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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건록]치바대학교 여의사 살인사건
게시물ID : panic_573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백록담
추천 : 10
조회수 : 5037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09/10 16:05:33
치바대학교 여의사 살인사건

【사건개요】


1983년 1월 7일 새벽 치바시 중앙구의 길위에서 여성이 사망해있는것을 신문배달원이 발견, 면허증등으로 부터 근처에 사는
치바대학교 의학부 병리학 연구원 a코(25세)로 판명되었다. 동월 22일 피해여성의 남편인 치바대 부속 병원 수련의 s(당시25세)가
체포되었고, 이후  최고심에서 유죄가 확정된 직후 구치소내에서 자살 했다.

S
【빨간 자국】

1983년 1월 7일 오전 5시 45분경 치바대 의학부 병리학 연구원 a코씨(25세)가 치바시 중앙구 가쓰라기의 자택근처에서 사망해있는것을
신문배달원이 발견했다. 엎드린 상태로 쓰러져있는 a코씨의 목에는 끈으로 졸려진 흔적이 있고 옆에 떨어진 지갑에서는 현금이 절취해어있었다.

[a코 누가 그런거야...!!]
 
피해자의 남편이며 전 부속병원 수련의 s(당시25세)는 곧 현장에 도착해 시신에 매달려 울었다.
s는 그 옆에서 경찰에세 사정청취를 받았고 그에 따르면 전날은 함께 외출하여 10시 반에 귀가, 일단 취침하였으나 익일 오전 2시 반경
a코씨가 [공부가 있다]며 혼자서 연구실에외출했다.
s는 집에서 10미터 정도까지 배웅하였으며 그 때는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용의자로 지목된것은 s였다.

시신으로 부터 반항흔이 없었기에 면식범에 의한 범행이라고 판단되었다. 게다가 s는 손바닥에 빨간 긴 자국이 있었다.


17일 s는 자택의 치실에서 채혈치으로 혈액을 뽑아 자살을 시도 하였고 발견한것은 아키타현에서 온 모친으로
s 는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11일에는 2번째의 사정청취가 이루어져 s는 갑자기 자신이 제1발견자임을 고백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날은 오전 4시경 갑작스레 부인이 걱정이 되어 바깥에 나갔고, 그리고 현장에서 그녀가 쓰러져있는것을 발견했다.
맥박과 호흡이 정지상태였다. 윗옷이 가슴까지 올라가 있어 정리해준 후 망연해 하고 있을 때 아베크족이 무언가 이야기를 하면서
가까이 왔다. 쫓아가려고 하자  아베크족은 도망갔다.


22일 s의 손바닥에서 출혈흔이 a코씨에게서는 교살흔이 전기코드에 의한 것으로 판명되어져 체포되었다.
이 후 그는 부인의 죽음에 대하여 [자신이 제1발견자][강간당해서 자살]등으로 계속 진술을 번복하였다.


【행복했던 나날  그리고 파멸】

s는 1958년 아키타 카와지리쵸에서 태어나 부친은 아키타역 뒤에서  점포도 없는 상인에서 시작해 부동산 중개업자가 되었다.
마침 부동산 붐을 타고 사업은 번창하여 아키타 역앞에 호화 주택과 본사 빌딩을 세울정도로 되었다.
원래는 미야기현에서 교사였던 아버지는 학교 교장의 딸과 결혼을 하여 장녀를 낳았으나 이혼, 다른 여성과 결혼하여 장남과
s를 낳았다.


s는 아키타교육대부속 초등학교와 중학교 현립(우리나라 도립)아키타고등학교에 진학 후 토치키현에 있는 독쿄(도쿄 아님: 독협)의과대학에
진학했다. 아버지는 s를 의사로 만들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가정교사를 고용해 공부시켰고, 기부금 4000만엔(4억원 이상)을 넣고 의대에
입학시켰다. s는 고교시절의 친구에세 [ 난 4등이야] 라고 이야기 하고 다녔으나 그것은 기부금의 순위였다고 한다.


살해당한 a코 상과는 치바현의 큰병원장의 외동딸이었다.
가업을 잇기 위해 독쿄의대에 입학한 a코씨는 1학년 7월경에 친구로부터 s를 소개받아 가을무렵에는 진지한 관계로 발전했다.
2학년 무렵에는 a코씨가 자신의 집에 s를 데려가 소개시켜주었으며  그녀의 부모도 s를 한눈에 맘에 들어했다.
4학년 무렵부터는 s가 a코씨의 맨션으로 이사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3월에 시행된 의사국가시험에서 두사람이 함께 합격하였고 a코상의 부친으로 부터 권유받아 치바대학 의과부의 대학원 시험에 응시하였으나 s는 불합격, 4월부터 치바대 부속병원에서 수련의를 시작했다. a코 씨는 대학의 연구원으로서 길을 선택했다.

둘은 대학졸업직 후 4월에 약혼, 이전부터 양가에서 협의가 이루어져 s가 데릴사위가 되기로 하였다.
 a코씨의 아버지는 치바시 중앙구 가쓰라기에 두사람을 위해 집을 지어줬고 승용차(닛산 블루버드)와 매월 20만엔(200만원 이상)의 생활비 지원도 해주었다.

10월 10일(사건의 3개월 전 ) 제국 호텔에서 결혼식이 성대히 열렸고 지방신문에서도 다루어지고 유명인사들이 하객으로 참석하였다고 한다.
결혼식이 끝난 후 오키나와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s는 대학재학중부터 a코씨 이외에 여성수십명과 관계하고 있었다. 게다가 치바에 와서 부터는 소-프 요메(당시 21세/ 유흥업소 종업원을 소-프요메라고 함)와 생활하기도 하고 부인이 집에 없을 때는 집에 초대까지 하였다.


그녀와는 8월에 헤어졌으나 이후에 데려온 여성은 치바에서 알게된 필리핀댄서로서 (당시 19세)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직후에 교제를
시작했디. s는 그녀가 12월 하순 계약만료로 에히메현의 캬바레로 옮기자 거기까지 만나러 가기도 하였다.
에히메현에 연말까지 체류하기도 하였다.  s는 캬바레의 경영자에게 200만엔을 낼테니까 그녀를 치바로 데려가게 부탁 하였고
그 때 사채업자에게 80만엔을 빌려 부인과 다투기도 하였다. (이 필리핀 여성은 후에 가수 데뷔를 하였다고 한다)


검찰에 따르면 부인이 방해가 된다고 생각 s는 가스폭발사고로 위장하기 위해 계획을 세워 1983년 1월 5일과 그 익일 주방의 가스를
흘러나오게끔하여 a코씨가 전등 스위치를 키면 인화폭발하게 하려고 전구에 금가게 만들었지만 실패하였다.

1월 6일 a코씨는 병원으로부터 전화로 s가 12월 20일부터 무단결근하고 있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이 일에 대해 추궁하자 필리핀댄서와의
일들 그리고 자신을 살해하려고 했던 일들을 알게되었다. a코씨는 [친정에 가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으나 s는
[장인에게 알려지면 인간으로서 의사로서 사회로부터 매장당한다] 라고 생각 전기코드를 들로서 쫓아가 집 앞에서 살해했다.


【옥중 자살】


s는 제1공판에서 기소사실을 부인 제5회 공판에서는 [강간당한 부인에게 부탁받았다] 라며 청탁 살인을 주장하였고
검찰측으로 부터 [바람핀 것을 부인에게 알려지자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게 될까 죽였다]라는 주장이 대립하였다.
 

1984년 치바지검 s에게 징역 13년(구형 15년)이 선고하였다

1990년 3월 13일 최고심에서 상고기각 형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9일후 s는 동경구치소 독방에서 바닥(타다미로 되어있음 돗자리같은 형식)에서 실을 뽑아 자살하였다.


---------------------- -----------------------   s가 가족에게 남긴 유서    ------------------------ ------------

저는 a코의 곁으로 갑니다.

모든 분들께 여러가지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어머니 .. 절 낳아주고 길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다시 태어난다 해도 다시 어머니의 자식이고 싶어요.

한번 더 재판을 받고 싶었어요..




이 자살로 인해 피의자 사망으로 공소기각되어 s는 의사면허도 박탈 당하지 않았다.


일본원문 출처:http://yabusaka.moo.jp/index.htm

번역: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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