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여중생 집단 폭행 파문 일파만파 속 일선 학교선 '전담일진' 놀이까지 성행 군대처럼 마크맨 붙여놓고 대놓고 괴롭혀도 "담당이 일 잘한다"
오히려 묵인하는 분위기 한 네티즌이 지난 6월말 올린 `모범적인 담당일진`이란 제목의 일선 학교 급우간 카카오톡 채팅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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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네티즌이 지난 6월말 올린 `모범적인 담당일진`이란 제목의 일선 학교 급우간 카카오톡 채팅 내용. <자료=SNS캡쳐>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에 이어 강원 강릉 10대 폭행 등 청소년 폭행·집단괴롭힘이 사회적 문제로 불거진 가운데 최근 일부 일선 학교에선 속칭 '담당일진'까지 정해놓고 왕따·집단 괴롭힘을 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원 강릉에서 10대들이 또래를 7시간 동안 때린 사건에서처럼 가해자들이 죄의식 하나없이 당당하고 피해자를 조롱하는 채팅까지 하는 등 학교폭력을 희화화하는 분위기까지 일다 보니 정부의 예방 노력도 허사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6일 매일경제가 네이버·다음 등 검색사이트와 사회관계망(SNS)에서 '담당일진' 검색어를 넣고 검색한 결과 속칭 '담당일진 놀이'로 통칭되는 글들이 무수하게 검색됐다. 담당일진이란 군대에서 선임병이 후임병을 관리하는 것처럼 학급이나 학교에서 '왕따'로 낙인 받은 학생에 대해 학교 일진들끼리 관리책임을 정해놓고 해당 학생을 전담책임지는 것을 말한다.
다수 글들은 네티즌들이 엉뚱한 발언을 하는 경우 '얘 담당 일진이 누구냐'는 식의 장난성 글들이지만 일부 글들은 실제 집단적인 괴롭힘 내용을 시사하는 부분들도 상당했다. 한 네티즌이 '모범적인 담당 일진'이란 제목으로 지난 6월 올린 카톡 메세지에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고 말한 학급 학생을 '오타쿠'(한 분야에만 집착하는 괴짜)로 몰며 폭언을 계속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결국 이 채팅방의 끝은 글을 올린 학생의 '담당 일진'으로 칭하는 학생이 "XXX아 내일 너는 (학교에서) 진짜 죽는다"는 폭력을 암시하는 문자를 보내면서 끝을 맺는다. 집단괴롭힘 내용을 버젓이 SNS에 올린 것도 모자라 댓글을 단 학생들은 "(담당일진) 일 겁나 잘한다" "00이는 오늘 밤 잠 설치겠다"는 식으로 괴롭힘을 정당화 하거나 피해 학생을 조롱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담당일진 놀이'가 일선 학교에서 실제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경기도의 모 중학교 2학년생 A군은 "반에서 유독 수업시간에 질문을 많이하는 친구가 있는데 수업종료 시간에 임박해 질문을 하거나 튀는 질문을 끝나면 '담당일진'이 수업 끝나고 '교육'을 하곤 한다"고 말했다.
A군에 따르면 교육은 직접 오프라인상에서 폭언을 비롯해 단체 채팅방에 초대해 집단적으로 모욕하거나 괴롭히는 것을 말한다. A군은 "담당일진이 '왕따' 학생을 잘 관리·관찰 잘해야 학급이 조용하고 평화롭다는 인식이 있다"며 "누구도 담임 선생님에게 말하는 분위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강원 강릉 10대 폭행 가해자들도 피해자 언니가 자신들의 폭행 사실을 SNS에 올릴 것으로 보이자 "우리 신상 다 퍼뜨릴 텐데 우리도 그거 고소하면 된다", "나는 정신적 피해와 보상 요구하겠다"며 대응방법까지 올렸다. 한술 더 떠 이들은 "어차피 다 흘러가. 나중에 다 묻혀", "팔로우 늘려서 페북스타 돼야지", "이것도 추억임" 등으로 폭력 행위를 미화하고, 논란을 발판 삼아 SNS 스타가 되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포부'까지 밝혔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 전반에는 일상적 억압과 폭력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어온 게 사실"이라며 "'일진'과 '학교폭력'의 존재를 다수가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희화화 하는 것은 폭력에 무뎌지게 하는 사회적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폭력에 대한 죄의식이 부재한 학교일선 분위기로 학교폭력 피해자도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학교폭력 현황과 실태조사의 시사점'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 학생 수는 중학교를 제외한 초등, 고등학교에서 2013년부터 3년 동안 가파르게 상승했다.
2015년 학교폭력 피해 초등학생은 3403명으로 2013년(2161명)과 2014년(2724명)에 이어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학교폭력을 경험한 고등학생도 2013년에는 5116명에서 2014년에는 5899명, 2015년에는 6690명으로 최근 3년 동안 매년 800명 가까이 증가했다.
6일 더불어 민주당 이재정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소년부로 송치된 촉법소년은 3만4850명에 달하는 가운데 이중 살인, 강도, 성폭력, 방화 등 4대 강력범죄 연루자 수는 2015년 368명에서 지난해 434명으로 증가한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만 262명으로 역시 늘어나는 추세다. [양연호 기자 / 임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