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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장편,브금,재탕] 껌 [ XV ]
게시물ID : panic_194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tarDream
추천 : 8
조회수 : 267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1/09/09 14:17:57
내가 생각할 때 이 길은 다행히도 외진길이 분명했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부쩍 늘어난 돌맹이들과 잔가지, 그리고 관리 안 된 나뭇가지까지 가세해 나의 걸음을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등산로라면 하다 못 해 나뭇가지 정도는 쳐 놨을 텐데 말이다. 확신이 깊어질수록 한 걸음 떼기가 무서울 정도로 길이 험해진다. 이대로 가다가 굵은 가지에 눈이라도 찔리면 큰일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대한 손전등을 넓게 비추고 왼손으로 앞을 더듬어가며 걷는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이 두 가지였다. 하나는, 맛 집이고 뭐고 다시는 후평동 쪽에는 얼씬도 안 할 거라는 생각이었고, 둘은, 거래처 사장에게 들었던 그 괴상한 이야기였다. ...... ...... “그건, 마을에 갑자기 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네.” “괴상한... 일이요?” “그래. 말 그대로 괴상한 일. 그 집을 다녀온 사람들에게 벌어진 일이었네. 길게 말 하진 않겠네. 그렇다 고 길게 아는 것도 아니지만 허허.” “예, 괜찮아요. 말씀 해 보세요.” “우선 그 곳에 다녀온 사람들 중 대부분이 죽었어. 한 사람만 살아남았으니 대부분이란 말도 약간 어폐가 있네만 어쨌든. 그런데 그 죽은 사람들이 그렇게 처참하게 죽었다고 해. 뭐 신체가 훼손되거나 그런 것도 아닌데, 엄청나게 고통스러워하며 죽었다고 하더라고. 뭐랄까. 뭐에 중독이라도 된 사람처럼 스스로 온 몸 을 쥐어뜯어가며 괴로워했다고 해. 그것도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부 똑같이 말이야.” “그런데 아까 말씀하신 한 사람만 그렇지 않은 건가요?” “맞아. 그 사람은 멀쩡했지. 아니 어떻게 보면 멀쩡한 것도 아니었어.” “예? 무슨 말씀이신지?” “몸은 멀쩡했지만 성격이 아예 딴판이 되었다는 군. 그러니까 몹시 과격하게 변해서 심지어는 지 부모까 지 때렸다고 해. 사람들 사이에서 급속하게 안 좋은 소문이 퍼졌지. 나중엔 정말 죽어야할 놈은 살아있고, 착하디착한 사람들만 죽어났다라는 등의 말까지 나돌았지. 하여튼 이 모든 게 그 곳을 다녀온 이후로 벌어 진 일이니 얼마나 괴상한 일이야. 안 그래?” “정말 그 곳에 뭔가가 있군요. 이거 저도 살짝 두려운데요?” “자네는 왜?” “저도 거길 다녀왔으니까요. 매점 주인보다 그 음식점 주인, 사장님 말씀대로라면 딸이 되겠죠? 그 사람이 더 이상했어요. 뭐 매점 주인도 이상했어요. 저한테 괴상한 껌이나 주고...” “껌? 그 사람이 껌을 줬어!?” “예? 아, 예. 뭐. 맞아요. 처음에는 주기 싫어하는 것 같더니 나중에는 주더라고요. 기가 막히게 달다면 서.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아. 문제라고 할 것 까지는 없는데. 내가 말 한 그 사람들 말이야. 돌아왔을 때 하나같이 껌을 씹고 있 었다고 들었거든. 뭐 그 때도 여전히 껌 장사를 한 모양이지 허허.” ...... ...... 402호에 두고 온 족발과 보쌈은 잘 있을까. 혹시 괴물들이 그런 것도 먹는 것은 아니겠지. 손전등만 챙기지 말고 그것들도 챙길 걸. 일부러 비싼 집에서 샀는데 아까워 죽겠네 정말. 대체로 이런 생각들이 가득한 걸로 보아 뱃속에 거지가 들어앉기 시작한 모양이다. 저녁은 먹었지만 운동 아닌 운동을 워낙 많이 한 탓에 금방 배가 꺼진 것 같다. 그나저나 살짝 긁힌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픔이 오래간다. 방금 전에 미처 피하지 못 하고 나뭇가지에 베인 내 오른쪽 어깨 죽지가 말이다. 어깨가 욱신거릴수록 이 맛없는 오부장 껌을 씹는 내 턱의 속도도 빨라진다.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 순간부터 상대적으로 덜 외진 길에 접어들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이 든 후부터 급속도로 걷기가 편해지고 있었다. 뭔가 관리를 받는 영역으로 진입한 모양이다. 조금 지나니 먼발치로부터 안개를 뚫고 보이는 갈색 건물의 외형이 손전등에 잡히기 시작했다. 그 가게가 분명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내 어깨 죽지를 노릴 나뭇가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테니 속도를 높여도 될 것 같다. 그런데 이 빌어먹을 안개는 대체 언제까지 껴 있는 거람. 걸음은 편해졌지만 마음은 급속도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리고, 식은땀까지 흐르는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뭔가를 얻어내지 못 한다면 아내와 은비는 꼼짝없이 죽거나 괴물이 되고 만다. 그리고 당장 만나서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도 걱정이다. '이 망녕 난 늙은이야' 라고 소리칠지, '저 기억하시죠?' 라고 점잖게 물어볼지, 다짜고짜 '씨발' 하면서 후려갈길지 말이다. 물론 '저 기억하시죠?' 쪽으로 굳힌 건 두말 할 필요 없었지만. -끼이이익 “콜록 콜록.” 자욱한 먼지가 내 기관지를 괴롭힌다. 내부는 불을 꺼놔서 몹시 어두웠다. 아니 몹시 어두운 정도를 떠나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건 흡사 아까 전에 건물에서 느꼈던 어두움과 비슷했다. 정말 치가 떨릴 정도로 나를 두렵게 만들었던 그 어둠 말이다. “콜록, 저기요.” 문을 닫고 손전등을 앞으로 비췄다. 안개가 없어서 그런지 손전등을 비추는 곳 마다 불편 없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고 해도 결코 인상적인 내부는 아니었다. 일단 며칠 전과 다를 바가 없었고, 유통기한이 수십 년은 지났을 것 같은 고대 과자들만 잔뜩 쌓여있을 뿐이었으니까. “안 계세요? 저기요?” 여기저기를 비춰보아도 주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좁고 길쭉한 내부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오래된 쪽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가끔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가게와 집을 같이 붙여 쓰는 장면을 본 기억이 있다. 오늘 밤은 실례가 되는 짓을 조금 해야겠다. 그러니까 허락의 유무를 떠나서 이 문을 벌컥 열겠다는 말이다. 일단 물어는 봐야겠지 들어가도 되겠냐고. “저기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대답은 없었다. 나는 억지로라도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무로 된 미닫이문의 손잡이를 붙잡아 강하게 옆으로 재꼈다. -벌컥! 낡은 문이라 뻑뻑할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쉽게 열렸다. 불이 꺼진 방 안에는 몹시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뭔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팔을 들어 코와 입을 막고 손전등을 앞으로 내밀었다. “허억?” 그리고 나도 모르게 뱉어내는 신음소리. 처참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하, 할아버지! 이봐요! 정신 차려봐요!” 신발을 벗는 것도 잊은 채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주인의 끔찍한 모습을 본 순간 그런 건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가까이서 보는 주인의 모습은 더욱 참혹했다. 밀가루 반죽을 수제비로 만들기 위해 제멋대로 떼 낸 것처럼, 주인은 온 몸의 살점이 뜯겨져 나간 채 아무렇게나 널 부러져 있었다. 딱 널 부러졌다는 표현이 옳을 수밖에 없는 게, 점잖게 눕거나 엎드린 자세가 아닌, 마치 나치의 기호처럼 팔과 다리를 보기 흉하게 펼쳐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건 문제가 아니었다. 만약에 이 사람이 죽었다면, 이 사람이 죽었다면 모든 것이 끝난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채 돌아가야 하고, 눈앞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잃어야 한다. 막말로 살점이 뜯기든, 심장을 파 먹히든 그건 내 알바가 아니다. 숨만 붙어있다면, 그러니까 나에게 어떻게 해야 할 지 말만 해줄 만큼의 생명력만 가지고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 “씨, 씨발! 눈 떠, 눈 뜨라고!” 손전등을 얼굴 바로 앞까지 비추며 소리쳤지만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씨발!” -퍼억! 다짜고짜 씨발이라고 외치며 후려갈겼다. 사실 내가 하고 싶었던 건 저 기억하시죠? 였는데. -퍼억! 퍼억! 몇 번 더 후려갈겼다. 차마 노인의 얼굴은 때릴 수 없어 몸통과 팔을 타겟으로 삼았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퍼억! 퍼억! 퍼억! “씨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얼굴을 때릴 찰나, “으으음.” 주인의 입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주먹의 움직임을 멈추고 주인을 향해 다시 손전등을 비추었다. 주인이 간신히 눈을 뜨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조금씩 그가 빛을 인식하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으으으. 누, 누기래요?”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우선 나는 손전등으로 내 얼굴을 비추며 노인에게 말했다. “나에요. 기억하시죠?” 그 상태로 충분히 시간을 준 후 다시 주인을 비추었다. 주인이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모르겠어요? 그 때 껌 삼키지 말라고 저한테 그러셨잖아요.” “어? 아아. 자네로기만.” 기억이 난 모양이다. 주인의 표정이 풀리고 있었다. “자넨 삼키지 않았니?” “삼키지 않았어요. 저는 원래 껌 삼키는 것을 싫어해요.” “오호. 대단한데. 이 껌을 삼키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뭐에요? 그럼 삼킬 걸 예상하고 줬다는 거야!?” 내가 소리를 지르자 주인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왜 그리 소리를 질러? 껌 삼키면 어떻게 되는지 봤니?” “봤죠. 아주 잘 봤죠. 잘도 그런 껌을 우리한테 줬습니까!”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고 있었다. 어쩌다가 다 죽어가는 노인을 윽박질러야 하는 상황까지 되었을까. “진정해 진정. 나는 분명히 경고했디. 그리고 니들이 먼저 달라고 했디. 안 그래?” 말을 마친 주인이 살짝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계속 해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아까 전에 왔던 놈과는 반응이 영 다르네. 에헹.” “아까... 전?” “니랑 같이 왔던 놈 있잖아. 삐쩍 마른 놈 말이야.” 삐쩍 마른 건 둘째 치고 나랑 같이 이곳을 왔다는 것만으로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건 오주임이었다. “오주임? 오주임이 여길 왔었어요?” “그래. 왔었디. 그놈이 내 몸뚱아리를 어떻게 해놨는지 봐.” 주인이 뜯겨져나간 자신의 몸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 그게 오주임이 그랬다는 거예요?” “크, 크, 크큭. 맞아. 그렇지만 내가 원했던 일이야.” “원하다니. 무슨 말이에요 대체!” “나는 이제 늙고 힘이 빠졌으니 숙주가 될 수 없디. 젊고 싱싱한 새로운 숙주가 나타났으면 당연히 물러나 야 하는 거야.” 주인이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수, 숙주라니요.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요!” “그 놈에게 내 딸도 줬디. 내 딸은 숙주를 돕는 데는 최고디. 더불어 예쁘기도 하고. 끌끌.” “딸? 옆에 음식점 주인 말이에요?” 주인이 약간 놀랐다는 눈초리를 보였다. “오잉? 그걸 어떻게 알았디? 그래. 걔가 내 딸이디. 늦게나마 짝을 만나서 출가했으니 난 이제 염원이 없 다. 끌끌끌.” 정리해보면, 오주임은 숙주인지 뭔지가 돼서 주인의 몸을 이 지경으로 만들고, 사십대는 훌쩍 넘긴 것 같은 그 아줌마를, 그러니까 주인의 딸을 데리고 이곳을 나가버렸다는 건가? 대체 어떻게 이해하면 잘 이해했다고 소문이 날 수 있을까? “오주임이 원한건가요? 그렇게?” “글치! 그건 숙주의 사명인걸. 내 딸은 숙주 옆에 있어야 하니께. 그건 니가 될 수도 있었고. 끌끌.” “내가 될 수도 있었다?” “고럼. 둘 모두가 그렇게 됐다면 한 놈은 나한테 죽었을 거야. 다행힌거디. 끌끌” 이 미치광이 노인내가 대체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건가. 온 몸이 뜯어져나가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것 같은 상태로, 정신 나간 소리를 잘도 내뱉고 있었다. 그 음식점 주인을 데리고 산다는 생각만으로도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이보세요! 일단 다른 건 다 집어치우고. 껌을 삼킨 사람을 되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해요. 저 는 그것만 들으면 돼요.” 주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사람처럼 갑자기 눈동자를 뒤집었다가 정상으로 돌렸다가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온 몸에 살이 뜯겨져 너덜너덜한 노인네가 눈을 뒤집고 있는 모습은 실로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이봐요! 어서 말해요. 시간이 없다고!” 순간 노인의 눈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껌에 대해서 어디까지 아니?” “아, 진짜 딴 말 하지...” “삼키면 어떻게 되는지 까지만 아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인이 완고한 어조로 내 말을 끊어버렸다. 아무래도 질문에 답을 해주지 않으면 원하는 대답을 얻기 힘들 것 같았다. “후우. 알만큼 알아요. 삼키면 괴물로 변하는 것. 껌을 씹다가 뱉으면 고통에 시달리다가 죽는 다는 것. 그리고 한 번 씹으면 미친 듯이 삼키고 싶은 것!” “끌끌끌 끄윽, 끌끌끌큭큭.” 내 말이 끝나자 노인이 웃기 시작했다. “많이 아네.” “그러니까 어서 말해요. 어떻게 하면 되돌릴 수 있는지!” “그런데 껌을 삼키면 무조건 괴물로 변하는 건 아니디. 때로는 그 자리에서 눅눅하게 변하기도 허고, 때로 는 뻥 하고 터지기도 허디. 그건 어떤 법칙이 있는 건 아니야. 중요한 건 삼킨 사람이 껌으로 변한다는거 디.” 오부장은 폭발하고, 양주임과 이주임이 괴물이 된 데에는 딱히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는 말인가? 주인이 계속해서 말했다. “껌을 씹다가 뱉으면 죽디. 살기 위해선 계속 씹거나, 삼키거나 둘 중 하나 뿐이야.” “껌으로 변하는 게 죽는 것과 뭐가 다르죠!?” “끌끌끌. 껌으로 변하지 않는 방법을 알고 싶니?” 나는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드디어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할 모양이었다. “어, 어서 말해요. 지금 이 시간에도 내 아내는, 내 딸은 변하고 있을 거라고요. 그 빌어먹을 껌인지 뭔 지!” “끌끌끌끌. 가족이 껌을 삼켰나? 경솔했군. 끌끌.” 뭐가 그렇게 웃긴지 계속 끌끌 거린다. 무척이나 거슬렸지만 지금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원하는 이야기를 듣기 전까진 말이다. “그 전에. 숙주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야겄는디 괜찮겠어?” “제기랄! 괜찮지 않아요. 더 이상은 참지 않을 거예요!”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숙주고 나발이고 나에게는 전혀 쓸모없는 이야기였다. 나는 아내와 딸만 구할 수 있으면 된다. 어찌됐건 나머지는 그 후에 생각할 일일 뿐이다. “어허 성깔머리하고는. 좋아 그것부터 말해주겠어.” “어서 말해요!” “끌끌. 숙주의 살을 씹으면 돼. 그러면 껌으로 변하지 않디.” “씹다가 뱉으면요?” “그럼 다시 돌아가게 되는거디. 껌을 삼킨 시점으로. 끌끌끌.” 문득 필중의 말이 떠올랐다. 오주임의 껌이라서 뱉을 수 없었다는 그 말. 그렇다면 필중도 껌을 삼켰던 것인가. “그럼 일시적인 거잖아요. 좀 더 제대로 된 방법을 알려줘요!” “끌끌. 그럴려면 내 딸에 대한 이야기와, 숙주의 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어. 듣겠니 안 듣겠니?” 왈가왈부 하며 시간을 허비할 바엔 차라리 듣는 쪽이 나을 것 같다. 결국 교활한 늙은이의 페이스에 따라가게 되는 모양이다. “후우... 알았어요. 어서 말해요.” 나는 말이 길어지지 않기만을 간절히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 ...... ...... “택시!” 가게에서 나오니 다행히도 안개가 조금 걷혀있었다. 차량들도 제법 통행이 가능할 정도여서 어렵지 않게 택시 한 대를 잡을 수 있었다. “서울이요.” “네?” 택시기사가 나의 말에 짐짓 놀란 표정으로 반응을 한다. 하지만 이내 얼굴 전체에 환한 미소를 띠기 시작한다. 곧 있으면 할증도 붙을 테니 그야말로 봉 잡은 기분일게 뻔했다. 어차피 나도 수 십 만원 깨질 건 각오하고 있었다. 사실 수 십이든, 수 백이든 돈 따위는 지금 나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손님. 서울까지는 요금이 상당히 나올 텐데 괜찮으세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슬쩍 나를 떠볼 모양인가보다. “제가 정말 급합니다. 돈은 따블로 드릴 테니 최대한 밟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기사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 밝아졌다. 택시 기사 입장에선 정말 엄청난 횡재나 다름없을 테니 말이다. “타, 타세요. 운전벨트 단단히 메셔야 할 겁니다.” 기사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 “얼마나 걸릴까요?” “음. 여기 빠져나가는 것만 조심하면 대략 두 시간 내외로 도착할 것 같은데요?” 두 시간 내외도 내게는 너무 길다. “더 빨리는 안 될까요? 한 시간 반 정도로.” “아, 그렇게는...” “따따블로 드릴게요.” “아, 뭐. 예. 오늘 정말 미친 듯이 밟아보죠!” 기사가 평소에도 이렇게 환하게 웃어준다면 손님들이 비싼 택시비를 내더라도 만족스러워 할 것이다. 따따블을 준다는 말에만 이러지 말고 말이다. “자 그럼 출발합니다.” 기사는 엑셀에서 좀처럼 발을 떼지 않으며 능숙한 솜씨로 기어를 올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계기판의 화살표가 숫자 100을 지나고 있었다. 그야말로 한 밤의 질주가 시작된 것이다. 나는 한 쪽 손으로 안전벨트를 꼭 잡고, 나머지 손에 쥐고 있는, 가게 주인이 죽기 전에 남긴 손가락 두 마디만한 크기의 유리병을 보고 있었다. 반 정도 차 있는 분홍색 액체가 택시의 움직임이 격해지자 병 안에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트에 머리를 기댄 후, 나를 무척이나 곤란하게 만들고 죽어버린 그 노인네와의 마지막 대화를 떠올렸다. 그 생각 덕분에 먼 길을 지루하지 않게 갈 수 있을 것 같다. 어느새 택시가 영동 고속도로에 진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난히 짙었던 안개도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출처 : 웃긴대학 공포게시판 '건방진똥덩어리'님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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