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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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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양거황
추천 : 2
조회수 : 539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22/02/20 17: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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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떠나며.jpg

 

이 책은 일제 강점기 동안, 조선에서 살다가 조선의 해방 즉 일제가 패망하자 일본으로 돌아갔던 일본인들의 경험담을 담았습니다.

 

책에서는 조선 거주 일본인들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선 1945년 8월 9일, 소련이 일본의 지배 하에 있던 만주를 공격하고 일본이 무적이라고 자랑하던 70만 관동군을 철저하게 와해시키며 그 여세를 몰아 조선 북부로 쳐들어오자, 일본의 고위 관리나 군인들은 일본 민간인들을 죄다 내버리고 자기들끼리만 살겠다고 일본으로 달아났습니다. 이 사실을 안 일본 민간인들은 정부가 자신을 버렸다며 배신감과 분노에 치를 떨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소련군이 38선 이북의 조선 영토를 점령하자, 곧바로 라디오에서 일본어 방송이 금지되고 대신 조선어 방송이 나왔는데 그러자 이북 거주 일본인들은 공포에 떨었다고 합니다. 이유는 그들 중에서 조선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죠. 

 

여기서 잠깐 단상이 드는데, 오늘날 탈민족주의 성향의 한국 지식인들은 일제 강점기 시절의 일본인들이 조선인들과 같은 연대의식을 가졌다고 자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일제가 패망하고 한반도 북부에서 조선어 방송이 실시되자 일본인들이 조선어를 알아들을 수 없어서 두려워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정작 그 시대의 일본인들이 조선인들한테 무슨 연대의식을 느꼈다는 주장이야말로 비현실적인 공상입니다. 연대의식을 느끼려면 우선 말부터 통해야 하지 않을까요? 

 

또, 조선총독부의 고위 관리의 아내가 조선에서 얻은 보물들(빼앗았던지 훔쳤던지 아니면 위조 지폐로 사들였던지 간에)을 배에 잔뜩 실고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그 보물들이 워낙 많아 무게 때문에 배가 움직이지 않아 실패했던 일도 있었다는군요.

 

비슷한 예로 38선 이남에서 조선인들한테 난폭하게 굴면서 많은 보물들을 챙겼다는 일본인 형사가 누가 쏘았는지 모르는 총탄에 맞아 죽은 살인사건도 있었는데, 이걸 이남에 진주한 미군이 수사를 하겠다는 말을 했는데 결국 범인이 누구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38선 이북을 점령한 소련군에 대해서도 이 책에서는 꽤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냉전 반공적인 시각이 주류인 한국의 정규 교육이나 언론에서는 이 시기의 소련군을 가리켜 약탈이나 강간 같은 부정적인 부분만을 부각시키는데, 물론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 책에서는 다른 사실도 전달하고 있습니다. 소련군이 조선 이북을 지배했던 일제의 구체제를 파괴했고, 또한 조선의 독립운동을 탄압했던 일본인들을 처벌했다는 내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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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는 소련 군정이 식민 지배의 실체였던 (일본) 군인, 경찰, 관료들을 압송 투옥 억류하면서 지배 네트워크 자체를 해체해버렸다. (이 일본 출신들을 이용한) 노동력 확보에 열을 올리던 소련군은 이들을 북한 내 다른 지역이나 만주 사할린 소련 등지로 끌고 갔고, 북한에 새롭게 대두한 조선인 정치세력은 구 지배세력에 대한 단죄를 남한에 비해 뤌씬 강도 높게 실시할 수 있었다(조선을 떠나며 125쪽)./

 

(당시) 신의주 형무소와 평양 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일본인들의 형량과 유죄 선고 이유는 이렇다.

 

야마시타 히데키(징역 5년 확정)

다년간 법관으로서 조선인을 압박하였고 특히 조선인 사상범(공산주의자, 독립운동가)에 대해 사형, 무기징역 등 가혹한 판결을 내린 악질 전직죄.

 

하마다 이치조(제 1심 무기징역)

20년 전 국경경찰로 근무 중 누누이 경찰공로장을 받은 것은 신성한 조선 독립을 위한 혁명 분자를 박해한 것으로서, 이것은 증오할 만한 살인죄가 됨.

 

이나다 교이치(제 1심 징역 10년)

1919년 조선 독립만세 사건 시 소방대원으로 정주 시내의 경계를 담당하였는 바, 곳곳에서 소동 중인 조선인 수명을 살해한 것은 조선 독립 혁명가에 대한 살인죄가 됨(조선을 떠나며 128~1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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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저렇게 재판을 받은 일본인들은 "1919년 조선 독립만세 사건(3.1운동)은 다 지난 옛날 일인데 왜 그때 일까지 다 들춰내면서 처벌을 하느냐?"라고 불만을 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일제 강점기 내내 조선에서 살던 일본인들의 생활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일본인들은 조선 땅 안에서 자기들끼리만 모여서 살았고, 결코 조선인들과 함께 섞여서 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수십년 동안 조선에서 살면서 정작 조선인들의 존재를 전혀 몰랐고, 조선인들이 왜 자신들을 그토록 싫어하는 줄도 몰랐으며, 마치 조선인들을 유령처럼 여겼다고 합니다.

 

얼마나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개무시했느냐면, 일제가 패망해서 일본인들이 일본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일본인 거주지에서 나와 부산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조선인들을 보자, "조선 땅에 조선인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라고 했다더군요..........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이 책의 내용을 일부 인용하면서 조선에 살던 일본인들이 자신을 조선인이라고 여겨서 일본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했다는 글이 돌아다니는데, 정작 이 책에 언급된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조선에서 태어났어도 엄연히 자신들이 일본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졌고, 일본 본토에 사는 일본인들이 자신들을 조선인이라고 여기면 불쾌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그야 당연한 일입니다. 일제 강점기 시기의 일본인들은 조선인을 자신들보다 열등하고 미개한 유사인류 정도로 간주하여 멸시하고 업신여기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었죠.

 

다만 이 책은 끝부분에서 일본 민간인들이 이렇게 힘들게 살았으니, 그들을 미워하면 안 되고 용서하고 이해해야 한다, 라는 식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그러한 결론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해방 직후의 여러 가지 상황을 보여주는 좋은 사료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한국의 정규 교육이나 언론에서는 이 정도의 사실들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한국의 현대사 교육은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구워먹기 같이 너무 엉성합니다.....

출처 https://cafe.daum.net/historywar/2PPq/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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