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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장편,브금,재탕] 껌 [ XIV ]
게시물ID : panic_194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tarDream
추천 : 4
조회수 : 267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1/09/09 14:16:00
- 아. 아. 동사무소에서 알려드립니다. 주민 여러분, 안개가 심하게 껴있습니다. 차량 운행은 삼가 주시 고, 밤길을 걸으실 때는 각별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 ...... “후우우. 김필중... 나쁜 새끼.” 나는 잠시 문앞에 앉아 있었다. 괴물이 문을 열고 나올 확률도 배재한 채 그냥 그렇게 있었다. 아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당분간은. “개새끼. 상사 엿 먹이는 것도 가지가지지. 지가 죽으면, 지가 죽으면. 하. 하. 하.” 웃음이 나오는 가 싶더니. “큭, 큭, 크흑. 흑흑. 씨발.” 갑자기 울음이 나온다. 울다가 웃으면 어디에 뭐가 된다는 전설은 있다지만, 웃다가 울면 어떻게 되는 걸까. 이 따위 썰렁한 생각이라도 해야 마음이 조금은 진정 될 것 같았다. “좆같은 새끼. 웃냐?” 핸드폰을 열자마자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필중의 사진이 나타났다. 그리고 화면의 윗부분에는 ‘기다리면 열린다’ 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해 볼 요양으로 슬라이드를 열었는데 감히 다른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지금 이 화면을 넘기면 왠지 필중을 두 번 죽이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정말 쓸데없이 거룩한 고정관념에 빠진 모양이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이런 고착은 보기 좋게 깨져버렸다. - 띠띠리리리 띠띠, 띠띠리리리 띠띠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젊은 놈 핸드폰 벨소리가 ‘잘했군, 잘했어’라니. - 띠띠리리리 띠띠, 띠띠리리리 띠띠 핸드폰 액정에는 필중의 사진대신, ‘발신자 표시 없음’ 이라는 글자만 크게 나타나 있었다. 선뜻 통화버튼을 누르기가 꺼려졌지만, 혹시라도 가족이라면 나에겐 이 상황에 대해서 설명할 의무가 있다. 물론 얼마나 믿어줄지,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딸칵 통화버튼을 누르고 침을 한 번 꼴깍 삼켰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 김필중씨 핸드폰입니다.” - 치이이- 말은 없고 거슬리는 바람소리만이 들려왔다. 적어도 실내는 아닌 모양이다. “말씀하세요. 김필중씨 핸드폰입니다.” - 치이이이ㅡ - 치이이이ㅡ “말씀 없으시면 끊겠...” - 치이이- 누구? 막 핸드폰을 끊으려는 찰나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소리에 묻혀서 또렷하진 않았지만 어딘지 낯이 익은 목소리였다. “예. 말씀하세요. 김필중씨 직장 동료입니다.” - 치이이이- 동료? 아, 하, 하하하. 갑자기 웃기 시작한다. 난 영문을 몰라 마냥 그 웃음소리를 듣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 치이이이- 하하하. 대리님 오랜만입니다. 그 순간, 목소리의 주인공이 명확하게 떠올랐다. 수화상태는 좋지 않지만, 절대 잊지 못할 그놈의 목소리만큼은 똑똑히 귀에 박혔다. “너, 너 이 씨발 오주임이지?” - 치이이이- 큭큭. 다짜고짜 욕을하세요. 그나저나 필중이 핸드폰을 왜 대리님이 가지고 있습니까? 끓어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삭혔다. 이 인내가 언제까지 지속될 지는 모르겠다. “너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 치이이이- 무슨 짓? “몰라서 물어!? 이 씨팔...” - 치이이이- 필중이는요? “필중이 죽었다. 너 때문에 죽었다!” - 치이이이- 이거 왜 이러시나. 따지고보면 저도 대리님 때문에 이렇게 된 거 아닌가요? “뭐, 뭐? 이 개새끼가.” - 치이이이- 크큭, 뭐 괜찮아요. 저는 나쁘지 않으니까. “너, 너, 너 어디야!” - 치이이이- 필중이 불쌍해서 어쩌나. “어디냐고 이새끼야!” - 치이이이- 그건 보셨어요, 제 책상에서? “어디야!” - 치이이이- 대리님을 저주하겠다고 쓴 글 말이에요. “봤어. 봤다고. 그러니까 딴 말 하지마. 나하고 얼굴 보면서 얘기하자고. 당장!” - 치이이이- 큭큭큭. 큰 소리 치기는. 자기 처지도 모르면서. “뭐라고?” - 치이이이- 행운을 빕니다. “뭐? 야. 오주...여보세요? 여보세요? 이 씨발. 여보세요!” 전화가 끊어졌다. 그리고 한동안 나는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오주임은 예전의 오주임이 아니었다. 비꼬는 말투야 예전에도 비슷했지만, 말 하는 내내 흘리는 그 기분 나쁜 조소가 거슬렸다. 오주임은 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걸까. 그리고 왜 내게 행운을 빈다는 말을 한 걸까. 어쨌든 오주임 덕분에 정신은 번쩍 들었다. 이렇게 슬퍼하고 있을 새가 없다. 필중에 이어 아내와 딸까지 잃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굳은 마음을 먹으니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도 수월했다. 막상 걸음을 떼려하자 아까보다 훨씬 짙어진 안개가 시야를 방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손전등에 의지하면 그럭저럭 갈 수는 있을 것 같다.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건물 안에는 여전히 그 괴물들이 돌아다니고 있겠지. 핸드폰 슬라이드를 열었다. 또 다시 필중의 웃는 모습이 나를 괴롭혔지만, 다행히 이번엔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 ...... - 여...보세요. “나야.” -자, 자기야? “응. 몸은 좀 어떤 것 같...?” - 꺼, 껌. 껌! 껌 좀! “은영아...” - 제, 제발. 껌 좀 줘. 나, 나 미칠 것 같아. 나, 나. “곧 갈 거니까. 조금만, 조금만 참아.” - 모, 못참겠어. 나, 나, 꺼, 껌. 껌 좀. 제발. 제발. “은비는 아무 이상 없지?” - 제발, 제발... “진정해!” - 제, 제발, 제... - 딸칵. ...... ...... - 아. 아. 한 번 더 알립니다. 후평동 일대에 심한 안개가 껴 있으니 통행에 각별한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이상 동사무소였습니다. ...... ...... 비탈길로 들어섰다. 손전등에 의지해서 길을 찾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거기에 산길인데다, 이곳엔 단 한 번만 왔을 뿐이었다. - 바스락, 바스락. 그나마 낙엽소리가 아니면 산길이라는 것도 모를 정도였다. 잔가지나 돌 같은 장애물들을 효과적으로 피하기도 힘들어, 걸음 속도가 무척이나 느렸다. 그러니까 이 빌어먹을 안개 때문에 말이다. 기억하기론 비탈길에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갈래 길이 나온다. 그 곳에서 외진 곳과, 등산로로 나뉘었는데 그 가게는 분명 외진 곳에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시야가 막혀서야 구분이나 가능할까.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근처에 있던 바위에 걸쳐 앉았다. 그리고 시계라도 볼 양으로 핸드폰 슬라이드를 열었다. 아홉 시 십오 분. 안개 낀 산길을 오밤중에 거니는 내 신세가 왠지 한스럽다. 물끄러미 핸드폰 액정을 바라보다가 메뉴를 눌러 보았다. 여러 가지 메뉴가 나오고 그 중 내 눈에 띈 것은 ‘메시지 보관함’이었다. [오늘도 야근이야? 11/05 20:30 러브] [미안해 일 하는줄 몰랐어 11/05 20:10 러브] [전화 왜 끊어? 11/05 20:06 러브] 여자 친구로 추정되는 사람과 문자를 주고받은 모양이다. [전화 좀 받아 11/05 19:50 러브] [내가 잘못 했어 그런데 너가 오해 한거라고 11/05 19:30 러브] [남자가 자꾸 소심하 게 그럴래? 11/05 19:28 러브] 밑으로 몇 개의 문자를 더 읽어보니 여자 친구가 확실한 것 같았다. 내용으로 보아 한창 사랑싸움 중이었던 것 같다. 문득 연애시절에 아내와 다퉜던 기억이 떠오른다. 우리는 주위 사람들 모두가 인정하는 닭살 커플이었지만, 가끔씩 심하게 다툴 때도 있었다. 그 중 대부분은 내 까탈스러운 입 맛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는데, 결혼 후에도 가끔씩 마찰이 일어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관음증이 발동한 변태 성욕자마냥 나머지 문자들도 빠르게 훑어나갔다. [아직도 화났어? 11/05 18:00 러브] [안 끝났어? 11/05 18:50 러브] [니 여자친구도 생각 해야지? 명심해 11/05 18:40 개새끼] 아는 사람이 여자친구뿐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문득 이질적인 문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니 여자친구도 생각 해야지? 명심해 11/05 18:40 개새끼]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SK뷰 아파트 201동 1003호 맞지? 11/05 18:37 개새끼] [말 들어 살려준 은 혜도 모르고 여자친 구 예쁘더라? 11/05 18:34 개새끼] [안하겠다고? 11/05 18:34 개새끼] [김대리한테 그걸 삼 키게 해 방법은 너가 알아서 생각하고 11/05 18:32 개새끼]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정황상, 직감상, 이건 틀림없는 오주임이었다. 필중에게 뭔가를 요구했지만, 그것을 거절하자 여자 친구를 들먹이며 협박을 한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인간이 이렇게 최악으로 변할 수가 있는 거지? [그건 알 거 없어 너 만 괜찮으면 됐잖아 11/05 18:30 개새끼] ........ [쓸쓸해?ㅋㅋ 11/05 15:20 개새끼] 뭔가 중요한 내용이겠지만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필중의 보낸 메시지를 볼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저장 해 두지 않은 것 같다. 중간에 ‘김대리’라는 말이 나온 걸로 봐서는 나와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대체 필중은 오주임에게 무슨 일을 당한 걸까. ....... ....... 아까보다 부쩍 심하게 추위가 느껴진다. 안개가 조금은 거치길 바랐는데 오히려 더 심해진 느낌이다. 그러나 더 이상 지체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어차피 길은 두 개 뿐이다. 그러니까 확률은 반반. 자리에서 일어나 앞을 향해 손전등을 비췄다. 잠시 머뭇하는 것도 잠시, 친숙한 오른쪽 길로 몸을 틀었다. 출처 : 웃긴대학 공포게시판 '건방진똥덩어리'님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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