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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단편,브금] 선&문(Sun&Moon) 호스피털
게시물ID : panic_191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tarDream
추천 : 6
조회수 : 2726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1/09/01 20:55:45
“요번에 새로 들어온 장미영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 앤 문 호스피털은 전체적으로 깔끔했다. 검은색 격자무늬의 화강암 타일은 천장에 있는 백색등을 반사해서 현대적인 세련미를 돋보였고, 로비에 놓여진 대기용 4줄의자도 현대적으로 오와 열을 맞추고 있었다. 천장에 최신 벽걸이 TV에서는 고화질로 병자들이나 간호하는 가족들이 즐겨보는 저녁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고, 최대한 딱딱함이 배제하여 디자인된 카운터에 있던 고참 간호원은 이 신입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머, 신입? 반갑네. 난 윤미정이에요.” “난 채송이. 이름 예쁘죠? 킥,” “네, 반갑습니다.” 미정의 첫 인상은 선 앤 문의 외관만큼이나 현대적으로 미끈하고 균형잡힌 얼굴과 몸매였고, 송이도 나름대로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인상이었다. 미영은 여기서 받는 인상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아니, 만점이라면 만점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처음오는 신입에게 농담까지 섞어 가면서 환영해주는 정도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군기라고까지 할 것은 없지만 서열을 따져서 이유없이 못 살게 구는 병원도 있다는 얘기를 그녀는 들은 적이 있었다. “어? 뭐야? 새로 오신다던 그 분이에요?” 바퀴같은 것이 바닥 타일에 굴러 마찰되는 소리와 함께 약간은 톤이 높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식도 빠르네? 평소 땐 이쪽에 잘 오지도 않더만! 젋은 여자분 오신다니 너무 속보이는 거 아니에요?” 미정이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띠면서 아는 체를 했다. 그렇게 크지는 않은 체구에 단정한 머리, 볼 곳곳에 나 있는 여드름이 숫기는 없지만 성실하고 순한 느낌이었다. 휜 장갑을 낀 손에 들려 있는 끄는 수레에는 병실에서 수거한 시트가 가득 담겨 있었다. 휜 가운을 입었지만 저런 궃은 일을 하는 걸 보면 새내기 인턴일 가능성이 많았다. 휜 가운에 살짝 비친 ‘의사’라는 문구가 그걸 증명해 주고 있었다. “하핫…그, 그런게 아니고” 순한 인상에 맞게 우물쭈물 얼굴을 붉히다가 미영을 바라보고는 얼굴을 펴고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인턴 장구철입니다 만나뵈서 반갑네요.” “네, 정미영입니다…” “어려운게 있음 말하세요. 도와드릴께요.” “아, 네…” 아직은 긴장이 되서 이런 친절이 부담스럽다는 듯 미영은 어색하고 웃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어어, 이거 뭐야? 벌써 작업들어가는 거 아냐?” “어머어머…잘 됐으면 좋겠네에” “에이, 우리 미정씨 두고 바람 피우면 안되죠.” “어머머, 우리 자기 뭐 먹고 싶어?” 순진한 얼굴에서 나오는 의외의 농담을 잘 받아친 미정 때문에 카운터에 잠시 웃음이 번졌다. 미영은 여기 오기가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근심을 잠시 잊어 버렸다. “음, 여기가 약하고 주사, 거즈 등을 모아두는 데야,” 다음날은 미정이 간호사가 전반적으로 해야 할 일을 가르쳐주겠다고 나섰다. 털털하고 활발한 일상에서와는 달리 일에 있어서는 미정은 깐깐하다 싶을 정도로 진지했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확실하게 일을 처리하는 타입이었다. 약품실은 창고와 같은 느낌을 주지 않으려는 듯 상당히 밝은 조명과 잘 정리된 관물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 공간 사이사이에 노란 색 박스가 차곡차곡 쌓여있었고 그 속에는 아직 쓰지 않은 거즈와 일회용 주사기들이 슬쩍 슬쩍 보였다. 다음으로 간 곳은 문서고였다. 문서고 역시 도서관을 연상시킬 정도로 반듯하고 잘 정리되어 있었다. “진료 기록은 오래되면 여기다 보관하지. 가끔 전에 왔던 환자분들 진료 기록을 볼 때 여기에서 봐. 거기 있는 거 하나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하나 골라봐.” 진열대에는 제법 오래되서 누렇게 변한 파일에 철해놓은 기록에서부터 작년에 철해놔서 아직은 세월에 낙오된 거 같지 않은 기록도 있었다. 미영은 돌아보다가 2000년도 쯤 된 홀타지 하나를 집어보았다. 미정은 다른 거 정리할 게 있는 듯 그녀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이름은…전수아. 5년 전 파일인데도 그렇게 손을 댄 흔적이 없는 듯 깨끗했다. 파일을 열어보았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었다. 그냥 빈 파일철만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표지를 돌아보았다. 전수아. 이름은 그대로였지만 진료기록이나, 처방전같은 것은 남아있지 않았다. 누락된 것인가? “저, 이 환자는 왜 기록이 없어요?” “누군데?”아직도 뭔가를 정리하고 있던 미정은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전수아요” 정리를 한다고 부시럭거리던 소리가 딱 멈추었다. 미영은 미정의 얼굴이 그렇게까지 굳은 것에 겁이 덜컥났다. 무슨 잘못을 한 것일까? “아, 그거 누락된거야. 놔둬.” 섬뜩하리만치 싸늘한 목소리에 변명같은 여운을 남기며 미영의 손에서 전수아의 파일을 뺏은 미정은 입원실을 소개시켜주겠다고 하면서 나갔다. 죄책감과 무서움이 섞인 느낌으로 미영은 문서고를 나갔다. 예정과는 다르게 송이가 미정을 대신해서 앞으로 미영이 돌볼 환자들의 병실을 소개해 주었다. 미정은 다른 일이 있다는 것이 그녀의 말이었다. “음, 여기가 일반 환자들 입원실이야. 첨부터 중환자들 보면 좀 그럴테니까 우선은 일반환자들 중에서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 환자들부터 봐.” 병실이라는 곳의 특유한 분위기가 그렇듯, 병원 여기저기서 밴 소독약 냄새가 어떤 묵직한 기운과 섞여서 정체되어 밑바닥부터 침전된 느낌을 받았다. 병원에 누워서 크게 작게 병을 앓으며 빠져나간 생기가 모여서 응축되어 이 어두컴컴하고 칙칙한 복도에 하나하나 덩어리져 응축되어 있는 거 같았다. 미영은 이 복도를 지나갈 때의 그런 중압감과 답답함의 정체를 그렇게 정의내렸다. 병원이란 것이 병을 낫게하는 장소는 맞지만, 그에 비례해서 사람의 생명까지 슬그머니 흡수해버리는 곳이다. 휠체어를 타고 가는 병자의 모습이 어느 공포 영화에서나 보던 좀비라고까지 생각해버렸다. ‘간호사에겐 어울리지 않는 생각이지.’ 맨 처음 본 환자는 그냥 과로로 쓰러져 잠시 입원한 중년 부부였다. 그저 할 일은 링겔 용액이 떨어졌을 때 갈아주는 것과 체온 조절, 약을 갖다주는 것이었다. 실습때도 해 본 적이 있어서 미영에겐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당뇨병에 걸려서 입원치료를 받는 환자는 좀 어려웠다. 약물치료와 주사를 시간 간격으로 재 주면서 놔야 하기 때문에 요령이 필요했다. “뭐,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길 거야.” 송이가 낙천적으로 늘어놓으며 서편 복도 끝쯤으로 들어왔다. 아직 낮인데도 햇빛이 들지 않는 방향인지 어두컴컴했다. “여기는 미영씨가 첨이니까 거의 올일이 없겠지만…입원환자들 중에서는 좀 강도가 있어. 교통사고나 암 치료에서 나아진 사람이던지 말야. 알아는 둬야 하지 않겠어?” 조명도 시원치 않아서 한층 어두컴컴한 복도에 두 사람의 구두가 또각거리면서 내는 메아리가 야릇하게 묵직한 느낌을 주었다. 공포심보다는 조금 더 낮은, 그러면서도 불편한, 긴장감이라고 해야 하나? 병원이란 데에 몸 담으려고 하려면 이런 기분에 익숙해져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그녀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지만. 중환자실에서 방금 넘어온 사람들이 있는 곳답게도 여기는 아까 전에 말했던 그런 ‘침전된 활기’의 밀도가 훨씬 진한 거 같았다. 말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미영은 서편 끝 계단 근처에 문 열린 병실을 발견했다. 301호실. 보통은 문을 닫아 놓는데 여기는 많이는 아니지만 열려있다. 조금, 그저 문틈으로 빼꼼히 바라보고 있을 정도였다. 사람은 없는 듯 그 작은 틈에서 나오는 것은 어둠밖엔 없었다. 어두움과 무지가 주는 신비감이랄까. 미영은 걸음을 천천히 걸으면서(멈추면 송이가 알아챌 것이므로) 그 곳을 바라보았다. 말없이 입을 살짝 벌리고 있는 방문만이 미영을 향해 침묵하고 있었고, 미영은 아무 생각 없이 송이와 같이 업무 인수를 받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찰나, 엄마가 섬 그늘에…구울 따러어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동요소리. 7살쯤 먹었을 법한 아이가 부르는 듯한 귀엽게 굴러가면서도 어쩐지 음산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미영 자신도 어릴 때 즐겨 불렀지만, 이 아이의 목소리는 등골을 서늘하게 하면서도 서글픈 데가 있었다. 분명히 저 열린 301호실에 틈사이로 나오는 것이다. 미영이 301호실의 그 문틈으로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는 것만큼이나 분명했다. 미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 쪽에 누가 있는가 알아보려고 했다. 목을 최대한 앞으로 해서 그 문틈 사이로 다가갔다. 천천히…천천히…이제는 거의 가까워졌다. 문 앞에 다가왔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밀어 문고리를 잡으려고 했다. 2미터…1미터… “미영씨!” 송이가 미영을 부르며 오른쪽 팔뚝을 확 잡아챌 때, 깜짝 놀라서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도 그녀는 그 문틈에서 어두운 물체가 301호실의 어둠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실은 그 비명이 그것 때문인지도 몰랐다. “여기서 뭐하는 거야?” 송이가 미영을 질책했다. 미정과 같이 똑같은 표정. 하얗게 질려버린 그녀의 얼굴에 미영은 입이 굳어버렸다. “아, 아니 무슨 소리가 들려서…” 송이는 계속 그녀를 쳐다보았다. “301호실엔 들어가지마.” “네?” “들어가지 말라고.” 송이답지 않게 단호하게 내뱉고는 미영을 무시하고 중앙 현관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것을 미영은 보고 있었다. 멍하니 있는 와중에 구철이 역시 굳은 얼굴로 다가와서 말을 건넸다. “놀랐지?” 실은 그의 말이 더 놀라서 나오려는 비명을 삼켰지만 미영은 내색하지 않았다. “301호실…웬만하면, 아니 아예 안 들어가는게 좋아, 이거 진심이야.” 역시 싸늘하게 굳어있는 그의 얼굴과 눈빛. 그녀는 거기서 처음 들어왔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선 앤 문의 어떤 히스테리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느꼇던 느낌들이 비로소 병원 특유의 무거움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이 병원 모든 사람들이, 이 병원 모든 사람들이, 의사나 간호사, 심지어 환자까지도 이 중압감에 희생양이 되고 있지만 모두들 숨기고 있는 것, 집단적 히스테리처럼 모두가 드러나길 원치 않는 것. 자신만 소외된 소외감보다는 차라리 몰랐더라면 하는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그 날 이후로 미영은 301호실 근처에는 가지 않았다. 어차피 쉬운 것부터 배우는 터라 어떤 일이 생길 수도 있는 서편 쪽 환자 근처에는 가지 않았던 것이다. 일은 쉬운 편이라도 상당히 큰 병원이기 때문에 상당히 챙겨줄 것도 많았고, 그날을 제외하고는 병원은 전과 같이 상당히 말끔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미영은 그때가 가끔 생각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그 이후로 별 일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애가 불렀을 법한 그 동요도 더 이상 들려오진 않았다. 그 때 그렇게 무섭게 느껴지던 미정과 송이도 가끔씩 농담도 걸어가면서 분위기 좋게 일을 끌어나갔고, 구철은 인턴이라서 그런지 미영의 눈에 자주 띄지는 않았지만 가끔 오면서 음료수도 뽑아주고 그랬다. 미영은 곧 301호와 전수아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지워낼 수 있었다. “어, 미영씨. 그럼 수고해.” 미정은 일찍 퇴근하려는 듯 옷을 챙기며 인사를 했다. 오늘은 미영이 첫 야근을 하는 날이다. “네, 언니. 일찍 가시게요?” “어, 송이씨도 같이 어디 갈 데가 있어서. 아, 미영씨도 같이 있음 좋을 텐데. 우리 미팅하러 가거든” 새끼 손가락을 까딱거리면서 피식 웃는 미정에게 미영은 언제 그렇게 무서운 얼굴이 생겼을까하는 착각도 들었다. “아, 네…후훗. 미팅 잘 하세요.” “응, 그래. 뭐 급한 일 있으면 비상 연락으로 구철씨나 다른 의사분들 불러. 어차피 그 분들은 좀 떨어져 있지만 미영씨는 아직 처음이니까 그러는게 훨씬 나을 거야. 그럼, 수고해,” 그렇게 저녁까지 새면서 미정과 송이와 같이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니 얼추 7시가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미영은 처방전이나 그런 서류를 대충 정리하고는 카운터와 로비에 청소를 해놓았다. 가끔씩 입원 환자들의 보호자가 여기와서 TV나 보고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오늘은 왠일인지 조용했다. ‘조용하면 좋은 거지 뭐’ 워낙 일도 많고 해프닝도 많은 병원이라서 이런 흔치 않는 침묵이 미영에겐 오히려 반가웠다. 이제 땅거미가 지고 밖에는 해가 지고 있는지 병원에도 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시간을 보니 7시 50분이 좀 넘었다. 8시쯤이면 이제 일반 환자들을 보러 가야 할 시간이다. 대충 진료기록부를 챙겨들고는 동편 환자들부터 돌기 시작했다. 일반 환자들은 이제 저녁을 먹고 가족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대부분 특별히 이상은 없었고 이따금씩 진통제를 놔달라고 하는 외상환자가 있었을 뿐이다. 처음이지만 진통제를 환자의 요구대로 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요구에 정확하게 설명만 하고는 그렇게 병실을 돌아다녔다. 운동을 시키고 바깥 바람도 쐬게 하려고 보호자들이 휠체어를 끌고 복도를 가는 장면도 드문드문 보이고, 병원에 있느라고 자신의 직장에 있는 일을 핸드폰으로 처리하려고 목청을 높이는 중년 남성도 있었다. 초저녁이라서 그런지 어느 정도 사람이 있는 곳 같았다. 그렇게 초저녁은 가고 10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슬슬 인기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는 시점인 거 같았다. 이제 보호자들이 하나둘 병원을 떠나고 교대로 하는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병원은 슬슬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밤은 미영의 생각으로는 평온하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11시 20분. 처음이라 그런지 미영은 그렇게 잘 버티는 편이긴 했지만 익숙치 않은 근무만으로도 벅찬 몸으로는 밤이 깊어가면서 점점 고개가 끄덕여졌다. 몸을 쭉 펴보기도 하고 볼을 찰싹찰싹 쳐보기도 했지만 그것도 한 두 번이었다. 그렇게 자신이 졸았다는 것도 모르고 미영은 그렇게 카운터에서 꾸벅꾸벅 졸기를 20분 정도? 엄마가 섬 그늘에…굴 따러어 가면… 미영은 그 나지막한 소리가 자신의 귀에서 들려온 거 같은 착각에 화들짝 놀라서 잠을 깨었다. 이미 시간은 자정이 넘어있었다. ‘어머, 미쳤나봐. 졸다가 헛게 들리고’ 그렇게 말하면서 정신을 가다듬은 미영은 커피라도 한 잔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일이 없긴 했지만 무슨 일이 생겼는가 알아보려면 병실도 돌아봐야 한다. 진료기록부를 챙기고는 구두를 신고 2층 계단으로 올라갔다. 또각또각 그녀의 구두 소리가 병실 복도에 크다 싶을 정도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좌우로 꽉 막힌 복도에 그렇게 울려퍼진 소리가 은근슬쩍 괴기스러운 데가 있었다. 메아리로 울리는게 두 사람이 걷는게 아닌가 하면서 걸어갔다.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지만 사람은 없었다. 왠지 찝찝한 기분으로 병실을 돌아봤지만 깨어있는 병실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아무 이상도 없이 그녀는 3층으로 올라갔다. 손에 든 커피를 다 마시며 3층으로 올라갔다. 동편은 이상이 없었고, 서편은 갈까 말까 망설였다. ‘웬만하면 안 가는 게 좋아’ ‘거기는 가지 마.’ 구철과 송이, 그리고 미정의 똑같이 굳은 표정이 떠올랐다. 거부감이 들긴 했지만 그에 비례해 스릴감있는 호기심이 발동하는 것 또한 막을 수 없었다. 한번 가볼까? 어차피 걸음은 서편으로 가고 있었다. 한 사람이 걷는 지 두사람이 걷는지 모를 그 구둣소리와 함께. 3층은 미영이 느끼기엔 더욱 더 어두운거 같았다. 알고 보니 중앙에 켜져 있는 전등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백열등을 갈 때가 온 거 같았다. 이제라도 중앙 현관에서 2층을 타서 1층을 내려가면 아무 일 없이 밤을 지낼 수 있다. 그냥 끄덕끄덕 졸기도 하고, 사람들을 보다가 그렇게 교대 시간이 되면 교대해서 하루를 푹 쉴 수 있었다. 문득 미영은 선 앤 문 호스피털 사람의 신경질적 히스테리가 생각났다. 301호실, 전수아. 그 둘이 관련이 없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밀접한 관계일 것이다. ‘놔둬, 누락된 거야.’ ‘301호실엔 들어가지마. 들어가지말라고.’ ‘진심이야. 안 들어가는 게 좋아.’ 그들의 말이 떠올랐다. 그들의 눈빛은 협박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미영이 들어가지 않기를 바라는 눈빛이었고, 충고였다. 그러나 왜? 왜 그러는 거지? 어떤 비밀이 있기에 이방인이 이 비밀에 들어오기를 꺼리는 것인가? 낮에도 어두컴컴했던 이 쪽 병실은 이제는 완전히 어두움이라는 괴수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이제껏 들려오던 뾰족구두 소리가 더 커졌다. 적어도 미영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303호, 302호, 그리고… 엄마가 섬 그늘에…굴 따러어 가면… 역시 그 노래, 분명히 헛 들은게 아니었다. 어린 여자 아이의 목소리, 나지막하고 서글픈 목소리. 미영은 이 어둠 속에서 그런 서글픈 목소리는 목이 후줄근해질만큼 무서울 수도 있다는 걸 느꼈다. 문은 그 전처럼 빼꼼히 열려 있었다. 이번에는 송이가 자신을 잡아주지 않는다. 돌이킬 수 있을까. 그러나 다가간다. 조금씩…조금씩…문고리를 잡았다. 섬뜩하리만치 차갑다. 문을 연다. 문 경첩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끼이이익… 드디어 301실의 비밀이 문을 연다.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다가 차츰 어둠에 익숙해져서 병실의 윤곽이 보인다. 일반 병실과 다를 건 하나도 없다. 단독병실이다. 정면으로 보이는 창문은 커튼을 두껍께 했는지 윤곽만 간신히 보였고, 침대와 잡동사니를 넣는 선반이 그냥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뭐야 이거였나? 약간의 실망을 느끼며 발을 한 발 더 디뎠다. 또각. 이 구둣소리가 방정 맞게 크다고 느꼈다. 엄마가 섬그늘에…굴 따러어 가면… 다시 그 동요. 이번엔 가깝다. 미영은 비명을 지르려다 말았다. 못 들어올데를 들어왔다. 발칙하게도 비밀을 캐내려다가 벌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다리가 떼지지 않았다. 진짜 공포가 오고 있었다. 아기가 혼자 남아…집을 보오다가… 침대 밑 시트에서, 뭔가 하얀 물체가 나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손이었다. 너무나 하얘서 심장이 멎을거 같은 7살 아이의 손. 곧이어 시커먼 물체가 천이 스치는 소리를 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긴 머리카락이라는 것을 아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미영은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얼굴이 보이고 있었다. 여자아이의 얼굴이었다. 너무나 싫었지만 미영은 눈으로 모든 것을 다 보고 있었다. 그 애가 전수아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 애의 얼굴이 보였다. 너무 하얘서 얼굴에 있는 핏줄마저 선명하게 보이는 그 애의 얼굴이. 그리고 검은 자위가 아닌, 동공이 없는연녹색의 눈이, 침대 시트에서 기어나온 수아는 그렇게 일어서고 있었다. 팔베고 스르르르…자암이 드읍니다… 그애가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 저 애는 사람이 아니다 분명, 저건 귀신이다. 물러나다가 쓰러진다. 갑자기, 정말 갑자기 수아가 비명을 지른다. 이에 미영도 죽을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처음 받은 간호복이 찌그러지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뛰었다. 어디로든 상관없다. 저 애가 쫓아온다.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로든 상관없다. 자신의 비명이 수아의 괴성처럼 들려 그녀는 귀를 막았다. 구두가 부러진 탓인지 비틀거렸다. 잘 걷지를 못하겠다. 이대로 그 애한테 잡힐지도 모른다.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동편 끝 계단까지, 그 어두운 계단에서 누군가 자신을 잡아채는 것을 느꼈다. 차가운 손. 지옥에서나 들릴 거 같은 비명이 튀어나오려는 찰나였다. “미영씨? 미영씨?” 목소리의 주인공은 구철이었다. 그녀는 구세주를 만난 흥분과 공포가 섞여 그에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다. “수…수아…저…저기에” “뭐?” “301호…저, 전수아…귀…귀신,” “미영씨, 미영씨!!” 잠시동안 나갔던 이성을 되찾은 미영은 구철의 침착한 표정을 바라보았다. 그에게서 체념의 빛이 지나 간 걸 본 거 같았다. “진정해요. 다 말해 줄테니까.” 어느 새 커피가 미영의 앞에 나타났다. 미영은 생각이 없었다. “맞아요. 301호실, 그 애, 전수아맞아요.” 일반적인 진리였지만 미영은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래 그랬었구나. “급성 간헐성 포르피리아. 그게 그 애 병명이에요. 희귀병이죠.” 미영은 해박한 자신의 지식을 동원해 보았지만 기억은 나지않았다. 희귀병이라? “헤모글로빈에 이상이 생겨서 피를 잘 만들어 내지를 못해요. 빈혈과 발작이 자주 오고, 그 노폐물이 피하지방에 축적되어서 그게 햇빛과 반응해서 물집이 생기죠. 그래서 햇빛에 있지를 못하고 밤에만 다녔어요. 사람들은 귀신같다고 그애를 피했고, 밤에만 다닌다고 귀신이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죠. 투병하다가 녹내장도 생겨서 병원에서 격리 치료를 해야했어요. 눈이 안 보이는데다, 그런 병까지 겹치고는 제 정신이 되는게 이상했죠. 부모님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어느날 애만 놔두고 도망가버렸고, 병원 이사측도 그냥 여기에 격리시켜서 죽기를 기다리는 거에요. 잔인하지만, 사람들이 쉬쉬하다보니, 이제 거의 여기에서 없는 존재가 되고, 301호실도 금지구역이 되었죠.물론 애가 살아 있게는 해주지요” “그 애, 노래 참 서글프게 불렀어요.” 미영은 그 소절을 하나 불러보려했다. “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도 괴로웠을 거에요. 다른 것을 인정 안하는 요즘 사람들 사이에선.” 3층은 더 이상 그 동요가 들려오지 않았다. 수아의 그 서 글픈 노랫소리가. 이틀 후 병원은 다시 일상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미영은 출근하면서 모두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즐거운 이튿날이었다. 그녀는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가고, 미정과 송이는 그것을 확인하고는 수군거렸다. “전수아, 그 애, 결국 죽었죠?” “응, 안 됐어. 우리도 그렇게 무서워했는데. 그렇게 되다니…쯧쯧” “근데 언제 죽었데요? 미영씨 기절이나 안햇나 몰라?” “걱정 안해도 될걸? 미영씨 온 그날에 죽어서 나하고 다른 사람들 몰래 싣고 화장했으니까.” 출처 : 붉은 벽돌 무당집 작가 : 챠우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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