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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 무당에 대하여 완결
게시물ID : panic_986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오늘은이거로
추천 : 5
조회수 : 361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6/08 23:12:02
오유게시판에 신내림증상으로 고생글이 기억나서 
혹시나 도움이 될까하여 퍼오려는게 이렇게 길어지게 되어서
본의아니게 즐기지 않는분들께 죄송합니다.
한분이라도 재밌게 보신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원글쓴이께서도 한분이라도 도움되시길 바랄겁니다.
무속인이 양에 비례해 사기꾼도 많으니 잘 대처하기위해서라도 재밌게 읽어주세요. 




이걸로 신내림은 막아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끝. 다음에는 신내림과 자아도취에 대해 설명해 줄게
 

신내림이 된 사람을 무당이라 하는데 일반적으로 남자 무당을 박수, 여자 무당을 보살이라 해. 그리고 이를 총칭하여 모든 신이 내왕할 수 있다 하여 만신(萬神)이라 하지. 여기서 여자 무당을 보살이라 하는 것은 무당이란 용어가 과거에 천한 개념으로 인식된바, 이것을 탈피하고자 불교적 용어로 대체하게 된 것이야. 그러나 마음을 중생을 구제하는 일, 즉 보살같이 써야 보살인 것이지, 만일 약간의 신통력만 믿고 혹세무민한다면 결코 보살이라 할 수 없을 것이야. 무당이던 보살이던 따지고 보면 모두 훌륭한 이름인즉 용어를 어떤 것을 사용하던지 이름 값을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지.
 

그런데 신내림을 하게 되면 중요한 특징이 있어. 즉, 접신이 되면 매우 강한 자아도취에 빠진다는 것이지. 다음은 높은 신을 빙자한 무당을 경계한 구절이야.
무녀의 입은 멋대로 제석(帝釋)님이라 하는데
제석님은 본래 6천에 계시는데
어찌 누추한 너의 집에 계실소냐!
벽에는 단청으로 신상(神象)을 그려 놓고
칠원성군(七元星君)과 구요성(九曜星)은 액자로 그려 걸어놨는데
이 분들은 9천에 계시는데 어찌 너를 따라 너의 집에 거처하랴!
(이규보,《동국이상국집》)
세종 26년(1446,癸亥) 7월 정미(丁未)일에 의정부에서 무업을 금하는 법을 제정하였다. 그 첫째 항을 보면,
--무녀 등이 혹시 고금에 없는 바의 신을 일컫거나, 혹은 당대에 사망한 장군이나 재상의 신을 일컬어 임의로 신의 이름을 만들고 스스로 귀신이 자기에게 붙었다 하며, 요사한 말로 여러 사람을 현혹시키는 자는 요언요서에 대하여 만든 법에 의하여 처단한다.-- 《조선실록》
(제석은 제석천왕과 삼불제석이 있어. 제석천앙은 8천에 거하는 진리신이며 삼불제석은 무속의 신으로 조상계열의 신이지. 자세한 것은 뒤에서 다루도록 할게
칠원성군은 엄밀히 말하여 8천의 경지에 계시지.)
 

첫 번째 기록(동국이상국집)에 나오는 주장은 일리가 있어. 하지만 두 번째 실록에 나오는 주장은 그릇된 것이야. 장군이나 재상, 심지어 왕까지도 죽어서 내림신이 되기도 해. 무녀들이 생전에 고귀했던 사람들의 신이 내렸다 하는 것은 크게 거짓된 것은 아니야. 문제는 천상의 진리신들까지 함부로 거론하는 데 있지.
 

무속과 종교의 차이점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어. 무속은 종교에 비해 첫째, 공통된 신이 없고, 둘째, 교단이 없고, 셋째, 경전이 없다는 것이야. 수천년이 흘러도 무속이 하나로 통일 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접신 하게 되면 자신과 자신의 신이 최고가 되는 바, 종교처럼 상하의 조직이 이루어 질 수 없기 때문이지. 즉, 접신한 사람 자신이 교주가 된다면 몰라도 다른 사람 밑에서 신도가 된다는 것은 꿈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가령, 자신에게 조상신이 붙는다 하여도 이 조상신은 대개 자신이 몇 대의 조상이라는 점을 밝히지 않아.
 

대부분이 ○○보살이나 ○○도사, ○○선관, ○○신장 등의 높은 신들의 이름을 거론하고 직접 그 형상을 보여주기까지 하지. 기도를 하면 눈앞에 구름 속의 궁궐이 펼쳐지고 높은 옥좌에 붉은 도포를 입고 앉은 분이 “나는 태상로군인데 너는 전생의 내 아들이었느니라” 하면서, “아들아” 하고 부르면 제자는 감동하여 눈물을 글썽이며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는 것이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식으로 산신을 비롯해 천계의 신을 자처하고 직접 영상으로 보여주는바, 믿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지. 그리고 이러한 환영들은 조상신이 허위로 만든다는 사실을 이치적으로 알려 주어도, 사람들은 대개가 본심으로 자신은 예외겠지 하는 주인공의 심정을 지니기 마련이지. 나만은 틀림없이 선택받았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야. 그러므로 신이 오르기 전에는 수긍을 하다가도 신이 막상 오르고 나면 결국은 신의 의지대로 끌려가고 마는 것이지. 이런 연유로 명산 기도터의 암자에 무속인들이 몇만 모이면 서로가 잘났다고 으시대는 수가 많으며, 모두가 자신은 선택받은 주인공이라는 꿈에 부풀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어. 이것이 바로 접신에서 오는 자아도취인데, 이는 의학에서 말한다면 양성광증(陽性狂症)에 해당하는 것이지. 즉, 현재의 자신이 타인에 비해 그다지 잘 난 것이 없는 데도 대단한 존재라는 사실에 도취되어 있는 경우를 말하지. 그리고 여기서 말주변이 있고 글줄좀 쓸 줄 알면 으레이 책을 내거나 종교를 차려 하느님 행세를 하려는 경우도 허다하지. 종교가 수 만 가지가 넘는 것도 바로 이렇게 접신을 통하여 자아도취가 확장된 것에 기인하는 것이지.
 

요컨대, 신내림의 최대의 적은 객관성을 잃고 자아도취에 빠지는 데 있어. 이렇게 되면 사리의 분별을 잃어 결국은 정신 계발이란 타고난 목적은 뒷전으로 밀릴 수 밖에 없지. 좁쌀만한 신통력을 자랑하는 데 흠뻑 빠져 귀중한 세월을 다 보내고 마는 것이야.
 
이걸로 신내림과 자아도취에 관하여 끝. 다음에는 천제와 굿의 유래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줄게

굿이란 신들린 무당이 노래와 춤으로 치성 드리는 제사 의식을 말해. 이 절차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로 정형화되어 무가(巫歌), 무무(巫舞), 무복(巫服), 무예(巫禮)등이 고정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지. 하지만 아직도 지역에 따라 조금씩 용어나 치성 의식의 차이가 있어.
굿의 유래에 대한 첫 기록은《삼국유사》의「제2남해왕」편에서 볼 수 있어. 남해왕(南解王)은 차차웅(次次雄)이라 불렀는데 이는 방언으로는 무당의 뜻이라고 해. 즉, 당시는 왕이 무당이었던 것이지. 남해왕 3년에 시조인 박혁거세의 묘를 세우고 제사를 지낼 때도 누이동생인 아로(阿老)가 주관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누이 또한 무당이야. 굿의 형태가 정형화되기 시작한 것은 신라 진흥왕 때부터이지. 당시는 ‘팔관회(八關會)라는 국가적 규모로 진행된 나라굿이 있었는데, 국선(國仙)이라는 일종의 국사무당이 주관하였어. 이런 굿의 풍습은 고려 때까지 이어져 내려갔는데, 조선에 들어와서는 지배층에서 밀려나 서민의 종교로 자리잡게 되었지. 당시의 시대 상황이 유학을 중시하였던 바, 굿 대신 유교식 제례로 대치할 것을 권장하였던 것이야. 이런 유교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은 여전히 무당을 찾고 굿판을 벌여 왔다. 그러다가 일체 침략기에 접어들면서는 더욱 강한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 민족의 숨결이 배인 풍속과 신앙을 말살하고자 한 일제의 의도가 숨어 있다 할 것이야. 여하튼, 문헌에 나온 굿의 유래는 ‘차차웅’ 당시로 볼 수 있으나, 사실상 단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할 수 있지
....뭐 간단하게 설명을 해봤어
 

굿의 종류와 구조는 매우 복잡하여 전문적으로 다루어야 하지. 이 ㅁㅁ에서는 화랑도 정통수련자가 아닌 일반인 기준으로 전문적 용어나 복잡성을 배제하고 간략히 요약,정리해 볼게
① 비손
가장 규모가 작은 굿으로, 간단히 음식을 차려놓고 손비빔으로 치성을 드린다 하여 ‘비념’이라고도 하지. 대개 어머니들이 과거 보러 한양 간 아들의 장원을 바라며 정한수 한 그릇을 떠놓고 매일 같이 비는 것이 바로 이것이야. 귀신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미약하지만 오히려 천신을 감명시키는 데에는 더욱 효과적이지. 왜냐하면 천신은 차려 놓은 음식의 규모 보다는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을 중시하기 때문이야.
Ⅱ.중간 굿
예전에는 10월 상달에 추수를 기리며 지내는 제사의 뜻으로 사용되었으나, 요즘은 규모가 작은 굿에 이 용어를 쓰지. 보통 몇 십만원의 돈을 드려 하는 굿으로, 무당 혼자 하기도 하고 법사 한 명을 더 고용하여 쓰기도 해.
② 푸닥거리
신병(神病)이나, 가정불화 등을 해결하기 위해 귀신을 쫏는 굿으로, 대개 오방신장이나 작두신장(神將)등을 이용하여 살(煞)이나 액(厄) 풀고 귀신을 위협하여 쫓는거야.
 

Ⅲ.큰 굿
국가대사를 위해 나라에서 올리는 천제로 국사무당이 주관하지. 과거에 기우제를 지내거나 사직(社稷)의 안녕을 위해 천제를 지내는 것이 여기에 해당하지.
② 부락굿
마을의 평안과 번영을 위한 굿으로 보통 서낭에서 지내지.

③ 내림굿
강신무가 되기 위해 신을 받는 굿을 말해. 그런데 신이 왔다고 아무때나 신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적게는 몇 년에서 많게는 몇 십년을 기다려야 하지. 신이 목구멍까지 가득차 올라올 때(신끼가 절정에 이를 때) 내림굿을 해야만 제대로 통령(通靈)이 이루어지게 돼.
④ 넋굿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천도제를 말해. 영혼에 맺힌 원한과 이생에 대한 집착의 정도 여하에 따라, 한 번에서 많게는 수십 차례의 넋굿을 행하지. 넋굿을 지방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불러.
경기도,황해도―지노귀굿.
평안도―시왕(十王)굿,다리굿 함경도―망묵굿.
경상도―오구굿.
전라도―씻김굿
제주도--시왕맞이굿

⑤ 재수굿
흉화(凶禍)를 막고 길복(吉福)을 얻으려는 굿으로, 입시철이나 선거철, 또는 개업을 앞두고 하는 굿이 여기에 해당하지. 재수굿을 지방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불러.
서울/경기--천신(天神)맞이굿(정초), 꽃맞이굿(봄), 신곡(新穀)맞이굿.
황해도--철물이 굿.
전라도--도신.
(2). 굿의 구조
① 청신(請神)
부정(不淨)을 물리고 신을 부르는 의식이지
② 오신(娛神)
신을 모시고 한바탕 놀며 인간의 소원을 아뢰고 공수(점괘)를 듣는 의식이지. 보통 ‘열두마당(12거리)’의 의식이 행해지지.
③ 송신(送神)
신을 본래의 장소로 돌려보내는 과정으로, 다른 곳으로 천도하기도 해.
 

이걸로 굿의 종류와 구조는 끝. 다음에는 무당의 명칭에 대해 알아볼게
 
무(巫)란 고대 신교(神敎)의 제사를 주관한 사람으로 춤을 추거나 노래하며 접신이 되어 인간과 신을 연결하여 주는 영매를 가리켜.
무(巫)의 기원에 관하여는 몇 가지 설이 있지.
무(巫)란 신명을 다하여 춤추는 사람을 말한다. 무(巫)자의 ‘工’ 양쪽에 있는 ‘人’은 춤추는 모양을 취한 것이다. 《주자어류》
남자를 격(覡), 여자를 무(巫)라고 하는데, ‘알아야 할 일을 미리 아는 사람’이란 뜻이다. 《설문해자》
궁궐에서 항상 춤추며 즐겁게 노래하는 사람을 두었는데, 이것이 무(巫)의 풍토일 것이다. 소(疏)에 보면 가무(歌舞)로써 신을 섬겼기 때문에 가무가 무(巫)의 풍속이 되었다고 하였다. 《상서》

이상의 무(巫)에 대한 설명은 가무(歌舞)에 주안을 둔 해석이야.
 

그렇다면 무당에서 당(堂)자가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당(堂)이란 칠성당, 성황당, 사신당, 국사당, 미륵당, 용왕당······ 등과 같이 신을 모신 집(神堂)을 뜻해. 그래서 무(巫)자에 당(堂)을 붙여 무당이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지. 가령, 안방마님, 사랑채손님, 별당아씨, 방님(절방스님)····등과 같이 주거지가 주거자의 명칭이 된 경우도 같은 맥락이야.
그런데《청구영언(靑丘永言)》에 수록된 작자 미상의 노래에, ‘― 덩덕쿵 치는 巫당년드리―’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무당을 ‘巫堂’으로 쓰지 않고 ‘巫당’이라 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 점에 대하여 러시아의 학자 트로슈찬스키(Troshchanski)는, “몽고인, 브라트인, 야쿠트인, 알타이인, 토루구트인, 키단인, 키르기즈인은 여무(女巫)를 각각 utagan, udagan, udaghan, utygan, utiugan, iduan이라 하고, 또한 타타르에서는 udege, 퉁구스에서는 utakann이라 한다. 이처럼 우랄알타이 민족 사이에서 여무(女巫)의 호칭이 일치된다는 점은 하나의 기원에서 생겨난 것임을 증명하는 것이다.”라 하였어. 이렇게 본다면《청구영언》에 나오는 ‘巫당’과 우랄알타이어의 어원적 고찰은 무당의 ‘당’이 한자어가 아닌 순 우리말임을 뒷바침하고 있지.
 

부연 설명하자면, 공통된 발음인 ‘an'을 추적하면 이것의 원류가 'han'임을 추측할 수 있지. 그리고 'han'에서 kan, dan, gan 등의 발음이 갈라져 나왔고, 'dan'에서 'dang'이 도출된 것으로 볼 수 있어. 다시 말해, ‘크다’, ‘높다’, ‘하늘’, ‘합하다’의 뜻을 지닌 'han(한)'에서 ‘으뜸’, ‘왕’의 뜻을 지닌 kan, dan, gan이 나왔고, 이 중 dan에서 dang이 나왔다고 볼 수 있지. dan과 dang은 한자어로 음역되면서 단(檀)과 당(堂)으로 되었고 말이야. 이렇게 본다면 무당의 근원은 하늘과 땅, 하늘님과 인간을 연결하는 단군(檀君)에 있다 할 수 있어.

그렇다면 무당의 무(巫) 또한 더욱 거슬러 올라가면 한자어가 아닌 순 우리말일 가능성이 높아. 즉 'mu'의 발음을 한자어로 옮기면서 가장 적절한 뜻을 담고 있는 ‘巫’자를 채택한 것이지. ‘mu’의 정확한 근원이 지금에 와서 무엇인지 밝힐 수는 없지만, ‘巫’로 번역하였다는 점을 고려하여 짐작할 수 있을 뿐이야. 이 점에 주안을 두어 무(巫)자의 구조를 보면, 위 아래에 있는 ‘일(一)’은 하늘과 땅을 말하며, 가운데의 ‘곤’은 영육의 경계선을, 그리고 양쪽의 ‘인(人)’은 좌측은 산 사람 우측은 죽은 사람을 뜻하지. 이것을 종합하면 하늘과 땅, 즉 천지 속에서 인간(산 사람)과 신(죽은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 무(巫)자가 뜻하는 바야. 이런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춤과 노래가 곁들이게 되는 것이지. 그런즉 ‘무(巫)’란 작은 의미로는 신과 접신 되어 죽은 사람과 소통을 하는 것을, 큰 의미로는 도(道)를 통하여 인사(人事)에 천의(天意)를 실현하는 신인(神人)을 뜻하지. 일반적으로는 전자의 소극적 의미로 사용되지.

요컨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당의 자원(字源)이 우리말이며, 그 뜻에 있어서 하늘과 인간을 연결한다는 고차원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야. 즉, 무당은 곧 단군(檀君)이며, 단군은 하늘(하늘님)과 땅을 연결하는 무당이었지. 오늘날 무당이란 용어가 많이 퇴색되었기에 어찌 보면 저속한 표현으로 느낄 수 있으나, 같은 용어로 ‘천자(天子)’, ‘성자(聖子)’······등을 들 수 있지. 즉, 무당이란 용어가 대단히 광범위하여 9천의 하늘님과 상통한 무당을 ‘천자’나 ‘성자’로 부르며, 선계(仙界)의 도통신들과 상통한 무당을 도인이나 도사, 신인(神人)이라 칭하는 것이지. 가령, 예수는 하늘님과 상통하였기 때문에 ‘예수성자’라는 칭호를 받은 것으로, 이분도 어떻게 보면 모두 무당에 속하는 것이지. 또한 선계의 도통신과 접한 승려를 ‘신승(神僧’이라 칭하는데, 이것도 무당인 것이지. 무당이란 높건 낮건 신과 관련을 맺은 모든 사람을 일컫는 말인 것이야. 그러나 대개의 무당들이 3~4천의 일반 신들과 연관되어 저속하게 취급받는 것이 사실이야. 그래서 이런 경우의 무당을 ‘만신’, 혹은 남자 무당의 경우 ‘박수’라고 부르지. 그러나 선계의 도통신들과 연관을 맺으며 도줄로 제대로 나아가는 무당도 적지 않아. 이런 무당들이 많아져야만 다시 옛적의 영광된 무당의 이름을 되찾지 않을까 싶어.
 

(2). 박수의 어원
남자 무당을 지역에 따라 사내무당, 박사무당, 박수무당, 할보무당이라 하며, 간략히 박수, 박시, 박사, 박새라 하지.
국학자 이능화(1869~1943)는 그의 저서《조선무속고》에서 다음과 같이 박수의 어원을 추측했어.
우리말에 남자 무당을 박수(博數,paksu)라 부르는데, 이는 박사(博士) 혹은 복사(卜師)에서 와전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무서(巫書)를 보면 복사를 박사라 칭하는데 주역박사(周易博士), 다지박사(多智博士) 등이 그 일례이다.
즉, 한자어에서 박수가 유래되었다는 주장이지. 그런데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우랄알타 민족에 고루게 퍼져 있는 ‘박수’의 명칭을 볼 때 그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져. 가령, 여진어의 bahsih, 만주어의  faksi, 고르지어의 paksi, 오로촌(Orochon)의 paktjine, 퉁구스어의  baksi, 몽고어의 baksi 또는 balsi, 그리고 터어키어의 baksi 등과 같은 남자무당을 뜻하는 말들을 살펴 보면 서로 일맥상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어.
 

박수가 순 우리말이라고 본다면 그 뜻을 추적하기는 쉽지 않아. 무당이 어원적으로 단군과 관계 있다는 점에서 볼 때, 박수 또한 ‘밝다’라는 뜻의 ‘bak’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가 싶어. 무당의 어원적 의미는 하늘의 뜻을 대변해 주는 사람으로, 이는 다시 말해 밝음(진리)을 세상에 전해주는 사람이지. 그런즉, ‘밝다’라는 뜻의 'bak'에서 박수의 ‘박’이 출발한 것으로 보여지지. 그리고 박수의 ‘수’란 우리말의 ‘기능을 소유한 자’란 뜻에서 비롯된 듯 싶어.
 

요컨대, 박수의 어원은 우리말에 있으나 발음만으로써는 그 원래의 의미를 되살릴 수 없어. 하지만 정황을 살펴 추측한다면 ‘밝음을 전해 주는 특별한 사람’이란 뜻이 아닌가 싶어.

이걸로 무당의 명칭은 끝. 이 다음에는 무당의 평가에 대해 설명해 줄게

무속은 민족의 정서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귀중한 문화 유산이지. 그런데 이러한 무속이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심한 핍박을 받게 돼. 물론 무속인의 잘못된 처신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나, 유교적 문화로써 무속문화를 대체하려는 움직임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 할 것이야.
다음은《실록實錄》에 나오는 무당의 폐혜를 지적한 기록이야.

-세종 18 년 여름, 사헌부에서 왕에게 상소하기를 “도성 내에 요사한 무당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나,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관청에 알리지 않는 자는 물론이고 그 이웃 또한 책임을 지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성부 관원과 도성 밖의 수령은 수시로 무당을 감찰하여 요사한 풍속을 막아야 될 줄 아옵니다” 하였다. 이에 왕께서 “전에는 이러한 금지 조항이 없었는데 만일 급히 금하게 한다면, 모르고 죄를 범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골고루 계몽해서 백성들에게 알린 후 7월부터 법을 시행하도록 하라”하였다.
 

-성종 3년 봄에 사헌부에서 무업(巫業)을 금지하는 조항을 만들었는데 다음과 같다.
1. 초상당한 집에서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 자가 있으면, 그 집의 가장과 무녀에게 죄를 묻는다.
2. 무당에게 조상의 혼백을 위탁하여 천도를 부탁하는 자는, 그 집의 가장과 무녀에게 죄를 묻는다.
3. 신의 말을 하여 세인을 현혹시키는 무당과 이를 따르는 신도에게 죄를 묻는다.
4. 관청이나 이웃이 무당이 법을 어기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신고하지 않는 자는 모두 죄를 묻는다.
-중종 12년 9월 사헌부에서 상소 하기를, “이미 무당은 도성 안에 거주하지 못하도록 법을 제정하였음인데, 아직도 도성을 드나들며 사람을 속이고 재물을 취하는 풍토가 만연되어 있습니다. 요사한 말로 현혹하여 풍속을 해치며 심지어 사대부의 집이라도 거리낌 없이 드나들고 있습니다. 관청에서 단속을 하여 성 밖으로 쫓아내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성 안으로 돌아오며, 식별하기가 어려워 곤란한 지경입니다. 무당들을 모두 도성 2백리 밖의 거리에 두고 각 관청에서 수시로 순찰하고 점검하여 마음대로 이주하지 못하도록 하기 바라옵니다”하였다.
 

그런데 고려 때에만 하여도 국사무당이 주관하여 국가와 종묘사직을 위한 천제를 올리거나, 가뭄 시에는 전국의 무당을 모아 기우제를 올리는 등의 일은 흔한 일이었어. 다음의《고려사,99권》에 나오는 기록은 당시의 무당이 얼마나 신뢰를 받았는 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함유일이라는 사람이 강원도의 관찰사로 있을 때의 일이다. 그곳에는 성황신이 실려 국가의 화복을 불가사의할 정도로 잘 맞추는 무당이 있었다. 어느 날 무당이 성황당에서 국사(國事)를 위한 제사를 올리는데 함유일이 참배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사(儒士)들이 빗발치게 상소하여 결국 함유일은 삭탈관직 당하였다.
무당이 하는 일은 인간사가 아닌 귀신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눈에 확실히 드러나지 않아. 그래서 올바른 무당과 그릇된 무당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지. 조선에서의 무당의 핍박은 바로 그릇된 무당의 잘못된 행실과 유교의 정략적인 탄압에 기인하지. 오늘날에 있어서도 바른 무당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하고 온갖 미혹된 사술로써 돈벌이에만 급급해 하는 무당들이 있어.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속담과 같이 무당의 도리를 저버린 선무당들에 의해 전체 무당의 이미지가 흐려지고 있는 것이지. 조선에서도 이런 선무당들이 적지 않았는가 싶어.
 

다음은 선무당과는 달리 무당임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소신껏 처신한 어떤 무당에 관한 기록이야.
-송공(宋公)은 무속의 풍토를 심히 천하게 여겼다. 그는 매일같이 ‘거짓으로 귀신을 사칭하여 백성을 속이고 재물을 빼앗는 무리들을 어찌하면 다 없앨 수 있을까?’하고 궁리하곤 하였다. 그러던 중 남원부사로 임명되자 곧바로 령을 내려 말하기를, “우리 고을에 만약 무당으로 드러나는 자가 있으면 한 사람도 빠뜨리지 않고 참형에 처하겠다”고 하였다. 고을 내의 무당들은 크게 놀라며 다른 고을로 성급히 피신하였다. 송공(宋公)은, ‘이제 우리 고을에는 무당이 한 명도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흡족히 여겼다. 그런데 어느 날 광한루에 올라 주변을 둘러 보는데, 어떤 여자가 말에 장구를 싣고 가는데 틀림없이 무당의 행색이었다. 곧 포졸을 보내어 뜰 앞에 끌고오게 하고는, “네가 무당 맞으렸다?”하고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하고 무당이 자신있게 답하였다. 송공은 목소리를 높이며 다시 물었다. “네가 관가에서 내린 령을 듣지 못하였느냐?” “네, 들었습니다.” “너는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 어찌하여 우리 고을에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인고?” “원컨대 나리, 소인에게 변명의 기회를 주시고 밝게 살피시옵소서. 무당은 진짜와 가짜가 있는데, 가짜 무당을 죽이는 것은 가하지만 진짜 무당을 어찌 죽이시겠습니가? 관가에서 령을 내려 엄금하는 것은 모두 가짜 무당에 해당하는 것이지 진짜 무당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진짜 무당인고로 관가에서 죽이지 않을 것을 알고 거처를 옮기지 않았습니다.”
 

“무슨 근거로 네가 진짜 무당이라 자부하는가?” “원컨데 시험해 보시면 알것입니다. 만일 효험이 없다면 법에 따라 죽겠습니다.” “그렇다면 네가 능히 귀신을 부를 수 있는가?” “나리의 친구분들 중에 죽은 지가 오래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 영혼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내게 죽은 벗이 있는데 도성에 사는 아무개이다. 네가 능히 이 친구의 영혼을 이르게 할 수 있겠는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몇 그릇의 반찬과 술 한 병이 있어야겠습니다.” 송공은 믿기지는 않았으나 함부로 사람을 죽일 수 없는 법이어서 무당의 말대로 제물을 준비해 주었다. “원컨대 나리의 옷 한 벌을 주시면 그것으로써 신을 청해 보겠습니다. 옷이 아니면 신이 내리지 않습니다.”
 
송공이 전에 입던 옷을 내 주자, 무당이 그 옷을 걸치고는 제단 앞에서 방울을 흔들고 주문을 외워대며 겅중겅중 뛰었다. 잠시 뒤에 무당의 입에서 “내가 왔다. 내가 왔다”하였다. 그러더니 송공을 향하여 사별의 슬픔을 말하고 일생 동안 기쁨을 나눈 정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긴 대나무를 타고 놀던 일로부터 과거장에서 합격하여 벼슬을 얻어 조정에 나아간 것에 이르기까지 조목조목 자세하게 늘어놓았다. 그 가운데는 송공이나 친구 둘만이 알고 있고 다른 사람은 일체 알지 못하는 일까지 토해내었다. 송공은 눈물을 흘리면서 슬픔을 참지 못하고, “내 친구의 혼령이 실제로 여기에 온 것을 의심할 수 없다”고 말하며, 명하여 다시 좋은 안주와 술을 가져다가 대접하도록 하였다. 한참 후에 친구는 이별의 말을 하고 떠났다. 송공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나는 평생토록 무당은 믿을 것이 못된다고 생각하였는데, 이제 비로소 무당이 진짜가 있음을 알았도다.”하였다. 그리고는 무당에게 후한 상을 주고 무당을 금하는 령을 거두었다. 이로부터 송공은 다시는 무업을 배척하지 않았다고 한다. 《천예록(天倪錄)》
 
이익(李瀷)은 일찌기《성호사설》에서 『내가 보건대, 무당이 혼을 부른다고 조작하여 사람들의 재물을 빼앗는다. 나라 풍속이 귀신 섬기기를 좋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한 바 있지. 그러나 이는 무당의 속성을 바로 알지 못하여 한 말이야. 무당이 혼을 부르는 것은 거짓없는 사실이야. 단지 무당에 내린 주장신의 높고 낮은 차이에 따라 실력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실력이 낮은 무당은 귀신과의 소통이 미흡하고, 살을 풀고 귀신을 쫓고 천도하는 등의 일에 부족함이 많아 오해받기 쉽지. 또한 실력이 있어도 그 성품이 중생구제 보다는 재물을 밝혀 천대받는 요인이 되기도 하지. 귀신문제로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사명감은 멀리하고, 돈과 재물에만 눈이 멀어 온갖 사술을 부리는 무당도 적지 않아. 이런 무당들 때문에 제대로 무업에 종사하는 무당들까지 천대받게 된 것이지.
 

이익은 또한 우리 민족이 귀신 섬기기를 좋아하는 것이 문제라고 하였는데, 우리 민족은 결코 귀신을 섬기는 민족이 아니야. 우리 민족은 신의 세계를 여타 민족 보다 정확히 꿰뚫고 있으며, 귀신을 능통하게 부리는 민족인 것이지. 무당은 구조적으로 저급한 귀신은 섬기지 않아. 3천의 귀신은 결코 내림신이 될 수 없기 때문이야. 적어도 4천 상급의 신명 정도는 되어야 내림신이 가능하지. 무당은 적게는 4천의 신명에서 높게는 5~6천의 도통신을 받들며, 인간사에 개입하여 말썽을 일으키는 온갖 귀신을 퇴치하는 전문직 종사자인 것이야.
 

여하튼, 무당은 사회에 널려있는 그런 단순한 직업이 아니야. 죽은 자의 문제를 다루는 막중한 책임이 있는 것이지. 그럼에도 다른 직업인과 같이 돈과 재물만 앞세운다면 필히 더 크게 잃는 것이 있을 것이야. 즉 죽어서 업보와 영적퇴락으로 인해 귀신으로 전락되는 손실이 있을 것이야. 이 점을 명심하고 송공을 감동시킨 무당처럼, 나아가 천의(天意)를 대변하는 진짜무당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야.
 

이걸로 무당의 평가는 끝. 다음에는 신점의 원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할게
 

매사에 일이 안 풀리거나 답답한 일이 있을 때 흔히들 점집을 찾게 되지. 점에는 영(靈)으로 보는 신점이 있고, 명리(明理)로 풀어 보는 사주점이 있고, 육효를 뽑아 보는 괘점이 있는데, 여기서는 신점을 다루고자 해.
그런데 과연 어떤 원리로 점술가는 사람의 과거를 맞추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그 정확도는 얼마나 될까?조선조 세종 때에 대제학 우찬성을 지낸 서거정은《필원잡기》란 책에서 신점에 관해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어.
-귀신과 소통하여 귀신의 말을 하는 여자 무당이 있었는데, 그녀는 지난 과거의 일을 물으면 쪽집게같이 맞추었으나 다가올 미래의 일을 물으면 백의 하나도 맞추지 못하였다.-
이는 무당은 과거는 잘 맞추어도 미래에 대한 적중률은 떨어진다는 뜻이지. 이것은 통계를 내보면 틀림없는 사실로서, 대부분의 무당이 미래보다는 과거의 점에 치중하는 것이 상례이지. 무속인 몇 사람이 모이면 서로의 점을 봐 주는 경우가 많은데, 먼저 과거점부터 치게 돼. 그리고 이것의 정확도에 의하여 곧 있을 미래점에 대한 신임을 얻게 되지.
 

그런데 어떤 이유로 무당은 미래보다는 과거를 잘 맞추는 것일까?
귀신이나 신명은 육신이 없기 때문에 지적 작용은 미흡하지만 감성 작용은 매우 발달되어 예측의 능력이 탁월해. 3차원에 거하는 인간의 눈치에 비하여 4차원에 거하는 귀신의 감성이 미치는 영역은 광범위한 것이지. 입체인 3차원에서 평면의 2차원을 내려다 보아야 더욱 정확히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유이지. 그러나 세간에서 말하는 것처럼 90%, 100% 적중률이라는 것은 다소 과장된 면이 없지 않아. 신점의 적중률이 이와 같다면 역사는 이미 무당이나 점술가의 손에 좌지우지 되었고, 또한 앞으로의 역사도 그들의 말에 의존될 것은 자명한 노릇이지. 그러나 실상은 제일 용하다는 무당이나 점술가의 정중률도 미래에 있어서는 50%를 넘지 못하며 과거의 사실에 대해서도 70%를 넘지 못하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야. 미래에 대하여 50%의 적중률만 갖는다 하여도 천하 제일의 점술가라 하여도 손색이 없을 것이지.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30~40%를 넘지 못해. 이것은 평범한 인간이 미래에 대하여 눈치나 추측으로도 20~25%를 맞추는 것에 비해 약간 높은 적중률에 지나지 않아. 그리고 어떤 특수한 경우, 가령 시(是)와 비(非) 가(可)와 불가(不可) 등으로 갈리는 양자택일의 경우에 있어서는 보통 사람도 50%의 적중 률이 있는 것으로, 이런 경우에 무당이나 점술가가 맞추는 것은 그다지 대단한 일은 못되지. 이렇게 미래의 일에 대해서는 적중률이 썩 높지는 않은데, 이상하게도 과거의 일에 대해서는 높은 적중률을 보이지. 용한 경우에는 70~80%까지 맞추기도 하고 보통의 경우에도 40~50%를 곧잘 맞추는데, 이는 확률상 대단한 적중률이 아닐 수 없어.
 

그렇다면 무당은 어떻게 과거는 잘 맞추고 미래는 잘 맞추지 못하는 것일까?
점을 치러 온 손님이 어느 무당집을 찾아가겠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 이미 무녀의 신, 특히 동자신이나 동녀신은 이를 알아차리고 손님의 조상신과 접촉을 하게 돼. 그리고 그 조상신에게 손님에 대한 과거의 일을 물어 점을 보기 전에 사전 정보를 입수하게 되지. 점을 볼 때 무녀는 동자나 동녀, 또는 조상신이 알려 주는 대로 말하게 되고, 이렇게 해서 어느 정도 과거의 일을 맞추게 되지. 그러나 조상신이라 하여도 자손의 일거일동에 대해 소상히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과거를 맞추는 점은 결국 조상신의 정보량에 달려 있다 할 것이야. 여하튼 높은 적중률을 보이면 손님은 무당을 철석같이 믿게 되고 자신이 고민하는 일을 털어놓게 되지. 즉, 현재의 상황과 미래의 변화, 그리고 그 대처 방안을 묻게 되는 것이야. 과거의 일을 맞추는 것은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무당의 신임을 평가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여기서 통과하면 점을 보러 온 목적에 해당하는 현재의 곤경과 미래의 변화에 대해 묻게 되는 것이지. 그런데 미래에 대해서는 신이라 하여도 정확히 알아낼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야. 그래서 신도 생년월일시를 물어 사주를 뽑아 대운을 보거나, 신계(神界)에 얽혀진 동정을 관하여 인사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판단하여 미래의 일을 알려주게 되지. 인간의 눈치에 비하면 좀 더 정확성이 있지만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야. 과거의 일이야 조상신이 자손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을 동자나 동녀신에게 일러주므로 정확률이 높지만, 미래는 그렇지 못하지. 따라서 미래에 대한 에언과 그 미래를 굿이나 부적으로써 바꿀 수 있다는 말을 전적으로 신뢰해서는 금물이야.
 

여하튼, 신점이란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이루어지는 것으로, 과거의 사실을 맞추었다 해서 너무 믿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돼. 세간에 국운(國運)을 맞췄다고 명성이 자자한 무당들이 있는데, 이것 또한 그렇게 비중을 둘 일은 못돼. 무당의 신들 중에는 나름대로의 정보망이 있으며, 좋은 연맥이 있는 신은 5천의 선신(仙神)과도 내왕이 이루어지는 바, 5천에 떠도는 인간사에 관한 양질의 정보를 입수할 수 있어. 그리고 이것을 제자의 입을 통해 발표하게 되면 간혹 가다 적중되는 수도 있는 것이지.
 
인천의 모보살이 김일성의 사망을 맞추었다고 하는데, 물론 충분히 그럴 수 있어.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미래의 일을 지속적으로 맞출 수 있느냐의 정확도에 달려 있어. 만일 열 가지의 미래사를 예언하여 하나나 둘을 맞추었다면 이것을 가지고 크게 자랑삼을 바는 못되지. 그녀는 세간에 베스트셀러가 된 그녀의 책에서 “나의 사명대사 신께서 이제는 말을 하라고, 사람들에게 알리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쓴 이유이다”라고 하면서 국운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지. 가령, 정치적인 관심을 불러오고 있는 내각제가 95년 연말이나 96년 3~5월에는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지. 그리고 김정일은 1996년에 정권에서 물러날 것인데, 그것은 권력투쟁과 건강상의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며, 그는 망명을 하게 되는데 일본은 결코 아니며 유럽의 어느 국가라는 것이야. 또한 그녀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 같은 대형 사고가 1995년 음력 10월에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하였지. 여기서 멈추질 않고 천운까지 언급하고 있는데, 일본이 멸망할 것이며 한국에서 대종교인이 출현하여 세계인의 정신을 이끌고 갈 것이라는 것이지. 이런 국운이나 천운에 관한 예언은 이미 오래 전부터 세간에 팽배한 것들이며, 결과적으로 그녀의 예언은 하나도 적중되지 않았어 .
 
내가 세간의 주목을 받는 한 무녀를 거론하는 것은 그녀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야. 점술의 원리와 실체를 보여주어 시비를 가리고 현혹됨이 없게 하기 위해서야.여하튼 어떤 개인의 임종이 가까워지면 조상신들의 움직임이 달라지게 마련이며, 이런 동태를 잘 살피면 대충은 그 사망의 시기를 파악할 수도 있어. 따라서 예언을 적중하였다 하여 그렇게 대단히 여길 만한 것은 못되지.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보통 사람들은 예언의 적중률에 어리둥절할 지 모르나, 인간이 눈치나 소문으로 미리 짐작하는 것과 같이 신들 또한 나름대로의 소식통으로써 정보를 입수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 이렇게 정보를 수집하여 내린 신점의 적중률 또한 대부분 50%를 밑돌게 되는데, 이는 대개의 내림신의 수준이 신명의 차원에 불과하기 때문이야. 즉, 4천의 영적 수준으로는 신계의 동정이나 인사의 변화에 정통하기란 역부족하기 때문이야. 인간이 눈치로서 짐작하듯, 신 또한 이 소문 저 소문을 모아 추론하듯 예언하는 것인바, 그 적중률을 무조건 믿을 것은 못되는 것이지. 그런즉 간혹 가다 하나 맞는 것을 가지고 우쭐해서도 안되며, 이것에 현혹되어서도 안돼. 오히려 인간사의 예언은 경제 분야는 경제 전문가들이, 정치 분야는 정치 전문가들이 더욱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이지.

김일성의 사망 시기에 대해 풍수의 대가라는 ○○대사는 몇 개월의 오차가 있었음에도 맞춘 것 마냥 주장하는데, 사실상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김일성의 건강을 분석하여 이미 1~2년을 넘기지 못할 것을 확신하고 있었어. 이것이 신문지상을 통하여 세상에 알려지자 갑자기 무당, 점술가들의 사망 예언이 줄을 잇게 되었고, 그 가운데 몇 사람이 근사치에 해당하게 된 것이지. 여하튼 중요한 것은 점은 점인 것이지 이것에 이끌려 가서는 안된다는 것이야. 신의 점은 대체로 인간의 추측이나 눈치보다는 정확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참고로 할 수는 있겠지만, 이것을 곧이 곧대로 믿어서는 안돼. 항상 자신의 주관을 가지고 좋은 상담을 한다는 마음으로 점을 보아야 현혹되어 망신하고 패가하는 일이 없을 것이야.
 
이걸로 신점의 원리는 끝. 이걸로 신내림과 신병에 대한 것을 끝냈어
 
출처 한국 고유 선법수련자님의 글중에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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