을 때 덜 힘들어 할 아이 쪽이 나아보였다.

 

그런 생각이 표정에 서서히 떠오르자 유진네 부모의 시선을 불안하게 살피던 다른 두 부모의 희비가 엇갈렸다. 사실상 다수결이 되어버린 캡슐의 티켓 두 장은 셋 중 둘의 의견이 모인 순간 누구의 손에 떨어질지 모두 결정 나버린 셈이었다. 세 번째 부모는 이렇다 할 말 한마디 못 해보고 아이와 함께 죽게 생긴 채였다.

 

그때였다. 세 번째 아이, 하프가 부모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엄마, 아빠."

 

신경질적인 어른들의 다툼 속에서 그 여린 떨림을 지닌 아이의 목소리는 강하게 주의를 끌어당기는 능력이 있었다. 모두의 소리가 멎고,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하프가 말했다.

 

"나는 엄마 아빠랑 같이 있고 싶어요."

 

 

###

 

 

모든 결정이 끝난 후 피난용 캡슐을 수거한 선단이 떠나고 지상에는 세 부모와 한 아이만 남았다.

 

원한은 있었다. 증오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하프의 부모에게 그것은 그리 큰 감정이 아니었다. 하프는 부모와 함께인 것을 행복해했다. 그 하나의 감정이 세 사람을 강력하게 휘잡았다.

 

지상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인류100퍼센트의 절멸로 예고된 전자기를 품은 새까만 폭풍이 지표면을 빈틈없이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희생적인 성향이었던 유진의 부모는 유진을 위하던 그 마음을 거리낌없이 하프에게 쏟았다. 이제 세상에 하프는 유일한 아이였고, 재난 속에서 두 번째 아이의 부모조차 절체절명의 순간 자신들보다는 하프를 위해 행동했다.

 

그리고 한 해가 훌쩍 넘는 시간이 지나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전자기 폭풍이 멎고, 인간이 싱그럽다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바람이 처음 다시 불던 날, 세 부모와 한 아이는 자신들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저들 스스로도 믿기 힘든 기분이었다.

 

가장 먼저 실감을 찾은 것은 두 번째의 부모였다.

 

"살아남았어."

 

특히 아내 쪽이 활짝 웃으며 덧붙였다.

 

"우리가 살아 남았다고!"

 

그녀의 남편이 마찬가지로 기뻐하고, 유진의 부모도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상황을 볼 때까지 안쪽에 숨어있기로 했던 하프가 뛰어나와 자신의 부모에게 안겨들며 물었다.

 

"우리 이제 살은 거에요?"

 

"그래." 하프의 부모가 대답했다. "우리 모두 살아 남은 거란다."

 

하프가 웃고,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이는 가족의 모습이 이루어졌다. 그 광경에 가장 먼저 미소를 터트렸던 두 번째 아이의 부모가 굳어있다. 여전히 웃는 낯이었지만, 표정이 멈춰있었다. 두 번째의 부모는 생각했다.

 

'이럴 거였으면..'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 그 생각을 털어냈다. 아무도 살아 남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었다.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었지 않은가. 틀린 선택이 아니었고, 당시엔 어쩔 수도 없이 간절했던 것이었다. 그 때문에 자신들의 아이는 캡슐에 태웠다. 이 자리에 없는 것을 다행이라 여겨야 할 것이다. 두 번째의 부모는 하프네 가족을 바라보면서 필사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날 밤엔 근 500일 만에 처음으로 탁 트인 밤 하늘 아래에서 식사를 했다. 보존식 통조림 캔은 투박하게 닳아 있었지만 별은 눈이 부셨다. 살면서 은하수를 처음 보는 기분이었다. 유진의 부모는 기뻐했고 하프의 가족은 행복해 보였다. 두 번째의 부모는 같은 생각을 곱씹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이럴 거였으면..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렇게 유달리 깊은 밤이 지나고 낮이 찾아왔을 때, 결국 두 번째 부모는 폭발하고 말았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우리 아이도 여기에 남겼어야 했어!"

 

그 신경질적이고 분노 어린 주장의 표적이 된 하프의 부모는 어리둥절 할 뿐이었다. 화가 날 순 있다. 하지만 어째서 그 분노를 자신들에게 향하는가? 그것은 굉장히 의문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두 번째 부모의 상심을 이해할 수도 있었다. 그야, 스스로 자신의 아이와 생이별한 게 된 셈이니까. 감당 못 할 상실감에 커다란 실수를 저지르고 있을 수도 있다. 이해한다. 다만 그것은 그 스트레스 표출의 대상이 어른들 끼리로 한정될 때까지의 이야기였다. 두 번째 부모의 신경질이 정도를 지나쳐 하프에게까지 향하기 시작했을 때, 하프의 부모는 더 이상 참아줄수 없었다.

 

폭력전으로 번지려는 언쟁을 보다 못한 유진의 부모가 먼저 중재에 나섰다. 아내 쪽이 두 번째의 아내 쪽을 나무랐다.

 

"다른 아이를 비난해서까지 캡슐 자리를 차지해놓고, 이제 와서 다른 사람에게 성질을 부리다니 이게 무슨 경우 없는 행동이에요?"

 

다소 거친 지적이었지만 이것은 하프의 부모가 느끼고 있는 감정 그대로였고, 여기서 풀어내지 않고 하프의 부모가 직접 언급하게 됐을 경우 극단적인 분쟁으로 번질지도 모르는 부분이었다. 유진의 부모는 어느정도 분노의 화살이 자신들에게 향할 것을 유도하며 이 다툼을 중재시켜볼 기색이었다.

 

실제로 적잖히 두 번째 부모의 상심을 이해하고 있으며, 너무나도 행복하게 지내고 있기 때문에 그다지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하프의 부모는 유진의 부모가 그런 방식으로 중재를 시도한 순간 이미 용서할 준비를 시작하는 듯이 보였다.

 

사과할 사람이 정해졌다. 이제 두 번째의 부모가 냉수 한 잔 마시고 머리만 식히면 해결될 문제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세 번째 아이, 하프가 부모들의 다툼에 끼어들었다. 아이가 부모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 척을 해야 하나요?"

 

당황한 하프의 부모가 되물었다.

 

"왜 그런걸 묻니."

 

하프가 두 번째의 부모들을 가리킨다.

 

"저분들은 그런 모습을 보는 게 힘드신 것처럼 보여요."

 

아이의 당돌한 말에 두 번째 부모의 아내 쪽이 입술을 한 번 씹었다가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

 

그에 하프가 웃었다.

 

"역시 그렇겠죠? 역시. 이건 흔한 일이잖아요. 선택하고 결과를 돌려 받는 거. 당연한 일이라고 배웠어요."

 

하프의 부모는 하프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아이의 말을 막지 못했다. 하프가 계속 말했다.

 

"나는 이곳에 남는 걸 선택했어요. 그러니 우리는 행복해야 해요. 신경쓰지 말아요 엄마, 아빠. 테즈는 그때 입닫고 가만히 있었는 걸요. 그러니 테즈네 부모님이 이별에 괴로워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테즈가 선택한 일이잖아요?"

 

테즈는 두 번째 아이의 이름이었다.

 

"학교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는 지에 따라 부모님들이 기뻐하실 수도 슬퍼하실 수도 있다고 배웠어요. 그건 당연한 일이래요."

 

하프가 웃는다.

 

"나는 선택했어요. 잘한 것 같아서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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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있었는데 윤인석님의 문장연습이 생각나서 단편으로 적어 봤어욥
아마 눈치 채신 분이 없을 것 같지만 요 글의 키워드는 '들어갈 자리가 생겼다.' 였습니다.
서두에 문장연습식으로 적은 글이란 얘기를 적고, 마지막에 어떤 말이 키워드였는지 적어 놓은 후에
퀴즈로 내도 재밌겠단 생각을 했지만, 전혀 못 맞출 것 같은 글이 나와버려서 그렇게까진 않는 걸로 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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