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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소설) 나는 달걀을 싫어한다
게시물ID : panic_729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쿠밍
추천 : 17
조회수 : 1726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4/09/22 22:16:53
내가 계란을 엄청 싫어해. 거의 혐오 수준임. 
어제도 술자리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안주를 계란말이만 딱 시키는데 미치겠는거야. 
그래서 계속 안좋은 표정 지었더니 한명이 언제부터 계란 싫어했어? 라고 말하는데. 

언제부터 왜 싫어했는지 계속 기억이 안나다가 갑자기 기억이 나서 여기에 써봄.
그 일은 나한테는 정말 공포였는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낄지는 모르겠네. 

중학교 1학년때야. 중학교 입학한지 얼마 안되서 부모님 일때문에 다른데로 전학을 갔어. 아마 입학식 하고 한달인가 있어서였을거야. 그런데 그때가 딱 애들끼리 친해지고 무리가 생길 때잖아. 끼워주는데가 없더라고.
하필이면 절친 4명끼리 뭉쳐다니는 무리에 무리하게 끼려고 했어. 그러다가 친구를 못사귀고 아싸가 되어버림. ㅋ

어쩌다보니 괴롭힘까지 당하게 되었는데
사실 처음엔 괴롭히는 게 아니라 무관심이었어. 
무슨 말을 해도 내가 마치 유령인것처럼 듣지도 않고 무시하고 그러더라. 

그게 지속되니까 슬슬 열이 받는거야. 
초등학교때는 그래도 반장도 하고 애들 사이에서 리더 격이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든 탓도 있었어.
그래서 여자애들을 상대로 장난을 좀 치고 그랬는데...

남자애들한테 다굴을 당했어. 진짜로 거짓말 안하고 날 교실 뒷편에 굴리더니 발로 밟더라. 

근데 아프거나 그런것도 아니야. 그렇게 상처가 나는것도 아니었어. 흙먼지만 묻히는거지.
그냥 모욕을 주는거야. 나는 먼지구덩이에서 일어났어.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에 몸을 털고 앉았지. 그리고 그렇게 수업을 들었어.


그다음부터는 직접적인 괴롭힘이 시작됐어. 급식실 가면 일부러 국물 흘리고 물건이 하나씩 없어지더니
주변에 애들이 내 이름 박힌걸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거야.
사물함에 우유 썩은거 넣어놓고. 
그정도가 되니까 사람이 위축되고 겁나기 시작하더라고.
초반엔 당당하게 내가 너네들을 왕따시킨다 생각하고 다니려고 했는데
이젠 애들이 무서워졌어.
하지만 최대한 티 안내고 다녔어. 무지막지하게 패거나 하는 애들은 없었거든. 중1이면 아직 어리잖냐.
그리고 그때는 요즘보다는 학원폭력이 그렇게 잔인하지는 않았던거같다.

암튼 이제 급식도 못먹고 혼자 도시락 챙겨먹고 다니게 된거야.
그나마 점심시간엔 혼자 괴롭힘 안당하고 다닐 수 있어서 좋았어.
한 2주정도 도시락 싸서 먹고 혼자 책보고 그랬는데 어떤 여자애가 말을 걸었어.
달걀 좋아하니?

그게 걔 첫마디였어. 딱 봤는데...

예쁜거야.

사실 여자애들 장난만 치고 그랬지. 친해지질 못해서 얼굴이랑 이름이 매치가 안되는 상황이었어.
이름표를 봤어. 그래 가명으로 이지혜라고 하자. 걔도 되게 흔한 이름이었으니까.

지혜는 내 옆자리에 앉아서 반찬이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말을 걸었어.
갑자기 무슨 바람인가 싶었지. 솔직히 말애서 처음엔 장난치는거라고 생각했어.
무슨 쪽팔려게임같은거 해서 내옆에서 말걸기, 아니면 뭐 받아내기 이런거 하는구나...싶어서 퉁명스럽게 받아쳤지.

그런데 한 일주일을 내 옆에서 조근조근대는거야.
밥은 무슨 10분만에 먹는지 급식실 갔다가 그렇게 빨리 교실에 돌아와서는
단둘이 있었어. 교실에

그러니까 뭐랄까...떨리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이정도로 장기적으로 쪽팔려 게임을 하진 않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생기고
나중엔 얘가 나 좋아하나 싶어서 집에서 망상도 하고...밤에...그렇고 그런 꿈도 꾸고 그랬어.

어느날은 나도 걔가 하는 말에 대답을 하기 시작했어.
그러니까 되게 예쁘고 환하게 웃는거야. 자기 계속 냉대할줄 알았대.
그리고 자기는 처음부터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다른 애들이 무서워서 말을 못걸었대.
방관해서 미안하다고. 앞으론 잘지내고 싶다고.


그래서 점심시간이랑 방과후에 걔랑 같이 다니게 되었어.
물론 반에서는 여전히 찐따처럼 지내고
괴롭힘도 줄어들진 않았어.
그래도 지혜가 있어서 행복했어. 적어도 점심시간에 같이  얘기할 수 있었고
수업끝나고 독서실 같이 가거나 오락실 갈수 있었으니까.
아 그래 노래방도 한번 갔었어.

그런데 말 안한게 있는데 얘가 특이한 점이 있었어.
달걀모양 오브제? 라고 해야 하나? 암튼 틈만나면 뭘 줬는데 그게 다 달걀모양인거야.

달걀모양 양초랑 지우개, 그리고 되게 후진 문방구에서 파는 달걀모양 포스트잇같은거.
그때 병아리가 달걀 안에 있는 그런 캐릭터 유행했나? 그런것도 기억나. 쵸코렛, 수첩, 노트, 샤프, 시계까지
그래서 한때 내 소지품이 노랑 하양 투성이였어. 달걀 뭐 평소엔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런데 지혜가 주니까 너무 좋은거야. 그래서 혼자 찾아서 산적도 있었어.
집에서도 괜히 냉장고에 달걀 보면 지혜 얼굴이 떠오르고...
왜 그런거 있잖아. 어떤 사람을 상징하는 물건같은거. 그게 지혜였어.

암튼 그렇게 석달을 보내니까 어느새 한학기가 다 지나가더라.

그리고 갑자기 지혜는 이별통보를 했어.

뭔소리냐고 물어보니까 자기는 할만큼 했대. 질린대.
그리고 끝을 내야 할 때가 온 거 같대.
이게 뭔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야. 
그리고 웃긴게 우리가 정식으로 사귀거나 한 것도 아니었거든. 그냥 썸타는 사이일 뿐이었어.
중1이다보니까 나도 아직 어리니까 연애는 안돼. 하는 생각이 있었고...

그런데도 그런식으로 듣고 나니까 눈물이 나는거야.
집에가서 펑펑 울었어.
일단 유일한 친구가 사라진거잖아. 그때 화풀이할게 없어서 냉장고에 계란 다 깨부시고 싶었는데
그냥 부침개해먹음. 레알 ㅋ

암튼 하룻밤 울고 나니 다음날 아침엔
내가 뭘 잘못했나. 용서를 빌면 될까. 아니면 밀당하는건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힘을 내서 학교에 갔어. 그래도 학교에 가서 그 얼굴을 보면 화도 풀리고 기분이 좋아질거같았어.



학교에 갔어.
교실에 들어갔어.

그런데...



내 책상앞에 애들이 원을 그리고 서있어.
뭐 구경난듯이.

내가 막 치면서 들어가려고 하니까 되게 낄낄 웃어대.
기분나쁘게


책상을 봤지.
가관이더라...


책이며 공책이며 다 꺼내져 있는데(그게 공교롭게도 다 달걀모양 캐릭터 그려진거)
그 위에 계란이 한판은 깨진것처럼 다 범벅이 되어 있었어.
흰자가 책상에서 막 뚝뚝 떨어지고 교실 바닥도 흥건히 젖어있고 껍데기 나뒹굴고.

어이가 없었지. 이렇게까지 괴롭힘당한건 처음이었거든
사물함 썩은우유야 그렇다 치지만 이건 아예 공부를 못하잖아. 지금이야 이렇게 냉정하게 쓰지만 그땐 정말 부르르 떨리고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어.

그런데 그게 끝이 아냐.



앞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서 나도 애들도 다 그쪽을 봤어.
보고 싶었던 지혜가 있는거야.

그런데....

계란 두판을 들고 있어.
뭘까 싶었어. 저게


그런데....애들이 다 그쪽으로 몰려가.
설마설마 했어. 설마 저걸...


애들이 계란을 하나씩 다 들어.
그리고 무슨 신호라도 한듯이 일제히 나한테 던지는거야.
애들이 그때 한반에 40명인가 그랬는데, 진짜 그걸 한번에 다던지더라.
정수리랑 뒤통수 맞았는데 너무 아팠어. 죽을만큼 아팠어.
교복은 이미 난리가 났고. 막 아오 오 우 이상한 신음 내다가...


도망쳤어.

애들 웃는소리가 복도 끝까지 들리더라.




며칠동안은 애들 환청에 방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어.
그리고 그때부터 계란은 쳐다도 안보게 된거같아. 질려서. 무서워서.

나중에 치료도 받고 좀 나아서 공황장애는 좀 없어졌는데
계란은 여전히 무서워. 
신기한건 계란이란 단어는 안무서운데 계란을 먹을순 없어.
캐릭터도 무서운데 계란 캐릭터는 시중에 별로 없으니까...
마트만 조심하면 됨. 마트에서 막 쌓여있는거 보면 미칠거같음.



그리고 고등학교때 쯤 동창을 만나서 얘기를 들었어. 
걔가 양계장집 딸이었나. 계란파는 마트 딸이었나 그랬는데...
그런식으로 애 한명 잡아서 왕따시킨다음에 
자기가 살살 꼬셔서 달걀 좋아하게 만들고

결국 달걀로 마지막에 그지경을 만든대. 남녀노소 할거없이. 5명인가 그렇게 당했대. 
그런데 사립학교고 빽이 있어서 아무일도 없이 넘어갔다는거야. 나도 우리 부모님도 학교에 항의했는데 돌아오는 답변은 전학가라 뿐이었거든. 마치 내잘못이었던것처럼. 그래서 아무 조치도 할 수 없었지...

암튼 괴롭힌 이유가 뭔지 알아?

마지막에 나한테 던진 그 달걀. 애들한테 그거 한번 던질때마다 2000원엔가 팔았댄다.
나는 그거였던거지. 다트판? 
아무튼 지혜도 대단하지만 같은 반이었던 애들도 무섭긴 무섭다.
한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서 그런 짓을 한 거잖아.
물론 달걀을 안던진 애도 있었어. 있었을거야. 무서워서 동조하는 척 했을수도 있겠지
그리고 나도 물론 그상황이면 애들 눈치보면서 같이 달걀을 던졌을지도 몰라.

아무튼 사람의 악의에 대해서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fin

by.쿠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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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형식은 조금 벗어났지만
아무튼 소설입니다.  비슷한 경험은 해본 적 있지만(왕따)
달걀은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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