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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단편,브금]가위
게시물ID : panic_1550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tarDream
추천 : 5
조회수 : 238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1/05/18 10:34:12
나에겐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만이 계실뿐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는 없다. 어렸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배려해주는 마음이었던가. 아버지의 부모님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지만 한번도 물어본 적 없었다. 다만 외할머니는 아프셔서 앓다가 돌아가셨다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나는 외할머니를 뵌적이 한번도 없다 하셨다. 내가 가위를 본격적으로 눌리기 시작한때는 중학교 3학년. 난 아직도 그날 밤의 가위를 잊을 수가 없다. 그 밤에 나는 처음으로 참을 수 없는 고통과 벗어나려는 필사적인 몸부림 그리고 나를 뒤엎는 시커먼 두려움과 헤어날 수 있다는 가냘픈 빛들이 한데 범벅이 되어 형용할 수 없는 색깔을 이루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가위에 깨고는 난 헤어났다는 안도감에 하지만 여전히 재빠르게 뛰고있는 심장을 부둥켜 안고 떨고 있었다. 그런데.. '아..? 이 느낌은 뭔가 낮이 익다...' 무엇이였던가. 가위가 무엇이였는지도 몰라 내가 방금 경험한 것이 무엇이였나, 혹 가위가 아닌가, 의심했을때 그 경험이 낮익다고 생각이 든건.. 옆에 자고 있는 두 여동생들을 보았다. 새근새근 잘도 잔다. 한 방에 천국과 지옥이 공존한다. 무사히 잘 자고 있는 여동생들을 보니 안심이된다. 지옥같은 경험은 나 혼자면 됐다며 생각해나갔다. 난 사실 유치원때부터 가위에 눌렸었다. 너무 어린터라 그 느낌이 뭔지 몰랐지만 뭔가 딱딱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이였다. 분명 느낄 수 있는 거란것은 뜨거운 것, 차가운 것, 간지러운 것, 싸고싶은 것, 약간의 배고픔과 배부름정도였던 아이에게 복합적인 느낌..아니 감촉이라 해야 더 어울릴 가위라는 것은 너무나도 큰 경험이기에 딱딱하고 부드러운 느낌뿐이라는 것만을 기억하게 만든건가. 어쨌든 결론이 났다. '난 유치원때부터 가위에 눌려온거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쉴새 없이 가위에 눌렸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가위에 눌리느라 미칠 것 같았다. 어느샌가 나의 다이어리에는 가위에 눌린 날에는 노란색 색연필이 원을 그렸고, 그 안에는 노란 원 안에는 가위에 눌린 횟수가 기록되었다. 기록..하룻밤에 17번... 고등학교 삼학년때의 일이다.. 심지어는 학교에서 쉬는 시간 10분에 책상에 잠깐 엎드려 자고 있어도 가위에 눌렸다. 깨고는 무사한 친구들과 떠드는 소리에 나는 안도감이 드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도리어 짜증이 났다. 젠장!! 왜 나만 가위에 눌려야 하는거야!! 가위에 눌리지 않는 날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하룻밤에 눌리는 가위의 횟수가 점점 늘어가기 시작할때 난 여자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울음소리는 너무나도 구슬퍼서 나는 가위에 눌리면서 함께 운적도 많았고, 그 우는 목소리는 여자아이의 울음소리로 마치 엄마와 떨어져야만 하는 아이의 애달픈 울음과 같았다. 난 가위에 눌리는 괴로움에 감정전이가 될 것 같은 슬픈 울음도 더해져 괴로움과 스트레스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어느날인가.. 나는 가위에 눌리는 도중에 눈을 뜰 수 있었고, 내 눈앞에는 무엇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여자...다.... 목소리....의...주인..공...? 귀신으로 생각했던 이 여자는 바람이 없는 내 방 책상에 앉아 머리를 휘날리고 있었고, 때로는 벽에서 얼굴만 내밀어 자고 있는 내 모습을 훑기도 했다.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나타난 적은 없지만 분명 그 여자아이의 울음소리는 이 여자의 울음소리였을 것 같은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때로는 내 침대 옆에서, 때로는 천정에서, 때로는 창틀에서 여전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날 보고 있는 여자... 하지만 전혀 두렵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삼년 가까히 눌린 가위의 위력인가..인간의 면역성과 적응능력이란.. 그리고 언젠가 나는 고등학교 삼학년이 되어있었다. 어느날이였다. 그 날은 친구들의 얼굴속에서 이상한 것들이 발견되었다. 아..젠장..이..이건 또 뭐야.. 친구들의 얼굴속에서 무엇인가가 자꾸만 읽혀지게 되었다. 점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과거을 알아 맞추고, 미래가 보이고.. 고등학교 가을에 축제가 있었는데, 우리반은 '점을 봐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날 내세워 많은 양의 돈을 모은 적도 있었다. 다른 학교에서 놀러온 어떤 남학생들은 장난으로 본다고 그랬다가 "뭐 이런 년이 다있어!"라는 욕설을 남기고 자리를 일어나기도 했다. 슬펐다.. 내가 귀신이냐.. 보이는데 어떻게 하란 말이냐. 길거리에서도, 버스정류장에서도 수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내 의지에 걸맞지 않게 그들의 과거와 미래를 읽어야 했다. 그 후에 난 더 희한한일을 겪게 되었다. 잠을 자고 있는데 내게서 내가 빠져나가는 느낌도 들었다. 유..체..이탈...? 설마.. 하지만..곧 그게 사실이란 것을 깨달았다. 토요일 오후 신나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토요일의 신나는 낮잠.. 그 날 나는 나에게서 완전히 빠져나가 부엌으로 갈 수 있었고, 잠에서 깨어나 부엌으로 갔을때는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가 일어나면 먹고 나가라고 차려놓은 반찬은 분명 아까 본 반찬들이였다. 일회용 김의 봉지는 상표까지 같은..김..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가위에 눌린다고 털어놓았다. 밤에 가위에 눌린다고..오래되었다고. 하지만 자세한 내용은 전혀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 미친 혹은 귀신들린 딸이라는 건 가위보다 참을 수 없었다. 그후에 우리집에서 아버지 사업이 잘되라는 굿을 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굿의 주인공은 바로 나였다. 오랫동안 가위에 눌렸다는 한마디에 굿을 한것도 신기했지만 나때문에 굿을 했다는 말씀을 하시며 덧붓인 어머니의 말씀은 날 더욱더 놀라게 하였다. 어쨌든.. 굿이 있었던 날 우리집에 무당이 찾아왔다. 아파트에 무당이라니 뭔가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어 큭 웃어댔다. 그 무당이 무서운 눈으로 날 보며 말한다. "네가 가위에 눌리는 애로구나" "네.." (분명 앞에 '헉'이 붙어야 하리라) "너 가위에 눌리면 형체를 보지?" "아..네..." (분명히 앞에 '헉헉'이 붙어야 하리라) 그리고 굿이 시작되었다. 무당 아줌마는 대단했다. 곧이어 귀신이 무당의 몸에 들어왔다고 했고, 무당은 날 쳐다보았다. "내가..이때까지..너...가위눌렀어.." "아..으으..." "내가..너 학교까지..따라가서..가위 ...눌렀다?!.." "아.으으.."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그 이후의 기억은 없다.. 그때부터 얼마동안 가위에 눌리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가끔씩 가위는 점점 돌아왔다. 하지만 하룻밤 사이에 가위를 눌린다거나, 여자가 보인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난 창문여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견디지 못해 호주로 유학을 떠났지만, 가위는 호주에서도 계속 눌리게 되었다. 난 열심히 공부했고, 다른 아이들을 잘 따라잡았다. 내가 잘 따라가는 것 보신 부모님은 동생들 둘도 유학을 보내셨다. 얼마 후 나는 동생들과 살면서 희한한 일이 생기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는 여자애들 셋이서 살며,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일상생활과 고민을 터울없이 얘기 했는데, 난 가위에 대한 얘기도 차츰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막내도 가위에 대한 얘기를 했다.. 마..막내가 가위에 눌린다...!! 난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지옥같은 경험을 막내가 하다니 젠장!! 젠장!!!! 젠장!!!!!!!!!! 다행이 둘째는 단 한번도 가위에 눌리지 않았고, 막내는 소리를 듣거나 형체를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막내가 가위에 눌린다는 건 참을 수 없는 고통이였다. 젠장!! 젠장!!!! 젠장!!!!!!!!!!!! 그때부터 막내와 나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내가 가위에 눌리는 날에는 막내가 눌리지 않고, 막내가 가위에 눌리는 날에는 내가 가위에 눌리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난 어머니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아야만 했다. 막내가 가위에 눌린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던 것 처럼, 우리의 얘기를 듣고 마음아프실 어머니의 마음을 배려해 세부사항까지 조목조목하지는 않았지만, 난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한번도 본 적이 없었던 친할머니의 얘기를 듣게 되었다. 나의 친할머니는 신내림을 받지 않아 아파서 돌아가셨다. 신이 내리면, 신내림이라는 것을 받아 무당이 되는 것을 택해야 아픈 것이 사라지게 되는데, 나의 친할머니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괴롭게 앓다 서서히 사라지는 죽음을 택하셨지, 신내림을 받아 무당이 되는 것을 택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사람에게 한번 신이 내리면 그건 대대로 특히 삼대까지 그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한다며 어머니는 이야기를 이으셨다. 어머니의 남동생, 다시말해 내가 삼촌이라 부르는 사람도 뭔가 범상치 않은 분인데, 어느날 버스를 타고 가다가 우리 어머니를 보시고는 "누나. 지금 누나한테 귀신이 붙었으니까 어서 기도해" 하시며 고개를 돌렸다고 한다. 얼마후에 어머니는 동에 시장에 찬거리를 사러가다가, 천집 앞에서 발걸음이 머물게 되었는데, 어머니는 기억에 없다고 하시나 나중에 함께 시장에 간 작은 엄마의 입을 빌어 알게 되었다 한다. 어머니는 천집 앞에서 정신이 나간 것 마냥, 천집에서 천을 파는, 주인으로 보이는 아줌마에게, 남편이 오토바이 사고가 날것이니 지금 당장 전화를 해 남편보고 조심하라고 이르라며 미친듯이 소리를 지렀다 한다. 천집의 아줌마는 미친사람이라며 소리를 더 높이 지르며 어머니를 몰아내었고, 옆에 있던 작은 엄마는 어떤 영문인지도 모르고 어리버리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한다. 다음날, 천집 아줌마의 남편은 정말로 오토바이 사고로 죽게 되었고, 그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다시는 그 시장으로 지나다니지도 않았고, 멀어도 다른 길을 택해 걸어다니곤 하셨다한다. 그러시며 덧붙이시는 말씀은 "그게 너에게까지 갔구나..미안하다.." 어머니가 내가 고등학교때 가위에 눌린다는 소리를 들으시고는 아버지의 사업건영을 빙자하여 날 위한 굿까지 마련하셨다는 얘기는 바로 그때 들은 얘기다. 더불어 굿을 하며 정신을 잃고 아스라히 생각이 나는 것이 있는데, 나를 가위에 눌리게 하는 여자는 아버지가 어렸을 때 죽은 친척인지 친동생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동생이라 한다. 뭐..어쨌든 좋다.. 난 어렸을때부터 가위에 눌려왔지만, 또 고스란히 살아있고, 게다가 그 여자는 아버지의 친족이니 뭐 좋다.. 난 호주에서 대학교를 마치고 일을 하다 뉴질랜드로 일년 발령을 받아 현재 뉴질랜드에서 살고 있는데, 이곳에서도 역시 따라다니는 검은 그림자에서 헤어날 길은 없는 것 같다.. 가위에..후후.. 눌린다... 출처 : 붉은 벽돌 무당집 작가 : 찬밥싸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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