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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단편,브금]벽면TV
게시물ID : panic_155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tarDream
추천 : 7
조회수 : 288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1/05/18 10:06:14
(1) 거무틱틱 하고 거친 손이 만 원짜리 한장한장 세기는 모습이 마치 영화 속의 슬로모션처럼 느리게 눈 속에 잡혀 갔다. 아주 능숙하고 습관적인 모습이었지만 내게는 아주 중요하고도 귀중한 순간이었다. 이윽고 20장을 손 아귀에 쥐자 그 손은 퉤퉤 침을 묻혀가며 빠른 속도로 다시 한번 스무 장의 만원짜리를 재 확인한다. “아, 네. 감사합니다.” 내가 고개를 까딱 숙이며 돈을 받자 주인장 아저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유, 이 좋은 텔레비전을 고물상에 맡기시다니요. 이거 되 팔면 적어도 두 배는 받을 수 있을 텐데 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듯 그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되 팔 것을 권유했지만 난 웃으면서 공손하게 대답했다. “사정이 있어서 그래요, 아저씨. 이거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파지 마시고 꼭 분리해서 고물로 처리하세요. 아셨죠?” 난 주인 아저씨께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하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래도 미심쩍어 이십 만원 중에 이 만원을 떼어 그의 호주머니에 찔러 주고서야 안심할 수가 있었다. 더운 영기를 내 뿜으면서 달리는 버스의 차창 가에 걸 터 앉으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아침에 단정하게 빗어 올린 앞머리가 창문 사이의 센 바람에 정신 없이 휘날린다. 기분이 좋았다. 이제 모든 게 끝난 것이겠지. 그 녀석도, 그리고 그녀도…… (2) “어때? 맘에 들어?” 성준의 거들먹거리는 듯한 말투에 난 대화의 앞부분과 뒤 부분을 뒤바꾸며 일부러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혹시나 무의식 중에 흘러 나올 수 있는 흥분이 녹아있는 목소리를 감추기 위해서였다. “음. 괜찮네… 이 정도면.” 지금 내 눈 앞 벽에 걸려 있는 텔레비전은 보통 괜찮은 정도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홈 씨어터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벽면 텔레비전이었다. 과연 조그마한 내 방의 벽이 이렇게 커다란 스크린을 소화 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난 의식적으로 헛기침을 한번 해대며 다시 한번 그것을 흘깃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아까 얼마라고 했지? 30만원?” “으응. 그래. 왜 그 가격이 비싼 것 같니? 아닌데…” 가격이 너무 높아 깎아달라는 의미로 가격을 되 물어 본 것이 아니었다. 거의 새것과 다름 없는, 메이커도 국내 유명 브랜드에서 새롭게 출시한 이 벽면 TV를 겨우 30만원으로 나에게 양도해 준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확인이고 되새김이었다. 처음 이 녀석으로부터 자신의 TV를 30만원에 살 것이냐는 제안에 난 믿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부셔졌거나 어디 큰 흠집이라도 생겼나 보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나의 그런 추측은 TV를 보는 순간 무참하게 깨져버렸다. 당장 30만원이라는 현금이 내 수중에 없긴 하지만 엄마에게 조르면 그 정도 돈이면 가불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정도의 TV면 30만원이 아니라 50만원이라고 해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일단 이런 고급 제품을 집에 들여 놓기만 한다면 집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한층 고급스러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단 돈 30만원에 매번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이중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런 저런 행복한 상상에 잠겨 있는 내게 그의 머뭇거리는 다음 말은 마음 속으로 쾌재를 부르게 했다. “으으응… 그러면 좋아. 이 이상은 안돼. 그럼 20만원에 줄게. 난 이미 원가의 절반도 한참이나 넘게 손해 봤단 말이야.” 난 의미 심장한 미소를 배시시 지으며 그의 제안을 흔쾌히 승낙 했고 돈은 이번 주 안에 온라인으로 보내 주기로 했다. ‘이 녀석. 평소에 잘난 척만 하더니 나에게 이런 수재를 안겨주다니, 기특한 놈.’ 이 정도 되는 TV를 구입한다면 작동법 정도는 상세히 알아둬야 할 것 같았다. 물론 조금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런 벽면 텔레비전을 얻게 되는 데 뭐가 부끄럽고 뺄 일이란 말인가. “그런데 성준아.” 난 별다른 생각 없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바로 그 때, 나의 목소리를 듣고 반응을 보이기 바로 전, 그 짧은 순간을 노칠 수가 없었다. 가져가기 위해 반쯤 아래로 기울어뜨린 그 텔레비전을 너무나 슬픈 눈, 그 커다란 텔레비전보다 더욱더 깊고 커 보이는 눈 속에 담겨져 있는 슬픔의 호수를. 그의 슬픔에 잠식해 있는 눈빛을 보는 순간 난 마치 한 순간에 굳어버린 석고상처럼 한 동안 그에게서 눈을 때지 못했다. (3) 하루 종일 책상과 잡동사니들을 이리저리 옮겨 텔레비전이 놓일 자리를 만드느라 온 몸이 다 콕콕 쑤셔 왔지만 멋들어지게 벽에 걸려 있는 텔레비전을 보니 가슴이 따듯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마치 어렸을 적 조립용 장난감을 사기 위해 몇 달 동안 푼돈을 모아 끝내 문방구에서 그것을 구입하고 밖으로 나오는 그 순간이랄까. 드디어 모든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자 해일이 몰려 들 듯이 한꺼번에 피곤이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커다란 TV를 산 기쁨에 하품을 몇 번씩이나 한 후 내가 피곤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자리에 누웠다. 생각 같아서는 불을 켜 논 채 잠이 들 때까지 TV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었지만 한달 뒤에 나올 전기 세를 탓하며 불을 껐다. 한참 동안 단잠에 빠져 있을 때였다. 콧등을 중심으로 무엇인가가 간질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난 별 것 아니라고 판단하고는 등을 돌리고 배게 밑에 손을 껴 넣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내 손가락에는 너무나 섬뜩해 단잠을 단번에 날려버릴 듯한 끔찍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손 가락 마디마디마다 길고 가느다란 끈들이 느껴져 왔다. 그 끈들은 단순히 몇 가닥이 아니라 수십 아니 수천 개 일지도 몰랐다. 방 구석에 살짝 열어져 있는 창문 때문인지 그 가닥들은 너무나 차가워 온 몸이 움찔거렸다. 이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보다는 처음 손 끝에 닿았던 그 섬뜩했던 거부감들이 머리 속에서 점점 선명하게 다가왔다. 겨드랑이 사이로 끈적끈적한 식은 땀이 서서히 흘러내려갔다. 극도로 긴장한 오감 덕택에 식은 땀이 어느 길을 타고 어디로 떨어졌는지 선명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난 침착 하려 애썼다. “괜찮아. 아무것도 아닐 거야. 그래, 적어도 움직이지는 않잖아.” 난 짧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 침대 밑에 집어 넣었던 손을 조심스럽게 빼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그 때 손을 넣은 그 대로 잠들었어야 만 했다. 어찌된 일인지 그 수백 개의 가느다란 끈들은 어느 새 내 손가락과 얽혀 버렸는지 그 징그러운 뭉텅이까지 통째로 흘러 나오려 했다. 간신히 진정시켰던 가슴은 이전보다 더 세게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내 이마 끝에서부터 식은 땀이 송송 맺히며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느껴져 왔다. 숨이 턱 막혀 왔다. 도저히 배게 밑에서 손을 뺄 자신이 없었다. 만약 손을 뺀다면 그 징그러운 가닥들이 같이 빨려 나와 꿈틀거리며 내 목을 쥐어 틀 것만 같았다. 힘을 주었던 오른 손에 힘을 오히려 뺐다. 힘을 줄수록 그 가느다란 끈 뭉텅이들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져 견딜 수가 없었다. 그대신 다른 대책을 간구하기 위해 손을 그대로 둔 채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서서히 돌렸다. 하지만 그 순간 난 끔찍한 장면과 함께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둠 속임에도 불구하고 벽에 걸려 있는 스크린에서 시뻘겋게 빛나고 있는 긴 머리 여인의 충열된 두 눈동자를. 눈동자가 내 의지대로 움직임을 알고 눈을 떴다. 아직도 빛이 거의 보이지 않는 저녁이었다. 몇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 만 하루가 훌쩍 지났을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됐건 일어나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뒤척거렸다. 그 순간 식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버린 배게 커버가 불쾌하게 볼에 전달되어 왔다. 난 좀 전의 그 끔찍한 일이 생각나 본능적으로 오른 손을 움찔거렸다. 다행히 그 징그럽고 거부감이 물씬 느껴지는 기다란 끈 뭉텅이들은 사라진 듯 했다. 난 누구한테 들킬 새라 짧게 안도의 한 숨을 셨다. 그러나 바로 그 후 난 몸을 움찔거렸다. 아주 미세하고 거의 느낄 수 없었지만 검지 손가락 끝에서 몇 가닥의 얇고 기다란 끈이 만져졌다. 이미 바짝 말라버린 목 속으로 소량의 침이 넘어가자 식도가 타버릴 듯이 아파왔다. 무의식 적으로 두 다리가 뻣뻣하게 굳어버린 양 사방으로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난 더 이상 이 끔찍한 공포를 느끼기가 싫었다. 이대로 어떻게 서든지 잠들어 아침을 느끼고 싶었다. 지금 이 상황이야 어떻든 빨리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나 내 본능은 그렇지를 못했다. 너무나 긴장한 탓인지 날카롭게 곤두서 있는 촉각은 등 뒤에서부터 느껴져 오는 그 시선을 너무나 확연히 느끼고 있었다. 난 무시하려 눈을 꽉 감았지만 그 시선의 강도는 강해졌다가 약해졌다 가를 반복하며 틈만 보이면 목을 휘감아 버릴 듯이 번뜩였다. 그리고 그 끈끈하고도 불쾌한 시선은 내 온 몸을 향해 뒤를 돌아볼 것을 유혹하고 있었다. 그 유혹은 어떠한 달콤한 조건이나 내 감성을 자극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나를 해하겠다는 일종의 협박이었다. 나의 연약한 몸은 그 협박에 일제히 반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고개는 아주 서서히, 멈추지 않으며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귀 끝에 고인 식은 땀이 이내 배게 시트로 떨어지는 순간 내 눈은 벽에 걸려 있는 까만 스크린과 마주치고 말았다. 그리고 나를 향해 금방이라도 뛰쳐 나올 듯한 모습을 한 긴 머리를 풀어 헤친 한 여인의 모습도. 난 눈도 깜박이지 못한 채 한참 동안 그녀의 충열된 눈을 바라봐야만 했다. 움직이고 싶었다. 입을 열어 무엇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뻘건 두 눈 동자는 그런 나의 행동을 거부하고 있었다. 몸이 딱딱한 나무 토막처럼 굳어버린 상태에서 나의 눈은 서서히 초점을 찾기 시작했고 그 귀신의 모습을 상세히 살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곧 이 귀신의 모습이 많이 낮익은 모습이라는 것을 생각해 내게 되었다. 그런 내가 내 방이 부서져 나갈 듯한 커다란 함성을 지름과 동시에 몸을 벌떡 일으킨 것은 그로부터 약 2시간 후였다. 몸이 제대로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나는 아직까지 뻣뻣하게 굳은 다리를 억지로 이끌며 전화기가 있는 곳으로 몸을 질질 끌다시피 옮겼다. 그리고 빌어먹을 성준이의 집 전화번호를 떨리는 손가락으로 눌러댔다. “여보세…” 성준의 잠에 취한 듯한 목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난 가다듬지 않은 목소리로 급하게 그의 말을 끊었다. “너… 그 TV 뭐야.” “어..어?” 2초도 되지 않는 짧은 성준의 음성이었지만 난 떨려오는 그의 목소리로부터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이 녀석은 TV 이야기를 언급하자 긴장하고 있었다. 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분명 내가 경험한 믿기지 않은 얘기를 하면 이 녀석은 분명 오지 않으려고 할 것이 뻔했다. 그렇다면 이 녀석에게 안심을 안겨주면서 우리집까지 오게 만들어야 했다. 난 재빨리 호흡을 가다듬으며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TV가 왜 잘 안나와?” 성준은 설명서를 찾아보라는 둥, 자신은 기계 쪽은 잘 모른다며 오지 않으려 했지만 내가 우정을 핑계 삼아 화를 내는 척을 하자 마지 못해 당장 오겠다고 했다. 성준에게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지금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겪은 것에 대한 확실한 변명이 필요했다. 그리고 혹시 매일 밤마다 이 짓을 당해야 한 다는 공포감에 대해서도 탈출하고 싶었다. (4) “왜, 어디가 어떻게 잘 안되는데?” 난 아무 말 없이 그를 방 안에 들이고는 문을 닫았다. 그리고 낮고 침착한 음성으로 함음절 한음절을 강조하며 그에게 물었다. “나… 여기서 여자를 봤어… “ “응…? 어디서? 누구를?” 여자 얘기를 꺼내니 확실히 이 녀석이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여기서 그 여자 얘기를 확실히 집고 넘어가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찌됐건 자초지종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네가 저번에 여자 친구라며 보여준 사진의 주인공.” “….뭐? 어디서?” 역시 성준은 적잖게 당황하고 있었다. 그는 시선을 어디로 둘지 몰라 이리저리 두리번 거렸고 그의 왼 손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난 충분히 그의 심정을 읽을 수 있었지만 짐짓 모르는 체 하고 그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보여 줄게.” 난 서두르지 않는 걸음으로 방 문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전등의 스위치를 내렸다. 팟 거리며 불빛이 사라지는 순간이 너무나 섬뜩하게 느껴졌다. 순식간에 방 안은 조금 전과 비슷한 느낌의 바람이 한번 휙 불어댔다. 난 긴장한 탓에 또 다시 나무 토막처럼 뻣뻣하게 굳어져 버리는 다리를 꽉 쥐어대며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 앉았다. 또 다시 그 장면을 봐야만 한는 것일까… 과연 이 녀석에게 그녀를 보여 주는 것이 안전한 행동일까… 찜찜하고 끈적거리는 기운이 방 전체를 휘감아대기 시작했다. 갑자기 사라져 버린 빛에 대한 적응이 조금씩 되어가고 있을 때였다. 벽에 걸린 커다란 스크린이 부르르 떨어댔다. 그 진동이 벽을 타고 내게도 전해져 오자 너무나 섬뜩해 화들짝 놀랐다. 날카로운 칼이 온 몸을 휘젓고 지나간듯한 불쾌함과 거부감이 밀려들었다. 그 스크린의 화면은 마치 강물이 출렁이 듯 조금씩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방 안에 가득한 그 이상한 기운들이 모두다 그 곳에서 세차게 뿜어져 나오는 듯 했다. 그리고 그 울렁거리는 스크린의 튀어나온 부분은 한 여인의 형체를 만들어갔다. 시뻘겋게 충열된 그녀의 눈과 함께. “헉…!” 난 성준을 바라보았다. 그도 적잖게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나보다 더 충격을 받았지 않았을까? “이…이건…” 성준은 입을 떡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오히려 입가에 침까지 질질 흘렸다. 난 그런 그의 행동과 스크린을 통해 적잖은 두려움을 느꼈지만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한 후 입을 열었다. “성준아… 어떻게 된거니?” “지…지현아… 너…” “지현?” 그녀의 이름은 지현이었다. 스크린 속의 지현은 공포스러웠지만 슬픈 눈으로 성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검은 바람이 한번 휙 불자 그녀의 기다란 머리카락이 커다랗게 출렁거리며 갑자기 머리카락의 양이 많아져 갔다. 그 머리카락은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점점 많아져 가며 방을 점점 가득 차 갔다. 그 검은 머리카락의 일부가 내 손가락에 닿는 순간 난 흠칫 놀라며 몸을 움찔거렸다. 조금 전 침대에서 느낀 수 만가닥의 가느다란 끈의 느낌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그럼 그 때 느낀 것들은 그녀의 머리카락이었나?’ 그녀의 수 많은 머리카락들은 단순히 불어나고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머리카락은 바닷물과 같이 심하게 출렁거리며 성준을 서서히 감싸고 있었다. 성준은 그런 머리카락들의 움직임을 저지 하지 않고 눈을 감고 조용히 심호흡을 했다. “잘 들어. 니가 생각하는 그런 것 맞아. 그녀는 내 여자친구 지현이야. 우리 집에 놀러온 지현은 내가 성관계를 맺자는 것에 대해 심하게 거부반응을 보였지. 그러는 와중에 몸싸움이 벌어졌고 내가 밀치는 바람에 머리가 침대 모서리에 부딪친 거야. 병원에 데려가기에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렸고 난 무서웠지. 그래서 그녀의 시체를 산 속에다가 같다 버렸어. 그런데… 내 여자친구가 죽은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줄 만 알았던 난 너무나 바보였고 인간이 아니었어. 으윽…” 지현은 바로 성준의 죽음을 원하고 있었다. 자신의 수 많은 머리카락들을 이용해 성준의 목덜미를 서서히 죄어갔다. 성준의 얘기는 계속되었다.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갈 줄만 알았던 그는 오산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녀가 죽은 날 그 모든 것을 상세히 바라보고 있었던 벽에 걸린 TV는 밤만 되면 지현의 목소리와 함께 그날 밤 일어난 일을 TV 재 방송을 하듯 계속해서 보여주는 것이었다. 기계적인 문제가 없는데도 자꾸만 이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자 그대로 폐기 처분하기가 아까워 나에게 헐값에 팔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날 부른 것은 정말 잘했어. 아마 오늘 내가 오지 않았다면 필시 그녀는 너를 죽이려고 했을 거야. 내 말 잘 들어. 내가 죽게 되면 이 TV는 꼭 갖다 버려. 고물상이든 어디든 다시 되팔 수 없게.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희생자가 계속 생길꺼야…” 그녀의 머리카락들로 감싸이자 성준은 지현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되는 듯 했다. 난 공포에 질려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크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들은 서서히 성준의 몸을 덮어나가기 시작하다니 커다란 누에 고치와 같은 덩어리를 만들어 냈다. 그 검은 색의 덩어리는 그녀의 의지에 의해 점점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서…성준아.” 난 그저 성준의 이름을 부르며 바닥에 주저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성준의 몸은 서서히 벽면 TV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영화에서 TV 속으로 사람이 빨려 들어가듯 출렁거리는 스크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난 머리가 깨질 듯한 충격을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그녀의 처음이자 마지막의 높고 떨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이제 넌 영원히 나와 함께야……” 난 그녀의 시체가 묻어 있는 곳을 경찰에 신고했다. 그리고 성준의 죽음에 대해서 함구하기로 했다. 그렇지 않는 다면 어떻게 이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로부터 일주일이 흘렀다. 그 끔찍한 일로 인해 며칠간 악몽을 꾸며 고통스러웠지만 역시 시간이 흐르자 조금씩 무덤덤해 지는 것 같았다. 지금의 난 그 때 일의 공포에 무덤덤해 진 채 버스 뒤 자석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쐬고 있을 뿐이었다. 순간 내 엉덩이 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이미 읽고 난 교차로였다. 무의식 적으로 교차로의 몇 장을 넘기던 나는 시멘트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내 시선이 가 있는 부분에는 유명 국내 브랜드 벽면 TV가 헐값 50만원에 판다는 내용과 함께 내가 팔았던 고물상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제기랄…” 벌벌 떨려오는 다리를 억누르며 핸드폰으로 적혀있는 전화번호를 꾹꾹 눌러댔다. 그녀의 빌어먹을 끔찍한 목소리가 귀 고막을 연하게 울린다. -이제 넌 영원히 나와 함께야… 출처 : 붉은 벽돌 무당집 작가 : 처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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