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달링 인 더 프랑키스
전체적인 모양새는 우중충한 세계관에 보이는 한 줄기 빛. 하지만 제작진은 고의적으로 그 한 줄기 빛만을 주로 보여주며, 이따금 시궁창 세계관을 보여주는 다소 역설적인 수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수법은 유유유에서도 봤던 건데, 제대로 사용하면 어두운 전개로 전환하는 순간 보는 사람의 멘탈을 믹서기에 갈아버릴 수 있거든요. 트리거는 그런 작품을 만드는 회사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시리어스에 돌입한 순간, 제 정신이 버텨낼 수 있을지 의문.
작품으로 돌아와서, 커여운 로봇들과 클리셰를 그대로 수용했으면서도 개성 넘치는 각 캐릭터들은 마음에 듭니다. 극의 구조는 일단 ‘제로투와 세 번 타면 죽는다’는 떡밥을 중점으로 돌아가는 제 1막이 히로에 의해 끝난 후, 꽤 적지 않은 기간 휴식과 일상을 보여주는 데 집중되고 있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얼마든지 시리어스할 수 있으면서 쉬어가는 것 이상으로 일상을 보여주는 애니는 매우 높은 확률로 노린 거죠.
일상을 보여주는 와중에 쉬지도 않고 떡밥을 투척하고, 투척하고, 투척하는 솜씨도 일품. 그 와중에도 남녀 간의 차이나 관계 같은 고전적이면서도 상징성 짙은 소재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흥미롭게 전개해나갑니다. 이번화는 보고 나서 뒤통수 얼얼한 느낌이 가시질 않네요. 멋진 신세계랍니다, 어른들의 세계란.
OP의 곡이나 가사도 작품 자체를 담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잘 뽑혔고, 마지막 장면에서 ED으로 연결되는 부분은 매화 소름이 돋는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적절하기 그지없습니다. 참고로 지금도 프랑키스 엔딩 듣고 있답니다.
2. Citrus
원작은 백합물에서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 몰락한 모양이지만, 애니는 각본 관리가 꽤 잘 된 모양입니다. 하루밍과 모모키노를 적당히 섞어서 초반부 유즈와 메이 간 관계를 풀어주고, 중반부에 마츠리를 투입, 위기 상황을 불러일으켜 극의 긴장감을 한바탕 끌어올린 후, 마지막에 자매 캐릭터를 통해 유즈와 메이의 관계를 정리한다는 각본은 꽤나 기승전결이 잘 지켜졌잖아요. 요즘 만화고 라노벨이고, 원작이 있는 애니 중에 이 정도로 기승전결 잘 지켜진 애니는 정말 손에 꼽는 것 같은데.
작화로 말이 많은 모양이지만, 개인적으로 문제 삼을 정도는 아니라고 보고, ost는 묘하게 클래식틱(..)할 정도로 준수합니다.
작품 내적으로 애들 성격은 은근히 모나면서도 현실적이라 재밌고, 개인적으로 이것저것 생각해보는 점도 많고. 으음. 아무튼 좋아요. 한 분기에서 ‘괜찮게 봤다’고 말할 수 있어요.
3. 용왕이 하는 일!
원작도 안 보고 이 애니를 평하는 건 꽤 무례한 짓일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6권은 샀는데, 완결된 다음에 보려고 아직 비닐도 안 뜯은 상태라.
10화까지의 소감으로는 로리보다는 스포츠물로서의 측면이 돋보이는 애니. ..라고 해도 제가 본 스포츠물이라고 할 만한 게 걸판밖에 없는 것도 있지만. 아무튼 스포츠물로서는 걸판 tv판보다 더 재밌었어요. 쇼기는 잘 모르지만, 몰라도 상황 이해에는 지장 없었고.
팔아먹으려고 로리 집어넣고 로리물 로리물 하지만, 정작 등장하는 로리들의 캐릭터성은 클리셰를 응집한 모습에 가깝고 빈약하기 그지없어서 오히려 긴코나 케이카 씨가 더 눈에 띕니다. 어쨌든 필요악임을 부정하지는 않지만요.
위에서 스포츠물로서 재밌다고 했는데, 이 작품이 정석적인 전개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측면에서 그렇게 언급했던 겁니다. 무슨 말이냐하면, 주인공이 용왕이 된 이후부터 명인과 대결하기까지, 각 인물들의 드라마와 성장이 스쳐지나가듯 묘사되면서도 총체적인 줄거리는 명인과의 대립 구도를 그대로 따라간다는 점이 무척이나 흥미롭다는 겁니다. 주인공의 친구인 그 중2병 걸린 .. 이름 기억 안 나는 아이가 용왕전에서 명인에게 패배한 시점에서 극의 긴장감이 최대로 끌어올라오는 것이죠.
Citrus가 중반부에서 벌써 위기 상황, 절정이 나왔고 뒤의 3화는 ‘정리’에 가까움을 생각하면 맨 뒤에서 폭발시키는 용왕이 하는 일은 소년만화라고 보아도 좋을 전개인 셈이죠.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그동안의 스킵 신공, 심리묘사 생략으로 인해 10화의 시리어스 전개가 상당히 급작스럽게 느껴지게 된 겁니다. 원작은 이렇지 않은 모양인데.
벌써부터 실패 같은 표현을 쓰고 싶지는 않지만, Citrus와 비교해서 각본가 역량이 상당히 뒤떨어지는 것은 사실 같네요. 아무튼 극 자체는 흥미로워서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존재 자체가 최강인 명인을 무슨 자연 그 자체라도 보듯, 얼굴도 안 보여주는 건 긴장감 유지에는 최고였습니다. 이미 나왔을 11화를 비롯해 앞으로 2화. 용왕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조금은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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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느끼는 거지만, 의식의 흐름으로 글을 쓰다보니 글 구성이 개판이 되어버리고, 비문과 좋지 않은 표현이 난무하게 되네요. 그런데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글 올려버려도 아무런 불편함도 안 든다는 점에서 애게가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