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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장편,브금]기차여행 중에 -4부-
게시물ID : panic_140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tarDream
추천 : 0
조회수 : 108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1/04/14 10:25:36
"천호냐?" "이게 누구야? 호영이?" "그래 임마, 잘 지냈냐?" "나야 뭐 그렇지...어쩐일이야. 갑자기.." "나 일때문에 서울에 올라와 있다." "그래? 짜식...그런일이 있으면 미리 전화를 하지." "올라온 지 얼마 안됐어. 넌 요즘에 뭐하냐? 가게는 잘 되냐?" "잘 되기는....죽을맛이다 임마. 경기도 안좋고 해서....장사도 잘 안된다." "안그래도 너 그때 결혼식이후에 한번도 못봤잖아. 한번 놀러갈께. 너 가게에 종일 있지?" "그래. 한번 놀러와라. 애들도 너 본지 꽤 되서 궁금해하던데..." "알았어. 내가 다음주 주말이나 한번 놀러갈께." "그렇게 해. 오기 전에 미리 전화해라." "알았어. 그럼 그때 보자." "엉." 전화를 끊고 동네 앞 공중전화에서 나오면서 나는 담배를 하나 물었다. 어릴적 친구들이 모두 서울에 있는지라 내가 대구에 내려간 이후에는 거의 보질 못했다. 가끔 전화 연락이 오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얼굴을 본 지는 꽤 된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담배를 피우며 집으로 돌아왔다. 휴일이지만 마땅히 할 건 없었다. 나는 하루종일 낮잠과 TV 시청으로 시간을 때웠다. 일주일 동안 했던 프로그램의 재방송이 대부분이었지만 평소 TV를 보지 못하는 나는 하나하나 흥미있게 보았다. 끼니때가 되면 있는 반찬과 언제 해놓은지도 모르는 누런 밥으로 대충 때웠다. 조금 서글프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을 만 했다. 사실 연고지에 와서 이렇게 소일거리없이 보내기란 드문일 일 것이다. 역시 안보면 멀어진다는 말이 맞기는 하나보다. 일요일 하루는 그렇게 지루하게 지나갔다. 그리고 이 집에 온 첫번째 한 주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날 밤이었다. 낮에 낮잠을 자서인지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나는 계속 몸을 뒤척이며 잠을 청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도 해보았다. 혈압으로 고생하시는 어머니 생각, 따로 떨어져있는 가족 생각, 친구들 생각...여러 가지 생각에 버무려지자 나는 더욱 잠이 들지 못했다. 그렇게 한 삼십분 정도를 뒤척이며 보냈다. 깜깜한 방. 그리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함. 잠을 자기에 충분한 조건에서도 잘 수 없는 자신을 한탄하고 있던 나는 결국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때 이상한 것이 보였다. 커튼이 펄럭이는 것이다. 나는 내가 잘못 보았을 것이라 생각하며 다시 보았다. 조금 뒤에 또다시 커튼이 펄럭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내가 창문을 안 닫았나?' 이런 생각을 하며 커튼 쪽으로 다가갔다. 방금 전 펄럭인 커튼이 아까의 움직임을 멈추지 못하고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커튼을 들어 창문을 보았다. 하지만 창문은 닫혀 있었다. ' 이상한 일이군. 도대체 어디서 바람이 들어오는 거야?' 나는 몸을 돌려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문손잡이를 잡고 흔들어보았다.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나는 손잡이를 돌리며 두세 번 확인했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몸을 숙여 문지방에 손을 대 보기도 했다. 하지만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커튼이 또 한번 펄럭였다. 나는 그 순간 멈찟했다. 조금씩 무서운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커튼 쪽을 노려보았다. 내려앉은 커튼은 조금씩 흔들리며 잦아들고 있었다. ' 뭔가...........' 나는 조금씩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나의 시선은 커튼 쪽을 향하고 있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순간, 또다시 커튼이 펄럭였다. 나는 눈을 돌리며 방안을 둘러보았다. 어떠한 것도 있지 않았다.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나는 커튼 쪽으로 몸을 돌리고 벽을 짚으며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커튼 쪽으로 조금씩 다가갔다. 왠지 모를 긴장감이 몸을 감싸고 있었다. 꿀꺽 넘어가는 나의 침소리마저 방을 가득 메웠다. 그때 또다시 커튼이 펄럭였다. 그리고는 다시 달빛을 가리며 언제 움직였냐는 듯이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점점 커튼 쪽으로 다가갔다. 나의 눈은 커튼에 고정되어 있었다. 손이 조금씩 떨렸다.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나를 휘감았다. 발걸음을 조금씩 떼며 창문으로 다가갔다. 순간 커튼이 또다시 펄럭였다. 그리고 그 너머에 여자의 허연 얼굴이 보였다. 나는 휘둥그레진 눈을 한 채 그 모습을 보았다. 커튼은 계속 펄럭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여자는 창문바깥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또다시 호흡이 가빠오는 것을 느꼈다. 커튼은 내려오지 않고 계속 펄럭였다. 마치 창문을 통과한 세찬 바람에 날리듯이. 나는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여자는 나를 보고 있었다. " 으으으......" 나는 나도 모르게 조그만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커튼은 여전히 펄럭이고 창문 너머에 그 여자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여자의 입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녀의 빨간 입이 열렸다. 나는 예전에 겪었던 꿈과 같은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도 그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천천히 입을 벌리더니 살짝 다물고 다시 입을 열었다. 또다시 나에게 무언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감고 싶었다. 하지만 좀처럼 감기지 않았다. 그때 여자의 어깨가 꿈틀거렸다. 그리고 창문 가득 차 있는 그 여자의 허연 얼굴 아래로 하얀 손이 스르륵 올라왔다. 마치 손목이 부러진 것 같은 그녀의 손이 허연 얼굴의 중앙까지 올라온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순간 그녀의 하얀 손이 창문을 뚫고 방안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나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눈도 입도 목도 나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흰 손이 점점 방으로 들어왔다. 커튼은 더욱 세차게 펄럭이며 하늘을 향해 있었다. 나는 벌벌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한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은 마치 미끄러지듯이 창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리고 손목을 지나 팔 전체가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이빨이 다닥다닥 부딪히고 있었다. 머릿속은 이미 그녀의 얼굴색과 같이 하얗게 되었다. " 뚜벅...뚜벅..." 발자국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듣지 못했지만 그 소리가 가까워 질수록 나에게 점점 크게 들려왔다. 나는 눈으로 그녀의 팔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도 귀로는 발자국소리에 집중해 있었다. " 뚜벅...뚜벅.....뚜벅....." 점점 발자국 소리가 다가왔다. 그녀의 팔도 창문을 지나 나에게 뻗어오고 있었다. 방 중앙에 서서 창문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오감을 지배하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발자국 소리가 점점 다가 왔다. 그녀의 빨간 입이 다시 움직이고 있다. " 뚜벅...뚜벅....."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멈췄다. 그리고 그녀는 창문 안으로 완전히 들어온 팔로 나를 가리켰다. 그리고 천천히 손목을 들어 나를 향해 흔들었다. 나는 이미 그녀의 눈동자에 함몰되어 있었다. 얼굴 근육이 심하게 수축되는 것이 느껴졌다. "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순간 나는 고개를 돌려 문 쪽을 쳐다보았다. 쪽지였다. 방안으로 들어온 쪽지를 본 나는 다시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창문은 언제그랬냐는듯이 조용히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나는 그제야 어깨를 축 내리고 숨을 몰아쉬었다. 잠시 정신을 잃은 사람 같았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하지만 문 앞에는 수돗가와 화장실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방에서 내려와 신발을 신고는 바깥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그곳 역시 아무도 있지 않았다. 나는 눈을 돌리며 주변을 살피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이불을 끌어당기고 벽에 몸을 붙였다. ' 이것도 꿈일까?....이것도 꿈일까?....' 나는 내내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기를 몇 십분. 조금 진정이 된 나는 그제야 문 앞에 떨어진 쪽지에 시선이 갔다. 나는 엉금엉금 기어가 쪽지를 집어 들었다. < 보일러 고쳤다는 소리를 들었음. 하지만 다음부터는 나에게 먼저 알리기 바람. 함부로 다른 사람을 집에 부르지 말 것.> 쪽지에 써 있는 내용의 전부였다. 나는 쪽지를 한쪽구석에 던져놓고 이불이 있는 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창문을 보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커튼은 가만히 창문을 가리고 있었다. 그렇게 방안은 평소와 같은 고요 속에 잠들었다. 나는 한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 계속해서 주변을 살폈다. 얼마나 세게 입술을 깨물었는지 피맛이 느껴졌다. 그렇게 얼마간을 공포에 떨며 앉아있었다. 그리고 어느 샌가 잠이 들었다. " 아니..너 왜 이렇게 말랐냐?" " 네? 제가 말랐어요?" " 그래, 임마...너 저번에 봤을 때보다 아주 볼살이 쫙 빠졌네...결혼한 사람이 혼자 사는 게 만만치 않은 거야.....이거 어머니가 보시면 걱정하시겠다....너 밥은 제대로 챙겨먹냐?" " 그럼요...저번에 형수님이 반찬도 많이 가져다주시고....회사에서 꼬박꼬박 끼니 챙겨먹어요...." " 그래도 그렇지.....아이구 참.....아무튼 너 안 되겠다. 내가 몸보신 한번 시켜줘야지...이번 주 주말에 집에 와라. 내가 보신탕 잘 하는 집 알고 있으니깐 같이 가자." " 아휴...됐어요....무슨 개고기에요...." " 아냐. 임마...내 말대로 해. 알았지? 이번 주말에 꼭 들려라." " 알았어요. 저 이제 들어가 봐야 되요." " 그래...그럼 주말에 보자." 모처럼 회사에 찾아온 형은 나에 대한 걱정만 늘어놓다가 헤어졌다. 나는 구내매점에서 일어나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 말랐다....내가 말랐다......' 저번에 있었던 일. 아마도 그것 때문일 것이다. 분명히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것이 꿈이었는지 내가 헛것을 보았는지 구분을 할 수 없었다. 그러기에 누구에게 책임을 돌리거나 어떤 대책을 세워야하는지 알 지 못했다. 게다가 그 일이 있고나서 한주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그것이 나를 더욱 헷갈리게 했다. 처음 그 일을 겪었을 때는 그 집에서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강렬했다. 하지만 지금은 도무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 마가 끼였나.....아니면 우리 처가댁 장인 묘를 잘못써서 그런가....' 나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어쩌면 현실적인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이미 나의 손에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은 상황이리라.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 아니....도대체 홍제동 기와집사건이 뭡니까?" 명훈은 참고 있던 것을 물어보기라도 한 듯이 급히 말을 꺼냈다. " 살인사건이야....살인사건...." 그 남자는 담담히 말했다. " 살인사건이요....아마도 그 주인이라는 사람이 가족을....." 명훈은 조금 몸서리를 치며 말했다. " 그런데...중요한 것은 말이지....사건이 아주 이상하게 돼 버렸어...아주 이상하게 말이야..." 그 남자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미 밖은 저 멀리 보이는 시골집 마당에 걸어놓은 밝은 등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아니...어떻게 이상하게 됐다는 겁니까? 혹시 환자를 어떻게 했다는 얘깁니까?" 명훈은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린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아마 형이 찾아왔던 다음 날이였을꺼야.....그때 낮부터 비가 많이 왔었지. 6월이라 장마가 자주 올라오곤 했거든...게다가 더위도 굉장했어....비가 오는데도 푹푹 찔 정도였으니 말이야....." 내가 홍제동 그 집에 온 것은 저녁 9시가 넘어서였다. 아침에 우산을 챙기지 못해 내 양복은 온통 빗물에 젖어있었다. 나는 대문 문턱에 올라 어깨에 쌓인 물기를 털어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대문을 열었다. 하루 종일 비가 와서인지 대문 아래로 빗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나는 대문을 열고는 손으로 비가 떨어지는 것을 막으며 현관 앞으로 뛰어올라갔다. " 에이....왠 비가 이렇게 많이 와...." 나는 투덜거리며 양복의 이곳저곳을 털어냈다. 이미 양복은 빗물을 털어낼 수준이 아니었다. 온통 흠뻑 젖어있었던 것이다. 나는 비 맞은 강아지마냥 온 몸을 부르르 털었다. 그렇게 현관 처마 밑에서 몸을 추스리던 나는 대문 안쪽에 달린 우편함에 흰 종이 하나가 껴 있는 것을 보았다. 혹시 나에게 온 편지 인가 해서 나는 재빨리 대문으로 다가가 종이를 빼들고는 현관 아래로 올라 왔다. " 뭐야...이거...전기세 고지서잖아..." 내가 손에 들고 있는 종이는 이번 달 전기세 고지서였다. 나는 젖어있는 손을 양복에 닦으며 고지서를 뒤로 돌렸다. " 흐엑!....이게 뭐야.....72만원?? 뭐 전기세가 이렇게 많이 나와?" 고지서에는 72만원이라는 요금이 찍혀있었다. " 아니...뭘 하기에 이렇게 많이 나와...에어컨 수십 대를 틀어놓나..." 나는 굉장히 많은 액수가 찍힌 고지서를 보고 의아해했다. 하지만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었따. 나는 고지서를 우편함에 꽂아 놓고는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방으로 뛰어갔다. 나는 방문을 열고 들어와 젖은 양복을 모두 벗어 빨래함에 던져놓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닦으며 방바닥에 앉았다. " 이런 게...나쁘구먼.....비 오는 날은 씻지도 말라는 거야...." 나는 문을 열어놓고 세찬 비가 들이치는 수돗가를 보았다. " 에라...모르겠다...오늘은 그냥 자자..." 수건으로 대충 머리의 물기를 제거한 나는 걸레를 들고 방바닥에 떨어진 물기를 닦았다. 그리고 이불을 깔아 바로 자리에 엎드렸다. 책이라도 볼까하는 마음에 베개 머리 앞으로 책을 집어왔다. 하지만 며칠 회사에서 야근을 했더니 피로가 누적되어서인지 나는 한장을 넘기지 못한채 곧 잠이 들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잠을 자고 있을때, 언제부터인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 흐흐흐.." 소리는 굉장히 작았다. 하지만 나는 굉장히 깊은 잠에 빠져있었음에도 눈이 번쩍 떠졌다. " 흐흐흐.." 엎드려 있는 나의 눈앞에 누군가의 발이 보였다. " 흐흐흐.." 끊이지 않는 소리. 나는 눈을 뜬 채 또다시 온몸이 경직되어오는 것을 느꼈다. " 흐흐흐.." 턱을 받치고 있던 양손도 움직일 수 없었다. 단지 내 눈앞에 있는 허연 누군가의 발만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 흐흐흐흐.." 나는 터질 것 같은 심장박동을 느끼며 조금씩 위로 고개를 들었다. 흰 발을 따라 나의 시선은 천천히 누군가의 몸을 타고 올라갔다. 핏기 없는 허연 다리를 지나 자주색 치마가 보였다. " 흐흐으아하하.." 웃음소리 같았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크고 이상하게 변했다. 나는 떨리는 턱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자주색 치마를 지나 자주색 윗옷이 보이기 시작했다. 굳어진 목을 들어올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 하하하아헤헤헤헤.." 점점 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자주색 윗옷을 지나자 허연 목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얼굴을 알 수 있었다. " 헤헤헤헤헤헤헤헤헤." 자지러질 듯한 웃음소리였다. 나는 점점 고개를 들었다. 허연 목을 지나 턱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빨간 입술. 하얀 코. 그리고....그리고....그녀의 눈. " 헤헤헤헤에그크크크크." 심장이 얼어붙을 것 같은 소리. 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그대로 자리에 엎드려 있었다. 목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보고 있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 크크크크으으아아아아악!" 갑자기 그녀가 나에게 얼굴을 들이댔다. 나는 목구멍 아래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비명을 질렀다. " 으악!" 눈이 번쩍 뜨였다. 꿈이었다. 나는 곧바로 일어나 방안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온 몸은 땀으로 젖어있었다. 나는 식식거리며 일어나 앉았다. ' 이건 꿈이었어...꿈이었어...꿈....' 나는 스스로를 다잡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나 현실 같았다. ' 이게 그....가위눌렸다는 건가....' 일반적인 일이었다. 가위에 눌린다는 것은 지극히 일반적인 일이었다. 나는 벽에 기대 고개를 숙이고 앉아 허탈한 듯 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 으으...헤헤...르륵..." 작으면서도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순간 긴장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 으으으...르륵..헤...." 방안엔 아무도 없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이 소리는 벽에서 들리고 있었다. 내 방 맞은편 방에서 들리는 소리였던 것이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새벽 4시. 꼭두새벽에 나는 소리치고는 너무 이상했다. 나는 벽에 귀를 대고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으으으...마는 넌....국 전부 다..." 두 사람이 내는 소리 같았다. 나는 좀더 귀를 기울였다. " 혼.......금만.....도 다른.......으으....수 있....."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소리였다. 나는 벽에서 귀를 뗀 채 곰곰이 생각했다. ' 아무래도 내가 귀신 꿈이나 꾸고 가위에나 눌리고 이러다 보니 생각이 온통 이상한 쪽으로 가는 모양이군.....아마 TV소리일거야...' 더 이상 다른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다시 자리를 펴고 이불에 누웠다. 그리고 옆방에서 나는 소리 중 들었던 것을 하나하나 조합해보았다. ' 말도 안돼.....설마.....내가 미친거야...'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출처 : 붉은 벽돌 무당집 작가 : ba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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