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펌) 생존
게시물ID : panic_551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10년전오늘
추천 : 7
조회수 : 125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8/07 18:02:02
 
생존-1
 
 
 
 
식수가 떨어졌다.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가 끈적끈적한 절망감이 되어 혓바닥에 달라붙는 느낌이다.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살수 있다며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던 신철민 녀석도
다죽어가는 목소리로 물을 찾고 있다.
 
이젠 끝이다.
희망을 부르짖기엔 바다가 너무 넓었다.
 
 
 
 
 
 
 
 
 
"흑흑... 죽고싶지 않아..."
 
멍하니 바다를 응시하고 있던 연희가 울음을 터뜨렸다.
이미 많이 울어서 눈화장이 번질대로 번진 그녀의 얼굴을 또다시 눈물이 적시고 있었다.
 
이제와서 울어봤자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건 울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부족한 수분을 쓸데없이 눈물로 소비하건,
혹은 눈물을 참아 스트레스를 조금 더 받거나 하는 선택의 문제는 개인의 몫이다.
누구도 무엇이 더 확실하게 좋다고 할만한 성질은 아닌 것이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건 지금 그녀에게서 내 고백을 비웃음으로 일축시키던 그 한없이 도도한 모습을
찾아볼 순 없다는 것이었다.
 
 
 
 
 
한낮이 되자 햇볕이 한층 따가워졌다.
우린 서로 다닥다닥 붙어앉아 티셔츠를 찢어서 만든 넓다란 천 쪼가리로 몸을 가렸다.
이런 햇볕을 그대로 받다간 굶어죽기도 전에 일사병으로 먼저 가는수가 있다.
 
며칠째 비가 오지 않아 물을 마시지 못한 우리의 입에선 역겨운 단내가 났지만
누구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
 
천막을 만드느라 여자들은 겨우 브레지어만 걸치고 있었는데,
이젠 그걸 보고도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는다.
 
 
 
 
 
 
"나 사실 고백할게 있어..."
 
뜬금없이 종수가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고백이라니, 나도 모르게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언제 침몰할지 알 수 없는 이 작은 구명보트위에서 진실게임이라도 할 생각인가? 저 찐따 새끼가...
 
 
 
 
 
 
 
"우리 이렇게 된거 다 내탓이야."
 
"......"
 
"내가 그랬다고. 니들이 자꾸 나 따돌리니까. 조타실에서..."
 
그 순간 구명보트가 위아래로 심하게 요동쳤다.
이성을 잃은 철민이 괴성을 지르며 종수에게 달려들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그는 무지막지한 주먹질로 종수의 얼굴을 인정사정 없이 구타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고,
철민의 행동이 조금 더 빨랐을 뿐인지도 모른다.
 
 
 
 
 
 
 
 
"목말라. 물 먹고 싶어... 흑흑..."
 
간신히 잦아들었던 연희의 눈에서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도 목이 마르다.
 
가능하다면 그녀가 흘리고 있는 눈물을 핥아마시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물을 마시지 못한다는게 이토록 고통스러운 일인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정말 물을 마시고 싶다.
 
 
 
 
 
 
 
들릴듯 말듯한 작은소리.
이를테면 어떤 액체가 목구멍으로 넘어갈때 나는 소리랄까?
난 흠짓하며 본능적으로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여전히 훌쩍이고 있는 연희,
이젠 아예 브레지어도 벗어던진 경진,
탈진해서 오바이트를 하고 있는 형석,
죽은듯이 쓰러져 있는 종수와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뭍고 있는 철민까지.
 
물을 마시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하지만 피를 마시고 있는 사람은 있었다.
 
 
 
철민이 종수의 목덜미를 물어뜯어낸 후 그의 피를 마시고 있었다.
솜씨좋게 경동맥을 끊었는지 피는 마르지 않는 샘처럼 굉장한 압력으로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다.
게걸스럽게 종수의 목을 쭉쭉 빨아대고 있는 철민을 보며 난 본능적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나도 줘..."
 
난 비키지 않으려는 철민을 우왁스럽게 잡아 떼어낸 후 종민의 목에 이빨을 꼿았다.
역한 피비린내가 후각을 마비시킬 정도였지만 난 마치 그것이 생명수라도 되는양
처절하게 열심히 받아마셨다.
 
나 다음엔 연희가 마셨고, 그 다음엔 경진이 마셨다.
 
 
형석은 피를 마시고 싶어했지만 멀미가 심해서 한모금을 마시고는 모두 토해버렸다.
이제 우린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했다.
 
 
 
 
 
 
며칠 동안은 종수의 시체로 연명할 수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부패가 시작된 그의 시체를 먹은 형석이 식중독으로 혼수상태에 빠지면서
우린 종수의 시체를 바다에 버렸다.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토록 바라던 비가 내릴 모양이었다.
 
 
 
 
 
 
 
 
"다들 꽉 잡아."
 
처음엔 빗물을 받아마시며 다들 환호성을 질러댔지만 잠시후 비바람이 점점 거세지면서
우린 뭔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잔잔하던 바다는 순식간에 미쳐날뛰기 시작했다.
엄청난 강풍과 파도의 위력 앞에서 구명보트는 더이상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했다.
철민이 악을 쓰며 외치는 소리가 힘없이 폭풍우에 뭍혀버렸다.
 
필사적으로 구명보트에 매달리던 형석이 식중독 때문인지 파도의 매서운 채찔질을
감당하지 못하고 힘없이 시커먼 바다속으로 삼켜졌다.
 
 
 
 
 
 
 
"섬이다."
 
 
철민이 부르짖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만난 실낫같은 희망이었다.
 
희망을 본 우린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버텼다.
절대 희망따윈 맛보게 할 수 없다는 듯 바다는 위력적인 공격을 퍼부어댔지만
우린 모두 이를 악물었다.
지옥같은 시간이 지나갔고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던 폭풍우도 해가 질 무렵 서서히 잦아들었다.
 
지칠대로 지쳐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한사람씩 교대로 수영을 하며 보트를 섬쪽으로 밀고갔다.
 
 
 
 
 
 
 
"허억... 헉헉..."
 
"사, 살았어... 살았다고...쿨럭쿨럭."
 
배에서 뛰어내린 우린 거의 기다시피 하며 백사장으로 달려갔다.
비에젖은 흙냄새가 미치도록 반가웠다.
 
땅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 이리도 행복한 일이었던가?
여객선이 침몰하면서 24명이 죽었고, 구명보트에서 다시 2명이 죽었다.
 
두번다시 육지를 밟게 될 일은 없을 줄 알았지만 결국은 이렇게 살아남았다.
살아서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너희들 표정이 왜그래?
 
 
 
 
 
 
 
 
 
 
 
"뭐야?"
 
"조, 조심..."
 
 
 
 
 
각.
 
둔탁한 소리와 동시에 눈앞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애써 정신을 차리려고 했지만 다시한번 같은 소리가 내 머리에서 울려퍼졌다.
가물가물해 지는 의식을 애써 다잡으며 힘겹게 고개를 돌린 난 괴상하게 생긴 몽둥이와,
그것을 손에 들고 있는 흉칙한 몰골의 원주민들을 볼 수 있었다.
 
흐릿해 지는 의식 너머로 다시한번 '빠각' 소리가 들렸다.
 
 
 
 
 
 
 
 
 
 
 
 
 
 
 
 
 
1차 출처= hirurika 님
 
2차 출처 = 네이버판 바코드 님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