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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장편,브금]기차여행 중에 -2부-
게시물ID : panic_140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tarDream
추천 : 2
조회수 : 116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1/04/14 10:21:29
원래 나의 집은 서울이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잡은 첫 직장을 대구에서 잡으면서부터 그곳에서 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지리도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는 타지에서 산다는 것에 대해 많은 괴로움도 있었다. 하지만 회사 동료와 사내 커플이 되어 결혼도 하고 직장에서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나는 대구를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할 정도로 행복한 생활을 했다. 아이도 하나 낳고 전세지만 우리만의 집도 장만을 하고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급한 일로 나를 서울에 발령을 내렸다. 서울쪽 부서에 모자란 인원을 충원하는 일이었는데 과장 말로는 한두 달 정도면 끝난다고 했다. 많이 망설였지만 인사고과에도 플러스 요인이 될 거라는 말에 기간도 그리 길지 않아 승낙을 했다. 그렇게 나는 사랑하는 가족과 잠깐 동안의 이별을 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올라온 서울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매번 비디오만 보다가 생방송 TV 프로그램을 본 느낌같이 말이다. 어쨌든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형이 살고 있는 성북동에 찾아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회사가 있는 홍제동으로 와 몇 가지 일을 처리하고 바로 자취방을 알아보았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주택가촌이 많은 곳이라 잠만 자는 방 하나쯤은 쉽게 구할 줄 알았지만 오산이었다. 몇 군데 부동산을 찾아가보아도 매물이 나온 것은 몇 되지 않았고 그나마도 가격대가 맞지 않았다. 어느 정도 맞는다싶어 찾아간 곳은 잠마저도 도저히 잘 수 없는 그런 곳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는 여관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 어이, 김호영씨. 방은 구했어요?" 내가 일하게 될 회사의 상무로 있는 최춘식이었다. " 아니요. 아직이요. 생각만큼 쉽게 못 구하겠네요." " 요새 월세고 전세고 사람들이 내놓질 않는다니까요. 다들 값오를때까지 붙들고 있으려는지...원...직원 기숙사라도 여유가 있으면 들어오시면 좋은데....어떻게 급하게 일이 되느라 좀 불편하시겠어요." " 뭘요. 오늘 하루만 더 돌아다니다보면 구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니 근데...원래 집이 서울이신데 부모님 댁이 굉장히 멀리 있으신가봐요?" " 아니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성북동이에요. 그런데..형님네랑 같이 사셔서 아무래도 저도 그렇고 그 집 식구들도 그렇고... 서로 불편할 것 같아서요. 그리고 뭐 한두 달 정도 있을 텐데요. 염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로는 쉽게 구할 수 있을 꺼라 큰소리치긴 했지만 막상 퇴근을 하고 복덕방을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혹시 모르니깐 저도 계속 알아볼께요....일하시기엔 어떠세요? 괜찮으세요?" "아..네....아주 좋습니다. 다들 잘 해주시고요." "대구쪽에서 능력이 굉장하신 분이라고 말씀하시던데....다들 기대하고 있습니다." "어이구...별 말씀을요...많이 가르쳐주십시오." 나는 손사래를 치며 최상무에게 말했다. 사실 업무평가만 놓고 본다면 그래도 누구에게 빠질만한 것은 아니었다. 성실하다는 평도 들었고 일에 추진력이 있다는 상사의 칭찬도 자주 있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회사일은 순조로이 돌아갔다. 하지만 방이 문제였다. 나는 퇴근한 이후에 계속해서 방을 알아보러 다녔다. 그래도 나하나 잠깐 묵을 방이 없겠냐는 생각에 자신감을 갖고 있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돌아다니길 2시간. 때 이른 더위에 몸이 녹아날 정도로 지쳐있던 내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들어간 복덕방에서 그 집을 보게 되었다. " 아유~, 제대로 오셨구먼요. 그런 방 있고요. 아주 여기 딱 좋은 방이 있습니다. 요 근처 동네에서도 이만한 방 구하기 어려우실 겁니다." " 어떤 방인데 그러세요?" " 이 집이 말이지요. 기와집이긴 하지만 안에 내부공사를 쫙 해나서 보일러도 잘나오고 방도 아주 깨끗하답니다. 뭐...여름이라 보일러는 잘 안쓰시겠지만....아...거기다가 주인집하고는 방이 분리가 되어 있어요. 들어가는 대문은 같지만 그 방은 왼쪽으로 쭉 돌아서 들어가면 있다니까요. 거의 따로 사는 집이나 마찬가지지요. 화장실도 밖이지만 따로 있고요. 원래 혼자 사시는 분들...주인댁 눈치 보랴 얼마나 불편합니까? 근데 이 집은 그런 건 없어요. 거기다가 월세도...어디 이게 이만한 방에서 받을만한 돈입니까? 거의 거저 주는 거지요..." "아...네....." "허허..뭐...제가 말을 길게 해봐야 한번 보느니만 못한데...어떻습니까? 오늘 한번 가보시겠어요?" " 네, 그러지요." 아마도 6월 초였을 것이다. 홍제동 그 기와집에 처음 발을 들인 때가 말이다. 지루한 장마가 이어지던 중이라 대낮에도 어두컴컴했다. 나는 복덕방 주인을 따라 청기와로 덮인 그 집에 도착했다. 계속 집에 대한 칭찬일색에 열을 올리는 그를 따라 대문으로 들어선 나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개량한 신식 기와집이기는 했지만 서울시내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집임에도 불구하고 처음보자마자 나는 약간의 한기를 느꼈다. 마치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집처럼. " 어떻습니까? 집이 고풍스럽게 괜찮지요? 제가 다시 말씀드리지만 겉으로는 조금 낡았을지 몰라도 일단 안을 보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흠흠..여기가 바로 주인집 현관문이고요. 그 방은 이쪽으로 들어가면 나옵니다. 따라오시지요." 청색 기와가 얹어져 있는 그 집은 기역자로 되어있었다. 총 세 개의 방과 마루, 주방으로 이루어진 이 곳은 기역자의 위쪽에 방 하나, 그리고 기역자의 세로 부분에 쪽방, 주방, 안방 이런 순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물론 안방과 주방을 합친 맞은편에는 마루가 있었다. 원래는 방 세 개 모두가 마루 쪽으로 문이 나 있었지만 내가 쓸 위쪽 방문을 막아버리고 바깥벽 쪽으로 문을 하나 더 트였다고 한다. 화장실은 바깥에 두개가 있는데 내가 쓸 방 앞에 하나, 주인집 쪽방 앞 쪽에 하나가 있었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보이게 되는 현관은 바로 주인집으로 들어가는 출입구였고 나가 쓸 방은 마루를 둘러싼 미닫이문을 지나 왼쪽으로 돌아가야 됐다. " 뭐 이 집도 그렇게 식구가 없어서 말이지요. 지내시기도 조용하고 편안하실 겁니다. 이 집이 그......부녀가 외롭게 살고 있는 집이거든요. 게다가....에구....그 딸년이 또 식물인간이지 뭡니까....그 애비가 얼마나 가슴 태우면서 살겠어요...흠흠..아니 뭐 그렇다고 이상한 집은 아닙니다. 그냥 집안이 그렇다는 것이고...자 여기가 방입니다. 한번 보시지요." 복덕방 주인의 말대로 방은 깨끗했다. 보일러도 새로 들여놓았는지 벽에 붙은 보일러 스위치가 반짝거렸다. 배선도 잘 되었는지 천장에 울럭임도 없었고 장판 또한 깨끗이 닦인 채 깔려져 있었다. 나는 방문에 걸터앉아 위아래를 살피며 꼼꼼히 살펴보았다. " 그냥 오늘 딱 계약하십쇼. 거 뭐 딴 데 볼거 있습니까? 어떠세요? 맘에 드시지요?" 호들갑을 떠는 복덕방 주인을 뒤로 한 채 나는 보잘것없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왠지 느낌이 이상하다는 것. 그것은 아마도 본격적인 타향생활을 시작해서 생기는 그런 느낌일 것이다. 게다가 그 타향이라는 곳이 내 부모님이 살고 있는 고향이었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기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바로 이 방으로 정했다. 가격대도 싸고 방도 괜찮고 무엇보다도 회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곳이기도 해서였다. 그런 나의 결정에 복덕방 주인은 탁월한 선택이라고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애써 무시한 어떤 한기 같은 것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그것이 내 스스로의 보호본능이 자신에게 이야기한 최후의 기회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 다음날. 나는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홍제동 기와집으로 이사를 왔다. 짐이라고 해봐야 부모님 댁에서 가져온 이불 몇 장과 조그만 소형 TV, 컵, 휴대용 가스렌지, 전기밥솥, 소형 냉장고, 냄비와 몇 개의 책이 전부였다. 나는 차에서 짐을 꺼내어 형과 함께 옮겼다. 나는 트렁크를 열고 보자기에 싸여진 짐을 하나둘 씩 나르고 형은 방안에서 짐을 받았다.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모든 짐을 방안으로 옮길 수 있었다. 그렇게 짐 옮기는 것을 끝낸 우리는 방안을 청소하고 짐을 정리했다. 점심때가 훨씬 지난 3시쯤에서야 완전히 이사를 마쳤다. 형은 늦었지만 점심이나 먹으러가자고 했고 우리는 근처에 있는 삼겹살 집으로 들어갔다. " 아무튼 고생했다. 그런데 아무리 한두 달 살아도 짐이 그게 뭐냐." " 뭐가 어때서요. 금방 있다가 갈껀데요 뭘..." " 그래도 그렇지...그래 제수씨한테 전화는했냐?" " 네, 매일해요. 사실 저보다도 집에 혼자 있는 사람이 더 걱정이지요." " 그것도 그렇지...아니 근데 어떻게 이 집은 사람이 이사를 하는데 주인이 나와 보지도 않냐?" " 글쎄요...뭐 얘기듣기로는 자식 병수발 드느라 정신이 없나봐요." " 병수발? 아니 무슨 병인데?" " 저도 잘 모르겠어요. 뭐 거의 움직이지도 못한대요." " 아니..어쩌다가....쯧쯧....교통사고라도 당한 모양이구나." " 아마도요...그런데.... 엄마는 어때요? 요즘도 혈압 때문에 고생하세요?" " 너도 봐서 알겠지만...사실 오늘내일 하시는 거지....저번에도 한번 크게 올라가지고 쓰러지셨다...내가 너한테 전화를 해서 알겠지만....글쎄...아니 근데 집에 좀 계시라고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노인네가 이것저것 일을 하고 그러니 원...." 형은 소주 한잔을 입에 털어놓으며 말했다. " 아무튼...너도 가까이 있으니깐 자주 찾아뵙고 말이야....뭐 반찬같은거나 이런 거 항상 와서 가져가고....아니 그냥 식사를 와서 해라." " 에이...아니에요. 밥이야 회사에서 먹으면 되고요.....그래도 가끔 놀러갈께요." " 그래....에이....집이라도 크고 하면 너 들어와도 되는데....." " 신경쓰지 마세요. 잠깐 있다 갈꺼잖아요." " 흠...그래그래...."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형, 술드시고 괜찮으세요?" " 괜찮아..괜찮아...내가 뭐 한두번 하는 것도 아니고...그리고 대낮이라 음주단속도 안 해. 걱정하지 말고...너나 들어가...어여.." " 그래요. 그럼 잘 들어가세요." " 그래, 언제고 한번 와라." " 네, 그럴께요. 들어가세요." 차는 날카롭게 엔진 돌아가는 소리를 내며 골목을 빠져나갔다. 나는 벌게진 얼굴을 하고 차가 골목을 돌아 사라질 때까지 서 있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피붙이와 있다보니 정겨운 감정이 든 것도 사실이다. 평소에는 무뚝뚝한 형이지만 어려운 일이 있을때는 언제나 관심을 가져주곤 했다. 예전에는 형과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형은 나에게 든든한 존재가 되고 있다. 나는 담배를 물고 형제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터덜터덜 집으로 들어왔다. 오후 5시가 다 된 시각, 주인집은 여전히 불이 꺼져 있었고 안에서는 어떠한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정말 아무도 안사는 집 아니야?' 나는 잠깐 주인집 현관 앞에 섰다. 그리고 혹시 누가 있을까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하지만 집안은 조용했다. 문득 호기심이 생긴 나는 간유리된 미닫이문에 얼굴을 들이대고 집안을 둘러보려 했다. 하지만 뿌옇게 시선을 흩뜨리는 간유리 안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 했다. 아까 짐을 옮길 때도 몇 번이고 노크를 했는데도 주인집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하다못해 방을 계약할때도 복덕방 주인이 모든 것을 일임해서 했으니 주인에 대해 더욱 궁금한 건 사실이었다. 나는 몇번 더 두리번 거리다가 아마 이 집 주인이 밤늦게 다니나보다하는 생각을 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이었다. 이사를 하며 새로운 환경을 접하고 회사에선 여러 가지 노무에 시달렸던 지라 나는 자리에 눕자마자 정신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복덕방 주인의 말대로 이 곳은 개미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곳이었다. 방에는 소형 TV만이 치이이익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고 조그맣게 나있는 창문으로 달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 톡톡...톡톡...." 어디선가 무엇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 소리는 지극히 지속적이며 일정한 리듬을 타고 있었다. 굉장히 작은 소리로 기억함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도 눈이 덜 떠진 상태로 일어난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 톡톡...톡톡...." 계속해서 들리고 있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방안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방안에는 나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누가 문을 두드리나하는 생각에 나는 문 쪽으로 기어가 방문을 잡았다. 그리고 살짝 손잡이를 돌렸다. 삐그덕소리를 내며 오래된 듯한 문이 스르르 열렸다. 나는 열리는 문틈으로 누가 있나 고개를 내밀었다. 하지만 문 앞에는 자기 멋대로 나뒹구는 내 신발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직도 잠에서 덜 깬 나는 문을 닫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 톡톡.....톡톡....톡톡..." 손톱으로 머릿속을 긁는 듯한 소리가 다시 들렸다. 아까보다 더 크고 여러 번 났다. 나는 점점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씩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 톡톡...톡톡..톡톡...톡톡...." 누군가 매우 급히 나를 찾는 듯했다. 나는 다시 방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문은 예의 그 특유의 소리를 내며 열렸다. 나는 배꼼 고개를 내밀었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했다. 분명 잘못들은 소리는 아니었다. 혹시나 문밖에 어떤 것이 바람에 부딪히나 하는 생각에 나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주섬주섬 일어나 형광등을 켜기 위해 팔을 뻗었다. 순간, 나는 창문밖에 서있는 누군가를 보았다. 두 개의 작은 창으로 이루어진 창문 너머에서 누군가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형광등을 켜려다 흠찟 놀라 창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얼굴이 허연 여자가 나를 노려보며 한 손을 들어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온몸이 경직되는 것을 느꼈다. 형광등을 켜기 위해 올린 손조차 내릴 수 없었다. 크레파스의 흰색 같이 새하얀 얼굴안에 까만 눈동자를 가진 여자의 시선이 나와 마주치고 있었다. 온 몸에 소름이 돋고 머리가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그 여자는 나를 보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 톡톡..톡톡..톡톡..톡톡..톡톡..톡톡..." 나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소름끼치는 그녀의 얼굴과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내 눈과 귀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싶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멈췄다. 순간 방안에는 적막한 고요가 가득 찼다. 그녀는 아직도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 그녀의 입이 조금씩 움직였다. 달빛을 등지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조금씩 이글어지면서 빨간 입이 열리고 있었다. 나는 그 무서운 모습을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살짝 입을 오므렸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 등 뒤로 식은땀이 쭉 흘러내렸다. 그녀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니 알아듣기도 싫었다. 그리고 이것이 꿈이기를 기도했다. 그녀가 다시 똑같이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지만 나는 어떠한 반응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긴 머리의 그녀는 천천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살짝 보이는 어깨를 움찔거렸다. 나는 그 모든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홀린 듯 보고 있어야했다. 어깨를 몇 번 움직이던 그녀의 얼굴 아래로 천천히 손이 올라왔다. 그녀의 흰 손이 얼굴 중앙쯤에 올라왔다. 그리고 살짝 손목을 꺾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의 손이 아래위로 흔들리며 나를 불렀다. 경직된 내 몸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은 이미 백지장이 되어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의 창백한 손이 한 번 더 흔들리며 나를 불렀다. 어떠한 판단도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때, " 실례합니다." 문 쪽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나는 순간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40대 초반인 듯한 남자였다. 그는 열려진 문 앞에서 경직되어 있는 나를 보고 있었다. 잠시 멍한 상태였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그제야 형광등을 켜려던 팔을 내렸다. " 흠흠...잠시 실례합니다." 나는 창문을 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 늦은 밤에 실례될 것 같지만....나... 이 집 주인이요." " 아...아....네......" 조금은 안심이 된 듯이 나는 숨을 헐떡이며 주인을 쳐다보았다. " 늦은 시간인데...일어나 계시군...오늘 이사하셨지요?" " 네?.........네..네...." 주인은 한 번 더 헛기침을 한 후에 말했다. " 아무튼 같이 살게 되었으니 반갑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한 두어 달 있다가 나가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아마 우리가 그 기간동안 좀처럼 볼일이 없을 거요. 필요한 거나 말할 게 있으시면 쪽지에 적어 현관에 넣어주시면 되겠소. 수도세나 전기세 등은 내가 그때그때 액수를 적어 방문에 끼워두겠소. 그럼 그걸 똑같이 현관 틈으로 넣어두시면 됩니다. 아셨죠?" " 네......" " 그럼 늦은 밤 실례했소....." 주인은 그렇게 가버렸다. 나는 한동안 문도 닫지 못하고 그 상태로 서 있었다. 방금 전 어떤 일이 있었는지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나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얼마간을 그렇게 서 있던 나는 머리맡에 놓아둔 컵에 담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 도대체....도대체....이게 다 무슨 일이야....' 아직까지도 꿈같았다. 믿기지 못할 일, 그리고 이상한 주인. 그 방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잠을 설쳐대며 지나갔다. " 아앙아아앙앙~" 뒤쪽자리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났다. 명훈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30대로 보이는 한 여자가 울음을 터뜨린 아이를 달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 남자도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창밖을 보았다. 잠시 어수선해진 객실 안에는 잠들었던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나 뒤척이는 소리로 가득찼다. 벌써 창밖은 어두워졌고 객실안의 모든 형광등은 일제히 켜져있었다. " 정말.....정말......입니까?" 명훈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 남자에게 말했다. " 지금이야....이렇게 편하게 얘기하지만 서두...허허...그때는 참....얼마나 무서웠는지...." " 아니....그게 뭡니까? 그게 뭐였습니까?" " 이 사람...참.....성격도 급하기는......아무튼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나는 다음날 바로 커튼을 사서 창문을 가려버렸네....그리고 약국에서 안정제도 사먹고 말이야....솔직히 그때까지는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했네. 꿈이었을 수도 있고....누구나 그럴 수 있는 일을 겪은 거다....뭐 이런 식으로 판단했지..........그러고 나서...." 출처 : 붉은 벽돌 무당집 작가 : ba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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