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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공포 20 <소설6월10일>
게시물ID : panic_986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빛나는길
추천 : 3
조회수 : 38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6/08 14:4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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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시위 오더(Order)가 새다
 
 

이번 주 일요일에 있을 세운상가 가두시위 약도를 이정훈으로부터 넘겨받은 김영철은 복사를 위해 법학과 사무실로 간다. 아직까지 총학생회 복사기를 수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공 서적을 복사하는 척하면서 가두시위 약도를 꺼내 복사를 하려는데 여기 복사기도 에러가 났다. 용지가 걸려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때 법학과 교수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바람에 당황한 김영철이 복사기 드럼에 걸려있는 용지를 제거하지 못하고 그냥 원본 약도만 갖고 나온다. 김영철이 나간 후 조교가 복사기를 유심히 쳐다본다.
일요일 오후 2시에 세운상가 가두시위를 위해 학생들이 도착해서 상가 건물로 들어가는데 건물 안에 미리 배치되어 있던 사복 체포조들에게 체포된다. 길 건너편 종로성당에 미리 숨어 있으려던 학생들도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전투경찰들에게 전원 연행된다. 경찰은 시위 정보를 미리 알고 있다는 듯 1시간 전부터 검문검색을 시작했다.
그것도 모르고 이날 시위를 주동할 소아마비 주동자는 세운상가 구름다리에서 손목시계로 2시를 확인한다. 그리고 주동자를 보호하는 남학생 4명과 함께 계단 밑으로 내려가는데 사복 체포조들이 서 있다. 사복 체포조가 다가온다.
신분증 꺼내!”
사복 체포조의 반말에 시위 주동자가 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지도 못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남학생 가방에서 유인물이 발견된다. 체포당하지 않으려고 남학생들이 몸부림치고 있을 때 소아마비 시위 주동자가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차도로 뛰어든다.
전두환 파쇼정권 타도하자!”
힘차게 구호를 외치는데 건물 어디에서도 현수막이 걸리지 않고 유인물 한 장 뿌려지지 않는다. 주위에 학생들도 보이지 않는다. 사복 체포조가 시위주동자의 지팡이를 곤봉으로 날려버린다. 그러자 시위 주동자가 맥없이 쓰러진다. 넘어지면서 한쪽 신발이 벗겨진다. 그런 소아마비 시위 주동자를 사복 체포조가 질질 끌고 간다.
세운상가 택 전술이 실패로 끝나고 이정훈은 다시 도심지 시위 전술을 짜고 있다. 신설동 로터리에는 가변차선이 설치되어있다. 임의로 차선을 바꿀 수 있는 신호표시를 말하는데 출근 시간에는 출근 차량이 많은 방향으로 한 개 차선이 더 늘어나고 퇴근 시간에는 퇴근 차량이 붐비는 방향으로 차선 신호표시가 늘어난다. 그러니깐 차량 흐름에 따라 차선을 바꾸는 것이다. 이정훈이 가변차선을 바라보며 옆에 있는 이화여대 시위 주동자에게 말한다.
여기 신설동 지역은 지나가는 차들도 많고 노점상들도 많고 소음이 워낙 커서 시위 주동자가 고함을 질러도 잘 안 들려, 그래서 동이 뜨는 신호를 자동 빵으로 하자고, 저길 잘 봐!”
이정훈이 손가락으로 가변차선 표시등을 가리킨다.
저기 가변 차선 표시등 빨간색, 파란색 양방향 불 색깔이 645분에 정확하게 바뀌다고, ~ 1분 전.”
이정훈이 손목시계를 보면서 마치 마술을 보여주듯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손목시계 바늘이 정확하게 645분이 되자 정말로 가변차선 양방향의 색깔이 바뀐다.
우아!!”
이화여대 시위 주동자가 마치 마술을 보듯 신기해한다.
저 신호가 바뀌면 그때 동이랑 애들도 같이 도로로 뛰어들자고, 동이 메가폰으로 사이렌 울리지 말고, 어차피 여기서 메가폰이 울리면 노점상 메가폰 소리로 착각할 수 있어. 동대문에서 신설동 방향의 도로 표시등이 3차선에서 4차선으로 바뀔 때야.”
정훈아 병력은 어디에 배치되어 있어?”
이화여대 시위주동자가 전투경찰 버스가 어디 있는지 묻는다.
고려대 쪽 안암동 로터리에 대기 중인 닭장차들이 이동해 올 거야. 고대 막는 놈들이라 시위에 단련돼서 동뜨고 나면 5내에 도착할 거야. 그리고 동대문 로터리 쪽에서 페퍼포그 차량이 이동할 거야, 양쪽에서 적들이 시위대를 협공하는 셈이지.”
그러면 우리 쪽 피해가 클 텐데.”
맞아. 퇴근 시간이라 싸우기에는 시간도 안 좋고 장소도 안 좋아 그러니깐 이대생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이슈 파이팅에 유인물만 잔뜩 뿌리자고 도로를 유인물로 덮자.
택은 아주 좋은데 걱정되는 게…….”
이화여대 시위주동자가 말끝을 흐린다.
걱정이라니?”
지난주 일요일 청계천 시위가 유인물도 못뿌리고 깨져버렸잖아?”
이번엔 오더 샐 염려가 없이 이대랑 두 개 대학 정도만 힘을 합쳐 *스트러글 하자고.”
 

* 스트러글(Struggle) : 투쟁, 싸움을 의미함
 

둘이서 가변차선 표시등을 너무 열심히 바라보는 바람에 앞쪽에서 다가오는 전투경찰 21조를 발견 못 했다. 다가오는 전투경찰들이 대학생 차림의 학생들 가방을 열어 조사하고 있다. 이정훈이 양복 차림이지만 다가오는 전투경찰들의 눈초리가 매섭다. 그러자 이화여대 시위 주동자가 연인처럼 자연스레 이정훈의 팔짱을 낀다. 둘이 다정히 이야기 나누는 척하자 전경들이 그냥 지나간다. 이정훈의 시위 주동자를 칭찬해준다.
아주 잘했어.”
정훈아, 이 정도 *뺑끼는 칠 줄 알아야지. 그나저나 애인도 없나 봐. 내가 팔짱 끼니깐 당황하네.”
 

* 뺑끼 : 페인트 모션의 속인다는 뜻
 

당황은 내가 무슨 당황…….”
이정훈 얼굴이 불그스름해진다.
내일 잘 끝내고. 그리고……이거!”
이정훈이 머뭇거리다가 메모지 한 장을 이화여대 시위주동자에게 내민다. 이화여대 시위 주동자의 얼굴이 볼펜으로 그려져 있다.
우잉? 이거 나잖아?”
동 뜨는 기념이야. 신설동 택 짜는데 시간이 남아서 그렸어. 아무 뜻 없어.”
고마워.”
그리고 그 그림은 나중에 애인 생기면 찢어버려.”
이정훈이 나름 신신당부한다. 이정훈이 이화여대 시위 주동자와 헤어지고 버스에 올라탄다. 빨개진 얼굴로 대학 입학 후 여대생들과 처음 해본 미팅을 떠올린다.
이정훈은 대학교 1학년 때 명문여대 미대생들과 단체 미팅을 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서울대 법학과 학생들 5명이 미대생들 5명과 마주 보고 앉아있다. 학생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의상과 비싸 보이는 핸드백을 갖고 있는 미대생들이다. 이정훈이 묵묵히 앉아 있다가 상대방 파트너에게 아무 질문도 하지 않으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상투적인 질문을 한다.
전공이 회화면 누구 그림 좋아하세요?”
뭐 특별히 좋아하는 그림은 없어요. 이정훈 씨라고 했죠? 그쪽은 법학과면 나중에 판사를 할 거예요? 검사를 할 거예요?”
글쎄요. 아직 생각을 안 해봐서요.”
취미는 뭐예요?
그림을 좀 그려요.”
그림을 그린다는 말에 앞에 있는 미대생들의 시선이 이정훈에게 쏠린다.
누구 그림 좋아하는데요?”
밀레 좋아합니다.”
밀레를 좋아한다는 이정훈 대답에 질문이 계속 이어진다.
왜요?“
밀레는 가난한 농민들의 생활을 담아내는데, 그 자연스러운 기법을 좋아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도 밀레를 제일 좋아했잖아요.”
, 그런가요?”
이정훈의 입에서 나온 가난한 농민이라는 단어에 미대생들의 이정훈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식어진다.
이정훈이 버스 안에서 서울 시내 화려한 조명 불빛을 보며 잠시 미팅했던 때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대학 입학 이후 미팅도 몇 번 안 해본 거 같다. 3월에 입학하고 4월에 4·19혁명, 5월에 광주항쟁 유인물, 대자보를 읽으면서 나는 사회 모순에 대한 적개심으로 여자친구를 사귀는 건 사치라고 생각했다.’
달리던 버스가 종각역 정류장에서 손님을 태우느라 잠시 멈추고 버스 차창 밖으로 가전제품을 파는 대리점 가게의 TV들이 보인다. 그 가게 TVKBS 유머 1번지 프로그램을 하고있는데 개그맨 김형곤이 잘될 턱이 있나?’ 유행어를 하고 있다. 그걸 차 안에서 보고 있던 이정훈이 주위 사람들이 졸고 있는 걸 보고 버스 안에서 김형곤의 잘 될 턱이 있나?’ 동작을 한번 해본다.
잘 될 턱이 있나…….”
동작을 끝내고 이정훈이 머쓱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는 누가 봤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 다음 날, 저녁 645분 직전, 이화여대 시위 주동자가 신설동 로터리 가변차선이 바뀌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645분이 되었는데도 가변차선 신호가 바뀌지 않는다. 시위 주동자가 당황한다. 바뀌는 순간에 시위를 시작하는 걸로 이정훈이 전술 택을 짰는데 이게 바뀌지는 않고 있다. 그 대신 645분에 맞춰 신설동과 동대문 양쪽 방향에서 전투경찰 버스와 사복 체포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진두지휘하는 전투경찰 버스 안에는 전경 소대장 최성식이 타고 있다
병신들 백날 쳐다봐라, 그 차선이 바뀌는지
최성식의 비아냥거림과 달리 김용수는 밖을 쳐다보며 존경어린 심정을 얘기한다.
그나저나 이번 시위 전술은 어떤 새끼가 짰는지 예술이에요. 어떻게 가변차선 바뀌는 신호에 맞춰 시위할 생각을 했을까요?”
그래 봤자, 우리한테 사전 정보가 노출됐기 때문에 말짱 도루묵이지.”
전투경찰 버스가 바로 신설동 로터리에서 멈추고 차 안에서 전경, 사복 체포조가 뛰어나와 인도에 서 있던 학생들을 검거하기 시작한다. 양쪽에서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이화여대 시위 주동자가 그냥 시위해산명령을 내릴 수 없다고 판단하고 혼자서 구호를 외치며 차도에 뛰어든다.
장기집권 획책하는 전두환 정권 타도하자!”
그러나 차량 소통이 워낙 많고 소음이 심한 관계로 시위 주동자의 구호가 들리지 않는다. 시위를 주동하는 동이 떴는지도 모르는 형편이다. 전경들과 사복 체포조들의 갑작스런 출연으로학생들이 유인물도 못 뿌리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사복체포조들이 시위 주동자를 발견하고 하이에나처럼 서서히 뛰어온다. 시위 주동자는 자기를 향해 달려오는 사복 체포조들을 발견하고 뒷걸음치며 방향을 틀다가 달려오는 택시에 부딪힌다. 시위 주동자의 온몸이 공중으로 뜬다. 차도에 쓰러진 시위 주동자를 사복체포조들도 놀란 얼굴로 쳐다보고 있다.
신설동 로터리 시위가 경찰에 원천봉쇄당한 그 다음날 점심시간, 누군가가 치안본부 길 건너편 다방에서 정보과 형사를 만나고 있다.
지난번 소아마비 주동자 잡을 때 연락도 고마웠고, 신설동 시위도 사전에 잘 막을 수 있었어 비록 이대 년이 크게 다쳐서 약간 문제는 생겼지만…… 이번 건은 어떻게 건진 거야?”
정보과 형사 물음에 누군가가 힘없이 대답한다.
학과 사무실에 유인물을 복사하러 온 학생들한테 알아낸 겁니다.”
아주 잘했어. 이번 학기 석사과정 마치면 박사과정까지 우리가 밀어줄게. 그리고 미국 유학도 가야 교수가 되지?”
감사합니다.”
, 온 김에 커피 한잔 찐하게 마시자고.”
정보과 형사와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바로 서울대학교 법학과 사무실에 있는 조교다. 이정훈과 김영철의 사회문화연구회 선배이고 군대를 강제징집으로 갔다 온 사람이다. 조교가 커피잔을 내려놓는다. 손잡이까지 데워진 잔을 잡고 보니 예전 강제징집 당했을 때 군대 보안대 사무실에서 마셨던 커피가 떠오른다
.
식기 전에 쭉 마셔.”
조교가 강제징집당한 1981, 전방부대인 7사단 철책에 눈이 내린다. 무릎까지 잠기는 폭설에 근무조들이 나가지도 못하고 있다. 이 시간 보안대 중사가 조교에게 커피를 권한다. 조교가 뜨거운 커피잔을 드는데 손이 덜덜 떨린다.
왜 그래? 추워? 그거 일부러 잔까지 따듯하게 데운 A급 커피야.”
보안대 중사는 뜨거운 커피를 훌훌 불어가며 잘도 마신다.
안경도 하나 우리가 맞춰왔어. 여기.”
보안대 중사가 내민 안경을 조교가 받아쓴다. 흐릿했던 보안대 중사 얼굴이 이젠 뚜렷하게 보인다.
안경, 감사합니다.”
감사는 나한테 할 필요 없어, 자네가 끼고 있는 안경, 다 국민의 세금으로 사 온 거야, 남자는 말이야, 군대를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는 얘기 알고 있지?”
조교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군대는 예, 아니면 아니요, 둘 중에 하나야!”
보안대 중사의 목소리 톤이 높아지자 그제야 조교가 큰 소리로 !’하고 외친다.
자네는 정말 군대 잘 온 거야, 계속 학교에 있어 봐, 데모하다가 감옥 가고 그러면 인생 끝이야, 여기 군대에서 인생을 다시 시작하자고 알겠나?”
!”
이번엔 조교가 힘차게 대답한다.
그런데 말이야······. 자네만 인생을 다시 시작하면 다른 동료들 인생이 너무 안타깝잖아. 그러니 그 친구들도 갱생할 기회를 주자고 서울대생이니깐 내 말 쉽게 이해되지?”
…… 그건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조교의 입에서 나오자마자 보안대 중사가 옆에 있는 M16 총을 집어 들고 그 총을 조교 머리 위에 겨눈다. 그리고 장전 손잡이를 잡아당긴다. 철커덕 금속성 소리에 조교가 몸을 바르르 떤다.
지금 이 총에는 총알이 만땅으로 장전되어 있어. 너 같은 새끼 하나 쏴 죽이고 저기 비무장 지대 지뢰밭에 던져 놓으면 지뢰 밟다 죽은 거로 공상처리 돼서 27천 원, 가족 앞으로 위로금 전달 될 거야, 우리 이렇게 까지 가지는 말자! , 조직원들 이름만 말해, 그 친구들이 더 나쁜 길로 빠지기 전에 우리가 구해줄 테니까, 알겠어?”
중사의 살벌한 협박에 얼이 빠진 조교가 알겠다고 손까지 싹싹 빌고 있다.
보안대 중사가 그제야 겨눴던 M16 총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커피포트에서 커피 한잔을 더 따라서 조교에게 건네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우리 집안에도 서울대 교수님이 한 분 계시는데, 4·19 때 자네처럼 데모를 심하게 하셨어. 애국심 출중하시고 똑똑한 집안 어른이시지 , 나도 자네 맘 다 이해해. 군대 제대하고 복학해서 대학원도 가고 미국 유학도 가고 해서 교수 되는 거 내가, 아니, 우리나라가 밀어줄게.”
이 말을 마치고 보안대 중사가 책상 위에 갱지 몇장과 볼펜을 올려놓는다.
갱생시킬 친구들 한 놈도 빠지지 말고 적어.”
조교가 함께 학생 운동했던 동료들 이름을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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