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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안개
게시물ID : panic_548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10년전오늘
추천 : 2
조회수 : 691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3/08/05 18:56:53
안개
"쾅!!!!"
뭔가에 부딪혔다. 아니 내가 뭔가를 들이받았다.
운전대에 얼굴을 묻은 자세를 유지한 채 나는 길게 몇 번의 심호흡을 했다.
내 술냄새를 내가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과음을 했다.
"아....신발..."
이마에 따끈따끈한? 액체가 흘러내린다.
아마도 머리에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에어백이 터졌음에도 밸트를 매지 않아 창에 머리를 받은 모양이었다.
조수석을 돌아보니 오늘 나이트클럽에서 꼬셨던 여자애가 없었다.
"신발년....날 두고 도망쳐?"
나는 천천히 차문을 열고 나왔다.
주변에 안개가 엷게 끼어있음을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차의 보닛(bonnet)부분에서 불이 난 것처럼 증기가 올라오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가로등을 끼고 있는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것이다.
어른거리는 와중에서 시계를 들여다보니 새벽 3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서 있을 힘도 없었다.
나는 가드레일을 등지고 자리에 앉아 몸을 쉬었다.
음주로 경찰에 걸리고 안 걸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지금은 쉬고 싶었다.
사고 후 3분도 안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어디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 왔다.
거슴츠레 뜬 눈으로 그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였다.
멀리서 경광등을 반짝이며 달려오는 차량이 보였다.
"짭새 새끼들...졸라 빨리오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그들이 나를 데려가기만을 바랬다.
내 옆에 차량이 멈춰서고, 차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괜찮아요?"
"....."
나의 불규칙한 숨소리와 냄새를 느꼈는지 그는 말을 이었다.
"아저씨 술마셨구만?"
나의 대답이 없자 그는 나의 어깨를 툭툭치며, 뭔가를 내 밀었다.
"아저씨 내 명함이니까, 아침에 차 찾아가쇼..."
"뭐여?"
나는 그의 뜬금없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경광등을 밝힌 그 정체는 견인차였다. 경찰이 아니었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쪼그려 앉아 나를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아저씨...이마 찢어졌네...병원에 빨리 가보슈.
그리고 곧 경찰 올텐데 빨리 이 명함 챙기쇼...."
그는 내 오른쪽 상의 호주머니에 명함을 끼워넣더니
내 차량을 견인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가 견인되는 그 순간까지도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견인차가 멀어지는 소리로서 그가 이곳을 떠났음을 알 수 있었다.
"푸우....신발놈들..돈이 되면 사람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거군."
나는 몸이 휘청거리는 상태에서도 정신은 제대로 박혀있었는지 그 남자의 무성의함에 넋두리을 했다.
늦은 가을이라 그런지 반코트를 입고 있음에도 무지 쌀쌀했다.
나는 반코트를 꽉 움켜쥐고 품 속으로 더 밀어넣으며, 체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낯선 여자의 음성이 들렸다.
"아저씨....추워요...."
"나도 추워...."
나는 아무 생각없이 대답했다.
"아저씨....추워요...."
나는 갑자기 확 짜증이 밀려왔다.
나는 고개를 치켜들고 그 여자를 향해 소리쳤다.
"아 신발!! 나도 춥다니까!!"
엷은 안개속에서 가드레일을 따라 10여미터 앞에 웬 낯선 여자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 여자의 모습은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올 수록 그 모습은 나를 더욱 스름끼치는 전율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원피스를 입은 온 몸이 물에 젖어있고 청백색의 피부에 소름끼칠 정도로 검은 눈과 긴 생머리....
짙는 눈썹, 두 팔로 몸을 감싼 채? 그 여자가 나를 향해 두 발을 질질 끌듯이 걸어오고 있었다.
"아저씨....추워요...."
"헉!!!!! 신발 당신 뭐야?"
나는 갑자기 순식간에 체내의 알코올 모두 분해된 것처럼 정신이 확 깼다.
"아저씨....여기...너무...추워요...."
점점 더 다가올 때마다 선명해지는 그녀의 모습은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피부가 심하게 뜯겨있었고, 피부밖으로 노출된 뼈가 여기저기 보였다.
특히 왼쪽 뺨은 피부가 거의 다 벗겨져, 속의 어금니까지 보였다.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렸고, 등골이 송두리 채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나는 등 뒤의 가드레일을 지지대로 삼아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뭐야..신발!!!? 가..가까이 오지마...."
나의 요구에도 그녀는 두발을 질질 끌며 천천히 내 앞 2미터까지 다가왔다.
"따다닥...따다닥...따다닥"
오한을 느까는지 그녀의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터진 왼쪽 뺨 사이로 새어 나왔다.
"아~악!!!!!! 이...신발 오지마!!!"
나는 내 몸을 제대로 주체할 수 없는 와중에서도 춤을 추 듯 그녀를 향해 발길질을 하였다.
바로 그 때,
"이봐요, 아저씨!!!!!!!"
낯선 남자의 부름에 나는 고개를 획 돌렸다.
택시였다.
택시기사가 창을 열고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대답도 없이 미친듯이 택시의 뒷자석에 올라탔다.
나는 타자마자 얼굴을 두 손으로 감사고 그에게 부탁했다.
"아저씨!! 아무 병원이나 가요. 빨리요!!"
"알았소이다."
택시는 기다렸다는 듯이 미터기를 누르고 잽싸게 출발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뒷창을 통해 그녀를 확인했다.
멀어지는 시야속에서 우두커니 나를 지켜보는 그녀가 보였다.
"헉...신발!!"
나는 재빨리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뭘 그렇게 놀라슈?"
50대로 보이는 택시기사는 나의 안절부절하는 행동이 기이한 듯 물었다.
"아저씨, 그 여자 봤어요? 무섭게 생긴 여자.."
"무슨 여자요?"
"방금 전 내 앞에 있던 여자 말예요!!"
"아이고...냄새야....오늘 과음하셨구나. 이마도 다치시고..."
기사는 내 말에 대답할 생각은 하지 않고 룸미러를 통해 내 상태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저씨!!!!!!! 그 여자 봤냐구요?"
"못 봤는데요."
택시기사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의 유난스런 행동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는 몸을 일으켜 앞 좌석 사이로 고개를 내밀어 다시 소리쳤다.
"바로 내 앞에 있었는데 왜 못봐요!!!!"
"아이고 깜짝이야!!! 못 봤다니까요...이 양반 많이 취하셨네...시트에 피묻히지 말고 앉아 있어요!!
거 참 젊은 양반이 이 새벽에 뭔 짓이래?"
택시기사의 꾸지람에 나는 앞 좌석 사이에 들이 밀었던 머리를 뒷좌석에 던지듯이 눕혔다.
나는 길게 몇 번의 심호흡을 한 후 조금 전의 기억이 어떤 것이었는지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봐!!? 젊은 양반!! 일어나!!"
얼마되지 않은 사이에 나는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기사의 부름에 나는 천근만근같은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거슴츠레 뜬 두 눈에 응급실과 병원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 병원은 사고지점에서 한 참 떨어진 곳이었다.
"뭐야? 누가 여기까지 데려 오래?"
순간 미터기에 찍힌 27,000이란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신발...사기꾼같으니라고..."
나는 얼른 택시 밖으로 기어나왔다.
따뜻한 곳에 있었기 때문인지 다시 견딜 수 없는 취기가 몰려왔다.
나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비틀거렸다.
운전석에서 내린 택시기사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말을 건넸다.
"아무 병원이나 가자며?"
치미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나는 비틀거리며 그의 멱살을 잡기 위해 달려 들었다.
"이..신발....누굴 등처먹으려고.."
기사는 내 두 손을 움켜쥔 채 어이없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야 임마!! 내 택시안에 니 피 묻힌 값은 내놓아야지..."
"이...신발놈..."
그 순간 택시기사는 들것을 밀고 병원 직원이 나오는 것을 보자 나를 밀치고 운전석으로 돌아갔다.
"야 임마!! 이따가 정신차리면 돈 받으러 올테니까 치료나 잘 받고 있어."
열린 창문 틈으로 이렇게 한 마디 내뱉더니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더니 차를 몰고 달아났다.
내게 다가 온? 직원이 내 얼굴을 유심히 살피더니 물었다.
"싸워서 다친겁니까?"
직원의 친절한 물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의 말은 여전히 거칠었다.
"몰라..신발 새끼들아!!!"
이 말을 들은 직원들은 나를 제압하고 들것 위에 눕혔다.
나는 누워서 실려가는 와중에도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
"그 기사 신발놈...죽여버리겠어....강아지...."
응급실 내로 들어서자 그제서야 나는 내 두 손과 두 발이 골절환자의 부목처럼
들것에 묶여있다는 것을 알았다.
"야...신발 니들 뭐하는거야?"
직원들은 나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없이 수술실로 나를 이동시켰다.
"야... 신발놈들아!! 나를 왜 묶어? 내가 정신병자야?"
나의 괴성에 그제서야 들것을 밀던 직원 한 명이 내려다보며 답을 했다.
"이봐요, 수술하다가 움직이면 당신 얼굴 찢어지는 수가 있어."
수술실로 들어서자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가 났다.
담당 의사에게 나를 맡긴건지 그들은 모두 수술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야!! 이것 좀 풀어줘!!!"
나는 소리를 지르며, 바동거렸지만 도저히 내 힘으로는 벨트의 장력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야!! 이 신발 놈들아!!"
나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안개가 낀 것처럼 세상이 뿌옇게 변했다.
'안개...뭐야?? 병원에 웬 안개?'
잠시 후, 내가 잠시 잠잠해지자? 한 사람이 조용히 들어와 내 옆에 서서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그 사람 배경에 비치는 조명등 때문에 얼굴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실루엣으로 보아 여자 간호사임이 분명했다.
"뭘 쳐다봐?"
나는 아직도 분노를 잠재울 수가 없었다.
"뭘 그렇게 빤히 쳐다보나구?"
내 말에 그 검은 실루엣은 아무 말없이 주사기에 약을 채워 바늘을 통해 공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헤이....이 봐...지금 뭐하는거야?"
그녀는 아무런 응답도 없이 주사기 안의 공기를 다 밀어내었는지 조용히 머리를 숙여 나에게 다가왔다.
그 검은 실루엣의 얼굴이 나에게 충분히 가까워지자
나는 비로소 그 실루엣 속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만일 놀라서 죽는다면 이렇게 죽을 것이다.
그녀의 머리에서 흘러내린 시뻘건 피가 새하얀 얼굴에 수많은 세로선을 긋고 있었다.
귀밑까지 찢어진 입속으로 하얀 치아가 드러나 보였고,
그 하얀 치아 틈 사이로 흘러내린 핏물이 채워지고 있었다.
"후..신발..."
숨소리같은 나의 작은 신음소리와 함께 내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근육세포들이 멈춰버렸다.
그리고 난 의식을 잃었다.
"이 놈아..정신 차렸냐?"
흐려진 초점이 윤곽을 잡아가자 나는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아버지임을 알아보았다.
"개놈의 자식..나이 처먹고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네."
아버지의 푸념에는 이제 이골이 났다.
"변변한 직업도 없는 놈이 술처먹고 쌈질이나 하고 다니니.. 이거 원."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순간 오른쪽 이마가 욱신거려 손을 가져다 대었다.
두툼한 반창고가 만져지는 것으로 보아, 어제 다쳐서 꿰맨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싸움 한거 아니거든요.."
"이런 미친 놈. 그럼 어디 전봇대라도 들이받았냐?"
"에이..좀 그만하세요."
그 때 침대 커튼을 열어 젖히고 누군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간호사였다.
"으헉!!!"
나의 비명소리에 간호사가 물었다.
"괜찮으세요?"
나는 잠시 긴 한숨을 몰아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보호자분 나가실 때 싸인하시고, 원무과에 치료비 납부하시면 됩니다."
간호사는 사무적인 말투로 아버지에게 말을 건넨 후 뒤돌아 걸었다.
"아버지...나가기 전에 여기에 만날 사람이 있어요."
"뭐? 누구?"
"간호사요. 꼭 봐야 될 간호사가 있어요."
내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아버지는 잠시 나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내가 어느 정도 예측한 대답을 날리셨다.
"이런 미친 놈. 너같은 양아치 새끼가 간호사를 어떻게 알어? 어디 또 하나 후려서 어떻게 해보려고?"
"아버지 그게 아니고.."
"그만 닥치고 나갈 준비나 해."
난 아버지에게 저항할 수가 없다.
잘 생긴 외모와 부잣집 아들이라는 이유로 나에겐 여자들이 많이 따랐다.
많이 따른만큼 내 생활은 난잡해져 갔다.
여자를 건드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고, 임신 중절만도 몇 번은 되는 것 같았다.
상습 음주운전으로 몇 개월 실형을 살아본 적도 있고, 조폭 여자를 건드려 살해 위협을 받아본 적도 있다.
아직까지 내가 살아있는 이유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버지가 엄청난 돈을 썼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금액만도 1억 5천이 넘었다.
그런 엄청난 빽이 되어 준 아버지에게 저항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나는 어쩌면 지금 철창 속 어두운 골방에 처박혀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외투를 걸치고 아버지를 뒤따라 나섰다.
그런데 그 때 우리 앞에 경찰 복장을 한 두 사람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김성태씨?"
"네?"
경찰의 물음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역시나 옆에 있던 아버지의 호통이 시작되었다.
"이런 미친 놈..너 또 사고쳤냐?"
나이가 있어 보이는 한 명이 나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ㅇㅇ경찰서 교통계 최정수 경장입니다.
어제 새벽 ㅇㅇ동, ㅇㅇ대로에서 차로 가로등을 들이받고 도주를 하셨더군요."
"뭐요? 제가요? 전 차를 몰지 않았는데요"
이럴 수가....분명히 견인차가 내 차를 끌고 갔는데....
이런 혹시 그 견인차 운전자가 불어버린 건가?
아니면 어제 나이트에서 꼬셨던 그 년이 불어버린 것인가?
"그럼 이마에 난 그 상처는 뭡니까?"
"이..이거요? 술 먹다가 옆 테이블 애들하고 싸움이 붙어서..."
"조사하면 나올테니까 일단 서로 같이 갑시다."
"아니..내가 운전을 안 했다는데 무슨 증거로 가자는 겁니까?"
내 말에 그 경장은 허탈한 웃음을 한 번 짓더니 말을 이었다.
"지금 장난하는거요? 당신 차의 앞유리하고 에어백에 난 핏자국 당신 거 아니면 뭐요?
국과수에 넘겨 볼까요?"
"에이...신발.."
나는 머리를 털 듯이 긁적이며 욕설을 내뱉았다.
옆에 서 있던 아버지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나를 노려보더니 이내 한 마디를 내뱉고 병실을 나섰다.
"난 싸인하고 간다."
경찰차에 실려서 경찰서로 향하는 동안 나는 시무룩한 표정을 유지한 채 아무 말없이 앉아 있었다.
"서른도 안된 젊은 양반이 경력이 화려하대."
뒷자석의 금속봉에 채워진 수갑이 어제 나를 묶었던 들것의 밸트보다
더 단단히 나를 잡고 있는 듯 보였다. 그 때 나는 궁금한 게 하나 떠올랐다.
"아저씨..뭐 하나 물어봅시다."
"뭐요?"
"내가 사고난 것 누가 불었소?"
"누가 불다니?"
"아니... 견인된 차 어디서 찾았냐구요?"
"뭔 소리야? 당신 차.. 사고 현장에 그대로 있었구만."
"뭐요?"
나는 순간 머릿속이 잘 정리되지가 않았다.
"아이...신발...뭐가 어떻게 된거야?"
그 때 문득 나는 머리 깊은 곳에 묻혀져 있는 작은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그래..명함!!"
견인차 운전사가 주고 간 명함.....
나는 이곳 저곳 내 호주머니를 뒤졌다.
이윽고 오른쪽 상의 주머니에서 명함 대신 작은 쪽지가? 손에 걸렸다.
-사일런트 엔젤 010-9453-xxxx-
"뭐야 이거...."
쪽지에 적힌 엉뚱한 메세지는 그 내용만으로 나를 놀라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 적힌 글씨체는 내 것이었다.
나는 멍하니 고개를 쳐들고 푸념섞인 말을 내뱉았다.
"헐..신발...미치겠네."
이 말에 앞 좌석의 두 경찰이 의아한 듯이 물었다.
"이봐 친구, 왜 그래?"
교통계 조사를 받는 내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경찰들이 내 말을 믿어줄 것인가만 생각했다.
"야...그러니까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레커차가 니 차를 끌고 간 다음 너는 병원으로 택시를 타고 갔고,
그리고 치료받고 아침에 일어났단 말이지?"
"그렇다니까요!!"
"그런데 갑자기 경찰이 나타나서 왜 차 두고 도망쳤냐고 하더라 이거야?"
"아이씨..진짜 미치겠네..."
"너, 술 어지간히도 취했나 보다."
이대로 가다가는 나는 가중처벌을 받을 게 뻔했다.
상습 운전으로 실형을 살았는데 이번엔 좀 세게 맞을 수도 있다.
"야 임마...대한민국에서 가장 효과만빵의 정상참작이 뭔지 알아?"
"...."
"초범이라는거야. 대한민국 그 어느 판사도 초범에 대해서는 관대해.
그런데 너 같은 놈은 일말의 정상참작의 여지도 없어."
나는 교통계 경찰을 응시한 채로 조용히 눈을 감고, 입술을 깨물었다.
여전히 나는 그의 불친절함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잠시 후 나는 억지로 평안한 표정을 지은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저씨...한 번만 봐 줘요..제가 누굴 친 것도 아니잖아요. 제가 운전을 했다는 증거도 없잖아요.
피 묻은 것도 다른 사람이 운전해서 다친 거라고 하면 되잖아요.
저 이번에 들어가면 인생 종칠지도 몰라요."
그러자 경찰은 몸을 뒤로 눕혀 의자에 기댄 채 팔짱을 끼며 답을 했다.
"거참.....내가 할 말이 없다."
눈을 뜨고 애원하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는 동안,
나는 순간 그와 겹쳐서 뒷배경에 보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아저씨...."
"뭐?"
"아저씨...머리 좀 치워봐요.."
"뭐 새꺄?"
"빨리 머리 좀 치워봐요!!!"
내 눈동자의 초점이 자신의 등 뒤로 향해 있음을 안 그는 몸을 돌려
나와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맞추었다.
얼굴만 확대되어 덩그렇게 붙어있는 벽보.
-사람을 찾습니다-
이름 : xxx
나이 :....
벽보 속의 여자.
어디선가 본 낯익은 얼굴...긴 생머리...짙은 눈썹...
"으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작은 철제 의자와 함께 튕기 듯 뒤로 나동그라졌다.
"야 임먀!! 왜 그래?"
바닥에 주저앉은 자세로 나는 손가락으로 벽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저..여자 어제..봐..봤어요!!!"
"뭐?"
내 말 한마디에 나는 교통계에서 형사계로 넘어갔다.
형사계로 넘어가자 조금 전의 교통계 조사가 얼마나 친절한 대우였는지를 바로 알게 되었다.
강력계 형사들은 눈빛부터가 달랐다.
"너, 이 여자 본 곳 어디야?"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한 형사가 벽보에 붙어있던 같은 전단지를 내 앞에 밀어 보이며 물었다.
무섭게 치켜 뜬 눈과 까칠하게 돋아난 수염이 그를 더욱 경계하게 만들었다.
"어제....제가 사고 난데서요..."
내 목소리는 이미 주눅이 들어 있었다.
"지금 거기로 안내해."
말 한마디에 생각보다 일이 커지는 듯 싶었다.
20여명의 의경들과 강력계 형사팀이 사고현장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형사들과 같이 차를 탄 나는 몸둘 바를 몰랐다.
"너, 그 여자 어떻게 봤어?"
앞좌석에 탄 중저음의 그 형사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나에게 물었다.
"그게..저...."
"확실히 그 여자 맞지?"
"예. 맞아요. 그런데 살아있는 사람 같지가 않았어요."
"뭐가?"
"물에 빠져 한 참 뒤에 발견된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에 여기저기 살이 뜯겨 있구요..."
설명을 하는 와중에도 나는 그 여자가 머리에 떠오르자 소름이 밀려왔다.
나의 머뭇거림에 형사가 말을 재촉했다.
"계속 말해봐."
"물에 젖은 원피스 차림으로 저한테 춥다면서 발을 질질 끌며 다가오는거예요."
"그래서?"
"그래서라뇨? 전 너무 무서워서 택시타고 도망쳤죠."
내 말이 끝나자 그 형사는 한 숨을 길게 내쉬더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 때 운전을 하고 있던 다른 형사가 그에게 물었다.
"마두, 그 자식이 한 말과 똑같네요."
'마두?'
생소한 이름에 나는 귀가 쫑긋해졌다.
"너 귀신 볼 줄 알아?"
중저음의 그 형사가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내게 던졌다.
"예?"
"사람같지가 않았다면서?"
"그렇긴 한데..."
그러고 보니 어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내 부족한 아이큐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것들이었다.
물에 불은 시체같은 여자.
병원에서 봤던 등골이 얼어붙는 듯한 끔찍한 형상의 그 간호사.
생각만 해도 온 몸에 소름이 쫘악 돋았다.
그리고 내 차가 왜 거기 그대로 있는거지?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그냥 가위에 눌린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되나?
그런데 꿈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생생했고, 현실적이었다.
그들이 다 죽은 여자라면......그렇다면 내가 정말로?
그리고 앞 좌석에 앉아 있는 형사들은 뭔 가?
나의 허무맹랑한 꿈같은 얘기에 뭔 개소리냐며 호통 한 번 치지 않는가?
그리고 귀신 볼 줄 아냐는 질문은 또 뭔가?
거대한 음모가 서려있는 무서운 사건에 떠밀려지는 듯한 이 기분은 또 뭔가?
당분간 술을 끊어야겠다.
사고현장에 도착한 형사들과 의경들은 주변을 이 잡듯이 뒤졌다.
특히 도로와 인접한 개천의 풀숲은 경찰들의 주 수색 대상이었다.
10여 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여깁니다!!!!!"
한 의경의 외침에 모두들 먹이를 발견한 승냥이 떼처럼
풀숲 사이에 긴 선을 그으며 한 곳으로 몰려들었다.
가드레일에서 지켜보던 나도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풀숲으로 뛰어들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하천 정화조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발견한 의경이 시뻘겋게 녹슨 정화조의 뚜껑을 열어놓은 채 코를 움켜쥐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거기에 있는 모든 이가 본 것은 부패되어 썩어가는 한 여자의 시체였다.
더욱 나를 경악케 만든 것은,
지금 내 눈앞의 썩어가는 이 시체가 어제 나에게 살아서 걸어왔던 그 여자라는 것이다.
갑자기 입에서 토사물이 쏟아졌다.
시각적인 자극은 견딜 수 있었지만, 후각적인 자극이 내 위장을 파도치게 만들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 있는 의경 다섯 명 정도가 고개를 돌리고 연신 구역질을 해댔다.
경찰서로 돌아오는 동안 나는 넋나간 사람처럼 눈의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사건현장에서 쏟아낸 토사물 때문인지 시큼하고 역겨운 냄새가 아직 코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너 음주운전한 거 없던 걸로 할테니까, 집에 돌아가면 항상 핸드폰 켜 놓고 기다리고 있어."
그 중저음의 형사가 나에게 제안을 했다.
"저 보내주시는 건가요?"
"그래. 그런데 필요하면 다시 부를거야."
그제서야 나는 정신이 번뜩 들었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안도감이 밀려오면서 동시에 몇 가지 궁금증이 떠올랐다.
"그런데 아저씨. 그 시체 뭐예요? 살해당한 거예요?"
"아직 몰라. 김나연이라는 여자인데 실종 신고 후 3개월 만에 찾은거야."
"딱 봐도 이건 살인사건이잖아요."
"국과수 조사가 끝나봐야 돼."
갑자기 소름끼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아..아저씨... 그럼 제가 귀신을 본 거예요?"
".........."
"아저씨 말 좀 해봐요."
"귀신이든 아니든 이번 사건 해결에 니가 도움이 된 건 사실이야. 그건 고맙게 생각한다."
형사의 대답에서 그가 뭔가를 감추는 듯한 뉘앙스가 느껴졌지만 나는 더 이상 알고 싶지가 않았고,
물어본다 하여도 그가 대답해 줄 것 같지 않았다.
다시 한동안 나는 침묵 속에 빠져 들었다.
한 동안 이어지던 어색한 침묵을 깬 것은 나의 궁금증이었다.
"아저씨 그런 시체 많이 봐요?"
뒷좌석에 앉아있는 나의 질문에 형사가 고개를 잠시 돌려 피식 웃음을 보였다.
"그런 걸 왜 물어?"
"그냥 궁금해서요. 아까같은 시체보면 꿈에 안 나타나요?"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지. 그런데 그건 그나마 양호한거야."
형사는 시선을 다시 앞으로 돌려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목 매달아서 목이 1.5배나 늘어난 상태로 혓바닥을 턱 까지 길게 내밀고
나를 쳐다보는 시체 한 번 봐봐. 그건 진짜 꿈에 나타난다."
"에이...겨우 그 정도예요?"
나의 비아냥거림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말을 이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사건이 하나 있는데 순경 시절에 집에 누가 침입했다는 여자의 신고 전화를
받고 출동한 적이 있었지. 조그만 벽돌식 단독주택이었는데....현장에 갔더니 불은 꺼져 있고,
문이 잠겨 있는거야.
원래 수색영장없이 함부로 들어가면 안되는데 그 날은 느낌이 안 좋더라구.
나는 방범창을 부수고 조심스럽게 창문을 통해 들어가려고 시도했어.
그런데 큰 장롱 하나가 창문을 반 쯤 막고 있는거야.
난 그것을 간신히 밀어내고? 창문 안으로 발을 간신히 내딛었는데,
순간 윤활유같은 무언가에 미끄러져 방안으로 굴러떨어지듯 넘어졌지.
나동그라져서 뒤로 누운 상태가 된 나는 옆에 무엇인가를 감지하고 고개를 돌렸는데
난 그 때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처참하게 살해되어 누워있는 피범벅이 된 여자 시체와 눈이 마주친거야."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마치 그 때 그 형사가 된 기분처럼 소름이 끼쳤다.
"눈을 동그랗게 부릅뜨고 죽었는데,
마지막 숨이 새어나오는건지 입에서 피거품이 부글거리는 소리가 나더라구."
형사는 잠시 입을 굳게 닫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1년 가까이 꿈 속에 그 여자가 그 얼굴, 그 모습으로 나타나 나를 괴롭혔지."
나는 으스스한 기운에 입을 열지 못했다.
"너 좀비 영화 봤냐?"
"네..."
"고통이 극도로 심해지거나 죽음에 임박하게 되면 엄청난 양의 엔돌핀이 뇌에서 분비되지.
엔돌핀 때문에 고통을 못느끼는거야.
전쟁 영화보면 폭탄 맞아서 자기 팔이 떨어져 나간 줄도 모르고 남은 한 손으로 총 들고 진격하고 있잖아.
교통사고도 마찬가지야.
트럭에 치어서 하반신이 짓이겨져서 떨어져 나갔는데도,
그것도 모른 채? 숨이 멎을 때까지 도로 위를 두 팔로 기어다니는 사람도 있어.
좀비처럼 말야."
나는 잠시 할 말을 잊고 침을 한 번 꼴깍 삼켰다.
"워, 워, 워...형사도 할 짓 못 되네요."
나의 장난끼 어린 말투가 내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을 알아챘음에도,
그는 더 잔인하게 나를 압박했다.
"그나마 형사는 좀 낫지. 현장 정리가 어느 정도 된 다음에 출동하니까.
신고 받고 처음으로 출동하는 순경들은 뭘 보겠냐?
투신해서 머리가 으깨진 시체,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피부가 벗겨져 나가 속살을 드러낸 시체....
나도 그런 끔찍한 광경은 대부분 순경 시절에 본거지."
몇 마디의 대화가 끝나자 경찰서에 가까워지는 듯 했다.
경찰서에 정문에 도착하자 그 형사는 나에게 조금 전의 약속을 재확인한 후
나에게 항상 대기하고 있기를 부탁했다.
나는 안부인사를 한 후 차문을 열고 내렸다.
문을 닫으려는 순간 나는 중요한 질문거리가 하나 떠올랐다.
"아저씨. 제 차 어디서 찾아가야 되요? 그거 비싼건데.."
"기다려 임마. 조사가 끝나면 교통계에서 연락이 갈거야. 다음에 다시 보자."
경찰 지프차가 멀어지는 것을 보자, 나는 상의 주머니에 집어넣은 오른손의 중지를 치켜올렸다.
"조까 신발..내가 다시 오나 보자."
나는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진짜로 내 차 어디 있는거야?"
내 차량의 소재가 궁금하긴 했지만, 이 순간 나를 더 궁금하게 만드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지금 웃옷 주머니 속에서 매만져지는 작은 쪽지의 내용이었다.
-사일런트 엔젤 010-9453-xxxx -
"그런데 신발, 도대체 이게 뭐지?"
몇 초동안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호기심을 참지 못한 나는 이내 휴대폰을 꺼내 쪽지에 적인 숫자대로 버튼을 눌렀다.
'뚜루루루....뚜루루루루....뚜루루루루.....'
발신음이 반복되면서 왠지 모를 긴장감이 감돌았다.
"여보세요."
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거기가 어디죠?"
나는 조심스레 그에게 물었다.
"너 누구야?"
"그냥 사일런트 엔젤을 찾고 있어요."
갑자기 내 고막을 찢는 듯한 그의 폭언이 들려왔다.
"너 누구야!! 강아지야!!!"
"헐..."
나는 얼른 휴대폰의 폴더를 닫아버렸다.
"헐..신발 놈. 졸라 까칠하네."
그런데 나의 독백이 끝나기가 무섭게 휴대폰이 요란한 벨소리를 울려댔다.
조금 전 그 번호였다.
받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그런데 왠지 모르게 받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기 시작했다.
"여...여보세요?"
"너 이 번호 누구한테 얻은거야?"
그 까칠한 남자였다.
"아니 그냥 제 호주머니에 매모 쪽지가 있어서...뭔가하고 연락한건데요?"
"사일런트 엔젤은 어떻게 알아?"
"그냥 누가 알려주고 간 거예요. 저도 잘 몰라요."
".........."
휴대폰 송화기를 손으로 막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지,
아니면 그냥 말을 하지 않는건지 그는 잠시 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여..여보세요?"
나는 그를 불렀다.
그제서야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저녁 6시에 ㅇㅇ역 3번 출구로 나와 있어."
"제가 거길 왜 가요?"
"죽고 싶지 않으면 나와 있어."
"뭐..뭐라구요?"
내 대답을 무시한 채 통화는 종료되어 버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나는 잔잔한 연못에 조금만 파문이 일 듯 소리없이 두려움이 몰려왔다.
작은 실밥을 잡아당겼더니 걷잡을 수 없이 옷감이 풀어 헤쳐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휴대폰을 들고 한 동안 멍하니 자리를 지키던 나는 굳은 결심을 하고는 발걸음을 집으로 향했다.
"미쳤어? 내가 거길 왜 가? 신발 놈들....내가 겁 먹을 줄 알고?"
내 스스로를 이렇게 다독거리며 나는 집으로 향했다.
택시 요금이 없어서 나는 버스를 타고 갔다.
얼마만에 타는 버스인지 모른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아버지를 졸라 자가용을 샀다.
여자를 유혹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차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버스를 탄 기억이 없다.
사실 학창시절에도 버스를 탄 기억이 거의 없다.
아버지가 늘 학교까지 자신의 차로 바래다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에 너무 익숙해진 나는 커다란 운송수단에 몸을 맡긴 채,
여러 사람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각자의 목표지점으로 향하는 환경이 너무나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오른쪽 이마에 두툼한 반창고를 붙인 채 서 있는 내 모습을 주
변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띵동!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버스 소리에 섞여 휴대폰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
-오빠^^; 경찰서 가면 나 아빠한테 죽거든. 도망쳐서 미안^^ 연락줘 ^^-
"신발년....."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욕설에 주변 사람들이 긴장하는 눈치였다.
집 근처에 도착한 나는 절친한 친구인 준호를 실내 포장마차로 불러냈다.
그 놈도 나처럼 변변한 직업없이 집에 돈이 많다는 이유로 놀고 먹는 녀석이었다.
"야! 왠일로 포장마차냐? 돈 떨어졌냐?"
준호는 인사 대신 나를 비야냥거리며 원형의 간의의자에 앉았다.
"이마는 왜 그래?"
"헐..신발 말도 마라. 새벽부터 지금까지 온갖 쇼를 다하고 다녔다."
"뭔 일이야?"
"우선 술 좀 시키고 진정 좀 하자."
"아니 다친 놈이 뭔 술이야?"
"아이..신발 닥치고 그냥 조금만 하자. 맨 정신에 있을 수가 없어."
몇 시간전의 술을 끊어야겠다는 다짐은 온데간데 없었다.
나는 준호와 함께 소주를 들이키며 무용담처럼 내 얘기를 늘어놓았다.
준호는 기이한 미스테리라도 듣는 것처럼 어린 아이처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얼마가 지난 후 약간의 취기가 올라오자 나는 시계를 들여다 봤다.
7시가 조금 넘었다.
갑자기 술이 깨는 듯 했다.
"헐...7시가 넘었네."
"너 신발...아까 니가 말한 새끼가 약속한 시간이 6시 아니었어?"
나는 애써 평온함을 유지하려 했으나 밀려오는 두려움을 막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집으로 가는 길은 길고 어두운 좁은 도로변 길이었다.
"준호야. 우리 집까지 차 좀 태워주라."
"신발 놈. 이젠 나까지 음주운전시키네. 알았어 임마."
나와 준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실내 포장마차 밖으로 나섰다.
그러나 나는 우리를 따르는 몇 개의 검은 그림자를 미처 살피지 못했다.
우리의 차량이 어두운 도로변 길에 진입하자 갑자가 낯선 차량 한대가 우리 앞을 가로 막았다.
미처 그들이 누구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서너명의 건장한 놈들이 준호의 차로 달려들었다.
갑자기 앞유리의 파열음이 들렸고, 파편처럼 유리조각이 내 얼굴을 향해 쏟아졌다.
차 문을 열고 뛰쳐나가려 하자 눈 앞에 솥뚜껑만한 손이 순식간에 다가와 내 얼굴을 강타했다.
"쿨럭...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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