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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버번콕
게시물ID : panic_878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소리조각
추천 : 27
조회수 : 2498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6/05/17 14:3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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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비가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길을 가던 이들은 너나 할것없이 입안에서 맴도는 욕을 한두마디 내뱉을만큼 물이 고여있었고, 
어두운 조명으로 둘러싸인 조그만 바(Bar)안으로 들어서는 이들은 한가지 동작으로 우산을 털고 어깨를 털고 의자에 앉았다.

칙칙한 색깔의 코트를 입은 사내는 11시가 약간 넘은 시점에 들어왔다.
바텐더는 어서오세요 라는 무미건조한 인사를 하고, 그 사내는 오늘 들어온 손님들과 똑같은 동작으로 어깨를 털었다.
물을 뚝뚝 떨구며 의자에 앉은 그는 바텐더를 불러 재떨이를 달라고 했고, 담배를 꺼내물면서 입을 열었다.

"버번이 뭐가 있죠?"
"잔으로 파는건 잭다니엘이 있는데요."
"그럼 잭콕으로 한잔 주세요.

바텐더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잔을 꺼내어 얼음을 담았다. 
술과 콜라가 적당히 섞인 얼음잔을 사내에게 건네자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받아 한모금을 들이켰다.
그리고 사내는 한숨을 쉬었다. 

바텐더는 사내를 한번 흘끔 쳐다보고는 방금전 설겆이를 마친 잔을 닦기 시작했다.
바의 가장자리에 앉아서 떠들던 두명의 여자들중 노란머리의 여자 한명이 바텐더에게 농담을 던졌다.

"태형아 오늘 몇시에 끝나?"

쨍한 목소리 때문인지 말없이 혼자 술을 마시던 사내가 여자쪽을 흘끔 쳐다보았다.
바텐더는 안면이 있는 여자였는지 웃으면서 대꾸했다.

"4시에요."
"그럼 4시에 누나랑 해장국 먹으러 갈래?"
"저도 그러고 싶지만 누나는 항상 2시면 취하잖아요."
"취하면 니가 우리집에 데려다주면 되잖아? 비밀번호 알려줄께 라면먹고 가."

그 말을 던져놓고 두 여자는 깔깔대면서 웃기 시작했다. 
바텐더는 추파가 익숙한지 웃으면서 잔을 마저 닦기 시작했다.

창을 때리는 빗소리가 계속 되다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자정이 넘으면서 바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사내는 두잔의 버번콕을 마셨고, 바텐더는 열다섯잔의 위스키와 일곱병의 맥주를 팔았다.

새벽이 되면서 바안에는 바텐더와 사내, 그리고 바텐더에게 추파를 던지던 여자만이 남았다.
여자의 일행은 이미 가버린지 오래였고, 혼자남아 술을 마시던 노란머리의 여자는 2시가 되자 바에 엎드려 잠이 들어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바텐더는 사내에게 다가가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손님. 이제 가게문을 닫아야 할 것 같습니다."
"4시까지 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보통은 그렇지만, 오늘은 일찍 닫아야 할 것 같네요. 저 여자분이 단골이신데, 저대로 두기가 좀 그래서..."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갑을 건네 카드를 바텐더에게 주었다. 
바텐더는 익숙한 동작으로 카드를 긁고는 사내에게 돌려주었다.
사내는 바텐더에게 카드를 받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버번콕을 아주 맛있게 만드시네요."
"네?"
"아주 맛있어요. 아마 약을 타도 모를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맛입니다."

순간 바텐더의 얼굴이 굳었다.

"우연히 들어온 곳에서 이런 훌륭한 버번콕을 만드는 사람을 만나게 되서 반갑습니다. 저같은 사람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을 알아보는 게 그리 어렵지 않죠. 꼭 버번과 콜라의 비율이 잘 맞아서는 아니예요. 머리도 좋고, 계획성도 있습니다. 아까부터 제 잔은 전혀 설거지를 하지 않으시네요."

"무슨..."

바텐더의 손이 바 아래로 내려갔다.

"아아... 뭐 다른뜻이 있는건 아닙니다.. 그리고 아시겠지만 칼이라면 저도 잘 다루거든요. 오늘도 쓸일이 있을뻔 했지만, 오늘은 포기해야겠네요. 맛있는 버번콕에 대한 답례라고 하죠."

바텐더가 굳은 표정으로 사내를 노려보는 동안 사내는 칙칙한 색깔의 코트를 주섬주섬 입고는 창밖을 쳐다보았다.

"뭐 정 어렵다면 날을 다시 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긴 합니다만, 아직 경험이 많지 않다면 욕구를 조절하는게 좀 어렵긴 하죠. 그럼 저는 지금부터는 알리바이를 만들러 가야겠네요."

비를 잦아들긴 했지만 아직 완전히 그치진 않았다. 사내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바텐더를 쳐다보았다.
아직까지 굳은 표정으로 바 아래의 무언가를 쥐고있던 바텐더가 무언가 말을 하려는 순간 사내는 마치 사라지듯이 순식간에 바의 문을 열고 나갔다.

바의 끝에 엎드려 자고 있는 여자는 작은 소리로 코를 골았다. 
등줄기에 무언가가 흐르는 걸 느끼면서 바텐더는 사내가 앉아있던 자리로 갔다. 

재떨이 옆의 빈 담배갑 밑에 작은 메모지가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집어든 메모지에는 흘려쓴 글씨로 234134라고 적혀 있었다. 

자신이 알고있는 번호와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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