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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단편]몸무게
게시물ID : panic_1905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tarDream
추천 : 5
조회수 : 317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1/08/30 22:02:26
AM 7 : 00 
상쾌한 아침이다. 

햇살이 창밖을 비치고 그밖에서 새가 지저귄다. 아침 7시...기분좋게 눈을 뜬 나는 기지개를 한번 켠 다음 오늘 할 일에 대해 생각했다. 오늘은 10시 30분에 있는 수업의 시험날이다. 좀 빨리 도서관에 가서 간단히 준비를 마친 다음 시험장에 들어가야 한다. 어쨌든 벼락치기 공부는 절대로 내 스타일이 아니다. 어제 12시까지 완벽하게 공부를 마쳐놨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논리적이고 계획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나 시험전에 한번 점검해 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이불을 가지런히 개어 침대 구석에 올려놓은 후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아침에 일어나면 샤워, 커피한잔, 그리고 간단한 아침식사를 한 뒤에 꼭 거치는 절차가 있다. 바로 체중계 위에 서는 것...바쁜 날이라고 해도 잊어버리면 안된다. 나에게 있어 아침에 하는 일중에 있어서는...아니 나의 일과에서 가장 중요한 일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대학에 괜찮은 성적으로 합격하고 고향인 전주를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여러 면에서 대학이란 곳은 괜찮은 곳이었다. 단 한가지만 빼면... 최소한 내게 있어 대학, 나아가서 사람 사는 곳은 살찐 사람을 제대로 봐주지 않았다. 오티 가는 버스 안에서 옆에 앉는 사람이 없었던 것에서 시작된 나의 과체중에 대한 피해감은 표면적인 특징만으로 그 사람을 취급하는 대학이란 곳의 생활에서 점점 커져가기 시작했다. 

대학에 와서 처음으로 고백했던 여자에게 아무 이유없이 단지 뚱뚱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차인 뒤에 나는 피를 깎는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키 175에 몸무게 102kg이 나갔던 나는 3달동안의 살을 깎는 다이어트 끝에 70kg까지 감량에 성공했다. 물론 부작용이 심각했고 82kg까지 다시 올라갔던 적이 있었다. 그때 체중을 재보고 거품을 물며 기절했던 기억이 아직까지 마음속에 생생하다. 

잠시동안 긴장을 놓고 있었던 사이에 무려 12kg이나 쪄버렸다는 사실이 나를 경악케 했고 그뒤 다시 다이어트에 돌입하는 동시에 요요현상에 대한 히스테리에 가까운 불안감과 경계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내 생활의 모든 것은 체중증가에 대한 방지로 이어졌고 그날 했던 일들과 운동량, 먹은 것을 꼭 노트에 체크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루의 반성의 의미에서 무려 10만원이나 주고 고급 체중계를 집안에 들여놓고 아침마다 체중계 위로 올라가곤 했다. 디지털이기 때문에 미세한 체중의 변화까지 잡아낼 수 있다는 점이 나를 매료시켰다. 

체중 감량에 대한 고통이라는 것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다. 우선 수십킬로그램을 감량할 수 있는 동기라는 것은 거의 비참하고 괴로운 것이 대부분이며 그 살을 빼는 과정 역시도 안해본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힘든 일이다. 그리고 그 과정의 심리역시도 지나칠 정도로 괴롭고 힘들다. 따라서 정말로 병신같은 인간이 아닌 이상은 요요현상에 한두번 이상 시달리고 나면 그뒤부터는 자신의 몸무게의 증감에 지나칠 정도로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커피를 마시고 우유와 빵으로 아침식사를 끝낸 나는 방구석 침대 옆에 얌전하게 놓여 있는 체중계로 향했다. 어제까지의 체중은 69.195kg이었다. 어제는 본의아니게 시험공부에 빠져 있느라 저녁을 굶었다. 나에게 저녁 이후에 먹게 되는 야식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식사시간 사이, 특히 잠자기 전 먹는 간식은 지방으로 전환되는 속도가 빠를 뿐 아니라 그것도 모자라 체내지방의 분해도를 저하시키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녁시간 이후의 칼로리 섭취량은 없었고 반면 나는 12시까지 계속 공부를 하느라 상당한 양의 포도당을 소비했을 것이다. 어쩌면 처음으로 68kg대에 진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나는 체중계 위로 올라갔다. 숫자판을 바라본 나는 어이없음을 느꼈다. 

...72.338 kg.... 

잠시 나는 체중계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고 몇번 다시 재어 보았다. 디지털 방식이기 때문에 오차따위는 용납될 수 없었다. 혹시 전원공급이 잘못된 게 아닌가 하고 전원을 살펴보기도 하고 여러 LED표시등들을 점검해 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체중계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한참동안 체중계를 뒤져도 아무 이상을 발견할 수 없자 나는 나도 모르게 신음과도 같은 말을 뱉어내었다. 그렇다면 어제 하루동안 무려 내 몸무게가 3kg이나 늘었단 말인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말도 안돼.....말도...." 

머릿속이 텅 비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항상 내가 원하는 결과를 내주던 체중계가 나를 배신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요요현상을 겪었던 대학교 1학년때 이후로 난 한번도 내가 생각하는 몸무게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어째서...무엇이..무엇이 문제인가...잠시동안의 혼란상태에서 벗어나자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중구난방의 생각들이었지만 모두 몸무게에 대한, 증가의 원인 및 감량의 방법에 대한 생각들 뿐이었다. 그중 가장 확실하게 머릿속을 두들기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요며칠 화장실을 못갔어..." 

어떻게 어제까지의 몸무게는 멀쩡했는데 하루만에 3kg이나...단지 화장실을 안갔다는 이유만으로 몸무게가 불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따위는 생각나지 않았다. 난 미친듯이 수납장을 뒤져 맨 아랫서랍에서 관장약을 찾아냈다. 아랫배가 부풀어오를 때마다 사용하곤 했기 때문에 관장약은 항상 구비하고 있었다. 좌약 셋을 꺼내 차례로 항문에 넣고 뿜었다. 순식간에 뱃속이 부글거리기 시작하며 뱃속에 엄청난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8:00 am 
나는 창백하게 변한 내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 보고 있었다. 관장은 관장약때문에 심각한 변비에 걸리게 되는 악순환 때문에 종종 하는 짓이긴 했지만 50분동안 계속 관장되는 경험은 처음 해본 것 같다. 그만큼이나 내가 화장실을 안갔다는 이야기일까? 뱃속에 있는 것을 빼내는 동안에는 아무 생각도 할수 없었던 나는 잠시 복잡한 생각에 잠겼다. 어쨌든 그만큼 뽑아내었으니 충분히 불어난 몸무게는 없앨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나는 다시 체중계로 올라갔다. 

...72.339kg..... 

오히려 0.001kg이 늘어났다. 옷이나 다른 부분은 똑같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내 몸에서 관장 이후에 오히려 0.001kg이 증가하였다는 계산이 된다. 어떻게 된 것일까...분명히 내가 몸밖으로 쏟아낸 노폐물의 양은 3kg정도는 아니었더라도 최소한 그에 가까운 양이었다. 관장약을 세개나 사용했음에도 오히려 몸무게가 증가했다는 것이 나를 미치게 했다.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시계를 보았다. 화장실에 왔다갔다하고 정신없이 체중계를 살피는 사이에 시간은 벌써 9시 50분을 향해 있었다. 빨리 준비하고 나가지 않으면 시험시간에 늦을 것이다. 나는 정신없는 머릿속을 뒤로 하고 학교로 향했다. 

학교와 집사이의 거리는 약 4km정도 된다. 평소에는 버스를 타고 통학하는 거리를 나는 무조건 달렸다. 어떻게든 한번에 불어나버린 3kg을 없애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놈의 악마같은 지방질들! 모두 죽여버리고만 싶을 뿐이었다. 빌어먹을... 

시험을 제대로 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내 머릿속엔 온통 72.339라는 숫자만이 가득했다.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그만 백지를 내고 말았다. 그렇지만 그런 것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후 1시 20분...점심을 먹어야 할 때이다. 그렇지만 지금 밥을 먹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체중계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아니 체중계를 계속 쳐다보며 그 위에 올라가고만 싶은 생각을 계속 억누르며 옷을 챙겨 헬스장으로 향했다. 아무것도 못먹고 계속 생각만 해서인지 골이 띵해왔다. 어쨌든 다이어트 노트를 꺼내 예전에 한번 본 적이 있었던 정확한 운동시간에 대한 정보를 다시 찾아보았다. 살이 빠진 이후 1년동안 69kg을 유지하는 동안에는 찾아보지 않았던 노트였다. 


2:00 pm 
.....그렇다면 가장 좋은 운동 시간은 언제일까요? 식사 후 2시간이 지난 후 즉, 인슐린의 작용이 끝나고 지방이 분해되기 시작하는 그 시점이어야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공복일 때이구요. 운동은 그 시간뿐만이 아니라 그 강도와 지속시간이 지방의 분해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답니다. 보통 순발력을 요하는 발 차기, 역기 들기, 100m달리기 등은 무산소성 에너지(체내 에너지를 소모하는 데 산소를 필요로 하지 않는 대사활동) 대사에 의존하는 운동으로 지방이 에너지원으로 사용되지 않습니다. 

지방을 소모시키려면 꼭 오래 달리기, 등산, 에어로빅, 자전거, 수영 등 유산소운동을 해야하며 중저 강도의 운동을 20분 이상 지속해야만 비로소 지방이 활발하게 동원되기 시작하며 30분이 지나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대부분의 에너지가 지방에서 소모된답니다. 

따라서 살을 빼기 위해서는 적어도 1시간 이상의 운동시간이 필요합니다..... 

"공복에 1시간이상의 유산소 운동을 하면 살이 빠지는 것이다...그렇다면 나는 오래달리기를 두시간을 하겠어!"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하며 나는 헬스장에 도착해 러닝머신 위로 올라갔다. 속도를 10km으로 맞춘 나는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을 자주 했지만 10km로 장시간 달리는 것은 처음이었다. 솔직히 상당히 무리가 오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역시 그런것 따위는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미친듯이 달렸다.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속도를 2km정도 더 올렸다. 30분정도 달리자 온몸이 땀에 젖으며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아직 한시간도 하지 않았다. 나는 속도를 더 올렸다. 

미친듯이 달리는 나를 옆에서 같이 달리는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속도 15km로 한시간 이상 달리는 짓은 아무나 할수 있는 짓이 분명 아니겠지...그렇지만 나에게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50분을 넘어서자 젖산이 분해되기 시작하며 근육에 피로가 축적되기 시작했다. 점점 입이 벌어지고 입안이 말라왔다. 땀이 비오듯 흘러내려 티셔츠가 짜면 땀이 새어나올 정도로 젖어갔다. 

그렇게 한시간이 지나자 아예 이제는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온몸이 달리는 기계가 되어 달리고 있을 뿐이었다. 마라토너들이 달릴 때 이런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이 정지된 속에 나 혼자만이 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달릴수록 몸이 가벼워져야 하는데 달릴수록 몸이 무거워져 온다. 마치 스스로 몸무게가 늘어나는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달고 달리는 것처럼... 

갑자기 누군가 고함을 치며 러닝머신을 꺼버렸다. 

"당신 미쳤어요! 죽을라고 환장했나!" 

헬스장 관장이었다. 그렇지만 기계적으로 한시간 10분을 계속 달리던 나의 다리는 러닝머신이 꺼진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계속 달리던 나는 러닝머신의 앞부분에 머리를 부딪쳐 뒤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주위 사람들이 몰려왔다. 

"저사람 왜저래...?" 

"얼굴봐..얼굴..." 

"이상하네..." 

반정도는 걱정스러운, 반정도는 한심스러운, 반정도는 어이없다는 눈빛과 수군거림이 나를 둘러쌌다. 왜일까...지나치게 시니컬해져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그것들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역겨워 왔다. 주위사람들을 모두 뿌리치고 나는 다시 러닝머신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다시 속도계를 맞추기 시작했다. 

"이사람이 진짜 돌았나! 빨리 안내려와요!" 

관장이 정말로 화를 내며 나를 끌어내렸다. 있는 힘을 다해 그를 뿌리치려고 노력했지만 헬스장 관장의 강한 힘을 이기기는 어려웠다. 갑자기 그를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짜증이 폭발했다. 나는 미친듯이 화를 냈다. 

"아 씨발 가만좀 냅둬요! 개 좆도 모르면서 왜 지랄이야! 지금 운동을 해야된단 말이야!" 

"이새끼가 돌았네...너때문에 우리 헬스장 문닫으면 책임질꺼냐? 니가 무슨 육상선순줄 알어! 하루에 8km로 30분뛰는 새끼가 15km로 한시간 10분뛰면 죽는단말이야! 니 얼굴이나 제대로 좀 쳐다보고 이야기해! 얼굴은 곧 죽을사람처럼 되가지고!" 

갑자기 곧 죽을사람처럼 되었다는 게 무슨 말인가? 러닝머신 앞에 있는 거울을 보았다. 관장의 말이 사실이었다. 얼굴이 새하얗고 눈주변이 푹 꺼진 것이 마치 귀신처럼 보였다. 믿을 수 없어 온 몸을 둘러보았다. 어제까지와 전혀 다르게 비쩍 말라 있는 것이 얼핏 보기에도 느껴졌다. 
갑자기 이대로 계속 운동을 하면 60kg대 초반까지도 진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왔다. 나는 기쁨에 가득한 눈빛으로 다시 러닝머신으로 오르려 했다. 관장이 그런 나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며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아우...젠장....존말로 할때 꺼져라! 엉?" 

나는 관장의 말을 무시했다. 다시 관장이 날 끌어내리려 했다. 아무 망설임 없이 주먹을 쥔 나는 관장의 얼굴을 향해 그것을 날렸다. 

퍽! 

"으윽...사람 막 치네! 이게 돌았나!" 

눈은 기쁨에 차있었고 기분은 하늘을 날아오를 것처럼 좋았음에도 내 입에서는 또다시 욕설이 흘러나왔다. 

"아 좀 꺼져보라고! 내가 내돈내고 운동하겠다는데 왜 지랄이야!" 

순간 양쪽에서 내 팔을 붙잡는 누군가의 억센 손길들이 느껴진다. 그와 동시에 나에게 호의적이지는 않은 많은 말들.. 

"이사람 왜이래?" 

"시끄러우니까 끌고 나갑시다." 

"관장님 참아요. 참아..." 

"아 뭐해요? 빨리 안잡고...?"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갑자기 다시 짜증이 났다. 순식간에 미친 사람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난 단지 운동을 하고 싶을 뿐이란 말이다! 

"아 이거 안놔! 놔! 개새끼들아 놓으란 말이야!!" 

"병신아 시끄러 빨랑 안꺼져?" 

"야이 미친새끼야! 너 다시한번 우리 헬스장 오면 죽을 줄알아!" 

러닝머신앞에 서서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욕해대는 관장과 나를 끌고 문밖으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밀려 나는 결국 내가 원하는 운동량을 채우지 못한 채 헬스장 밖으로 나와야 했다. 문밖으로 나서면서 헬스장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미친듯이 두팔다리를 허우적거리는 풀린 눈빛과 하얗게 변한 얼굴이 보였다. 기분이 더러워졌다.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날 보고 웃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 

혹시 아까 내 얼굴을 보고 기분좋아했던 것은 내가 아니지 않았을까.... 


8:00 pm 
아무래도 내 능력 이상으로 운동을 많이 한 것이 맞긴 맞는 듯 집안에 들어올 때부터 제대로 서있기가 어려웠다. 몸이 엄청나게 무거워진 느낌이 들었다.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한번 한 뒤 거울을 보았다. 

난생 처음으로 내 얼굴의 광대뼈를 볼 수 있었다. 보통인 편인 나의 얼굴색이 마치 멜라닌 색소 결핍증에 걸린 것처럼 새하얗다. 드라큐라...같은 느낌? 푹 들어간 눈 아래는 분장이라도 한 것처럼 새까맣고 그 위로 튀어나와 있는 두 눈은 풀려있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치켜올라가 있는 입끝이 미미하게 떨린다. 아까 헬스장에서 거울에 얼굴을 비추어 봤을 때보다 훨씬 심각해져 있었다. 생각해보니 오늘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손을 들어 보았다. 손이 심각할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팔을 보았다. 어제까지 그래도 항상 규칙적인 식사조절과 꾸준한 운동으로 보기좋게 부풀어 있던 팔목부분의 근육이 어느새 축 늘어져 있다. 

어깨가 무겁다. 역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지나치게 많은 운동을 했던 것이 너무 힘들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체중계로 체중을 다시한번 재어 보고 뭐든 먹어야겠다. 하루만에 완전히 맛이 가버린 얼굴색....그리고 늘어진 근육과 힘없는 몸...나는 고개를 흔들어 보려고 노력했다. 정신을 어떻게든 차려 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마치 물에 젖은 듯 흐느적거리는 몸과 무엇에 짓눌리는 듯한 무거운 느낌이 계속 내가 정신을 차리는 것을 방해했다. 

...끼이익..... 

화장실문을 열고 나서는 나의 눈에 침대 옆에 얌전히 놓여 있는 체중계가 보였다. 그래...오늘 있었던 모든 일의 시작은 저것이었지...나는 천천히 걸어갔다. 아니 기어갔다. 언제부턴가 상당히 단순한 사고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왜이렇게 몸을 움직일 기운이 없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그런것을 생각할 수 있을리 없었다. 나는 지금 지극히 본능적인 동물이 되어 있었다. 먹기 위해서, 입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라는 본능 따위와는 차원이 달랐다. 오직 체중이 몇킬로그램 감량되었는지 알기 위해 살아온 듯한...그리고 그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하는 본능을 지닌 동물... 

화장실에서 체중계까지의 거리는 길어봐야 채 몇미터 되지 않는다. 그 몇미터 되지 않는 거리가 마치 몇백미터처럼 느껴졌다. 걸어갈수록 몸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어쩌면 체중계로 가기 전에 의식을 잃어버릴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나에게서 멀어져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희미해져가는 정신을 마지막으로 붙잡는 순간 체중계가 내 손끝에 닿았다. 

기적적이었다. 일어설 수 있을지 몰랐다. 있는 힘을 다해 일어섰다. 오늘의 모든 것은 결국 이것을 위해서였다. 체중계 앞에 섰다. 0.000을 가리키고 있던 체중계의 눈금이 복잡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어느 숫자에서 눈금판의 변화가 멈추는 순간 나는 희열에 가득차 웃음을 터뜨렸다. 

.....61.132....... 

하하하.......그래...이것이었다. 내가 바랬던 것은 이것이었다. 비록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을지라도...배가 고프다 못해 아예 배고픔을 잊어버릴 정도가 될지라도...얼굴이 창백해지고 광대뼈가 드러날 뿐 아니라 온몸에 뼈밖에 남지 않을 정도로 내가 야위어가도...체중계가 주는 이 10kg이상의 감량의 효과는 내게 있어 모든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이었던 것이다. 하하...다행이다. 이제야 속이 시원하다. 긴장이 풀리자 온몸이 나른해지고 배가 고파온다. 뭐라도 좀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를 먹고 나면 몸을 짓누르고 있는 지독한 피로감도 사라지겠지... 

나는 다죽어가는 듯한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띠며 마지막으로 그 숫자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눈을 체중계의 숫자판으로 돌렸다. 

......73.125..... 

"이건.........이건........뭐야! 아아아악!"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단 10여초만에 눈금이 12kg이나 올라갔다. 믿을 수 없는 눈으로 숫자판의 불빛으로 눈이 아플때까지 숫자판에 얼굴을 갖다대었다. 온몸이 불에 닿은 듯 뜨거워지며 뇌에서 퍼져나가는 당황스러움이 온 몸으로 전해졌다. 당장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도 온 몸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져 왔다. 몸을 구성하는 모든 기관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는 순간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73.126.....73.137...73.988.....75.687..........77.888.............81.912..............................101.714.............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체중계의 숫자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다리에서 힘이 빠지며 체중계에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볼썽사납게 엎어져 힘겹게 고개를 들어 내 몸을 훑어보았다. 몸이 풍선처럼 줄어들고 있었다. 내 온몸은 거의 뼈와 살이 붙을 정도였는데도 그 가죽마저도 줄어들기 시작해 핏줄과 힘줄이 드러나고 있었다. 얼굴을 만져보자 광대뼈가 아니라 이제 가죽과 뼈밖에 남아있지 않을 정도였다. 모든 것이 꿈이 아닐까...얼굴을 꼬집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에겐 얼굴을 꼬집을 기운 같은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몸이 이제 천근만근 무거워져 기중기가 내 몸을 내리누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실제로 그 기분은 물리적으로 내게 가해져 뭔가에 짓눌리는 것같은 기분이 강하게 온몸을 엄습한다. 

그제서야 나는 지독한 피로감과 몸의 무거움이 내 자신에게서가 아니라 나를 짓누르고 있는 무언가에 의해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무서운 공포감이 나를 휩쌌다. 정신없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에 보이는 것따윈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알 수 있었다. 점점 내 위에 얹혀 있는 그것의 무게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그것은 아침부터 지금까지 나를 계속 짓누르고 있었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점점 커졌으며 내가 벗어나려고 발버둥칠 수록 더욱 무거워져갔던 것이다. 첫 3kg은 내 관장, 운동, 식사거름 등등으로 무려 30kg이 넘는 양으로 증가하였다. 지금.......이....순간에도...그것....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날 짓..눌....러....없....애....고 있....는....것......이.....다........ 

.....디딕...드드득.....뿌드드득........ 

"끄으으으...끄아아아...." 

온몸의 뼈가 부서져가며 그 알 수 없는 것이 완전히 해골인간이 된 나를 짓누르기 시작하고 목구멍으로 새어나오지조차 않는 비명을 흘리며 이제 나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열려있는 화장실 문 너머에 보이는 거울이 눈에 띄었다. 거울에 체중계에서 굴러내린 내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위에서 날 짓누르고 있는 그것이 희미하게 비추어졌다. 알 수 없는 것에 짓눌려 튀어나오려는 눈의 시력을 마지막으로 집중하여 나는 그것을 살펴보았다. 


10:00 pm 
족히 3만명은 넘어 보이는 엄청난 수의 귀신들이 내 어깨에서 쏟아져 내려오며 내 온몸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것들은 날 둘러싼 채 나를 짓누르며 내게서 계속 무언가를 빼어 먹어대고 있었다. 모습도 뚜렷하지 않고 뭐라고 계속 소리지르고는 있으나 뭐라고 하는 지조차 알 수 없는 수많은 귀신들은 언제부턴가 내 어깨위에 앉아서 내 몸무게에 대한 히스테리가 최고점이 될 때를 기다려 나를 잡아먹을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 같다. 

조금만 더 여유를 가졌으면...조금만 더 몸무게 따위에 신경쓰지 않았으면... 모든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그렇지만 이제는 너무 늦었다. 고개를 들기 힘들다. 아니...고개를 들기가 두렵다. 내 온몸은 이제 정말로 으깨어질대로 으깨어져 가루가 되기 일보직전이었다. 놈들은 잔인하게도 내 머리만은 마지막 순간까지 남겨두어 내 최후의 고통을 즐기고 있었다. 제발 차라리 빨리 끝내주었으면... 

붉은 얼굴의 어떤 험악한 인상의 남자 형상을 한 괴물이 체념과 공포가 뒤섞인 내눈을 바라본다. 그리고 잔인한 웃음을 지으며 손에 들고 있는 돌도끼를 들어올린다. 

퍼억...... 

모든 것은 끝났다. 


12:00 
나는 그들과 함께 하늘을 날고 있었다. 내게 있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순간 새롭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내 어깨위에 올려져 있던 괴물들은 결국 모두 나와 같은 다이어트 홀릭 환자들이었던 것 같다. 

세상엔 너무도 몸무게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언제부터 이것이 시작되었는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언젠가 다이어트를 하다가 잘못된 습관과 가족들의 방치로 죽은 어떤 여자에게서 시작된 원한의 집단은 계속적으로 몸무게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덮쳐가며 커져갔다. 그리고 8만 7천여번째 희생자로 내가 선택된 것이다. 

그동안 무엇이 어떻게 되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들의 숫자는 서울의 밤하늘을 뒤덮을만큼이나 많다는 것이며 항상 배가 고프다는 것이다. 

몸무게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우리의 먹을거리, 그리고 우리의 식구들도 많아질 것이다.


출처 : 붉은 벽돌 무당집  작가 :  mypre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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