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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설문조사(?) 한 결과에 멘붕했던 썰 (스압)
게시물ID : bestofbest_21605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찌개
추천 : 506
조회수 : 59832회
댓글수 : 152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5/08/08 20:42:38
원본글 작성시간 : 2015/08/07 17:36:24



음슴체로 쓸게요!!



몇년 전 대학원을 다니며 등록금을 조금씩 벌어보고자 연구조교를 시작했음.

마침 연구조교를 구하는 교수님 한 분이 계셔서 새학기가 시작할 때 딱맞게 연구조교 채용이 되었음.

교수님께서는 교육학과 소속이셨음.

당시 우리 학교는 교육학과가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교수님들이 굉장히 젊은 편이셨고 (대부분 40대)
학생들과의 소통에 대한 열정도 높으셨음.

그리고 교수님께서는 특히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크셨고 강의 실력도 뛰어나신 편이라
수업이 빡셌지만 빡센만큼 남는게 많다고 생각해서인지 
수강정정기간에 우리 교수님 수업을 듣고자 찾아오는 학생들이 매우 많았음.

조교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은 교수라는 자리가 결코 널널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었음.

물론 날로 먹는 교수들도 많지만 적어도 우리 교수님은 아니었음.

매 학기마다 논문 점수, 학회 참가 점수, 강의 점수 등등... 모든 활동이 다 점수로 매겨지고 최저 점수를 만족해야만 했음.

우리 교수님은 넘치는 열정만큼 논문 집필에도 적극적이셨는데

하루는 교수님께서 논문과 관련한 설문조사를 학생들에게 실시하고 싶다고 하셨음.

주제는 '내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부모님 및 형제자매에게 어떤 말을 전해 줄 것인가?' 였음.

원래는 재치있는 대답을 뽑아서 수업시간에 발표를 하고 당첨자는 소령의 상품을 수령하는 식으로 진행하려고 했는데

교수님께서 마침 쓰시던 논문이 가정 내에서 학생들의 교육적 가치관이 어떻게 정립되는지와 관련된 논문이셨음.

내 생각이지만 사범계이다보니 자라온 가정 환경에 따라 교사가 되었을 때 서로 다른 교육적 가치관(체벌 찬반여부 혹은 지식전달방법)을 가질 수 있다 라는 가정을 가지고 시작하신 것 같음.

논문주제와 설문조사가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교수님들께도 양해를 구하고 교육학 전 과목 수강생을 대상으로 실시했음.



총 인원은 1200명 정도. 설문조사의 의도나 상품 증정등의 계획은 밝히지 않고 설문조사를 실시했음.

물론 익명으로 실시해서 자율성을 보장했음.

교수님과 나는 얼마나 재치있고 감동적인 내용들이 많을지 기대에 부풀었음.


결과는 충격적이었음.





제일 많았던 것이 "아빠랑 결혼하지마." 2번째 많았던 결과는 "나 낳지마." 였음........

교수님과 나는 충격에 휩싸였음.

솔직히 <1년 뒤면 예쁜 아가가 태어날 거에요. 잘 키워주세요!> 라던가 <미래에서 왔어요.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던가....

이런 종류의 뭔가 감동적이고 희망찬?? 그런 내용이 주를 이룰 줄 알았음.


그런데 대부분

엄마 20년 뒤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아? (복잡한 가정사와 그로 인해 고통받는 엄마의 삶을 나열) 그러니까 아빠랑 결혼하지 마.

나 지금도 힘든데 아빠가 나만 믿고 있다고 해서 죽지도 못해. 그러니까 애 생기거든 그냥 죽여.

남들보다 못하게 거지처럼 키우게 되니까 부모될 능력 없으면 지금 그 애 낳지말아라 라고 적은 경우도....



정말 심한 경우는

엄마 아빠의 가정폭력을 암시하며 내가 미리 엄마 아빠를 죽이러왔다고 쓴 경우도 있었음.......



다른 경우로는

아기를 낳으면 이름은 꼭 ㅇㅇ으로 (유명연예인) 지어주세요 라던가 

지금 어디어디에 땅을 사놔라 아파트를 사놔라ㅋㅋㅋ 재치있는 것들도 있었음.



예상치 못했던 결과라 당시에는 충격을 많이 받았는데 지금은 몇년 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이 정도 내용밖에 생각이 안남...

나와 우리 교수님들이 먼저 결과를 정리 한 후 교육학과 교수님들 회의 시간에 보여드렸음.

그 때 교수님들의 표정은 정말..... 충격에 휩싸이신 듯 했음.

충격이 크셨을 것 같은게 교육학 수업을 수강하는 학생들 대부분이 학업에 대한 열정이 깊고 적극적인 학생들이었음.

가끔씩 교수님 수업 전에 강의실에 마이크 세팅이나 ppt 준비를 하러 갔는데 

시간이 지나면 학생들이 알아보고 살갑게 인사도 하고 심지어 교수님 음료수를 준비하며 내 것도 사주는 경우도 많았음;;

중간, 기말고사를 치면 답안지를 받아다 교수님들께 전달해드렸는데 그 때마다 답안지들이 너무 빼곡하고 정성스러워서 교수님들이 항상 힘들어하셨음.

매사 살갑고 열심이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학생들이 대부분이라 더 충격이셨을 것 같음.



교수님들 중에는 아직 미혼인 분도 계시고 자녀가 있는 분도 계셨는데

가치관이 정립된 성인 자녀가 부모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

자녀가 가족에 대한 가치관을 이런 방향으로 정립하게 만드는 부모가 있다

자신의 존재가치 자체를 부정하는 성인들이 많다

등등... 여러가지 감정들을 느끼시며 토론하셨음....




그 결과를 어떻게 쓰셨는지 모르겠지만 내 연구조교 기간이 끝날 때까지 그 설문조사들에 대해 다시 말을 꺼내신 적이 없음.

그 뒤로 내가 부모가 됐을 때의 바람직한 자세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게 되었음

지금은 충격적인 대답을 했던 학생들이 그 때보다 훨씬 행복하게 지내고 있기를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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