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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소설) 가을비
게시물ID : panic_728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쿠밍
추천 : 13
조회수 : 1360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4/09/19 21:00:43
퇴근하는 길.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다. 
생각보다 쌀쌀한 날씨에 저절로 몸이 움츠러든다. 
어느새 완연한 가을이 되었다. 

처량하게 비를 맞으며 걷노라니 작년 이맘때 보았던 그 여자가 떠올랐다. 

그날도 이렇게 비가 오던 날이었다. 바람도 꽤나 세찼던 것 같다.

퇴근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와서 열쇠로 문을 열고 있었다. 
문이 잘 열리지 않았는데 때마침 돌풍이 불어 우산이 날아가버렸다. 
우산은 저 멀리 주차된 차에 우스운 모습으로 달라붙었다. 

혀를 차며 문을 다 잠그고 우산을 주우러 갔다. 
그런데 옆에 무언가 서성이는 것이 보였다. 놀라서 쳐다봤더니 버버리 코트를 걸치고 비를 맞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버버리코트는 꽤나 오래 된 것이었는데 여자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위화감도 들었다. 

난 그녀를 무심히 보고 있다가 우산을 가지고 돌아섰다. 아무리 해도 이상해서 뒤를 돌아보니 여자가 아직도 그자리에 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다가가 우산을 씌워주었다. 그녀가 살짝 미소지었다. 

그리고 굉장히 어렵게. 아기가 걸음마를 떼듯 살짝 살짝 그곳에서 움직였다. 꽤나 예뻤던 그녀였기에 나는 그녀를 따라 우산을 받쳐주었다. 

순간 그녀는 앞서 뛰어가더니 폴짝 폴짝 뛰었다. 나비같았다. 바람에 날리는 낙엽같았다. 
그러더니 뒤를 돌아보고 한번 환하게 웃었다. 순간 숨이 멎을 뻔 했다. 
그리고 휙

점프했다. 

그리곤 사라졌다.


버버리 코트만이 땅에 떨어져 있었다. 


난 그 버버리코트를 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버버리 코트를 보시던 어머니는 이게 어디서 났냐며 놀라워 하셨다. 
한참 뒤에야 어머니께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한 여자가 주차장 안쪽에서 남자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속도를 줄이지 않고 주차장에 들어온 차에 치였다. 
음주운전을 했던 운전자는 자기가 뭘 친건지도 모른채 여자를 깔아뭉게고 차를 주차시키고 가버린 것이다. 

억소리도 못하고 기절해 있던 그녀는 그날 새벽까지 비를 맞아서 몸이 식었고.  몸의 일부가 깔려있어서 신고도 못한 채 버티다가 아침에 죽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를 처음 발견하신 건 우리 어머니였다. 처음엔 죽은줄 모르고 119에 신고했고, 얼굴을 보니 하얗게 질렸길래 마침 버리려고 했던 버버리 코트를 그녀에게 덮어줬다는 것이다. 
구급차가 온 것을 보신 후에 장을 보러 가셨다고 들었다. 
그 이후에 그녀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 뺑소니범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하신다고 했다. 

버버리 코트를 어루만지시는 어머니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그녀의 환한 미소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을 죽인 사람에 대한 원한보다는 누군가가 찾아주기를, 보살펴주기를, 비에 젖지 않게 우산을 한번 씌워주기를 원했던 것이 아닐까. 





fin

by 쿠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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