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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로 가는 과정, 금남로
게시물ID : panic_958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죽이는비율
추천 : 4
조회수 : 110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10/19 03:04:04
거리에서 대열을 만들고 결연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항거하던 사람들은 예정된대로 우리가 조준사격을 시작하자 공포에 질려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길에는 시위대의 앞쪽에 서있던 수 십명이 그대로 땅에 쓰러져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우리는 이미 총에 맞아 널부러진 것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그 뒤에서 도망가는 수 백명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들은 기세등등하게 정부를 규탄하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고양이 만난 쥐떼마냥 여기저기로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리가 담아왔던 분노를 뿜어낼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미리 지프를 타고 대기하던 장교들은 그들을 앞질러 도주를 차단했다. 갈곳을 잃은 녀석들에게 우리에게 대검을 쑤시거나 다시 도망치는 녀석들에게 소총을 쏘았다. 폭도들은 제대로 된 무기도 없었고 전술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의 무력에 굴복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항거하다 잡혀서 죽거나 도망가다 죽거나였다. 

그동안 영문도 모르는 우리를 죽을만큼 힘들게 했던, 아니 정말 몇몇은 견디지 못하고 죽어나갔던 지옥훈련을 시키던 장교들은 이 모든 게 남한의 붕괴를 노리는 북한세력 때문이라고 말했다. 언제 어디에서 작전을 감행할지 모르는 그들로부터 조국을 지키려면 고통스러운 훈련을 이겨낸 공수부대원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처럼, 짐승처럼 그들이 시키는 생사를 넘나든 훈련을 하던 우리에게 점점 그 말은 중요성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다면 훈련 도중 끔찍한 부상을 당하거나,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거나, 탈영을 시도하다 끌려간, 그리고 운좋게 견뎌냈지만 역시 비정상이 되버린 우리가 겪은 고통들이 모두 의미없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 낯선 전라도의 어느 도시에서 간첩들의 공작으로 인한 폭동이 일어났고 그로인해 우리 부대의 투입허가가 내려왔다는 사실을 전달 받았을 때, 우리는 약간 흥분하기까지 했다. 간부들이 그렇게 자주 북한세력들의 위험성을 말했지만 실제로 보거나 겪어보지 못한 가상의 적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그곳에 도착하자 실제로 이미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많은 군중들이 정부를 향해 욕설을 퍼붓거나 고성을 지르며 정말 간부들이 말한대로 폭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우리가 그것들을 진지하게 바라보지 않을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전투의 결과는 우리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기선제압을 위한 학살이 어느정도 마무리되자 지휘관은 이미 적의 세력이 와해된것 같으니 더 이상 사살하지 말고 생포 위주로 작전을 진행하라는 명령을 전달했다. 명령을 따르긴 해야겠지만 이미 많은 폭도들을 죽인 후였다. 이미 그들은 우리의 적이었고 우리는 그들을 제압한 상태였다. 10명을 죽이건 100명을 죽이건 큰 차이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총을 쓰는 대신 곤봉과 군화발, 대검으로 그들을 죽도록 구타하거나 난자해서 끌고가기 시작했다. 폭도가 말을 듣지 않아서 죽였다고 하면 누구도 뭐라하지 않을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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