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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panic_551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10년전오늘
추천 : 0
조회수 : 31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8/07 17:52:08
간신히 기도를? 열어젖히는 힘겨운 기침 소리와 함께 나는? 의식이 돌아왔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지금이 몇 시인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눈의 초점이 서서히 맞추어지자 주변의 광경이 눈 앞에 들어왔다.
화사한 테라스처럼 고급스럽게 꾸며진 약간 어두운 실내 공간이었다.
누군가가 내 정면의 의자에 앉아 있었고, 주변에 건장한 서너명이 무게를 잡고 서 있었다.
나 또한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두 팔이 위자 뒤로 포박당한 채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내 주변만 할로겐등처럼 강렬하게 아래로 내리비치는 빛 때문에 의자에 앉아있는
그의 얼굴은 정확히 볼 수가 없었다.
확실한 건 두목으로 보이는 그가 담배 하나를 물고 있고,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 채 최대한 거만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너 누구야?"
전화 속의 그 놈 목소리였다.
"쿨럭...준..준호...제 친구는요?"
"죽지 않았으니까 걱정마."
"준호 어딨어요...쿨럭"
"핸드폰에 내 번호 남긴 놈이 너 밖에 더 있어?"
"그...그럼 저만 이리로 끌고 온 거예요? 도대체 저 한테 왜 이러시는거예요?"
간신히 입을 열 때마다 상처난 오른쪽 이마와 손으로 가격당한 왼쪽 광대뼈가 아려왔다.
"난 니가 내 번호와 사일런트 엔젤을 어떻게 아는지 궁금할 뿐이다."
"전 정말 몰라요..쿨럭.... 누가 알려준 거예요."
"그게 누구야?"
"몰라요...메모 쪽지가 그냥 제 호주머니에 있었어요..."
"좋은 말로 할 때 말해.. 그 놈이 누구야?"
말이 통하지 않는 그와의 대화가 계속되자 순간 나도 모르게 분노 섞인 짜증이 밀려왔다.
"몰라!! 신발!! 모른다는데 왜 자꾸 지랄이야!!!!"
나의 괴성에 주변에 잠시 적막이 감돌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남자의 손짓이 있자 건장한 청년 한 명이 나에게 서서히 다가왔다.
막장에 다다랐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두려움보다는 오기가 생겼다.
"쿨럭..쿨럭...차라리 죽여라..신발 놈들아..."
그 건장한 청년은 나에게 주먹질 대신에 내 팔뚝에 주사기를 꽂아 알 수없는 주사액을 밀어넣었다.
"뭐...뭐하는 짓이야?"
나의 물음에 두목으로 보이는 그가 입을 열었다.
"넌 잠시 후 진실만을 말할 것이다."
"조까고 있네...십새끼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지만 나의 말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었다.
조명등 너머의 그 남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주사약의 효과를 기다리는 듯 했다.
잠시 후 주사액 때문인지 눈 앞의 초점이 다시 흐려지기 시작했다.
몸이 나른해지면서 편안함이 몰려왔다.
나도 모르게 히죽거리는 웃음이 입에서 새어나왔다.
기분이 좋아지고,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동굴 속의 울림처럼 그 두목같은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너 누구야?"
"히히히...김..성..태..."
"너 뭐하는 놈이야?"
"놀고 먹는 백수지 뭐야...히히히.."
"너 사일런트 엔젤을 어떻게 알아?"
"음...뭐더라....."
"........?"
"그..그 놈이 주고 갔어.....내 차 가져 간 놈...."
"누..누구?"
갑자기 주변에 엷은 안개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히히히....안개다...안개...안개가 낀다.'
기분이 들뜨고,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도
나는 삭신이 오그라드는 듯한 공포가 밀려옴을 느낄 수 있었다.
내 뇌의 99%가 약물에 정복당했음에도, 나머지 1%의 정상적인 부분이 나를 일깨우려 애쓰는 것 같았다.
머리를 똑바로 들어올리려 했지만 목의 근육이 다 풀려버린 것처럼 내 머리는 이리저리 내팽개쳐졌다.
우스꽝스럽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나는 지금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말 해....그 놈이 누구야?"
그의 질문에 나는 오직 진실만을 말했다.
지금 이 순간 내 눈앞에 보이는 그대로 말이다.
"누구긴 누구야.....바로 니 앞에 서 있는 놈이지......"
"뭔 개소리야?"
그 두목같은 녀석은 내 말을 부정했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다.
내 앞에 그 놈이 나를 등지고 서 있다.
뒷 모습만 봐도 분명히 그 놈이 맞다. 내 차를 견인해 간 놈.
그 놈은 나를 등진 채 두목 녀석을 노려보고 있는 듯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희뿌연 연막처럼 그가 반투명하게 보였다.
그 놈이 나의 시야를 방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목 녀석의 형상이 투시되어 보였다.
사람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기분이 묘하지?
무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그냥 이 안개가 아늑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런 게 뽕맞은 기분인가?
"우히히히히히......"
나도 모르게 요사스러운 웃음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는 그 놈을 몰아 붙였다.
"니가 경찰에 신고했지? 신발 놈....내 차 니가 찾아와... 신발 놈아....죽일 놈...히히히"
나의 횡설수설에 그 두목 녀석이 입을 열었다.
"저 새끼 진짜 왜 저래? 약을 너무 탄 것 아냐? 완전히 미친 새끼군. 야!! 더 이상 볼 것 없어. 처리 해!!"
그는 불호령을 내리며 들고 있던 담배를 너무나도 깔끔해 보이는 바닥에 그냥 집어 던져버렸다.
그 와중에도 나는 거친 욕설과 간교한 웃음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야~~~ 신발놈아!!? 내 차 내놔...강아지야!! .....히히히...."
나를 등지고 있는 그 놈을 인지하지 못한 채,
조금 전에 나에게 약을 주사했던 건장한 청년이 옆의 탁자에서 뭔가를 집어들더니 발
걸음을 나에게로 옮겼다.
끈 이었다.
빳빳한 가죽 끈 같은 것을 몇 번 양쪽으로 소리내어 잡아채더니,
이내 그것을 내 목에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그러나 그 동작 후에 정작 그가 힘을 주어 조른 것의 자신의 목이었다.
"우에엑!! 켁!! 켁!!"
그 놈은 자신의 목을 조른 채 눈깔을 뒤집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녀석은 자신의 목을 조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목을 조르는 가죽끈을 풀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내 차를 견인해 간 그 자식이 청년의 뒤에서 힘을 주어 목을 비틀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야? 저 자식!! 혼자 뭐하는거야!!!"
주변의 사내들이 새파랗게 얼굴이 질려 죽어가는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데 연신 몇 번을 켁켁대던 그가 갑자기 가죽끈을 목에서 풀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고개를 몇 번 좌우로 꺽었다.
달려들던 사내들도 걸음을 멈추고, 그의 기이한 행동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뒤이어 수차례 목을 꺽던 청년이 갑자기 검은 양복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조명등에 눈이 부시도록 반짝이는 그것은 족히 30센티는 돼 보이는 시퍼렇게 날이 선 회칼이었다.
그리고 곧 피의 축제가 벌어졌다.
망나니의 칼춤처럼 몸을 이리저리 흔들더니 그는 자신에게 바라보던 건장한 사내들의 몸에
연신 칼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소름끼치는 비명소리와 고성이 난무하면서 사방에 핏물이 뿌려지기 시작했다.
칼침을 수 차례나 맞은 듯한 한 놈이 내 무릎 위에 떨어졌다.
그의 마지막으로 남은 몇 번의 심장 박동에 맞추어, 빨갛게 그어진 멱살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물총에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처럼 따끈한 핏줄기가 내 얼굴에 쏟아졌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즐겼다.
"오 예!!!....히히히히.....푸우!!"
그것이 입으로 들어가면 나는 분무기처럼 그것을 공중에 뿌려댔다.
몇 명의 사내들이 뒤엉킨 채 피의 제전은 계속 되었다.
여기 저기서 날아드는 여러 개의 회칼이 마치 무당들의 칼춤처럼 화려함을 더 했다.
두목 녀석의 정수리에 회칼이 꽂히는 것을 마지막으로 피의 제전이 끝났다.
광기어린 축제가 끝났음에도 회칼을 든 사내는
한 동안 피바다 속에서 홀로 망나니 춤을 계속 이어갔다.
그 붉은 바다에 물을 채우 듯 그의 몸 서너군데에서 물줄기가 용솟음쳤다.
그리고 또 한 놈이 망나니 춤을 추고 있었다.
칼을 든 사내와 겹쳐진 형상으로 똑같이 춤을 추고 있는 놈은 내 차를 견인해 간 그 신발놈이었다.
한참동안 망나니 춤을 선보이던 그 신발놈이 갑자기 춤을 멈췄다.
그와 동시에 칼을 든 사내는 무너지듯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옆 모습을 나에게 보인 채 잠시 서 있던 그 녀석이 나를 한 번 힐끔 쳐다보더니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안개도 사라졌다.......
서서히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적막감이 밀려왔다.
오로지 들리는 것이라고는 누구의 몸에서 떨어지는 지 모르는 액체 방울의 낙하소리였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그 액체 방울의 낙하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이젠 즐겁지가 않다.
약기운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즐거움도 같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제서야 처참한 도륙의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악!!"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미친 듯이 몸부림을 쳤다. 미친 듯이 발버둥을 쳤다.
"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뿌려진 미지근하고 끈적한 액체의 촉감이 내 뺨에 느껴졌다.
그리고 그 형사의 경험담처럼 바닥에 엎어져 죽어있는 한 사내의 부릅 뜬 눈과 마주쳤다..
그 형사도 이런 기분이었겠구나.....신발.
"후........"
긴 한숨과 함께 조금 전에 미처 뿜어내지 못한 끈적한 액체가 입 속에서 새어 나왔다.
아...졸립다.
오늘은 너무나도 피곤한 하루다. 집에 가고 싶다.
나는 실신하 듯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성태야...성태야....."
어떤 익숙한 목소리의 부름에 나는 눈을 떴다.
아버지였다.
"이제 정신이 드냐?"
아버지가 왠 일로 이렇게 친절하시지?
"김성태...괜찮아?"
사건현장에 동행했던 그 형사가 아버지 뒤에 서 있었다.
"여...여기가 어디죠?"
"병원이다. 이 놈아..아예 여기서 살림 차릴래?"
늘 같은 아버지의 비아냥거림 속에 전에는 느끼지 못한 울먹임이 느껴졌다.
"아버님.. 잠깐 나가 계시죠."
형사의 부탁에 아버지는 걱정스런 눈빛을 지우지 못한 채 병실을 나섰다.
아버지가 병실을 빠져나간 것이 확인되자 형사는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통성명도 못한 것 같네. 나 ㅇㅇ경찰서 강력계 1팀장 박정우 경사다."
나는 그의 시선을 뿌리치고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너 어떻게 거길 간거냐?"
"......."
"니 의지로 간거냐? 아니면 납치 된거냐?"
갑자기 두려움과 서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흑......"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콧등을 넘어 침대속으로 젖어들었다.
"김성태..."
나의 흐느낌에 박형사는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고, 나지막히 내 이름을 불렀다.
"무서워...신발...이제 그만 내버려둬.....흑흑"
쥐어짜듯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나는 뜨거운 눈물을 연신 쏟아냈다.
나의 흐느낌이 멈출 때까지 박형사는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10여분이 지났을 쯤, 내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자 박형사는 입을 열었다.
"듣기 싫어도 들어라. 너 거기 니가 알고 간 것 아니지?"
"....."
"이 거 누가 적어준거지?"
박형사는 그 쪽지를 나에게 들어보였다.
"누가 적어준 게 아니지? 이 거 니 글씨지?"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일런트 엔젤이 뭐야?"
"몰라요..."
나의 성의없는 대답에 박형사는 무언가를 고백하듯 긴 얘기를 꺼냈다.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너만 알고 있는 걸로 해.
몇 개월 전에 우리 수사팀은 대규모의 신종 마약이 유통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했어.
그 때 수사망에 포착된 조직이 하나 있었는데, 어제 너와 같이 있었던 놈들이야.
그 조직은 몇 개의 나이트클럽과 고급 스탠드바를 운영하고 있었어.
그런데 그 조직들이 주요 근거지로 삼는 스탠드바가 하나 있었는데,
주로 돈 좀 있는 사람들이 출입을 하는 곳이었지.
철저한 회원제와 신분 보장으로 누가 드나드는지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어.
거기엔 얼굴 마담격의 여자가 있었는데,
미모가 얼마나 출중하고 요염했는지 그 여자 때문에 매상이 장난이 아니었다고 하더군.
그 여자가 바로 니가 찾아 낸 김나연이라는 여자야."
박형사의 놀라운 말에 나는 시선을 돌려 그를 쳐다 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가 수사에 착수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조직의 중간보스급으로
보이는 한 놈으로부터 전화가 온 거야.
누구냐고 물으니까 자신을 '마두' 라고 소개하더군.
물론 그 쪽 세계에서 사용하는 명칭은 아니었겠지.
그 녀석은 자신과 김나연의 신변을 보호해주는 조건으로 우리에게 정보를 주겠다고 했어.
무슨 장부를 하나 넘기겠다고 했는데 약속시간을 잡기가 쉽지 않았지.
장부를 손에 넣기가 힘들었는지,
아니면 조직의 철저한 내부 단속 때문이었지 모르지만 아무런 진전도 없이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어.
그런데 보름 만에 마두한테 전화가 온 거야.
피곤함이 역력한 목소리였는데 뜻 밖의 얘기를 하더라구.
김나연이 보이지 않는다고. 아무래도 죽은 것 같다는거야.
그런데...."
박형사는 잠시 입을 굳게 다물더니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런데요?"
나는 이미 박형사의 얘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런데 마두가 횡설수설을 하는거야. 나연이가 매일 밤 자신을 찾아 온대.
물에 빠져 죽은 사람처럼 온 몸이 흠뻑 젖은 상태로 창백한 얼굴을 하고 매일 밤마다
자신의 집을 찾아온다는 거야.
수면 중에 인기척에 놀라 깨어보면 어둠 속에서 그 여자가 자신의 옆에 누운 상태로 노려보며
있기도 하고, 어느 날 밤은 깨어보면 나연이가 그 소름끼치는 차림으로 화장대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고 있다는 거야.
깨어보면 꿈이고, 깨어보면 꿈이고...매일 밤마다 악몽같은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거야.
그럴 때마다 실내에서도 사방이 안개로 뒤덮인다고 하더군."
나는 갑자기 심장이 멎는 듯 했다.
나도 모르게 다시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간신히 내 스스로를 진정시킨 후 시선을 맞추지 않은 채 나는 박형사에게 물었다.
"마두라는 사람 어떻게 되었어요?"
"........."
나의 물음에 박형사가 답을 거부했다.
분위기를 눈치 챈 나는 간략하게 다시 물었다.
"주...죽었죠?"
"그래"
또다시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간신히 눈물을 멈추고 나는 박형사에게 물었다.
"어떻게 죽었어요?"
"새벽에 살고 있던 아파트 15층에서 투신했어.
그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두의 얼굴을 본 거야.
초면치고는 너무 처참하게 만난거지.
현장에 가니까 머리가 깨져 뇌수가 흘러나오고 있고, 팔다리는 모두 부러져 제멋대로 꺾인
기이한 자세를 만들고 있는 시체가 있더라구.
처음엔 그 얼굴의 주인공이 마두인지조차 몰랐지.
전에 본 적이 없으니 말야.
사건을 조사하면서 우리 서와 내 번호가 찍힌 그 놈의 휴대폰 통화 내역을 보고 알게 된거지.
휴대폰 통화내역은 정말 중요한 정보였어.
수없이 많은 번호들을 우리는 일일이 다 조회를 했지.
그런데 몇 개의 떨거지 놈들의 번호를 빼 놓고는 모두 엉뚱한 주인을 가진 대포폰이었어.
마두의 것도 마찬가지였고...
아무리 불법을 일삼는 조폭이래도 거의 모두가 대포폰으로 활동한다는 것은 드문 일이야.
뭔가 철저히 지켜야 할 비밀이 있는거지.
어찌 되었든 우리에게 정보를 넘기겠다는 사람이 죽었으니 우리는 앞뒤 가릴 것 없이 철저히 수사를 했지.
족적, 지문, 머리카락, 아파트 출입구와 엘리베이터의 CCTV...
우리는 가능한 모든 것들을 분석하고 조사했지.
마두의 죽음으로 우리는 뭔가를 캐낼 수 있을 것 같았어.
그 사건을 계기로 수사팀은 그 조직의 근거지를 얼마 동안 출입할 수 있었거든.
모두들 입을 열기를 꺼려하고, 많은 부분에서 제한되긴 했지만 어느 정도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지.
그런데 우리의 바램과는 달리 조직과의 연관성은 커녕 타살의 흔적조차 전혀 보이지 않았어.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CCTV는 그 어떤 침입의 흔적도 보여주지 못했어.
족적이나 지문은 모두 마두의 것이었고....
타살 흔적 하나 잡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었고, 결국 자살로 종결되었지."
박형사는 긴 한숨을 한 번 내 쉬더니 말을 이었다.
"그러나 형사의 직감이라는게 있어.
물증은 없었지만 타살이라는 심증을 버릴 수가 없었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통화한 날에 마두가 한 말이 있었어.
그 자식이 나를 죽일거라는 거야.
무엇을 감추는지 '그 자식' 의 정체를 말하지 않는거야.
게다가 처음 새벽에 그를 발견한 경비원 목격담도 우리의 심증을 뒷받침 해줬지."
나는 박형사를 등지고 옆으로 누운 채 소리없이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훔쳤다.
"새벽 순찰 중에 싸우는 듯한 고함 소리가 들려 그 쪽으로 달려갔는데,
한 남자의 비명 소리가 들리면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는거야.
자살을 결심한 사람은 비명을 안 질러.
마두는 분명히 누군가에게 떠밀린거야. 싸우는 듯한 고함소리는 또 뭐야?
분명히 뭔 가가 있다고 확신이 섰어.
그런데 이상한 건 목소리의 종류는 한 가지 뿐이었다고 경비원이 말한 부분이야.
뭐 귀신 놀이도 아니고, 미친 것도 아니.."
"누가 죽였는지 알아요."
갑작스런 나의 나즈막한 목소리에 박형사가 하던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다시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 지금 뭐라 그랬냐?"
"마두라는 사람 누가 죽였는지 알고 있다구요."
박형사는 나의 팔뚝을 잡아당겨 돌아 누운 나를 바로잡았다.
"너 지금 그 말 사실이야?"
흥분한 듯한 박형사의 눈빛이 느껴졌다.
"누구야?"
"어제 그 놈들을 죽인 놈이예요."
"그럼 어제 그 놈들이 지들끼리 치고 받은 게 아니었어? 외부 침입 흔적이 전혀 없던데...
족적이나 지문도 그 놈들 것 밖에 없었고..."
"누군지 모르는데, 사람이 아니었어요."
"뭐?"
나는 길게 심호흡을 한 뒤 긴 얘기를 꺼냈다.
"어제 형사님과 헤어져 집으로 향하던 중 그 쪽지의 번호로 전화를 했어요...."
나는 어제 오후부터 지금 이 병원에서 눈을 뜰 때까지 기억하고 있던 일을
박형사에게 낱낱이 얘기했다.
내가 말을 하고 있는 동안 박형사는 한 번도 나의 말을 끊지 않았다.
아니 끊을 수가 없었다.
말하는 나도 황당무계한 소리로 들리는데 박형사는 오죽하겠는가?
멍하니 넋을 놓고 들을 뿐이었다.
"...그 쪽지에 적인 글씨체가 제 것이잖아요. 저는 글씨를 쓴 기억도 없고, 그 내용이 뭔지도 몰라요.
어떻게 보면 저도 그 놈한테 당한거죠. 귀신에 홀린 거예요."
내 얘기가 끝났음에도 박형사는 한 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나 또한 박형사의 대답을 기다리느라 입을 다물고 있었다.
"너...진짜로 귀신 볼 줄 아나보다....."
한 동안 침묵을 유지하던 박형사가 생각만 해도 소름끼치는 말을 내뱉았다.
"제 예감이 틀리길 바라지만, 왠지 이 걸로 끝날 것 같지가 않아요."
박형사는 무거운 표정을 짓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얘기하자.
조금 전에 의사가 너 다친 게 아니라 잠이 든거라고 하더라.
퇴원해도 된다는 얘기지. 원하면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줄게."
"괜찮아요. 그냥 버스타고 갈게요. 사람 많은 게 좋아요.
요즘은 사람하고 같이 있다는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 새삼 깨닫고 있어요."
"그래. 알았다. 나중에 보자."
박형사가 나간 뒤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이 있기를 바랬지만 버스 안에는 빈자리가 여러 군데 보였다.
창가 자리에 앉은 나는 오후의 나른한 햇살을 즐겼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데, 그 생각의 종류가 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텅빈 느낌이었다.
왜 내가 지금 이곳에 있는지,
어쩌다가 이런 이유 모를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는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지금 단 한가지 나의 바램은 이 악몽같은 사건의 고리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것이다.
낮은 고도로 떠 있는 태양 빛이 내 두 눈을 비추고 있었다.
노란빛 광원 속에 붉은빛이 간간히 섞여 아른거렸다.
서서히 졸음이 쏟아지는 것처럼 몸이 나른해졌다.
졸음 때문인지, 너무나 밝은 눈부심 때문인지 주변 사물이 흐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마치 안개가 긴 것처럼...
주변이 뿌옇게 흐려졌다.
그 때 누군가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손자를 데리고 탄 허름한 차림의 할아버지였다.
5살 정도로 보이는 하얀 빵모자를 쓴 그 꼬마는 너무나도 귀엽고 천진난만해 보였다.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앉아 있는 노인의 앞에 서서,
꼬마는 연신 그의 손등을 두드리며 장난질을 해댔다.
손자의 귀여운 장난에도 할아버지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내가 쳐다보고 있는 것을 느꼈는지 꼬마가 나를 보며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 또한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정말 귀여운 손주였네요."
나의 과거형이 섞인 말에 노인이 고개를 돌려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와 놀았던게 가장 재미있었대요."
계속 나를 응시하던 노인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졌다.
그리고는 이내 그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항상 할아버지와 같이 다닐거래요.
놀이터도 가고, 공원도 가고, 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타고......."
나는 아이의 말을 그 노인에게 계속 전달해 주었다.
아이는 입을 열지 않고 눈 빛으로 나에게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모든 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만득? 만득이? 응..그래 만득이 아저씨네 가게 가서 물고기 구경하는 게 젤 재밌대요.
거기 가자는데요?"
나의 말에 갑자기 노인은 두 손을 꾹 움켜쥐고 닭똥같은 눈물을 떨구었다.
할아버지의 울먹임에 손주 또한 표정이 어두워졌다.
"할아버지...손주가 울지 말래요..."
나의 말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쥐어짜 듯 연신 눈물을 쏟아냈다.
이젠 그냥 봐도 사람과 혼령을 알아 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하얀 빵모자 밑으로 드러나 보이는 민머리는 꼬마가 어떤 이유로 죽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노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고맙네...젊은이...."
연신 눈물을 훔치던 노인은 조용히 웃옷 주머니에서
상표가 떨어져 나간 갈색 드링크제 병을 꺼내 들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느즈막하게 결혼 한 아들 놈 부부가 그 핏덩이를 남기고 사고로 죽었다오....
혈육이라고는 그 핏덩이 하나 남았었는데...
몇 년 뒤 그 놈마저 몹쓸 병에 걸려 치료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죽었다오.
그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다고...큭큭큭..자식 새끼 다 보내고 이 늙은이가 살아서 뭐하겠소?..큭큭"
"할아버지...그래서 죽으려고 하신 거예요?"
나의 물음에 노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렇게 귀여운 손주가 할아버지 곁을 떠나지 못하고 지켜주고 있는데....할아버지 그러시면 안되요.
할아버지...이 손 잡으세요. 이게 할아버지 손주의 손이예요."
나는 꼬마의 손을 집어들어 할아버지의 손바닥에 다소곳이 올려 놓았다.
노인은 내 손을 몇 번 어루만지더고 무엇인가 느껴지는지 한 손에 빈 공간을 만들어 손가락을 오무렸다.
그리고는 입에 힘을 주어 굳게 다문 채, 또 다시 진한 눈물을 몇 번 쏟아냈다.
몇 번에 걸친 나의 위로에 노인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고맙네. 젊은이..누군지 모르지만 정말 고맙네. 다시 집으로 돌아가겠네..."
다른 이가 보면 우스꽝스러워 보일지 모르지만,
노인은 손주가 서 있을 자리를 내려다보며 무슨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노인의 손을 잡고 있던 꼬마가 나를 뒤돌아 보고는, 또 한 번의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도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는 버스에서 내려 멀어져가는 그들을 계속 지켜보았다.
"잘 지내렴.."
귀신도 종류가 있구나.
저런 귀신만 만나면 좋으련만...
이젠 나의 이런 능력을 내 스스로 받아들이는 듯 했다.
그 때 내 휴대폰의 요란한 진동음이 느껴졌다.
"여보세요?"
"나 박형사야."
"예...왜요?"
"너 나하고 이번 사건조사 한 번 할래?"
갑작스런 그의 제안에 잠시 머뭇거렸지만 나도 이 사건의 내막을 모두 알고 싶었다.
그리고 경찰하고 같이 있는 것이 좀 더 안전한 것이 아닌가?
"제가 꼭 필요한가요?"
"사실은 니가 필요한 게 아니라 니 능력이 필요해"
"좋아요!! 하겠어요!!"
"오늘은 집에 가서 쉬어라. 그리고 내가 내일 오전에 데리러 가겠다."
"알았어요."
나는 왠지 설레기도 하면서 두렵기도 한 묘한 기분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오피스텔에 도착하자 무거운 피로감이 몰려왔다.
며칠 동안 비워 둔 집이라 낯선 냄새까지 나는 듯 했다.
나는 취직을 핑계로 부모와 떨어져 산다.
취직이라고 해봤자 배운게 없고 얼굴로 먹고 살다보니 직업이 다 거기서 거기였다.
술집 써빙, 나이트 클럽 웨이터, 호스트빠....
그나마 내세울만한 직업은 역시 바텐더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일을 할 만하면 여자들이 달라붙어 제대로 한 우물을 팔 수가 없었다.
모든 용돈이나 경비를 여자들이 대주니, 힘들게 일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 것들은 자꾸 나를 나태하게 만들었고, 술과 여자에 찌들게 만들었다.
나를 잡으려고 일부러 임신한 여자들도 있었다.
그 때마다 나는 계속 만나준다는 조건으로 중절수술을 권했고,
그 수술이 끝나면 가혹하게 차 버렸다.
사람들은 나를 쓰레기라고 부를 것이다.
그렇다. 나는 쓰레기에 가깝다.
그런데 아직도 여자들은 겉모습이 멋진 상자에 담긴 나 같은 쓰레기를 좋아한다.
어떤 이는 멋진 상자의 모습에 반해 다가와서는 그 속을 열어보고 쓰레기라는 것을 알면 도망하고,
어떤 이는 담겨 있는 것이 쓰레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멋진 상자에 반해 그 안의 쓰레기까지 좋아한다.
내 주위에 모인 여자들이 예쁜 나비떼인지,
아니면 더러운 파리떼인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 모든 것들이 귀찮고 힘들게 느껴진다.
내가 사고 난 것도 알고보면 나이트에서 꼬신 년이 내 음주운전을 막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이 있는 년이라면 그럴 수가 없다.
우라질 년.....
집이 너무 조용했다.
나는 리모콘을 들어 TV를 켰다.
늘 보는 스포츠 채널에서 야구 중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입고 있는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기를 틀고, 샤워기 옆에 있는 세면대 위의 거울을 바라보며 물이 뜨거워지기를 기다렸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가관이었다.
그러고보니 3일 만에 처음으로 보는 내 얼굴 같았다.
오른쪽 이마의 반창고는 간신히 꿰맨 자국을 감추고 있었고,
왼쪽 광대뼈는 아직도 큼지막한 멍자국으로 덮여 있었다.
아랫입술도 살짝 찢어져 핏기가 보였고,
눈 밑의 검 푸른 다크써클은 오랜 시간동안 내가 영양분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이마의 반창고를 떼어냈다.
샤워를 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젠장....
그 만신창이가 된 얼굴에 꿰맨 자국까지 드러나자, 내 얼굴은 거의 프랑켄슈타인처럼 보였다.
"헐...신발. 당분간 여자 만나기는 글렀군."
나는 세면대에 차가운 물을 채웠다.
정신을 차리고 싶었다.
물이 어느 정도 차자 나는 그 곳에 얼굴을 담갔다.
숨을 참으면서 온갖 잡념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다.
꿰맨 상처 속으로 물이 침투하는지 가끔씩 따끔거렸다.
30여초가 지났을까?
"푸우~~"
나는 고개를 들어 폐 속에 쌓인 고농도의 이산화탄소를 내뱉았다.
어느 새 샤워기에서 나오는 증기가 세면대 위의 거울에 안착했다.
뿌옇게 흐려진 저 거울 건너 편에 못난 내 얼굴이 있다.
차라리 이런 내 얼굴은 안 보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나는 잠시 허탈한 쓴 웃음을 짓고는 왼손을 들어 거울을 한 번 문질렀다.
닦이지 않는다.
다시 문질렀다.
그래도 닦이지 않는다.
갑자기 심장이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나는 미친 듯이 두 손으로 거울을 문질렀다.
그제서야 거울이 왜 닦이지 않는지 알 수 있었다.
이건 안개다.
그런데 샤워기의 증기가 만든 안개가 아니다.
공기 중의 그 물방울은 소름끼치도록 차가웠다.
그리고 조금씩 거울 속의 뿌연 안개가 엷어지더니,
그 속에서 연쇄살인마 같은 그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나는 거울을 문지르던 두 손을 거울로부터 서서히 떼어냈다.
10개의 모든 손가락이 경기를 일으키며 떨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손가락 사이로 거울 속의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 녀석이 보였다.
그리고 나에게 공포감을 심어주려는지 자신의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였다.
"강아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욕설과 함께 나는 허공에 떠 있는 내 두 손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그 놈을 향해 괴성을 지르며, 오른 주먹을 날렸다.
"강아지야!!!!!!!!!!"
강력한 파열음과 함께 거울은 자신의 몸을 수 십조각으로 나누었다.
"죽여버리겠어!! 이 강아지!!"
나는 잘게 쪼개진 거울 위로 연속적으로 주먹을 날렸다.
"신발 놈!!! 널 꼭 찾아내서 죽여버리겠어!!
내 무서워할 줄 알아? 이 강아지야!!!"
나는 울부짖음에 가까운 욕설을 날리며,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거울의 중앙부에 모인 핏물들이 주욱 흘러내리며,
세면대 속의 물에 빨간 색을 입히기 시작했다.
"이 강아지...신발 놈..."
주먹질을 멈추자 손이 아려왔다.
나는 분쇄된 거울에 머리를 박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와 동시에 콧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작은 방울이 핏물 위로 떨어졌다.
세면대 속의 작은 거울 파편들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붉은색의 광택을 내뿜고 있었다.
"니 놈이 어떤 놈인지 반드시 찾아내겠어....."
나의 속삭이는 듯한 굳은 다짐의 말은 거실의 TV소리보다 작게 들렸다.

"너 손 왜 그래?"
붕대를 감고 있는 내 오른손을 본 박형사가 물었다.
"어제 그 자식이 나타나서 신나게 두들겨 패 줬어요."
"이젠 귀신하고 싸울 정도군. 내공이 장난 아니네...허허.."
"웃지 마세요."
나의 진지한 부탁에 박형사는 재빨리 입을 닫았다.
박형사는 뒷좌석에 앉아 있는 나에게 운전하고 있는 형사 한 명을 소개했다.
"아참, 김나연이 사체 찾으러 오갈 때 봤지? 강형사라고 우리 강력팀 최고 몸짱이지."
운전을 하고 있는 그는 전방을 주시한 채 잠시 오른손을 들어 나에게 인사를 했다.
"그런데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
"..........."
박형사는 잠시 말을 아꼈다.
"지금 어디 가냐니까요?"
"내가 아는 무당에게 가는거야."
"뭐요?"
"니가 힘들겠지만 귀신을 불러낼거야."
나는 순간 허탈감이 밀려왔다.
"젠장....필요하다는 게 이거였어요? 귀신 좇아다니면서 수사하는게 아니고?"
"니 주변에서 죽은 사람이 몇 명인 줄 알아? 좋든 싫든 넌 지금 사건의 중심에 있어.
힘들더라도 협조해야 돼. 게다가 넌 우리가 조사하는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귀신을 둘이나 봤어.
그것들을 불러내서 정보를 알아낼거야. 만일 안되면 몸으로 뛰어야지."
"후......알았어요."
"그리고 김나연이....국과수에서 연락왔는데 살해되었대..."
"맞잖아요. 내가 살인이라고....."
"직접적인 사인은 교살이야. 그런데 혈액에서 염산페치딘이 극소량 검출되었어."
"염산페치딘? 그게 뭐예요?"
"주로 말기 암환자에게 투여하는 강력한 진통제야.
그런데 중독성이 필로폰보다 서너배나 강해서 병원에서도 관리를 철저히 하는 약품이지.
그런데 어떻게 그게 김나연 몸에서 발견되었느냐가 문제야.
아마 김나연도 우리가 조사하는 마약조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거야."
이 순간 나는 더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만나러가는 무당은 누구예요?"
"옛날에 우리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고, 사건을 하나 해결해준 무당이야."
"그 사건이 뭔데요?"
박형사는 잠시 전방을 주시한 채 뭔가 생각을 정리하는 듯 말을 아꼈다.
그리고 잠시 후 긴 얘기를 꺼냈다.
"3년 전에 반지하 방에서 화재가 발생했어.
그리고 2구의 어린이 시체가 발견되었지.
처음엔 단순 실화로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어.
소방관 얘기로는 처음에 출동했을 때 문이 밖에서 잠겨 있었다고 했어.
잠근 사람은 두 아이의 엄마였어.
그 여자는 남편과 사별하고 식당일을 나가면서 5살과 7살 난 두 아이와 함께 어렵게 살고 있었지.
우리는 사고사가 아닌 타살로 가닥을 잡고 유력한 용의자로 엄마를 지목했지.
아이의 엄마는 거의 반실성한 상태였어. 물론 범행도 급구 부인했고...
아이들이 죽은 슬픔도 감당하기 힘든데 자신을 범인으로 몰다니 너무나도 원통하고 억울하다는거야.
왜 문을 걸어 잠궜냐는 질문에...
평소 집 앞의 도로에 아이들이 뛰쳐나와 놀기 때문에 자리를 비울 때는 잠깐씩 잠그고 간다고 하더군.
요리조리 우리의 심문을 피해가는 것 같았는데 결정적인 증거가 나왔어.
두 아이의 혈액에서 청산염이 발견된거야."
"청산염..?"
"청산가리 말야."
"아니 어떻게 엄마가 그럴 수 있죠?"
"생활고를 비관했을 수도 있지.
생활고를 비관해서 아이들을 살해하고 불을 질렀다고 볼 수밖에 없었어.
죄가 인정되면 아무리 정상참작이 된다고 해도 이건 최소 무기징역감이야.
하여튼 우리는 엄마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계속 심문했지.
그것도 모자라 유력한 용의자라는 이유로 구속수사를 했어.
그런데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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