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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단편,브금]정신병원
게시물ID : panic_138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tarDream
추천 : 14
조회수 : 3659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1/04/07 10:18:29
1. 눈을 떴을 때 앞에 보이는 기다란 형광등은 익숙한 장면이 아니었다. 원래 뭐가 익숙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머리 속이 하얗게 타버리고 기억은 재가 되어 다시 올 수 없는 먼 곳으로 날아가버린 것 같다. 어딘가 푹신푹신한 곳에 누워있는 나를 느끼며, 생각은 질문을 한다. 나는 누구인가? 떠오르는 것이 없다. 이름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나이는 어느 정도 되었을까? 어린 것 같지는 않다. 얼굴을 살짝 돌려 내가 있는 곳을 둘러본다. 초점이 흔들리다가 이내 해가 들어오는 창에서 멈춘다. 눈이 부셔 살짝 미간을 찌 푸리고 기다리니 방 전체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침대들이 여러 개 있고 그 위에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보인다. 내 옷을 본다. 나도 환자복을 입고 있다. 환자복 무늬 사이에 ‘자유정신병원’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그럼 여기는 정신병원인가? 적어도 한 가지는 알 수가 있었다. 나는 기억을 잃었고, 그것 때문에 정신병원에 들어온 것이다. 손가락과 다리 를 움직여본다. 다행히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다. “성철씨 일어났어?” 옆의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뚱뚱한 남자가 말을 건다. 내 이름이 성철인가? “내....” 나는 솔직해지기로 한다. 어차피 방어할 이유는 없다. “저기.... 기억이 안나서 그러는데요. 제 이름이 성철인가요?” 옆 침대의 남자는 폐에서 가래가 끓는 웃음을 뱉어낸다. 아랫배에 축적된 지방이 입으로 삐져나올 것 같다. 한참 웃던 남자는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내게 말한다. “당신 성철씨 맞아. 윤성철. 기억해두라고.” 그리곤 다시 웃는다. 더 물어보기는 곤란할 것 같다. 방에서 나가는 문이 있나 살펴본다. 바로 옆쪽에 문이 있었는데, 문짝은 없다. 침대 아래쪽에 놓여 있는 슬리퍼 를 신고 그쪽으로 나간다. 방 밖에는 커다란 홀이 있었다. 그 끝에 입구로 보이는 곳이 있는데, 간호사들이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탁 구대와 커다란 테이블, 책들이 놓여 있는 방. 텔레비전 소리가 앞쪽에 열려있는 방에서 새어나왔다. 그 쪽으로 걸 어간다. 이곳에서 가장 현실적인 물건이 텔레비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방에는 옛날 교회에 있는 기다란 의자가 여러 개 놓여 있었는데, 두 번째 자리에 어떤 여자가 앉아 있었 다. 여자가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본다. “성철씨 일어났어요? 오늘도 기억 안나요?” 나는 약간 당혹감을 느낀다. 이 사람들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는데, 사람들은 나를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 다. 그리고 여자는 분명히 ‘오늘도’라고 말했다. 내가 기억을 자주 잃는다는 말처럼 들린다. “내 기억 안 납니다. 누구시죠?” 여자는 옆 침대의 남자처럼 웃는다. 목소리는 잘 갈은 칼처럼 날카롭다. 여자는 리모콘으로 텔레비전을 끄고, 손 짓으로 나를 부른다. 나는 여자의 옆에 가서 앉는다. “어제는 여기가 어디냐고 묻더니 오늘은 누구냐고 묻네요. 전 김신해고요, 여기는 병원이고요. 숲 속에 있는 정 신병원. 성철씨는 자신이 누군지 알아요? 아마 모를 걸요.”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가 말을 잇는다. “성철씨는 사고로 기억이 오락가락 하는 분이에요. 보통 땐 멀쩡하다가 갑자기 기억 안난다고 나타나는 거죠.” “사고요? 어떤 사고요?” 김신해가 입을 다물고 얼굴을 젓는다. 화장안한 얼굴이 푸석해 보인다. “몰라요. 의사들이나 간호사들이 안 알려 주던데…….” 사고라…….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뒤쪽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자 텔레비전전방 입구 쪽에 남자한명이 서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환 자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사복 차림에다가 운동화까지 신고 있다. 남자가 말한다. “아침 먹었어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배고픔도 느껴지지 않는다.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김신해는 다시 텔레비전을 켜고 그녀만 의 세계로 빠져드는 듯 하다. 남자의 손에는 샌드위치가 들려 있다. 가져가라고 손짓한다. 나는 일어서 남자에게로 다가간다. 별로 말끔해 보 이지 않는 외모였으나, 이곳의 다른 사람들 보다는 정상으로 보였다. 샌드위치를 한번 무는데, 남자의 시선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그제야 남자는 시선을 돌린다. “아니요. 허허…….” 나는 다시 묻는다. “아저씨는 환잔가요? 왜 환자복을 안 입고 있죠?” 남자는 자신의 점퍼를 만지작거리며 말한다. “환자긴 환잔데, 증상이 약해서 잠시 병원에 다니는 거예요. 폐쇄 병동에는 그냥 사람 만나러 왔고요. 어제 성철 씨한테 말했었는데……. 기억 안나요?” 폐쇄병동이라……. 그럼 못나가는 건가? “여긴……. 못나가는 곳인가요?” 남자는 전에도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눈이 즐 거워 보인다. “의사의 허락이 있기 전에는 못나가요.” 또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사실 너무 물어볼 게 많아서 무엇부터 물어봐야 할지 모르는 것 이다. “저기…….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김민구라고 합니다. 오전에 여기 계속 있을 거니까, 궁금한 것 있으면 물어보세요.” 김민구는 내 어깨를 툭 치고는 홀 구석에 있는 기다란 의자에 가 앉는다. 김민구의 옆에는 할머니가 앉아 있는 데, 아무 말도 없이 김민구를 바라본다. 텔레비전 방에서 나와 폐쇄병동의 입구 쪽으로 걸어간다. 여자 간호사와 남자 간호사 한명이 앉아 있다. 여자 간 호사가 내게 말을 건다. “일어나셨어요? 아침 체조에 안 나오셨던데.” 간호사는 얼굴도 조그맣고, 체구도 작았다. “지금 나갈 수 있나요?” “아니요. 원장 선생님이 오늘은 아무도 못나가게 하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산책 시간도 내일로 연기됐어요.” 간호사 뒤쪽에 철문 하나가 보인다. 폐쇄병동을 나가는 유일한 문인 것 같다. 하지만, 생각도 못 빠져나갈 만큼 굳게 닫혀있다. 간호사는 모니터에 시선을 두고 차트에 뭔가를 적고 있다. 그 앞에 빨간 전화기가 있지만, 전화 걸 곳이 생각나지 않는다. 슬리퍼를 질질 끌며 홀로 돌아온다. 환자들이 꽤 많아졌다. 한 쪽 구석에서는 장기를 두는 사람들이 보이고, 가 장 시끄러운 곳은 탁구를 치는 무리들이었다. 김민구는 조금 전에 앉았던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살짝 미소를 짓자 그도 따라한다. 김민구는 다른 사람들과 말을 별로 하지 않는 것 같다. 우선 장기를 두는 사람들 옆으로 갔다. 백발을 한 할아버지가 나에 대해 잘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2. 40대 명예퇴직은 견디기 힘든 일이지만, 그렇다고 저항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쥐꼬리만한 퇴직금으로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어서 아내와 합의 끝에 시골로 이사를 왔다. 뒤쪽에 산이 있고, 조그만 밭이 있는 한적한 농가를 샀다. 여기서 젊을 때 하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할 생각이었다. 출판사에 아는 사람들이 내게 용기를 준 것 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이사 온 지 첫 한 달간은 아무것도 안하고 지냈다. 아내는 심심한지 조그만 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아내를 조금 도와주기는 했지만,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산책을 하며 지냈다. 이러다보면 책의 소재도 생각날 것이다. 한번은 산길을 걷지 않고, 국도를 따라 계속 걸었다. 길가에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 1차선 도로에 짙은 그늘을 만들어냈다. 서늘한 공기가 콧구멍을 간질였다.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한 30분 정도 걸었을 때, ‘자유정신병원’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팻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으니 곧 2층 짜리 긴 건물이 나타났다. 곳곳에 불에 그슬린 흔적이 있고, 창문은 모두 깨져 있었다.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 병 원 같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나는 이 건물을 탐험해 보기로 했다. 어릴 적 기분이 되 살아나는 것 같았다. 건물 입구는 열려 있었고, 바닥은 검댕이로 더러웠다. 1층 복도는 길었고, 창문 파편과 검댕이가 뒤섞여 흩어져 있다. 뭔가 큰 불이 났던 것 같다. 서무실과 진찰실을 돌아보았으나 별로 재밌는 것을 찾아내지 못했다. 다음은 2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았다. 표시판에 ‘폐쇄병동’이라고 쓰여 있었다. 살짝 서늘한 기운이 가슴을 스쳤다. 정 신병원의 ‘폐쇄병동’에 대한 고정 관념이 무서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어릴 적 같으면 무서워 도망쳤을 테지만, 지금은 다르다. 쇠로 된 문이 보인다. 그 옆에 버튼이 보이지만, 그것을 누른다고 해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대 답한다면 아무리 내가 어린아이가 아니라지만, 깜짝 놀라 도망칠 것이다. 문의 손잡이를 잡아당긴다. 다행히 문은 잠겨 있지 않다. 입구에 의자들은 너저분하게 쓰러져 있고, 전화기는 깨 진 채 떨어져 있다. 불이 났을 때, 폐쇄 병동의 환자들은 어떻게 됐을까? 아마 다들 빠져 나왔을 것이다. 모두 불 에 타 죽었다면 뉴스에 보도가 되었을 것인데, 그런 뉴스를 들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적어도 내 기억엔 그렇다. 입구를 지나자 홀이 보인다. 천장은 시꺼멓게 그을려 있고, 구석에 있는 탁구대는 쓰러져 있다. 타다 남은 책들 이 먼지와 함께 바닥을 장식하고 있다. 그런데, 홀 옆에 붙어 있는 병실에서 남자가 나오는 게 보였다. 순간 내 몸이 얼어붙었다. 이 남자는 누구인가? 남자는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리고 어디론가 걸어간다. 남자는 건물의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깔끔한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쓰러진 탁구대 옆으로 가더니 뭔가를 말한 다. 나는 가슴을 쓰러 내리며 남자의 뒤로 다가갔다. 남자는 내가 오는 것은 의식하지 못하고 계속 뭔가를 말하 고 있었다. 폐쇄병동의 텅 빈 홀에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억이 안나요. 제 이름이 윤성철 맞나요?” 남자는 앞을 보고 계속 질문을 해댔다. 나보다 체구도 작았고, 뼈도 가늘어 보였다. 나를 해하진 못할 것 같다. 남 자를 불렀다. 남자는 뒤를 돌아본다. “저기……. 여기서 뭐하세요?” 남자는 대답한다. “그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여기 있었어요. 저에 대해 아세요? 아……. 그리고 왜 사복 을 입고 있죠? 여기 환자들은 다 환자복을 입고 있는데…….” 내가 머뭇거리자 남자는 다시 묻는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아……. 김민구입니다.” 남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홀에 있는 긴 의자에 가서 앉는다. 그리고 대화를 한다. 분명 그 옆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그 후로 그곳을 자주 찾아가며 윤성철을 관찰했다. 먹을 것도 매번 가져가서 윤성철이 굶어 죽는 것을 막았다. 사 람들에게는 윤성철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 그가 내 글의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3. “남편은 이사 온 후에 밖에 계속 나갔어요. 처음 여기 왔을 땐 산책을 한다고 산에 몇 번 올라갔거든요. 그런데 요 두 달 사이에는 산으로 안 갔거든요. 보니까 찻길 있는 곳으로 가더라고요.” 이미연은 커피 잔을 초조한 듯이 매만진다. 그녀의 손에 걸려 있는 전화기가 떨린다. “처음은 그러려니 했지만, 남편이 도시락을 싸달라고 그러더라고요. 산책 가서 먹을 거라고요. 평소에 밥을 많 이 먹지 않는 양반인데, 어쩐 일인지 도시락은 푸짐하게 싸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그렇게 했죠.” 이미연의 대학 선배인 이정숙은 조용히 수화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미연은 말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언니도 그이 아시죠? 대학 때부터 저밖에 모르던 남자잖아요. 결혼 후에도 쭉 그랬거든요. 한번도 여자 문제로 속 썩인 일이 없어요.” “그렇지. 민구는 너밖에 몰랐어.” “그래도 걱정이 되잖아요. 명예퇴직하고, 충격이 심하면 딴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남편 산책 나갈 때 몰래 미행했어요.” 이미연은 뜨거운 커피로 목을 축인다. 카페인이 뇌로 흘러들어가 긴장을 감소시킨다. “그렇게 꽤 오랫동안 걸었어요. 남편이 샛길로 빠지더라고요. 무슨 정신병원이라는 팻말이 있었는데……. 이름 은 잘 기억이 안 나고. 그래서 아……. 남편이 정신병이 있나부다 했죠.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적어도 날 떠날 건 아니니까. 그런데 이상한 건, 병원은 다 타버린 폐건물이었어요. 언제 불이 났었겠죠. 남편은 그 건물로 들어 가서 나오질 않았어요.” “그래서……. 따라 들어가 봤니?” “내. 병원 2층에서 소리가 들리기에 올라가봤어요. 철문이 있었는데, 조금 열려 있었어요. 거기로 들여다보니까 남편이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이게…….” 이정숙은 뭐라고 해줄 말이 없었다. 자신도 처음 듣는 상황이라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더 무서운 건 뭐냐면요……. 남편이 혼자서 계속 말하는 거예요. 꼭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처럼요.” -The end 출처 : written by cenny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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