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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장편,브금,재탕] 껌 [ II ]
게시물ID : panic_193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tarDream
추천 : 12
조회수 : 264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1/09/08 12:14:50
껌 [Ⅱ] 달다. 달다. 달다. 씹을수록 단 맛이 빠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점점 단 맛이 강해진다. 껌이 아니라 사탕을 먹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사탕과는 달리 그 부피가 줄어들지 않는다. 실로 놀라운 껌이었다. 일터로 돌아가는 동안 우리는, 이 신기한 껌을 음미하느라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저 언젠간 단물이 빠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각자의 턱만 바쁘게 움직였다. 대체 무엇으로 이런 껌을 만들어냈단 말인가? 나는 속으로 연신 감탄만을 내 뱉을 뿐이었다. 우리가 그나마 대화다운 대화를 시작한 것은 일터에 도착해서 부터였다. “아, 아. 와. 이거 정말. 미치겠네요, 이 껌. 대박이네.” 오주임이 말했다. 황홀감에 빠져있는 목소리였다. “질겅, 질겅, 응. 이건 진짜. 질겅, 질겅, 와, 말을 못 하겠네. 질겅, 질겅.” 정말이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해도 내 턱이 그것을 허락 하지 않는다. 내 몸 자체가 이미 껌에 푹 빠져있는 모양이었다. 마치 마약과도 같은 단물이 씹는 족족 흘러나온다. 미식가라고 자부하던 내가, 구멍가게에서 우연찮게 얻은 조그만 껌 따위에 매료될 줄이야. 괜한 위화감 때문에 이 껌을 끝내 거절했다면 얼마나 후회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대리님, 음, 음, 몇 개에요? 저는 열 두 개인데.” 아까 받은 껌의 개수를 묻는 모양이었다. 쥐고 있던 손을 펴 껌의 개수를 헤아린다. “음, 열 두 개. 나도 열 두 개네.” 내 말과 동시에 오주임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또 다시 서로가 침묵을 지켰다. 단지 일정한 리듬의 껌 씹는 소리만 낼 뿐이었다. 영원할 것만 같은 단 맛에 취하며 우리는 각자의 업무를 시작했다. ......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찌나 껌을 씹었는지 턱이 아파올 정도였다. 잠시 기지개를 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화장실이라도 갔는지 오주임은 보이지 않았다. 그 때, 불현듯 껌을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퉤!” 손바닥에 껌을 뱉었다. 그런데 뱉자마자, 껌을 달라고 아우성치듯 입 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한다. 조금 있으니 현기증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런 상태가 점점 몸 전체에 퍼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오한에, 발열 증상까지 오는 것 같았다. 결국 살펴보는 것을 포기하고, 황급히 뱉었던 껌을 다시 입에 넣었다. 이쯤 되자 무서운 기분마저 들었다. 혹시 마약이라도 들어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세 사람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 중에는 오주임도 있었다. 내가 느낀 불안감을 오주임에게도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 “아 오주임, 이 껌....” 하지만 끝까지 말을 잇지는 못했다. 오주임과 함께 들어온 두 명도 뭔가 씹고 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오주임, 너 설마... 껌 줬어?” 내 말에 오주임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 줬어요. 아까 전에 오부장님이랑, 박대리님한테도 줬답니다. 다 들 난리가 났어요. 하하.” 오주임과 함께 들어온 두 명은, 오주임의 입사 동기인 양주임과, 이주임이었다. 셋이서 자주 뭉쳐 다니는 편이었다. “와, 이거 진짜 끝내줘요. 어떻게 이런 껌이 있을 수 있죠?” 방금 내게 말을 꺼낸 사람은 양주임이었다. 덩치가 아주 컸고, 파마머리를 하고 있다. “오주임. 이 껌 혹시 뱉어봤어?” 내가 물었다. 나와 같은 증상을 겪었다면 그렇게까지 낙천적일 수만은 없을 테니 말이다. “아뇨. 아직 뱉은 적은 없었어요. 아, 삼킨 적은 있어요. 곧바로 새 껌을 입에 넣었지만.” 오주임이 말했다. 순간, 그 구멍가게에서 주인이 한 말이 떠오른다. -명심해야 돼. 절대 삼키면 안 된다. “오주임! 아까 그 주인이 삼키지 말라고 했던 거 기억 안 나?” 오주임이 멀뚱히 나를 쳐다보다가, 갑자기 생각이 난 듯 짧은 탄식을 내뱉는다. “아~ 맞다. 그랬었죠, 하하. 뭐 그런데 별 일 있겠어요? 그래봐야 껌인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왠지 심각하게 생각한 내가 바보인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그거는 있어요. 씹다 보면 진짜 미친 듯이 삼켜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는 거 말이에요. 식도 를 넘어갈 때는 어떤 느낌일지, 위 안에서도 계속 단 맛이 생겨날지, 괜히 막 느껴보고 싶더라고요.” 마치 신앙 간증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확실히 오주임은 이 껌에 깊이 빠진 것 같았다. 물론 나 역시도 삼키고 싶은 욕망은 있었다. 그 때 나를 막아준 것은 다름 아닌 미식가로서의 자존심이었다. 그러니까 음식의 요구사항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내 안에 있기 때문이었다. 라면은 절대 생 라면으로 먹지 않고, 게 요리의 껍질은 반드시 벗겨서 먹어야 한다. 그런 것처럼 껌은 씹어서 단물을 즐기는 음식일 뿐, 절대 삼켜서는 안 된다는 게 내 법칙이었다. “그럼 몇 개나 남은거야?” 오주임에게 물었다. 여기 저기 뿌리고 다녔으니 이제 많이 줄어들었겠지. “여섯 개 남았어요. 이건 다른 사람 안 주고 저만 먹으려고요. 히히.” “어? 그런 게 어디 있어. 적어도 우리한테는 하나씩 더 줘야지!” 이주임이 말 했다. 비교적 덩치가 작고, 피부가 검은 친구였다. “하는 거 봐서 줄게. 크큭.” “알았어. 잘 할 테니까 하나만 줘. 나 방금 삼켰단 말이야!” 양주임이 애원하듯 말한다. 그러자 오주임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껌 하나를 그에게 건 낸다. “아아아, 고마워 으읍, 질겅, 질겅, 질겅.” 껌을 받자마자 양주임이 게걸스럽게 씹기 시작한다. 산만한 덩치가 껌 하나에 집착하니 꽤나 우스꽝스러웠다. 여전히 마음속에 찝찝함을 지울 수 없었지만 별 일 없겠거니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껌을 삼킬 마음은 없지만 말이다. ...... ...... 퇴근시간.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시계를 확인한다. “아, 오주임. 먼저 올라갈 테니까, 이부장님 말 잘 듣고, 마무리 잘 해. 다음 주에 보자고.” 당일치기 출장이었기 때문에 저녁 기차를 타고 바로 서울로 가야했다. 같이 내려온 사람들 중 나만 그런 거였다. 다른 사람들은 앞으로 3일이나 더 있다가 올라온다. 이것은 순전히 가위 바위 보에서 내가 진 까닭이었다. “헤헤헤, 대리님 피곤하시겠어요. 내일 오전에 바로 출근 하셔야 할 텐데.” 오주임이 웃으며 얘기한다. “얄밉기는, 하여튼 난 간다.” 대충 정리를 마치고 문을 나서려는 순간, “아, 대리님 잠깐만요.” 오주임이 나를 부른다. “저, 껌 하나만 주고 가시면 안 돼요? 어느새 바닥이 나 버려서...” “응? 그 많은 걸 벌써 다 씹었다고?” “아 뭐, 제가 네 개 쯤 삼키고... 사람들 나눠주고 하니까 벌써 바닥 나 버렸어요. 지금 입 안에 있는 게 마지막이에요.” 나는 처음 씹었던 껌을 여태 씹고 있었는데 오주임은 벌써 껌이 바닥난 모양이었다. 역시 미식가와 일반인의 차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가볍게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주머니에서 껌 한 개를 꺼냈다. “혹시 말이야. 껌이 다 떨어진다고 새벽에 전화하거나 하지는 마. 나 오늘 엄청 피곤할 것 같으니까.” 말을 마치고 오주임에게 껌을 휙 던졌다. 오주임이 활짝 웃으며 그 껌을 받는다. “예, 그럼요. 절대 그럴 일 없을 거예요. 히히. 대리님 수고하셨슴다!” 껌 한 개에 저렇게 천진난만한 모습이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빨리 도착해도 밤 10시는 훌쩍 넘길 것 같았다. 막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주임과, 양주임에게 작별인사를 한 다음 밖으로 나왔다. 쌀쌀한 가을 공기가 물씬 느껴진다. 그리고 껌을 씹는 턱은 더 빨리 움직이기 시작한다. ...... ...... “여보세요? 어 나야. 그래 지금 차 기다리고 있어. 은비는? 숙제는 다 했대? 그래, 어 바꿔줘. 음... 어, 은비니? 그래 아빠야. 숙제는 다 했니? 그래. 착하다 우리 딸.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치킨? 밤중에 기름진 거 먹으면 별로 안 좋은데. 아, 그래, 그래 알았다. 아빠가 치킨 사 갈게, 대신에 아빠 조금 늦게 들어가도 엄마랑 같이 기다리고 있어야 해. 그래그래, 우리 딸 아빠가 최고로 사랑한다. 아, 은비야 지금 기차왔다. 아빠 끊을게. 이따가 봐요~” ...... ...... 달리는 기차 안에서 내다보는 창밖의 야경이 아름답다. 시간이 흐르자 조금씩 몸이 축 쳐지는 느낌이 든다. 아마 곧 잠이 들겠지. 서서히 눈꺼풀이 감겨온다. 그 순간, 불현듯 오늘 오후의 일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 아줌마는 왜 자기의 팔을 껌이라고 한 걸까?’ ‘그 할아버지는 왜 껌을 삼키지 말라고 한 걸까?’ ...... 'BBQ를 사 갈까, 교촌을 사 갈까.' 하지만 이내 내 마음은 딸에게 사 줄 치킨을 생각하고 있었다. 출처 : 웃긴대학 공포게시판 '건방진똥덩어리'님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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