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고등 2학년 담임 새끼도 제가 사고친 다음날 저희 어머님 불러서 대놓고 촌지 요구 했죠. 그 선생 새끼는 지금도 그 자리애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립학교라 .... 그 선생새끼는 일부러 제가 가끔 바카스 사들고 갑니다. 졸업한지 거의 20년 인데 10번 이상은 찾아 갔네요. 오*상 선생 새끼님 잘 지내고 계시죠? 내년 5월에 또 뵙겠습니다.
80년대 우리 형 5학년 때 여담임 형이 반에서 1등할 때마다 형한테 부모님께 난 사가지고 학교방문하시라고 . 식당 하시느라 늘 바쁘신 어머님 하도 오라 지랄을 해서 난 대신 학생들 간식거리 잔들 사들고 갔더니 학년 끝날 때까지 형 차별했고. 같은 학교 다니던 난 6학년 때 담임되었는데 형 동생이라고 늘 더 혼났씀.. 이 선생 특기가 자로 날 세워서 손톱 끝을 때리는 거였는데 이건 체벌이 아니라 고문수준 이였던걸로 기억남.. 난 형과 달리 공부도 지지리 못해 무지하게 맞고 살았는데 친구들끼리 나중에 어른되서 만나면 담임 손톱 뽑아버리자고 농담하고 그랬는데 아직 살아계시려나? ..
우리 고등학교때 남선생들은 촌지받아 차샀다 카드라구요.......정말 별별 변태가 많았어요. 물론 성적인 의미보다는 그냥 통상적인 일상 취향들이 이상함요. 성적 변태는 그냥 평범했습니다......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제 때는 크게 문제가 일어난적은 없었어요. (예를 들자면 모 선생은 자기는 밝은 빛이 싫다면서 교실에 형광등 끄고 수업했고 그 선생이 거쳐간 교실은 안경쓴자 들이 대폭 증가. 학기초는 한 절반이라면 연말은 90%, 어떤 선생은 교무실이고 자기교실이고 간에 쓰는 책상 서랍에는 소주가 수두룩. 애들 퍠는 건 다양한 취향이 있기때문에 귀찮아 생략합니다.나름 막장이었던 학교인데 총체적 막장이라 촌지만 이야기하면 학교 자체가 촌지를 적극권장했다고 이야기 해주고 싶어요)
광x고등학교 김xx새끼야보고있냐??공교육 고등학교선생이란새끼가 학원이랑붙어먹었나 잘사는 집 애들은 전부 싹 다니던학원 관두고 그학원으로갔지.ㅋㅋ졸업하고보니 그학원이랑 붙어먹었다는게 전통이더라. 난 돈없어서 급식비 국가지원 신청하러갈때 급식비 낼돈도 없냐 반 애들앞에서 개망신주고.그래도 우리 엄마아빠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다. 그나마 공부해서 경기도 4년제 장학금받았는데 넌 집에돈이없으니 전문대가서 기술배워 돈버는게 낫겠다라고 씨부린거 기억나니?? 괜찮아. 내 자식은 너처럼 안키울거야. 적어도 돈보다 훨씬 소중한게 많다는걸 알게해줄거야.
초등학교 4학년때, 칠판에 낙서한 거 가지고 범인 잡는다면서 다들 몇 시간씩 눈 감겨 놓고, 하나하나 불러다가 질문해서 따지면서 나 한테만 '니가 그랬지 다 알아'라고 경멸하는 눈빛으로 무시하던 신?섭씨. 뭐든 문제만 생기면 이유없이 갈구고 범인이라고 몰아 붙이던 성격이상자 아재. 니가 나 때렸던 대부분의 것들이 나 정말 아니거든요. 내가 알고도 그냥 맞았다. 엄마 아빠 만나게 하기 싫어서. 이젠 정년퇴직을 했거나 아님 어디서 교장이나 할거 같은데, 내가 졸업식때 왜 일부러 찾아가서 인사했는지 모르시죠? 니 얼굴 평생 기억할라고 그랬다. 개새키야.
지나고 나니 저는 좋은 축에 속하는 선생들을 만났군요.. 집이 그리 잘사는편이 아니었는데도 엄마가 그땐 고급에 속하던 깡통같은데 들어있던 슈가파우더 입혀진 과일맛 수입 사탕을 두세개씩 선생님 드리라고 챙겨준 적이 한두번 있었는데 어느날은 수제 시계를 갖다드리라길래 드렸더니 선생님이 돌려보내주시더라구요.
이런거 들고 오는거 아니라고. 그치만 어머니께 감사한마음 잘 받았다 전해드리라고.
그 때 반장선거가 있었는데 성적이 좋은편이니 후보로 올려주셨을 때가 있었는데, 기분좋게 집에 얘기하니 엄마가 그러시더라구요. 하지말라고, 학급임원하면 돈 너무 많이든다고. 뭔소린가 하다가 순순히 말 듣기로 하고 담쌤한테, "임원하면 돈 많이 들어서 엄마가 하지 말래요" 했다가 쌤이 넘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런거 절대 아니라고, 그런일 없을거라고 하셨던 것도 기억나네요.
지나고보니 그 때가 촌지 금지, 뭐 이런것에 대한 과도기였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슬리퍼로 열 한두살짜리 싸대기를 때려서 귓고막이 터지고 피가 났다는 옆반 남자아이 얘기도 들은걸 보면 전 정말 운좋게 좋은 교사에게 참 교육을 받았다는 것 같아 감사하게 생각해요.
교사만큼은 수많은 인생의 시작을 책임지는 자리인만큼 인격적으로 좀 더 깊고 성숙한 사람이 있어야 하는 자리이지 않나 싶어요.. 직업이 되는 순간 이익을 생각하게 되는건데 수많은 생명과 미래와 꿈이 이기심에 달리게 된다 생각하면 너무 끔찍해요...
난향초 3학년 담임이었던 아주머니. 돈없는게 얼마나 큰 죄길래 어렸던 나를 그토록 멸시 하셨나요. 실수로 교실 내에 있던 화분을 깼을때 다른 애들은 위험하다며 다가오지 못하게 하고 저한테는 부스러기도 남기지 말고 치우라고 하셨죠. 돈이 없어 준비물을 가져가지 못하면 언제나 교실 밖에서 창문 너머로 수업을 구경해야 했습니다. 요즘도 가끔 그때 일을 악몽처럼 꾸거나 떠올립니다. 이보다 고통스러웠던 일도 많았고 이보다 괴로웠던 일도 많은 나이가 됐지만 처음으로 '서럽다'는 말을 뼈에 새겨준 당신 덕분에 잊을 수가 없네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제 이름은 기억 안나지만,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제발 인생을 후회하며 고통스럽게 돌아가시길 바래봅니다.
저와는 대조적이네요.. 저는 고등학교때 아버지 [라부르고 싶지 않은 놈] 바람나고 사업말아먹고 모든 재산 넘어가고 엄마 신불자 되고 집에 빚쟁이 찾아올때 이혼은 안되서 사회적으로도 도움받을수 있는 시스탬은 없을때 울 담임 등록금 안내면 퇴학처리 된다 협박할때.. 제 사정 들으시고 학교 제단에 말해서 3년동안 학비면제와 오히려 장학금까지 받을수 있게 도와주셨죠. 다들 돈내고 학교 다닐때 전 받고 디녔던... 지금도 선생님 생각하면 너무 감사하고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꼭 선생님께 받은 사랑 돌려줄수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국딩2학년때 내 머리통 잡고 벽에다 찧던 선생... 이름도 기억 안나네... 심지어 그게 너무 충격이였어서 잊고 지내다가 초등학교 고학년때 불현듯 생각나더라. 그년 잘 지내려나... 잘 못지냈으면 좋겠다. 우리집 가난하다고 놀리고 나 왕따 주도하던 4학년때 담임새끼도... 결국 왕따시킨 이유가 젊었을때 우리 할머니한테 찝적대다가 까여서 그런거였던 X새끼... 그새낀 그때도 할배였으니 지금쯤은 뒤졌겠네. ㅎ ㅏ . . . X같은 년놈들...
저 5학년때 담임이 딱 저런 식이었는데.. 진짜 또라이였어요 숭곡초 박경x.. 산동네에 할머니랑 둘이 살던 애가 있었는데 .. 화장실도 공용으로 쓰는 그런 환경에서 살고 하니 당연히 스승의 날에 아무것도 못해갔었어요 아마 편지 써서 줬던거로 기억.. 이후 걔 찍어놓고 괜히 지나가다 얘는 선생님한테 선물안준 사람이라고 대놓고 면박주고 얘는 예의가 없는 애라면서 불러세워놓고 왕따 대놓고 주도 하고그랬어요. 난 얘가 가난해서 진짜 싫다. 이런 느낌이 아니라 그냥 웃으면서 장난감 가지고 놀듯이... 학용품 못사온 날은 앞으로 불러서 뺨 때리고 발로 차고 넘어진애 슬리퍼 신은 발로 머리 밟고 지금 생각하면 정말 피가 마르는 풍경이었네요 당시 40대? 정도 여선생님이었는데 어쩜 그렇게 잔인할수가 있는지.. 결국 걔는 그게 트라우마가 됐는지 중학교 올라가서 적응 못하고 학교안나가고 나쁜길로 샜다고 들었어요
촌지는 아니지만 초딩4학년 때 말을 할 때마다 욕을 섞어쓰던 박선생이 생각나네요 ^^; 조회시간부터 하교 때까지 쓰레기통부터 시작해서 책상에 의자에 분필에 자에 손에 닿는건 다 집어던지시던 분. 새끼 씨발 좆은 예사에 창녀라는 단어까지 언급하시며 아이들에게 벌써부터 성인의 세계를 가르쳐주시던 분. 아이들이 가르치다 이해를 못하면 칠판을 펑펑 때리면서 무식한 새끼들아 하고 도리어 화를 내시곤 하셨죠. 떠드는 아이 슬리퍼로 집어던졌더니 다른 아이가 맞고 운 적도 있고 ㅋㅋㅋㅋ 알고보니 월남전 참전자였는데 어린 아이들에게 전투 장면까지 생생하게 설명해주시던 분.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PTSD를 앓고 있었던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때는 싫어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측은해지는 사람. 뭐하고 지낼라나 지금은....
저희 신랑이 초등학교 4학년때 반장이었는데 미술이 “가”가 나왔더래요. 그래서 어머님이 놀라서 학교에 가셨더니 담임이 한다는 말이 ‘한번도 안오셔서 한번 오시라고’라고 했대요. 그러면서 대놓고 봉투 달라고.. 그리고 신랑이 그때 맹장수술을 했는데 맹장수술하고 왔더니 애들앞에서 ‘맹장수술하면 똑바로 못걷는다고. ㅇㅇ이는 똑바로 못걷는다고’ 그래서 점심시간에 친구들이 걸어보라고 그래서 운동장에 선긋고 똑바로 걷는거 보여주고 구랬었대요. 신랑도 그 선생 이름 기억해요.
저는 중학교 1학년 자습시간에 친구랑 둘이 떠들다가 선생에게 걸림 선생이 앞으로 나오라며 둘을 엎드려 뻗쳐 시킴 거기까진 그러려니 했는데 뒤통수를 구두발로 밟음 친구랑 나랑 둘다 멘붕 저희학교는 시골이었고 그 여선생 남편은 치과의사였음 맨날 학교 오면 시골 애들이라고 괄시하고 무시하고 그랬는데 지금 생각하면 뒷통수를 굽있는 구둣발로 밟은게 멘붕
20여년 전이니 그 당시 선생님은 하늘같은 존재여서 아무 생각 없었는데 지금생각하니 학생 머리를 밟는다는 건 인격모독도 그런 모독이 없네요. 군대에서도 그정도러 심한 대우는 못받아봄
초딩때 선생..이 저하고 다른 한 친구에게만 깜지쓰기를 시켰어요. 50장. 저는 한 20장 적고 손이 너무 아프고 힘들고 그래서 그만뒀죠. 20장이면 적은게 아니어서 충분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저랑 같이 한 친구도 그만큼 다음날, 저희에게는 60장의 깜지쓰기 과제가 생겼어요.. 왜 60장이냐...? (50-20)*2... 그 날은 방과 후 그냥 도망쳤어요. 그러자 다음날엔 120장.. 다시 곱하기 2.. 방과 후 텅 빈 교실에서 저와 친구는 꾸역꾸역 깜지를 채워나가는데 손이 너무 아프고 눈물이 나더라구요 결국 120장에 한참 못미친 30장을 겨우..겨우겨우 채웠어요. 그리고 다음날은 180장.. 진절머리가 나서 하나도 손 못대고 다음날 일요일이라 안하고 도망갔는데 월요일 되니 720장을 쓰래요.. 진짜 선생..새끼 바짓가랑이 잡고 울고 불고 손이 너무 아프다 못하겠다 한번만 봐달라 했는데 진짜 사람이 어떻게 그러는지..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진짜 매정하게, 표독스럽게 ‘늬들 이거 다 못끝내면 집에 못가’ 이러면서 방과 후 3시간을 강제로 붙잡아놨어요. 그래봐야 깜지를 얼마나 쓰겠어요.. 다 못채우니 결국 다음날 또 2배로 늘어나고..ㅋ..ㅋㅋㅋㅋ 아 진짜.. 계속 반복되고 깜지 분량은 늘어만가고.. 남아서 깜지쓰는 도중엔 자꾸 선생이 툭툭 치고 회초리로 한대 맞을 때마다 깜지 한장 줄여준대서 수십대씩 맞고.. 부모님이 저 자꾸 학교에서 늦게 오니까 걱정돼서 제게 묻고나서...결국 선생을 찾아갔어요. 문제는 역시 촌지였네요.... 우리 부모님은 원래 촌지같은거 안주려고 했는데 아들이 그렇게 고통받으니 결국 촌지를 줄 수 밖에 없었대요. 뇌물같은거 주지도 받지도 말자는 부모님의 신념이 깨진거죠. 저랑 같이 깜지 쓴 그 친구는 얼마 안있다가 전학갔어요...
고등학교 2학년때 담임샘이 가정방문을 다녔었는데 하루에 네명씩 자기차에 네명 태우고 차례대로 한명씩 내려주면서 다녔음.. 가까운곳 동선 따라.. 우리집 가는날 내가 젤 마지막이라 애들집 다 들림.. 중간에 개소주집 하는 곳도 갔는데.. 샘 나오면서 차 트렁크 여니깐 어머님이 보약같은거 몇박스 넣음.. 나는 뭐 아무 생각이 없었고 집도 단칸방 이었음.. 아버지 회사에 계시고 어머니 시장에 고모 일 도와주러 나가셨고..ㅎㅎ 집에 가면 누가 있나.. 학교 일찍 마치고 온 초등학교 5학년 여동생 있었음.. 단칸방은 아니구나.. 주방이랑 세면할 수 있는 공간 있고 거실에 문달아서 안방같이 있고.. 내 방 하나 있고 그랬음.. 근데 화장실이 공용화장실 ㅋㅋㅋㅋ 샘이 세집 돌면서 음료수 많이 드셔서 화장실 어디냐고 물으심.. 공용 화장실 가르키니깐 글루 가셔서 일 보실 동안 나는 급하게 내 방으로 들어가서 널려있는 이불 후다닥 걷어서 안방겸거실에 있는 동생한테 주면서 숨도 쉬지 말고 여기 있으라고 ㅎㅎ;; 샘 오셔서 내 방에 들어오셨는데.. 당시에 나는 반에서 컴퓨터 제일 잘하는 학생 이었음.. 애들 컴퓨터 조립도 막 해주고.. 컴퓨터 동아리 회장이었음 근데 컴퓨터가 없어 ㅋㅋㅋㅋ 뭐 되고싶냐고 물으셔서 컴퓨터 프로그래머 하고싶다고 하니깐 컴퓨터는 물으셔서 부모님이 사주신대요... 라고 하니깐 표정 급 어두워지심.. 그러곤 금방 일어나서 가시는데.. 다른 애들은 집에 가면 20~30분씩 계시더니.. 나는 화장실 포함 온지 5분도 안되어서 그냥 후다닥 가심.. 아마 똥 마려우셨던거 같은데 공용 화장실이라 못싸신 것 같았음.. 근데 당시에 우리샘은 좀 체벌을 하는편이라.. 가끔 애들 잘못하면 뒤에 쭈루루 나가서 발바닥 맞고 그랬는데.. 막 때리면서 오다가.. 내차례 오면 막 앞으로 보면서 훈계 막 하고 슥 뒤돌아서 내차례 넘기고 다음 애 때리고 그랬음... ㅎㅎ 이게 15년쯤 전 일인데... 그런 역경을 딛고 아들, 딸 대학 졸업 다 하고 매달 부모님께 100만원씩 용돈 부쳐 드려도 넉넉하게 저축하면서 살 수 있는게 참 너무 감사함.. 엄빠 그거 장가가면 끊길지 몰라요^^
저도 몰랐었는데, 엄마께 말씀 들어보면 국민학교 저학년 때.. 선생이 엄마들 모임같은거 만들어서 가보면 그런 쪽(촌지)으로 말했다고 하셨어요. 더욱이 제가 싫어했던 여자 선생..(고작해야 8살인 애들 멱살잡고 소리지르던게 아직도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음) .. 그래서 "엄마! 그 년(선생이라 부르기도 싫음) 애들 얼마나 팼는데!! 웬일이야.. 그랬어? 와.. 어쩐지, 애들 막 패는데, 몇몇 애들은 안패더만, 그렇구나.."하고 말했네요..
초등학교 저학년일때 연년생 남동생이 학교를 자주 빼먹던 시기가 있었음 엄만 그때 너무 바빠서 겨를이 없는 상황? 아마 자세히 모르신듯. 그때 동생반 담임년이 내가 누나라고 나를 동생반 맨앞으로 불러다가 쥐잡듯이 잡았었음 교실 맨앞에서 교단에 세워져서 동생 친구들이 쳐다보는데 내가 잘못한 일도 아닌걸로 꾸지람을 들었던건 정말정말 수치스러운 기억으로 아직도 생각하면 기분이 더러움 안타깝게 생각하는건 너무 어렸고 전학을 많이 다녀서 그선생년 이름을 기억 못하는것 ㅜ 지금도 그때도 이해가 안감. 왜 어린 나를 불러다 그랬을까 엄마한테 말을 했거나 나한테 좋게 말했으면 어려도 동생 문제를 이해했을텐데
저는 촌지는 아니고 초등학교 6학년 때 힘들게 괴롭힘 당한다고 얘기 했는데 저 괴롭히는 애들이 막 둘이 있으면 웃겨주고 여럿이 뭉치면 괴롭히고 그랬어요. 지금보면 별거 아니지만 초등학생땐 울기도 많이 울었었는데 그거 보더니 니가 웃어주니까 더 그러는거라고 하셨었어요. 게다가 중간에 남자애가 전학왔는데 걔가 좀 반항?하니까 걔랑 조금만 말섞어도 불러서 걔랑 친하게 지내지말라고 그러더라구요.ㅎ그때도 왜 이런 말을 하시지? 했는데 지금은 더더욱 이해가 안가네요.
교사에 대한 게시물에는 언제나 분노에 찬 댓글들이 많네요.. 그만큼 쌓은부분들이 많아서겠죠 저도 저런 시기를 겪었고 그 시절에 나쁜 짓하던 분들이 지금의 관리자분들 정도의 나이들 이네요.. 지금은 적어도 아주 많은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말 한마디 할때도 조심하고 사탕 하나 주는 것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상처받으셨던 많은 분들께 교사로서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다만 변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많이 변화했습니다 현직에 있는 많은 교사들에게 이런 글들은 자신을 돌아보게도 만들지만 힘이 빠지는 것도 사실이지요 정말 좋은 교육을 위해 노력하는 많은 교사들에게 응원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국민학교 시절.. 부모님이 슈퍼하실 때라 늘 바뻐서 잘 챙겨주지 못하셨어요. 그나마 저는 인복이 많았는지 담임선생님들이 다 좋은분들을 만나서 촌지문제에 얽힌 일이 없었는데..
4살 어린 동생이 2학년 시절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할배놈이었는데 학기 초가 지나자마자 하교 후 절 불러서 잡일을 시키기 시작 대부분 애들 시험지 체점과 교실청소 혹은 개인심부름 다른 애들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나 혼자서만! 내 담임도 아니고 동생 담임이ㅋ
거의 하루에 짧게는 한시간..많게는 두시간도 되었고 순진했던 그 시절에 나는 동생담임이라고 시키는데로 했네요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들과 놀 수있는 시간도 없고 어느순간 왜? 나만 혼자서 이것을 해야하나..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 한달이 넘은 쯔음 '왜 자꾸 저에게 이런일을 시키는거에요?' 그 말 한마디에 귓싸대기를 여러대 맞았어요.
싸가지 없이 선생이 시키는데로 군말없이 해야지 대꾸했다고 억울한 마음에 울면서 집에가서 그동안 있었던 얘기를 했었더니 한 성격하시는 엄마 학교 교장한테 바로 전화해서 울고불고 하셨던 기억이 나요.
나중에 엄마가 친구분과 얘기하신 것을 들었었는데 학기초가 지났음에도 촌지가 없어 괘씸해서 언니인 절 부려먹었다고 하더군요ㅋ 그 영감탱이 진즉에 저세상 갔겠지만 선생자질이 없었던 놈이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촌지를 거의 줬다고 그래요. 스승에날과 선생생일에는 교탁위에 선물이 높게 쌓였었고 임원들 부모님은 행사때마다 따로 선생 술 접대 돈 접대하던 시절이었으니...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정치인인 심상정의 부친이야기임... 친구 아버님이 국딩때 조실부모해서 상당히 곤궁하게 사셨는데 당시 그분(심상정부친)께서 여러모로 보살펴주셨다고... 심상정이 TV에 나오면 친구 아버님이 그때 이야기 하시면서 울먹이신다는...웃긴건 이분이 자수성가해서 지금은 수천억 자산가이신데... 극수꼴보수 지지자....ㅋㅋㅋ 그래도 심상정 대통령후보로 나왔을때 후원을 좀 하셨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