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박 모 어린이는 맞벌이 가정의 아이입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으로 2년 전 대구시가 주는 급식카드를 발급받았고, 주로 저녁을 사 먹을 때 이 카드를 이용해 왔습니다.
어린 아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못 챙겨준 어머니는, 아동급식카드 제도가 고마울 따름입니다. 한 끼 사 먹기에는 빠듯한 4천 원이지만, 대구시의 도움 덕분에 박 군이 저녁을 거르지 않게 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가 알까요? 박 군은 이따금 저녁을 거르고 있었습니다. 북적대는 식당에서 달랑 김밥 한 줄만 시켜놓고 혼자 밥 먹는 시간이 초등학생에게 고역이었던 겁니다. 게다가 무료급식을 지원받는다는 사실을 반 친구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습니다. 그래서 박 군은 종종 주변 눈치를 보며 배를 채우기보다, 굶는 쪽을 선택하는 겁니다.
박 군이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주로 찾는 곳은 동네 하나뿐인 김밥집입니다. 여러 가지 메뉴가 있는 곳이지만 박 군에게 허락된 메뉴는 3천5백 원짜리 김밥이 전부입니다.
'김치볶음밥 5천5백 원, 갈치조림 6천 원..'
김밥이 물린 박 군은, 먹고 싶은 음식을 사 먹으려고 일부러 굶기도 합니다. 하루에 쓸 수 있는 4천 원은 다음 날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인데 이틀 치 밥값을 모아서 다른 메뉴를 사 먹으려는 겁니다. 하지만 카드를 사흘 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돈이 소멸되기 때문에, 어떤 날은 아까운 4천 원을 그냥 날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박 군은 왜 매번 같은 김밥집만 찾는 걸까요? 드물긴 하지만, 주위에는 4천 원으로도 김밥이 아닌 다른 메뉴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도 있긴 한데 말이죠.
이유는 바로, 아무 식당에서나 급식카드를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자체와 사전에 협의가 된 식당, 즉 가맹점에서만 급식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가맹점 수가 턱없이 부족해서, 인구가 8만 명인 대구시 중구의 경우 가맹점이 12곳밖에 되지 않습니다. 카드는 발급했지만, 가맹점 확보는 뒷전이었던 거죠.
지난해 대구의 아동급식카드는 아이들이 사용하지 않아 없어져 버린 금액이 무려 20%, 15억 원이나 됩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아동급식카드를 관리하는 보건복지부는 급식카드 미사용액이 얼마나 되는 지조차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미사용액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문제 의식도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돈을 내서 운영하는 주체가 각 지자체이기 때문에 미 사용금액 관리도 각 지자체의 소관이라는 겁니다.
급식카드를 발급받고도 사용 안 하는 아이들을 탓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 어른들의 '무책임'이 더 커 보입니다. 현실물가를 제대로 반영한 활용도 높은 급식카드가 하루빨리 나와서 박 군처럼 가슴에 멍드는 아이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밥 때문에 눈치 본다면 그것만큼 가슴 아픈 일이 또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