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대신해서 정부를 꾸짖어주시고 할말 당차게 해주셨던 분이고 가슴속에 무언가 울분을 담아두신 분 같아서 항상 기억하고 있는의원님입니다.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것 같아서 퍼왔습니다
고학생이었습니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당시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백화점 매대 점원. 대학을 들어가 과외를 할수 있었던 것은 내생애 최고의 기득권이었지요 (비록 그때문에 엠티 단한번도 못가봤지만;). 사법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무작정 신림동 고시촌으로 올라와서도 비디오방 아르바이트, 독서실 총무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볕드는 작은 창이나마 허락되는 것이 행복했지요.
그러다 여의치 않아 월세 10만원 짜리 산꼭대기 고시원 방세도 못낼 형편이 되었습니다. 고시원 주인 아주머니께 어렵게 부탁을 해 몇 달의 말미를 허락받으면서 대신 지하 창고옆 환풍구 하나없는 먹방으로 옮기게 되었지요. 볕을 볼수 없는 현실이 가장 슬펐던 그때, 그저 같은 고시원에 머물던 사이의 그녀가 불쑥 나를 찾아왔습니다. 그녀가 가방에서 꺼내 펼친 몇장의 신용카드. 저보다 몇살 언니인 그녀는 그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라도 받아 돌려막기라도 하며 공부에 보태랍니다. 내게 도움줄수 있을까 은행을 찾아갔더니 대출이 어려워 카드만 몇장 신규로 발급받았답니다.
당시 저는 그 호의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세상에 대한 경계심 없이 해맑게 웃는 그녀가 기가 막힐따름이었습니다. "저를 얼마나 안다고 이러세요? 이런거 아무한테나 마구 빌려주는 거 아니에요. 가져가세요." 매몰차게 거절하는 나의 태도에 아이처럼 시무룩 실망하는 그녀의 표정에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이 사람... 참... 이쁘다.
고시합격 그날까지 세상없이 독하게 살겠다 맘먹었던 나인데, 내맘의 빗장을 거두고 평생 다시없을 친구를 얻은, 바로 그때 입니다.
벌써 18년의 인연입니다. 친구이고, 언니이고, 엄마인 그녀. 그녀의 가족이 내가족, 내가족이 그녀의 가족, 그녀의 친구가 내친구, 내친구가 그녀의 친구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지금 저의 "후원회 회장"입니다.
흔히 정치인들이 후원회장을 모실때 선배정치인이나 명망가를 모십니다. 저 역시 그런 선택지에서 고민했지만, 지금은 그녀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내삶의 철학이 그녀입니다. 세상에 대한 경계심없는 따뜻함. 상처에 대한 두려움없이 맘을 열어 타인을 보듬는 용기.
그런 그녀가 한 사이트에 후원회장으로서의 후원독려글을 올렸답니다. 멋들어진 경구나 인삿말이 아니라, "...커플들은 백년해로 하시고 솔로들은 얼른 커플 되도록 제가 밤마다 물 떠 넣고 기원할께요~" 라는 귀엽고 깜찍한 언사로 후원을 부탁하는 사랑스러운 그녀. 보좌진이 전해준 링크글에 가슴이 뭉클해왔습니다. 이 글 적는 지금도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쳐 오르네요. ㅠㅠ
나의 후원회장님, 우리 언니... 그 존재가 내게는 가장. 큰. 후원입니다. 사랑하는 그녀에게는 제가 후원회장이 되렵니다.
그리고, 18년전 그녀처럼. 저역시 누군가에게 경계심없이 다가가 손을 내밀어 "볕"이 되렵니다. 그녀의 사랑에는 그렇게 보답...하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